새해 첫날이다. 2026년 1월 1일.
부모님을 모시고 인천바다로 향했다. 해물이 통째로 들어간 해물칼국수집이 그곳에 있어서다.
점심 시간이라기엔 조금 이른 오전 11시쯤이었지만, 이미 조식 인파가 한 차례 식당을 쓸고 지나간 뒤였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안내받았다.
변함없이 듬뿍 담긴 해물칼국수. 가격은 여전히 1인당 1만 4,000원. 광화문에서 곰탕 한 그릇 가격이 떠올랐다. 거리가 멀어서 그렇지, 이곳은 여전히 가성비 맛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리밥에 참기름과 초장을 조금 부어 먼저 입을 열었다. 입가에 새콤한 기운이 돌며 식욕이 깨어났다. 곧이어 바삭한 해물파전이 나오고, 마침내 해물칼국수가 테이블 위에 올랐다.
부모님을 모신 자리라 해물칼국수 3인분에 파전을 추가했는데, 사장님이 칼국수 2인분에 파전으로 슬쩍 정정해주셨다.
“이렇게 드시면 딱 좋아요.”
손님 수에 맞춰 남기지 않게, 맛있게 먹고 가는 것이 수익보다 먼저인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마음이 한 번 더 가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천바다가 길게 펼쳐졌다. 새해 첫날의 바다는
괜히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조용했다.
그날의 풍경은 묘하게 오래 남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한 끼처럼.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일부러 바깥활동을 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이 잠시 떠난 텅 빈 집안에서 혼자만의 사색을 하고 싶어서였다. 아들이 없으니 늘 시끌벅적하던 거실은 고요했고, 북적이던 집안도 한결 차분했다. 서재로 들어가 요기보에 기대 누워 영화를 틀었다.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이기도 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은 분명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했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막상 쓰고 싶지는 않았다. 쓰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우러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새해 둘째 날이 흘러갔다.
새해 셋째 날을 맞았다.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이 꿈속까지 따라온 것일까. 꿈속에서 나는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되뇌다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30분쯤.
새해라면 마음이 따뜻해질 거라 기대했지만, 텅 빈 집안 탓인지 공기가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난방이 아직 덜 오른 탓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마음속에 남은 허전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양치를 하고 다시 서재에 들어가 한동안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10시쯤 되어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기를 돌리다 헤드가 영 시원찮다는 생각이 들어 네이버에 접속했고, 마침 특가 세일 팝업이 떠 충동적으로 하나를 주문했다.
그렇게 또 시간을 흘려보낸 뒤, 다시 서재 의자에 앉았다.
꿈속에서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장을 이제는 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한 서재에 앉아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자꾸 나를 붙잡는지, 무엇이 나를 이 문장 앞으로 데려왔는지 천천히 생각해보게 됐다.
곰곰이 돌아보니, 그동안 내가 자주 마주해온 장면들이 있었다.
“오늘은 뭘 써야 하지.”
누군가에게 묻는 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글쓰기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말로 글쓰기를 설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 질문 앞에서 머무는 시간은 이상하게 길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를 이야기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정작 쓰는 시간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요즘도 글은 계속 쓰세요?”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 묻는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물론이죠.”
그러나 그 대답 뒤에는 늘 짧은 침묵이 따라온다.
정말 계속 쓰고 있나
멈춘 건 아니지만, 미뤄두고 있는 건 아닐까
글쓰기는 종종 재능의 문제로 오해되지만, 내가 살아오며 확인한 건 대부분의 글이 훈련의 산물이라는 사실이다.
문장은 근육과 닮았다. 쓰지 않으면 금세 무뎌진다. 한동안 손을 놓았다가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면 손가락보다 먼저 마음이 굳어 있음을 느낀다. 단어를 고르는 감각이 흐릿해지고, 문장의 호흡을 잃는다.
어느 순간 어떤 분야에서든 인지도가 쌓이면 손에 익었던 실무보다는 강연이나 관리, 조언의 자리로 옮겨가는 모습들을 여러 번 보아왔다. 그 변화가 나쁘다고만 말할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고, 역할이 확장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처음 그 일을 하게 만들었던 감각,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던 긴장감이 조금씩 멀어지는 순간들 역시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 생각의 끝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현재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
내 마음속에 묵직함으로 무언가 체한 듯한 느낌이 들었던 한 문장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한문장이 마음속에 더해졌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쓰기를 말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 역시 그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건 아닐까 해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쓰는 사람’과 ‘글쓰기를 말하는 사람’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러운 간극이 생긴다.그 차이는 태도의 문제라기보다 지금도 문장 앞에 서 있는지, 아니면 한때의 경험을 돌아보고 있는지에서 비롯된다.
‘쓰는 사람’은 여전히 문장 앞에서 머뭇거린다. 지워 쓰고, 다시 고치며 지금 이 시대에 어떤 문장이 여전히 살아 있는지, 어떤 표현이 이미 낡아가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애쓴다.
반면 ‘글쓰기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분명히 도달했던 어느 시점의 감각에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있게 된다. 그 감각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이 움직이는 속도와 항상 같은 리듬으로 함께 움직이지는 못할 수도 있다.
이 차이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다.
글쓰기에도 분명 시대의 흐름이 있다
트렌드라고 불러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최신 트렌드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는 순간, 글은 조금씩 현재와의 연결을 잃어갈지도 모른다 생각해서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내 글의 가치와, 글이 주는 감동과, 문장이 지닌 무게를 지켜내고 싶다면 결국 나만의 감성과 문체를 시대에 맞게 조금씩 조율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마치 오래된 피아노가 본래의 음색을 잃지 않기 위해 시시각각 미세한 조율을 거치듯. 완전히 새 악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늘어진 현을 다시 당기고, 살짝 틀어진 음을 바로잡는 일. 그렇게 해야만 익숙한 선율이 지금의 공기 속에서도 다시 울릴 수 있으니까.
책을 냈다는 사실은 한때 나를 안심시켰다.
‘이 정도면 됐지’라는 말이 은근히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시대는 그런 안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멈추면, 여기까지일 수 있어서다.
글쓰기의 방식도, 읽히는 문장의 결도, 독자의 호흡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오늘 유효했던 문장이 내일은 낡은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변화 속에서 나만의 감성과 문체를 조금씩 조율해 나가는 것. 아마 그것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그래도 써야지.”
나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않는데 굳이 소리를 낸 이유는, 그 말이 나 자신과의 약속처럼 방 안에 남아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계속한다는 건, 잘 쓰겠다는 다짐보다 어쩌면 더 소박한 결심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문장이 어제보다 서툴러도, 내일을 위해 손을 멈추지 않겠다는 선택.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그 변화 속에서 나 자신을 조금씩 갱신해 나가겠다는 태도.
나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완벽한 문장을 떠올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부터 적어 내려가기 위해서.
글쓰기는 그렇게 계속되어야 한다.
책을 냈기 때문에도 아니고, 말을 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글쓰기를 멈추는 순간 글쓰기가 나 자신에게서 멀어질 것 같아서다.
오늘, 난, 지금
꿈속에서부터 나를 짓누르던 문장 하나를 붙잡고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문장을 주제로 삼아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속 쓰고, 다시 고치며 천천히 다듬고 있다.
가끔은 이런 글쓰기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그 안에서 엉켜버린 듯한 마음속 상념들을 차분하게 실타래를 풀어내듯 한 글자, 한 글자 글로 옮겨 적어보는 일. 쓰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고, 그렇게 정리된 생각이 조금씩 하나의 글로 모여드는 방식이다.
사실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늘 비슷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오늘은 뭘 써야 하지.”
벌써 17년째 글을 써오고 있는 나 역시 다르지 않다.오늘은 분명 주제가 정해져 있었지만, 그 주제에 어울리는 재료를 찾고 내 경험을 불러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방식을 조심스럽게 권해보고 싶어진다.
주제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되뇌이며, 그 문장에 닿는 기억과 감정을 서툴러도 좋으니 우선 글자로 적어 내려가는 것. 그리고 다시 읽고, 고치고, 조금 덜어내며 퇴고를 거쳐 한 편의 에세이를 완성해 가는 과정. 완벽한 문장을 떠올린 뒤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동안 문장과 생각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어쩌면 글쓰기는 늘 그렇게 계속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확신에 이르기까지 쓰는 과정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문장을 다시 붙잡고 조심스럽게, 그러나 끝까지 써 내려간다.
오늘도 나는 그 이유 하나로 다시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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