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인공지능(AI)이 법률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최근 AI 기반 법률 상담 서비스를 선보인 국내 법무법인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징계 절차를 예고했다. 해당 서비스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일반 시민들에게 실시간 법률 상담을 제공하고 있었으며, 이용자들에게 무료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변협의 입장은 명확했다. “법률 상담은 오로지 등록된 변호사만이 할 수 있으며, AI의 개입이 상담이라는 본질을 대체하게 될 경우 이는 명백한 위법”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법조계가 당면한 ‘신뢰’와 ‘전문성’의 경계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게 했다.
법률 AI, 과연 얼마나 왔나?
법률 서비스에 AI를 적용하는 시도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로펌들은 문서 자동화, 판례 검색, 리걸 리서치에 AI를 적극 활용해왔다.
2025년 현재, 국내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AI 기반 법률 플랫폼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법원행정처의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도입과 AI 판결문 추천 모델 개발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유사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AI가 선제적으로 추천해줌으로써, 판사의 재판 준비를 보조하고 판결의 일관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24년 AI 바우처 지원사업'에도 다수의 로펌이 참여했다. 이들은 법률 문서 분석, 판례 자동 요약, 챗봇 기반 상담 등에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의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법률 산업의 ‘자동화’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어가고 있다.
"AI와 AI가 싸우는 재판 시대 올까?"
AI는 법률 실무에 있어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다.
변호사는 반복적인 문서 작업에서 벗어나, 전략 수립과 설득의 영역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또한 방대한 판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비교하고, 유리한 전례를 빠르게 탐색할 수 있는 AI의 도움은 승소 가능성을 높이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변호인이 AI 기반 리서치를 활용하게 되면, 결국 ‘AI와 AI가 맞붙는 재판’이라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판결의 공정성은 유지될 수 있을까? 변호사 개인의 역량보다 AI 알고리즘의 성능이 승패를 좌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법조계가 AI를 ‘미래의 도전’으로만 생각하고, 실질적인 가이드라인이나 법적 장치를 갖추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면 앞으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AI 도입,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는 AI 도입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정책과 기술, 그리고 현실의 요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AI는 법률 서비스의 ‘보조자’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준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AI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어디서부터는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AI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적절한 활용 범위를 설정하기 위한 기본 전제가 된다.
또한, AI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변호사의 전문성과 결합된 '하이브리드 협업 모델' 구축도 고려할 수 있다. 이를 통해 AI는 보조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최종 판단은 전문가가 내리는 체계를 확립할 수 있다.
법률 윤리 교육과 AI 리터러시 강화 역시 필수적이다. 기술이 실제로 사용되는 만큼,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윤리적 판단 능력 없이는 AI의 도입이 오히려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법기관이 AI를 도입할 때에는 시민과의 투명한 소통과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법원이 활용하는 AI 판결 보조 시스템에 대한 구조, 알고리즘, 사용 방식 등을 공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신뢰 확보의 핵심이다.
기술이 아닌 신뢰의 문제
법조계의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수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법률 상담이란 무엇인가’, ‘전문성이란 어떻게 검증되는가’, ‘시민은 누구를 믿고 법을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맞닿아 있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과 제도, 그리고 신뢰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다. AI가 진짜 변호사가 될 수는 없지만, 변호사의 일에 있어 ‘뛰어난 조력자’가 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기술이 아닌, 법조계와 사회가 함께 내려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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