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언어 학습 플랫폼 중 하나인 듀오링고(Duolingo)가 'AI-First' 전략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며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CEO 루이스 본 안(Luis von Ahn)은 최근 전 직원에게 발송한 이메일에서 “2012년 모바일 중심 전략이 회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는 AI가 미래”라며 듀오링고의 플랫폼 중심축을 인공지능으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밝혔다. 그는 이번 결정을 “모바일 대전환에 버금가는 플랫폼 패러다임의 이동”이라고 표현하며, AI가 콘텐츠 제작, 튜터링 기능, 사용자 성과 분석 등 회사 전반의 운영 구조에 깊숙이 적용될 것임을 예고했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현실이 된 우려
하지만 이와 같은 선언은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만큼이나 일자리 축소에 대한 불안을 낳고 있다.
미국 기술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머천트(Brian Merchant)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AI 일자리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된 일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그에 따르면, 듀오링고는 2023년 말 번역가, 2024년 10월 작가 등 두 차례에 걸쳐 계약직 인력을 감축했으며, 그 자리는 대부분 AI로 대체되었다. 이번 'AI-First' 선언은 놀라운 전략 변화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경영 방향의 공식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머천트는 특히 “AI는 프리랜서 예술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의 수익을 점차적으로 잠식하고 있다”며, 이 흐름이 단순한 자동화나 효율 향상을 넘어 노동 구조 자체의 재편임을 지적한다.
[ 출처: Brian Merchant, The AI Jobs Crisis is Here Now]
AI는 효율의 상징인가, 통제의 수단인가
듀오링고는 내부 이메일을 통해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자사 미션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 표현했다. 수작업으로는 확장하기 어려운 학습 콘텐츠를 빠르게 제작하고,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화상 튜터링 기능 등을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머천트는 이 같은 흐름을 “비용 절감과 통제 강화를 위한 경영 전략의 일환”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AI 도입은 창작 노동자 수익 하락, 신입 백오피스 일자리 축소, 신규 채용 위축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으며, 이는 효율성보다 조직 권력 재편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AI 도입을 둘러싼 내부 정책 변화
Duolingo는 이번 이메일에서 다음과 같은 ‘구조적 제약 조건’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전환을 안내하기 위해 몇 가지 건설적인 제약 조건들을 도입할 예정입니다:
- AI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계약직 인력의 사용을 점진적으로 중단할 것입니다.
채용 시, AI 활용 능력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을 것입니다. - AI 활용 여부는 인사 성과 평가에 반영될 것입니다.
- 신규 인력 채용은 해당 팀이 추가 자동화를 할 수 없는 경우에만 허용됩니다.
- 대부분의 부서는 업무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이니셔티브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 이러한 지침은 단순한 조직 효율화라기보다, 구성원 모두에게 AI 적응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듀오링고는 AI를 통해 콘텐츠 제작 속도를 높이고, 접근성과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AI 전환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AI 교육과 툴링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인간 중심 조직’이라는 가치와 실제 일어나는 계약직 해고 간의 괴리는 명확하다. 이 간극은 AI 중심 시대에 조직이 가져야 할 책임과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AI 중심 시대,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AI는 단지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일의 기준과 가치 자체를 바꾸고 있다. 단순히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만이 생존하는 새로운 노동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변화의 속도에 비해 인간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따라오고 있는가다. 기술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의 자리는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다.
듀오링고는 스스로를 “AI-First” 기업이라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AI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디에 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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