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도 인기 높은 일본의 대표적 휴양지, 오키나와.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 느긋한 남국의 정서로 사랑받는 이 섬은 매년 수십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찾는 인기 여행지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 아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투하한 불발탄 약 1,850톤이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다.
일본 방위성 발표에 따르면, 이 불발탄을 현재와 같은 속도로 처리할 경우 완전한 제거까지 약 10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관광지라는 외면 뒤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잔재는 지금도 오키나와가 과거를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에메랄드빛 섬’의 이면에 숨겨진 한국인이 사랑한 섬에 남겨진 전쟁의 그림자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잘 몰랐던 '평화의 섬'의 이면
오키나와는 하늘빛 바다와 새하얀 모래 해변, 느긋한 남국의 분위기로 많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일본 휴양지다. 연중 온화한 기후 덕분에 가족 여행, 신혼여행, 혼자 떠나는 여행까지 다양한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풍경 뒤에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깊이 남아 있다.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투하했으나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 약 1,850톤이 오키나와 전역의 지하에 여전히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 처리 속도다. 현재 연간 약 20톤가량의 불발탄이 수거되고 있는데, 이 속도로 계산하면 모든 불발탄을 제거하는 데 약 93년이 걸린다. 그러나 지형의 복잡성, 민가 인접성, 예산 확보 등의 변수까지 고려하면 100년 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보수적 예측이 나온다
관광지로 기억되는 오키나와가 아직도 ‘전장의 현재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광지 바로 옆에 묻힌 전쟁
오키나와의 불발탄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관광지나 주거지 근처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류큐 왕국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남부 도시 난조시나, 다이빙 명소로 잘 알려진 이토만시 일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격렬한 지상전이 벌어졌던 지역이다. 이로 인해 지금도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불발탄이 다수 매장되어 있다.
오키나와현청이 발표한 2024년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1,400건 이상의 불발탄이 수거됐다. 그중에는 유치원이나 주택가 인근 공사현장에서 발견된 사례도 있었으며, 주민과 관광객 모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오키나와현은 일본 내에서 불발탄 처리 업무를 자치단체가 직접 조정·관리하는 유일한 지역으로, 매년 방위성과 협조해 수거작업을 총괄하고 관련 통계를 자체적으로 집계한다. 이 때문에 오키나와현청이 불발탄 처리 및 피해 예방 대책의 핵심 행정 주체로 기능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 안전과 관광객 보호를 위한 1차 대응 기관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에서는 건설이나 도로 공사 전 불발탄 조사가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시가지조차도 지하에는 여전히 ‘무장된 과거’가 잠들어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지역 개발 속도는 늦어지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전쟁의 흔적을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왜 아직도 제거되지 못했을까
불발탄 제거는 단순히 땅을 파고 꺼내는 작업이 아니다. 대부분의 불발탄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폭발 가능성을 가진 군용 탄약으로, 안전하게 수거하고 해체하려면 고도로 훈련된 인력과 특수 장비, 그리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또한, 예산 배정의 제한, 전문 인력 부족, 군사기지 인접 지역의 접근 제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작업 속도를 높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특히 오키나와는 일본 주일미군 기지가 집중된 지역이기도 하며, 민가와 기지가 혼재된 특수한 지형적 여건으로 인해 일부 지역은 수년간 조사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과제가 아니라, 국방 예산과 지역 정치, 미군 기지 문제까지 얽힌 복합적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한국인에게 오키나와는 어떤 곳인가
많은 한국인에게 오키나와는 가깝고 조용하며, 일본 본토보다 한층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남국의 휴양지로 인식된다. 후쿠오카나 오사카보다 남쪽에 위치한 이 섬은,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해변 덕분에 ‘작은 해외’처럼 여겨지는 대표적인 가족 여행지이자 혼행지다.
오키나와는 일본 내에서도 독자적인 문화와 정체성을 지닌 지역이다. 과거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의 전통을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으며, 일본 본토와는 다른 음식, 언어(오키나와 방언), 건축 양식이 여전히 지역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은 오키나와가 관광지로서 각광받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정작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는 오키나와의 또 다른 얼굴은 바로 일본 내 유일한 지상전 격전지였다는 점이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의 기록에 따르면, 1945년 오키나와 전투는 미군과 일본군이 맞붙은 태평양 전쟁 최후의 대규모 전투로, 군인뿐 아니라 약 12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 전투는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오키나와 전역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이후 불발탄과 미군 기지 문제, 전쟁 트라우마라는 장기적인 후유증을 남겼다.
그로부터 8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그 마지막 전쟁의 흔적을 지하에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섬이다.
관광객도 알아야 할 '보이지 않는 리스크'
오키나와 지하에 묻힌 불발탄은 단순한 고철이 아니다. 폭발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외관상으로는 녹슬고 오래된 금속 조각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내부에 남아 있는 폭약과 기폭 장치는 지금도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군사 무기다.
그렇기에 이 불발탄은 건설 현장, 해안가, 심지어 주택가 한복판에서도 예고 없이 발견되곤 한다. 이런 상황은 지역 주민들에게 일상적인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관광객이 불발탄과 직접 마주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오키나와가 ‘완전히 안전한 섬’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많은 이들이 거닐고 쉬는 해변과 마을 아래에는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보이지 않는 위협이 존재한다.
오키나와는 ‘평화를 상징하는 섬’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평화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위협과 공존하는 현실 위에 세워진 것이다.
관광객 역시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위험을 이해하고, 이 섬이 감당해온 시간을 함께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전쟁은 끝났을까, 아니면 아직 진행 중일까
오키나와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전쟁의 기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푸른 바다와 해변, 관광 사진 속 평화로운 풍경 아래, 지금도 지하 깊은 곳에서는 수십 년 전의 포탄이 조심스럽게 하나씩 제거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흔이,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현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키나와의 불발탄 문제는 단지 과거의 잔재가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 남긴 위협을 우리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어떤 책임으로 마주해야 하는지를 묻는 현재형 질문이다.
“우리가 사랑한 오키나와는 에메랄드빛 바다 너머,지금도 평화를 완성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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