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능력을 연결해주는 약속: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
인공지능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계층적 온톨로지
우리는 한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단순히 ‘기계가 똑똑해지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체스를 잘 두는 컴퓨터가 등장하거나,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기계가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제 진짜 인공지능 시대가 온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공지능이 걸어온 길을 찬찬히 돌아보면, 인공지능의 발전은 단순히 문제를 빠르고 정확하게 푸는 기계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인공지능은 간단한 작업을 처리하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데이터를 보고 ‘이 데이터는 고양이 사진이다’, ‘저 데이터는 개 사진이다’ 같은 분류 작업이나, 다음 달의 매출을 숫자로 예측하는 일 등을 잘 해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인공지능 기술은 단순히 무언가를 분류하거나 숫자를 맞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여러 가지 다른 도구나 프로그램들과 연결되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는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은 더 이상 한 가지 일만 잘하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가진 여러 가지 구성 요소들이 모여 협력하는 복잡한 구조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의 뛰어난 모델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모델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서로를 돕는지에 따라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과거의 인공지능은 마치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만능 일꾼 한 명과 비슷했습니다. 이제는 혼자서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는 여러 명이 각자 잘하는 분야를 나누어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는 일을 잘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정보를 빠르게 찾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서로의 역할이 정해지고 서로 간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수록, 더 복잡한 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이것을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Object-Oriented Thinking)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객체(Object)는 특정한 역할을 가진 하나의 구성 요소이고, 이런 객체들이 정해진 규칙과 방법에 따라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구조입니다.
최근 인공지능은 언어나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음성, 컴퓨터 코드, 다양한 프로그램 도구와 같은 여러 형태의 데이터들을 동시에 다룰 수 있도록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함께 다루는 환경을 멀티모달(Multimodal) 환경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여행을 계획할 때 지도를 보면서 위치를 검색하고, 목적지에 대한 정보를 글로 읽고, 사진을 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처럼, 인공지능 역시 텍스트, 이미지, 음성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함께 이해하고 처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려면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넣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치 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책을 제대로 정리하고 필요한 내용을 쉽게 꺼내볼 수 있는 체계가 없으면 공부한 내용을 잘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데이터를 무작정 많이 보여주기보다는 상황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한 구조와 데이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 그리고 필요한 기능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요즘 크게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입니다. 과거의 언어 모델은 주로 간단한 문장 생성에 그쳤지만, 현재의 대형 언어 모델은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과 도구를 연결하고, 상황에 맞추어 가장 좋은 방법을 선택하는 일종의 ‘지휘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가 각 악기 연주자들의 소리를 듣고 조화롭게 음악을 만들어내듯, 대형 언어 모델 역시 여러 가지 도구와 기술들이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심 엔진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을 단순히 ‘똑똑한 한 가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가진 프로그램과 기술들이 서로 연결되고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생태계(Ecosystem)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생태계 안에서는 기술이 개별적으로 얼마나 뛰어난지보다, 이들이 서로 얼마나 잘 연결되고 소통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 장에서는 우리가 앞서 배웠던 여러 가지 기술과 개념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인공지능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이야기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하나의 정확한 예측이라기보다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개발자로서 앞으로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 제안하고, 사용자로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그려보려는 노력입니다. 앞으로의 인공지능은 단지 기술의 성능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기술들이 어떤 구조로 연결되고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함께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는 인공지능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천천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의 모델에서, 여러 모델이 협력하는 구조로
처음 딥러닝(Deep Learning)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하나의 커다란 모델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언어를 다루는 모델이라면 그 한 모델이 질문에 답하고, 글을 작성하는 모든 일을 혼자 해결했습니다. 이미지를 분류하는 모델 역시 사진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구별하는 일을 혼자 책임졌습니다. 당시의 인공지능은 마치 축구 경기에서 혼자 공격과 수비, 골키퍼 역할까지 모두 해내는 슈퍼스타 선수와 비슷했습니다.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인공지능은 이런 방식을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큰 모델이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작고 특화된 능력을 가진 모델들이 함께 모여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챗봇(Chatbot)의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의 챗봇은 사용자가 어떤 질문을 하든, 모든 답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챗봇은 훨씬 똑똑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오늘 환율이 어떻게 돼?“라고 물어보면 챗봇은 곧바로 인터넷에서 최신 환율을 찾아 알려줍니다. 또 “이 사진에 있는 꽃이 무슨 꽃이야?“라고 물어보면, 이미지를 분석하는 모델과 연결되어 사진 속의 꽃을 알아내고 설명해줍니다. 심지어 “이 보고서를 간단히 요약해줘”라고 하면 문서를 요약해주는 모델을 불러와 바로 요약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인공지능은 단순히 한 가지 일을 잘하는 모델 하나가 아니라, 각각의 능력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여러 개의 작은 모델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작은 모델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발전해온 방식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예전의 소프트웨어는 하나의 거대한 프로그램이 모든 기능을 혼자서 처리하는 방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소프트웨어는 하나의 큰 프로그램 대신, 작은 기능들로 나누어진 모듈(Module)들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서로 소통하면서 전체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인공지능 역시 지금 바로 이런 변화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을 다시 구성하는 방식: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
이제 중요한 것은 모델 하나가 얼마나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여러 모델들이 서로 얼마나 잘 연결되고 협력하는지를 잘 설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설계 방식의 중심에 있는 개념이 바로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Object-Oriented Thinking)’입니다.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이란 쉽게 말해서, 커다란 하나의 프로그램을 여러 개의 작은 부품으로 나누고, 이 부품 하나하나가 자신만의 역할과 책임을 갖도록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짓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집을 지을 때 한 명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하기보다는 벽돌을 쌓는 사람, 전기를 연결하는 사람, 창문을 설치하는 사람, 지붕을 만드는 사람이 각자의 일을 맡아 협력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집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서도 각각의 작은 모델이 하나의 일을 전문적으로 맡고, 다른 모델과 소통하며 협력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인공지능 시스템에서는 텍스트를 만드는 모델, 이미지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모델, 계산이나 검색 결과를 가져오는 모델 등 다양한 모델들이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모든 기능을 억지로 한 모델 안에 집어넣기보다는, 각각의 기능을 따로 분리하여 독립된 모델로 만들고, 필요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불러와 서로 협력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인공지능에게 “지금 밖에 기온이 몇 도야?”라고 물어보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때 인공지능은 먼저 이 질문이 날씨와 관련된 것임을 이해하고, 즉시 인터넷에서 날씨 정보를 찾아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만약 “이 영화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줘”라고 한다면, 문장을 잘 요약하는 능력을 가진 도구를 가져와 처리합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질문이나 요청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기능을 선택하고 연결하는 능력은 객체 지향적 사고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구조의 또 다른 장점은 새로운 기능이 필요할 때마다 기존 모델 전체를 다시 학습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지금까지 계산, 검색, 요약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면, 새로운 ‘이미지 분석’ 기능을 추가하고 싶을 때 기존의 모델들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간단히 새로운 기능을 가진 모델만 추가하면, 기존 모델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협력하여 작동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을 더 이상 하나의 커다란 능력을 가진 프로그램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여러 개의 작은 모델들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Ecosystem)로 이해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더 똑똑하고 유용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에도, 이런 협력적인 구조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서로 다른 능력을 연결해주는 약속: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
인공지능이 다양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이제는 개별 능력 하나하나의 성능을 높이는 것보다 각 능력들이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글을 이해하고 쓰는 언어 모델(Language Model), 복잡한 숫자 계산을 담당하는 계산 도구, 사진이나 동영상을 분석하는 이미지 모델(Vision Model)이 각각 따로 있다고 해봅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도구들이 따로 존재할 때, 이제는 이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협력하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공지능 모델들끼리 서로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념이 바로 ‘상호작용 프로토콜(Interaction Protocol)’입니다. 프로토콜이라는 단어가 낯설 수도 있으니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를 생각해 봅시다. 축구는 여러 사람이 함께 뛰는 경기라서, 아무렇게나 움직이면 서로 부딪히고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규칙이 있습니다. 공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골키퍼뿐이고,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가면 정해진 방식으로 다시 시작하는 규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이 명확할수록 서로의 움직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메일을 보낼 때는 제목, 내용, 보내는 사람 순서대로 쓴다는 규칙이 있고, 회의할 때도 누군가는 발표를 하고 누군가는 메모를 하는 식으로 각자의 역할과 순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스템도 비슷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서로 다른 모델들이 동시에 작동하려면, 언제 어떤 정보를 어떻게 주고받고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를 분명히 정해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혼란스러워지고 정확한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규칙과 틀을 명확히 정해주는 것이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odel Context Protocol, MCP)입니다.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모델들이 정확히 어떤 입력(정보)을 받고, 어떤 형태의 출력(결과)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미리 약속하는 일종의 규칙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인공지능에게 “25 곱하기 134가 뭐야?“라는 질문을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질문을 받은 언어 모델은 계산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일을 잘하는 다른 도구에게 요청을 보내야 합니다. 이때 언어 모델은 계산 도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25 × 134를 계산해주세요”라는 명령을 전달하고, 계산 도구는 정확한 숫자 결과를 다시 언어 모델에게 돌려줍니다. 그러면 언어 모델이 이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꿔서 사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은 언어 모델과 계산 도구 사이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의 약속을 만들어주고, 서로 다른 모델들이 오해 없이 명확하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처럼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은 단순히 데이터를 전달하는 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 요소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설계 구조입니다. 사람으로 다시 비유해 보자면, 각 모델은 마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자신이 맡은 일을 명확히 알고 있고,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함께 목표를 이루어가는 셈입니다. 이때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은 회의의 진행 규칙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과 같은 규칙이 명확히 자리 잡으면, 이제는 각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일을 처리하느냐보다는, 전체 시스템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잘 움직이는지가 더욱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축구 팀에서 한 명 한 명의 선수가 아무리 뛰어나도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듯이, 인공지능도 전체 팀이 얼마나 서로 협력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 인공지능이 더욱 사람처럼 다양한 일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알고,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다른 모델이나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협력하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은 바로 이런 협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설계도 덕분에 인공지능은 여러 기능들을 따로따로 수행하는 존재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할 수 있는 협력적인 시스템으로 발전할 것 입니다.
인공지능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계층적 온톨로지
사람들이 주변의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할 때, 우리는 단지 눈앞에 있는 하나의 물건만 따로 떼어서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양이를 볼 때, 단지 그 고양이 한 마리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것은 동물이고, 털이 있고, 포유류에 속하고, 고양잇과에 속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좀 더 넓고 깊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사물이나 개념을 이해할 때 본능적으로 여러 단계의 체계를 만들어서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라는 단어를 보면 우리는 ‘교육기관’이라는 상위 개념을 떠올리고, 또 그 위에는 ‘사회 시설’이라는 더 넓은 개념을 연결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물과 개념을 여러 계층으로 연결하는 것이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도 비슷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의 인공지능은 단순히 단어를 외우거나 숫자를 맞추는 것처럼 비교적 간단한 일을 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깊고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를 위해서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개념과 사물들을 단지 따로따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서로 연결된 구조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단어 하나를 보더라도 그 단어가 속한 더 큰 개념이나 범주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를 갖추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계층적 온톨로지(Hierarchical Ontology)’입니다. 이름은 조금 어렵게 들릴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여러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나무처럼 계층적으로 정리해 놓은 지식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자면, 계층적 온톨로지는 인공지능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일종의 커다란 ‘개념 지도’입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개’라는 단어를 만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전까지는 ‘개’라는 글자를 보고 그 뜻만 간단히 외우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개’가 ‘동물’이라는 더 넓은 범주 안에 들어가고, 그 동물 안에서도 ‘포유류’라는 범주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반려동물’이라는 특별한 범주에 포함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개념을 계층적으로 정리해 놓으면 인공지능은 단어를 만났을 때 그 단어의 의미와 역할을 훨씬 더 정확하고 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계층적 온톨로지의 또 다른 큰 장점은 인공지능이 처음 보는 단어나 새로운 개념을 만났을 때입니다. 예를 들어, ‘기린’이라는 동물을 인공지능이 처음 만났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공지능이 기린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모르더라도, 이것이 ‘동물’이고 ‘포유류’이며 ‘초식동물’이라는 다른 정보를 통해 대략의 위치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은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계층적 온톨로지는 인공지능에게 있어서 마치 사람의 ‘세계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람도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추면 어떤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층적 온톨로지를 통해 인공지능 역시 세상의 구조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덕분에 다양한 상황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고, 그것을 적절한 위치에 넣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온톨로지 구조는 단지 개념을 정리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공지능이 자신이 받은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정하며, 필요한 도구를 선택하고 협력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었을 때, 인공지능은 받은 입력이 ‘질문’인지 ‘명령’인지, 또는 ‘단순한 정보 요청’인지 아니면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인공지능은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반응을 스스로 결정하고, 필요한 기능이나 도구를 가져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계층적 온톨로지는 인공지능에게 ‘세상은 이런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니,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라고 가르쳐주는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런 구조가 확립되면, 인공지능은 더 사람처럼 깊고 유연하게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언어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다
지금까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은 주로 특정한 작업을 매우 잘 수행하는 도구로 발전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모델은 문장을 읽고 내용을 분류하는 일을 잘하고, 다른 모델은 사진 속의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떤 모델은 복잡한 수학 계산을 빠르게 처리합니다. 이렇게 각각의 모델들은 하나의 일에만 집중한 채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치 연필깎이는 연필을 깎는 데만 쓰고, 계산기는 숫자를 계산할 때만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인공지능은 이런 흐름을 크게 바꾸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입니다. 대형 언어 모델이란 수많은 문장과 단어들을 학습해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고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말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언어 모델이 단순히 문장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다양한 인공지능 도구와 기능들을 연결하고,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중심 엔진’의 역할까지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단지 언어 모델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언어 모델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인터페이스(Interface)가 매우 보편적이고 직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인터페이스란 두 시스템이나 존재 사이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연결 방식인데, 언어는 사람과 기계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통 방식입니다. 우리가 친구나 가족과 소통할 때 말을 하는 것처럼, 사람과 인공지능 사이에도 언어가 가장 자연스러운 소통 수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날씨를 알고 싶을 때 복잡한 버튼을 누르거나 프로그래밍 코드를 입력하는 대신, 인공지능에게 “오늘 날씨 알려줘”라고 간단히 말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쉽고 편리한 방식이 됩니다. 또 우리가 사진에서 어떤 동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이 사진에 고양이가 있어?“라고 질문만 하면, 인공지능이 이미지 분석 도구와 연결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줍니다. 이처럼 언어는 명령뿐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쉽게 설명하고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언어 모델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문장을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인공지능에게 “어제 뉴욕의 날씨를 알려줘”라고 질문하면, 언어 모델은 이 질문을 보고 “사용자가 날씨 정보를 원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그러면 인공지능은 곧바로 인터넷의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외부 시스템(API)을 호출하고, 거기서 가져온 데이터를 다시 읽기 쉬운 문장으로 만들어 사용자에게 알려줍니다. 이 과정에서 언어 모델은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역할을 넘어서, 필요한 도구를 선택하고, 그 도구와 소통하며, 결과를 알맞게 정리하는 지휘자 역할까지 맡게 됩니다.
이런 방식은 마치 게임 엔진(Game Engine)이 게임 속의 그래픽, 소리, 물리적인 움직임 등을 모두 통합하여 하나의 게임으로 완성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게임을 할 때 우리는 복잡한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일일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게임 엔진이 여러 시스템을 잘 연결해 주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 모델 역시 단순히 글을 생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다양한 기능과 시스템을 연결하여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중심 엔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유연성’입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새로운 기능이나 도구를 추가하려면 복잡한 코드를 수정하거나,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를 새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언어 모델 중심의 구조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쉽게 추가할 수 있습니다. 언어 모델이 새로운 도구의 사용법을 몇 가지 예시나 설명을 통해 익히기만 하면, 그것을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이 문장을 프랑스어로 번역해줘”라고 요청하면, 인공지능은 바로 번역 도구를 호출할 수 있습니다. 또 “이 사진에서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줘”라는 말만으로도 이미지 분석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언어를 통해 새로운 기능을 손쉽게 추가하고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은, 인공지능이 점점 더 사용하기 쉽고, 유연하며, 사용자 중심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지금처럼 하나의 일만 잘하는 별도의 도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모델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능들이 쉽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구조로 계속 발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술에서 구조로, 구조에서 생태계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발전은 처음에는 단순히 더 정확하고 뛰어난 성능을 가진 모델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이렇게 잘 만들어진 모델들을 어떻게 서로 연결하고, 서로의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크고 복잡한 모델이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는 방식은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대신에 다양한 능력을 가진 작은 모델들과 도구들이 함께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가 더 효율적이고 유연하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방식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고, 새롭게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기능 단위로 나누고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하는 객체 지향적인 사고방식(Object-oriented thinking), 서로 다른 모델들이 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상호작용 프로토콜(Interaction Protocol), 인공지능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계층적 온톨로지(Hierarchical Ontology), 그리고 이 모든 구성 요소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중심 엔진 역할을 하는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까지, 이제 인공지능은 단지 기술적으로 뛰어난 존재를 넘어, 서로를 돕고 협력하며 발전하는 유연하고 사람 중심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은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잘 해결하는 도구 이상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구조를 고민하고 설계한다는 것은, 곧 앞으로 우리가 펼쳐갈 가능성을 설계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던지는 질문들은 점점 더 사회적이고,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런 가능성의 지도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하나 쌓아 올린 기술과 구조 위에서,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지, 어떤 가능성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지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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