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한국 산업계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고금리, 글로벌 무역 갈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라는 세 갈래 위협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산업 전반에 전례 없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생존 가능성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인 ‘부실징후기업’ 수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한국 경제의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2025년 4월 7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공동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부실징후기업’은 총 2,339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744곳, 2022년 코로나19 직후 2,067곳보다 많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수치다.
‘부실징후기업’은 단순한 경영난 기업과는 다르다. 이들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채무 상환 능력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에 놓여 있다.
즉, 구조조정이나 법정관리 직전 단계에 있는 기업들을 의미하며, 해당 기업이 파산에 이를 경우 그 여파가 금융권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시스템 리스크의 조기 경고 지표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히 특정 업종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가 구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문제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부실징후’ 상태로 넘어갔느냐가 아니라,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구조조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기술·금융·무역의 삼중 압박… 한국 기업, ‘버틸 힘’ 잃어간다
한국 산업 전반이 세 갈래의 압력에 동시에 노출되며, 기업 생존의 임계점에 다가서고 있다. 고금리 환경, 미·중 간 패권 경쟁의 격화, 그리고 부동산 PF 부실의 연쇄 작용이 산업 생태계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1) 고금리 직격탄…이자도 못 내는 기업 10곳 중 4곳
2023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 자료는 한국 산업이 얼마나 심각한 금리 충격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 중 42.3%가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을 기록했다. 이는 곧 전체 기업 중 10곳 중 4곳 이상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자보상배율이 1보다 낮다는 것은 수익이 이자보다 적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들이 이토록 많다는 건, 이미 상당수가 부도 직전 상태에 가까워졌다는 경고이자, 산업 전반에 ‘잠재적 부실’이 누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특히 이 현상은 중소 제조업, 건설업, 유통 프랜차이즈 등 고정비가 높은 업종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러한 업종은 인건비, 임대료, 물류비용 등 절대 줄일 수 없는 비용 항목이 많고, 영업 마진은 낮은 구조이기 때문에, 금리가 오를수록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단순히 이자 부담만이 아니다. 이들 기업은 자산 규모가 작고 담보 여력도 낮아, 금리 인상기에 자금을 조달하려면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즉, 이자율은 오르는데, 신용은 낮아 대출 조건은 악화되는 이중고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그 결과, 수익성은 악화되고 부채는 늘어나며,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 이어지면 결국 ‘한계기업’으로 재분류될 수밖에 없다. 한계기업이 급증하면 이는 곧 금융권 부실, 고용 감소, 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로 연결되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수익을 내도 버틸 수 없는 구조, 그리고 버티기 위한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생존 조건에 놓인 수많은 기업들의 ‘조용한 절규’다. 이 신호를 무시한다면, 다음 위기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경고되었던 현실이었던 셈이 될 수 있다.
(2)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그늘… 수출 주력 기업 '고립' 위기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 전쟁이 격화되면서, 한국 수출 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2024년 들어 양국은 반도체, 2차전지, 철강 등 첨단 전략 품목을 중심으로 보조금 경쟁과 고율 관세 부과를 강화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을 포함한 제3국 기업들을 압박하는 ‘경제적 진영화’ 조치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 오랜 기간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유지해왔으며, 특히 반도체·배터리·철강·부품소재 산업은 국가 경제의 핵심 축이었다. 그러나 미·중 양국이 자국 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자국 내 생산을 조건으로 한 시장 접근을 제한하면서, 한국 기업은 점차 글로벌 공급망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은 중견 부품소재 기업들이다. 이들은 대기업과의 납품 계약을 통해 수출 기반을 유지해왔으나, 미·중 기술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거래선 단절, 납품 축소, 신뢰 기반 붕괴라는 삼중의 충격을 맞고 있다. 한 번 무너진 글로벌 거래망은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위기는 단기적 어려움을 넘어 장기적인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는 “한국 수출 산업이 고립되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으며, 지금과 같은 공급망 변화 속도에 대응하지 못하면 한국 기업이 ‘글로벌 납품망에서 제외되는 구조적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탈중국, 탈한국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며 자국 내 생산을 촉진하고 있고, 중국은 ‘국산화 자립’을 강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은 양측 모두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시장 다변화, 공급망 재설계, 기술 내재화 전략이 절실하다. 단순히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외교적 해법만으로는 부족하다. 산업 현장의 체질 변화와 글로벌 거래 전략의 전면 수정이 동반되어야만 이 고립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현재의 기술패권 경쟁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다. 국가 경쟁력의 재편 과정이며, 한국 산업이 다음 10년을 좌우할 구조적 선택의 시점이다. 선택을 미루면, 이번에는 기회가 아니라 자리 자체를 잃게 될 수도 있다.
(3) 부동산 PF 부실… 건설·금융 ‘연쇄 붕괴’ 위험 현실화
한국 산업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축, 바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지역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2024년 하반기 들어 지방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PF 사업장의 공사 중단과 시행사 부도 사례가 속출하며, 중소 건설업체와 금융권의 동반 붕괴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부동산 PF는 민간 시행사가 개발 자금을 조달하고, 시공사가 책임준공 보증을 서는 구조다. 즉, 시행사가 자금을 끌어오지 못하거나 분양이 실패해 도산하면, 시공사가 대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우발채무’ 구조가 형성된다. 그리고 지금, 이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PF 대출의 연체율은 금융당국이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할 정도로 빠르게 상승 중이다.
금융위원회가 2024년 3월 배포한 '’23.12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현황'에 따르면,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2020년 말 3.37%에서 → 2023년 3분기 13.85%, → 4분기에는 13.73%로 집계됐다.
단기간 내 급증한 이 보증 규모는 건설사들이 과도한 리스크를 떠안고 있다는 증거이자, 언제든 연쇄 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PF 부실은 건설업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PF 대출의 상당수가 지방 저축은행, 지역 금융사, 비은행권 금융기관을 통해 조달되었기 때문에, 시행사나 시공사의 도산은 곧바로 금융권의 자산건전성 악화로 전이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2025년 3월 21일 발표한 '2024년 저축은행 및 상호금융조합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당기순손실은 총 3천974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저축은행 업계가 지난해 4천억원에 가까운 순손실을 내며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는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 속에서 연체율은 8%대 중반으로 치솟았다. 이는 2015년 말(9.2%)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개별기업 위기가 아니라, 부실한 PF 사업 → 시공사 도산 → 금융권 손실 →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전이 현상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 PF 사업장의 중단은 단지 시공사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협력업체, 하도급사, 납품업체 등 지역 기반 산업 생태계 전반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으며, 지역 고용·소비·자금순환 구조 전반을 위협하는 도미노 효과로 이어질 수 있어 예의주시 할 필요가 있다. 자칫 지역 경제의 뿌리를 흔들 수 있는 치명적인 시나리오가 될 수 있어서다.
부동산 PF는 금리, 물가, 소비심리 등 다층적인 거시 변수와 얽혀 있는 만큼, 단순한 건설업 불황이 아니라 금융시스템과 지역경제를 동반 위협하는 '복합 구조적 위기'로 인식돼야 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특히 PF 부실이 시행사 파산 → 시공사 부도 → 금융기관 손실 →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4단 연쇄 전이 구조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시스템 리스크’ 관점에서의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상황은 단일 사업장의 실패가 아닌, PF 개발구조 자체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례로 분석된다. 과도한 레버리지, 책임 분산의 불균형, 비은행권 중심의 자금 구조는 한국식 PF 모델의 취약한 뒷면을 노출시킨 셈이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이 적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지방 중소건설사의 연쇄 붕괴 → 지역 산업 기반 약화 → 내수 위축으로 이어지는 거시경제 침체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지금은 PF를 둘러싼 금융-건설-지역경제의 고리를 면밀히 진단하고, 구조적 해법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부동산 경기 부진’이 아니라, ‘시스템 위험’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비교: 한국, ‘G5+1’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한계기업 비중
- 중소·벤처 생태계 전반, 구조적 붕괴 위기 직면
2024년 3분기 기준,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19.5%로 미국(25.0%)에 이어 G5+1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이는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2월 6일 발표한 '주요국 상장사 한계기업 추이 분석(2024년 3분기 기준)' 보고서에서 제시된 수치로, 한국 산업의 구조적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대비 한국의 한계기업 비중은 12.3%p 증가해 미국(15.8%p)에 이어 증가폭이 두 번째로 컸다. 단기 유동성 위기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성 악화와 기업 체질 약화가 누적되며 위험이 심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경협은 “한국의 기업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것은 경기부진 장기화, 판매부진, 재고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주요 업종 중 2016년 대비 2024년 3분기,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오른 업종은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20.7%p, 2016년 4.0%→2024년 3분기 24.7%), ▶정보통신업(19.7%p, 4.5%→24.2%), ▶제조업(10.7%p, 7.4%→18.1%), ▶도매 및 소매업(9.6%p, 15.0%→24.6%) 등으로 나타났다.

- 일시적 위기? 구조적 리스크는 여전
한국의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은 36.4%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37.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일시적 한계기업은 단기적인 충격으로 이자보상배율이 일시적으로 1 미만이 된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회복하지 못할 경우 장기 부실로 전환될 수 있어 구조적 위험 신호로 간주된다.
2023년 말 기준 36.9%였던 수치가 2024년 3분기에는 0.5%p 감소했으나, 여전히 2년 연속 30% 후반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산업 전반의 내재된 불안정성이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코스닥 중심의 구조적 취약성… 벤처 생태계 붕괴 경고
2024년 3분기 기준 코스닥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은 23.7%로, 코스피(10.9%)의 두 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곧 한국의 중소·벤처 생태계 전반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뜻으로, 자금 유동성 부족과 외부 투자 위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한경협은 “코스닥 한계기업 비중이 2016년 6.6%에서 2024년 23.7%로 무려 17.1%p 상승했다”며, 중소기업이 경기 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 고정비 높은 업종일수록 생존 압력 커져
업종별 한계기업 비중 역시 취약한 부문이 명확히 드러난다. 2024년 3분기 기준 업종별 한계기업 비중은 다음과 같다.
- 부동산업: 33.3%
- 전문·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24.7%
- 도소매업: 24.6%
- 정보통신업: 24.2%

이는 고정비 구조가 크고, 경기 민감도가 높은 업종일수록 금리와 소비 둔화의 직격탄을 맞아 생존 압력이 훨씬 커진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한경협은 이 같은 업종별 리스크 확대에 대해 “설비투자 부담이 크고 현금 흐름이 불안정한 업종일수록 단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재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한국은 글로벌 주요국 대비 가장 빠른 속도로 기업 부실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 중 하나이며, 그 영향은 대기업이 아닌 중소·벤처 기업 생태계에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계기업 증가는 단순한 생존 문제가 아닌, 한국의 미래 성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구조적 경고다.
지금은 ‘통계적 안정’이 아니라, ‘정책적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장의 뿌리를 지켜낼 정밀 구조조정과 산업 전략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정책 갈림길에 선 한국… ‘좀비기업 방치’인가, ‘선별 구조조정’인가
한국 산업계가 본격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완화적 금융정책은 한계기업에 일시적 생존의 숨통을 틔워줬지만, 생산성과 수익성 개선 없이 이어지는 연명은 결국 산업 생태계 전반에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경제연구원 등 다수 기관들은 “한계기업을 무작정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이제 정부는 “어떤 기업을 살리고, 어떤 기업을 구조조정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상황이다.
‘선별 구조조정’ 시도는 시작됐지만… 정책 충돌 속도는 더딘 상황
정부는 현재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선별 구조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술력·시장성·생산성 등을 종합 평가해, 미래 가치가 있는 기업에는 정책금융을 집중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은 정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 개입이 민간의 자율적 구조조정을 왜곡한다”는 비판과, “지금처럼 방치하면 금융 시스템 전체 위기로 이어진다”는 위기론이 팽팽히 충돌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경우, 구조조정의 ‘선택과 집중’이 아니라 ‘지원 논리의 불투명성’과 ‘형평성 논란’이 확산될 우려도 크다.
해외 사례: 미국·독일은 어떻게 구조조정하고 있나?
미국은 ‘수익성+생산성’ 기반 구조조정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다.
기업의 이자보상 능력에 더해 노동생산성·투자 효율성 등 복합 지표를 반영한 부실 기업 판별 시스템을 운영하며, 구조조정과 동시에 고용·기술 이전 정책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다.
독일은 장기적 산업 정책과 친환경 전환을 연계한 구조조정 전략을 실행 중이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기술 고도화·디지털 전환·친환경 투자를 조건으로 정책금융을 투입하며, 구조조정의 결과가 산업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단기 유동성 위기 해소에 집중하는 단기적 접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산업 체질 변화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향후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목이다.
2025년 경고 시나리오: ‘한계기업 쓰나미’ 눈앞
- 단순한 숫자 넘은 시스템 리스크 경고… 구조적 대응 시급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말까지 부실징후기업 수가 2,500곳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부실징후기업’이란, 이자조차 갚기 어려운 상태에 놓인 기업으로, 사실상 법정관리나 폐업 직전 단계에 있는 경우를 뜻한다. 이처럼 한계에 몰린 기업들이 지금보다 200곳 이상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신호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기업이 많아 망할 수 있다”는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연쇄 부실이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염될 수 있다는 구조적 위기 시나리오다.
- 보고서는 세 가지 주요 확산 경로를 지적한다.
① 지역 금융기관의 ‘건강성’이 무너질 수 있다
한계기업 상당수는 지방 중소도시에 위치한 중소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주로 지역은행, 지방 농협, 저축은행 등에서 자금을 빌려왔다.
이 기업들이 대거 부실화되면, 돈을 빌려준 지역 금융기관들이 ‘돈을 떼이게 되면서’ 함께 부실해질 수 있다.
이는 지방 금융 인프라의 붕괴로 이어지고, 지역 경제 전반을 흔들 수 있는 위험 요소다.
② 회사채 시장이 얼어붙을 수 있다
부실한 기업들이 많아지면, 투자자들은 “어떤 기업이 부도날지 모르겠다”며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걸 꺼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회사채(기업이 발행하는 채권)를 통해 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고, 자금줄이 막히게 된다.
이런 현상을 ‘신용 경색’이라 부른다. 신용 경색이 확산되면, 건실한 기업도 돈을 구하지 못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③ 비은행권 금융사들도 위험하다
캐피탈사, 리스사, 증권사, 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에 자금을 많이 빌려주는 주체다. 이들이 빌려준 돈을 못 받게 되면, 자금 운용에 차질이 생기고, 유동성이 막히게 된다. 이는 곧 전 산업의 ‘돈 흐름’이 끊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금융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 이처럼 산업 내 부실이 확대되면, 2003년 카드채 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처럼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을 동시에 덮치는 이중 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중소기업이 줄줄이 쓰러지고 → 실업자가 늘어나고 → 소비가 얼어붙으며 → 경제 전반이 깊은 침체에 빠지는 복합 경제위기 시나리오가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무차별 구제도, 방치도 해법 아니다
지금 한국 산업계는 ‘모두를 살릴 수는 없고, 누구를 먼저 살릴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무차별적인 구제도, 방관적 방치도 모두 실패한 전략이다.
선별 구조조정은 단순한 정리 작업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재구축을 위한 전략적 투자 선택이어야 한다.
'좀비기업'의 연명은 산업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으며, 지금은 그 미래를 지키기 위한 냉정하고 정교한 선택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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