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자산관리의 게임 체인저가 되다
신용 평가와 사기 탐지, AI의 정밀성이 빛을 발하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삶 전반에 깊숙이 들어왔다. 의료, 교육, 교통, 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산업군은 이미 AI 기술을 핵심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흐름은 금융 산업에도 예외 없이 확산되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리스크, 실시간 변동성이 핵심인 금융 분야에서 AI는 단순한 자동화 수준을 넘어 본질적 운영방식을 재설계하는 도구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에는 JP모건 체이스가 있다. 미국 최대 금융기관 중 하나인 JP모건은 AI를 단순한 지원 기술이 아닌, 금융을 재정의하는 핵심 수단으로 받아들이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JP모건의 LLM Suite: AI를 은행 내부에 심다
2024년, JP모건은 사내 전용 생성형 AI 시스템인 LLM Suite를 전격 도입했다. 이는 OpenAI의 ChatGPT나 구글의 Gemini처럼 자연어 처리에 기반한 생성형 인공지능이지만, 기밀성과 보안성 등 금융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설계된 내부 전용 플랫폼이다.
외부 생성형 AI의 사용에 제약이 많은 금융권 현실을 반영하여, JP모건은 OpenAI와 협력해 자체 시스템을 개발했고, 이를 직원 업무 환경 전반에 통합했다.
이 AI 시스템은 문서 요약, 데이터 정리, 회의록 작성 같은 단순 작업부터 복잡한 정책 결정 지원에 이르기까지 은행 전반의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고도화된 의사결정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AI, 자산관리의 게임 체인저가 되다
JP모건은 특히 자산관리(WM, Wealth Management) 분야에서 AI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머신러닝 기반 알고리즘은 고객의 과거 거래 데이터를 학습하여 시장 흐름을 예측하고, 거래 타이밍과 자산 배분 전략을 자동 설계한다. 그 결과,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자산관리 부문 매출이 약 20%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인력 절감이나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다. AI가 실제로 수익률 향상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신용 평가와 사기 탐지, AI의 정밀성이 빛을 발하다
또한 JP모건은 AI를 신용 평가 및 금융 사기 탐지에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AI는 고객의 금융 이력뿐만 아니라 소비 패턴, 비정형 데이터까지 통합 분석하여 보다 정교한 신용 리스크 평가를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실시간 거래 패턴 분석을 통해 이상 징후를 즉각적으로 탐지하고 차단하는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AI의 도입은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 신뢰성 확보와 리스크 관리 역량 강화라는 근본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XAI는 무엇인가: AI를 설명할 수 있어야 금융이 수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왜 그렇게 판단했는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은 금융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금융업은 결국 결과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 생명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 XAI(eXplainable AI)이다. XAI는 AI가 내린 결정에 대해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와 과정을 설명하는 기술 구조를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이름의 기업으로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xAI'가 있지만, 이는 기업 이름일 뿐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 기술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머스크의 xAI는 ‘TruthGPT’와 같은 생성형 모델을 개발하는 회사이며, 금융에서 말하는 XAI는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프레임워크다.
XAI는 JP모건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에서 단순한 선택이 아닌 사실상 ‘의무적 기술 요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이 단지 데이터를 처리하는 산업이 아니라, 규제와 신뢰의 정교한 균형 위에 놓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첫째, 고객에게 판단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가 신용 대출을 거절하거나 특정 금융 상품을 추천했을 때, 고객은 그 판단의 논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단순히 “AI가 그렇게 판단했습니다”라는 답변은 고객의 수용을 이끌어낼 수 없다. XAI는 AI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영향을 미쳤는지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설명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내부 감사와 규제 대응에 유리하다. 금융기관은 각종 감독기관의 정기 감사를 받으며, 특히 알고리즘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규제기관이 점점 더 주목하는 항목이다. 유럽의 GDPR이나 미국의 금융 소비자 보호 규제는 “설명 가능한 결정 메커니즘”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AI가 내린 결정이라 할지라도 명확한 근거와 추적 가능한 프로세스를 제출해야 함을 뜻한다. XAI는 이 같은 규제 대응에 있어 핵심 도구가 된다.
셋째, 의사결정의 인과관계를 시각화할 수 있다. 기존의 AI는 일종의 블랙박스처럼 입력과 출력은 알 수 있어도 중간의 판단 과정을 사람 눈으로 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XAI는 의사결정 과정의 중요 변수, 영향력 점수, 대안적 시나리오 등을 시각화해 담당자가 결과의 논리를 검토하고 필요 시 수동 개입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AI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감독하고 판단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드는 핵심 조건이다.
결국 XAI는 “AI를 신뢰하자”는 막연한 감성적 접근이 아니라, 금융 산업이 기술을 수용하기 위해 반드시 충족해야 하는 구조적 요건이다.
JP모건이 XAI를 조기에 도입한 이유는, AI의 잠재력보다 금융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이 있었기에, JP모건은 AI를 혁신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금융 본연의 신뢰라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국 금융권이 배워야 할 것: 기술이 아닌 신뢰가 미래다
한국 금융기관들도 AI 기술 도입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비대면 채널의 확장과 오프라인 점포의 축소라는 구조적 변화는 AI 기반 기술의 빠른 정착을 촉진하고 있다. 챗봇을 통한 고객 응대, 자동화된 상담 시스템, 이상 거래 탐지 알고리즘 등은 이제 거의 모든 은행 앱에서 기본 기능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전체 입출금 거래 중 인터넷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초과했다. 이는 금융 서비스의 중심축이 물리적 창구에서 디지털 채널로 완전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JP모건 체이스처럼 AI와 XAI를 전략적으로 통합한 운영 체계를 구축한 국내 사례는 여전히 드물다.
이제 한국 금융권이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신뢰 기반의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고객 신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고도화된 AI 기술을 통합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AI가 고객의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이해 가능성과 설득력이 없다면, 아무리 성능이 뛰어나도 실제 서비스 전환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둘째, XAI 기반의 설명 가능하고 투명한 알고리즘 설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는 내부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규제기관과의 협의와 검토 과정에서 AI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핵심 조건이다.
셋째, 금융당국과의 긴밀한 협력 하에 윤리적·법적 기준을 충족하는 기술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ESG 경영, 데이터 윤리, 디지털 정보보호 등 다층적 요구가 부상하는 가운데, AI 기술도 ‘책임 있는 기술’로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권과 정부, 기술기업 간의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AI의 미래는 기술보다 신뢰에 있다
AI는 이미 금융 산업의 구조적 판을 바꾸고 있다. JP모건 체이스는 이를 기술적 실험이 아닌 조직 운영과 전략 설계 차원의 변환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리스크를 줄이고 수익을 높이며 고객 신뢰를 유지하는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명 가능성, 책임성, 투명성, 그리고 고객과의 신뢰 구축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AI는 오히려 금융을 해치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금융의 미래는 기술의 첨단과 사람 중심의 가치가 공존하는 곳에 있다. 빠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것. 정확한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책임질 수 있는 것. 기술을 신뢰로 연결하는 능력, 바로 그것이 JP모건 체이스가 AI를 성공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이며, 한국 금융권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다음 단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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