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말, 한국 건설업계는 생존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연쇄 부실, 미분양 적체, 정책금융 회수 압박이 겹치며, 특히 지역 기반의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무너지고 있다. 한때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던 건설산업은 이제 한국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
PF 연쇄 부실, '지방'이 아닌 '그림자 금융'에서 터졌다
2024년 건설업 위기의 본질은 단순한 미분양 증가나 지역 경기 둔화가 아니다. 문제는 바로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을 기반으로 한 PF 구조에 있다.
‘그림자 금융’이란 은행과 같은 전통 금융기관이 아닌, 증권사·저축은행·신협·보험사·사모펀드 등 비은행권이 수행하는 금융활동을 뜻한다. 이들 기관은 일반 은행과 달리 예금자 보호나 건전성 규제의 적용이 느슨하거나 없기 때문에, 위기 시 리스크 전파 속도가 빠르고 통제가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 |
블룸버그는 지난해 4월 “한국의 PF 대출 중 약 111조 원 규모가 부실화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은행이 아닌 증권사, 저축은행, 신협 등 비은행권 금융기관이 주도한 PF 자금 공급이 위험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비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그림자 금융 규모는 926조 원, 10년 전보다 4.2배나 증가했다. PF가 증권화되고, 여러 투자자에게 분산 판매되는 구조에서 책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부실이 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PF 연체율이 급등하고 있다
실제 PF 대출의 연체율은 금융당국이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할 정도로 빠르게 상승 중이다.
금융위원회가 2024년 3월 배포한 '’23.12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PF 대출 현황'에 따르면,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2020년 말 3.37%에서 → 2023년 3분기 13.85%, → 4분기에는 13.73%로 집계됐다.

저축은행 역시 2023년 말 기준 연체율이 6.55%로 상승했으며, 이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1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개별기업 위기가 아니라, 부실한 PF 사업 → 시공사 도산 → 금융권 손실 →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구조적 전이 현상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 PF 사업장의 공사 중단은 협력업체, 하도급사, 납품업체까지 줄줄이 연쇄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PF 부실은 단순히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를 넘어, 이를 자금 공급한 저축은행·증권사·신협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직접 위협하고 있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2022년) 이후 더욱 명확해졌으며, 당국이 대출 보증 확대·채권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대응이 빠르지만, 근본적으로 부동산 시장 구조조정 없이는 위기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노무라증권, 씨티그룹, IMF 아시아국 수석 등은 한국 부동산 PF 시장의 리스크가 경제성장률 저하, 금융불안, 소형 금융기관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건설사 ‘부도 도미노’ 조짐, 현실로 나타나나
2024년 하반기 들어, 국내 건설업계의 부실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종합 건설 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가 641건으로 2005년 조사 시작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공사비 급등에 수익성이 악화하고, 건설투자 축소에 일감도 줄면서 문을 닫는 건설 업체가 늘어난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 건설 업체의 폐업 신고는 전년보다 60건(10.3%) 증가한 6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조사가 시작된 2005년(629건) 이후 최대치다. 종합 건설 업체의 폐업 신고 건수는 건설 경기가 좋았던 2021년 305건에 그쳤으나, 2022년 362건으로 늘어난 후 2023년(581건)에 이어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증가했다.
특히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이 500%를 초과한 중소·중견 건설사들이 연이어 채권단과의 부채 조정 협상에 실패하며, 연쇄적인 부도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25년 상반기까지 약 170개 건설사가 도산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전체 건설사 대비 결코 적지 않은 수치로, 건설업 생태계 하부가 무너질 수 있는 신호다.
문제는 이 위기가 건설사 개별 리스크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PF 기반 건설 프로젝트가 멈추면 지방 도시 재생, 공급망, 고용 시장 전체에 타격을 주며, 금융 시스템 전반의 신뢰도까지 흔들 수 있다.
정책금융의 회수 압박, 구조조정의 도화선
과거 저금리 환경에서는 정책 금융과 민간 PF 보증을 통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던 건설사들이, 2023년 이후 고금리 국면에 접어들며 대규모 상환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경기 둔화 속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PF 보증기관의 보증 심사가 강화되면서, 지방 기반 PF 사업의 보증률은 50% 이하로 하락하며 자금줄이 사실상 차단됐다.
이로 인해 대주단(은행·증권사 등)은 PF 자금 회수를 서두르기 시작했고, 공사 중단 → 시공사 부도 → 대출금 회수 실패 → 금융사 손실 확대라는 전형적인 부실 악순환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신용 경색에 대응해 한시적으로 운영한 채권시장 안정 장치도 종료 수순에 들어서면서, 민간 자금 유입이 사실상 차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한두 개 건설사의 문제가 아닌, 전체 산업 구조를 재편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 체질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국제 비교: '민간 분양형 PF' 중심 한국, 왜 더 위험한가
한국 건설업의 PF 위기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문제가 아니라, '모델 자체의 고위험 구조'에서 비롯된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볼 때, PF의 성격과 운영 주체의 차이가 위기 발생과 대응 능력에 결정적 차이를 만든다.
예컨대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 재개발을 포함한 PF 사업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공동 관리했다. 민간 사업자의 부실 리스크를 정부가 사전에 구조화하고, 채권은행과의 협상도 공공 주도 하에 일원화해 진행함으로써 도산 연쇄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독일은 PF 자체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구조다. 독일은 주택과 교통 인프라 등 대부분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공공 자금 기반으로 추진하며, PF 의존도 자체가 낮다. 그 결과 건설사 부실이 금융시장으로 확산되는 구조적 경로가 차단됐다.
하지만 한국은 전체 PF 사업 중 약 75% 이상이 민간 분양형으로, 수익 실패 시 건설사·금융사·지역 경제가 동시 타격을 받는 구조다. 정부는 보증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개입하지만, 공사 중단 시 신속한 정리나 부실 회수에 제한이 많다. 이는 국제적으로 봐도 위험도가 높은 분산형 민간 PF 모델로 분류된다.
전략적 전환 없이는 생존도 없다
지금의 PF 위기는 단순히 유동성 부족이나 일시적 부동산 침체 때문만은 아니다. 고위험 민간 중심 구조 자체가 반복 가능한 시스템 리스크로 전환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유동성 공급보다는 지속 가능한 구조 재편을 위한 중장기 전략이 요구된다.
① PF 사업장 매입·정리 전담기구 신설
현재의 채권단 중심 회수 방식은 속도도 느리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심각하다. 정부 주도의 'PF 부실 사업장 정리 기구'를 설립해 수익성 없는 PF를 정리하고, 유망한 사업은 재구조화해 되살리는 방식의 일원화된 정비 체계가 필요하다.
② 지역 기반 건설사 재편 위한 정책금융 펀드 마련
일회성 지원이나 연명 목적의 자금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 전환과 ESG 경영 역량을 갖춘 중소 건설사 중심의 생존 재편이 핵심이다. 지역 기반 건설사들이 지방 공공 프로젝트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매칭펀드와 기술혁신 연계 프로그램도 병행되어야 한다.
③ 공공 발주 프로젝트에 ESG 기반 시공평가 도입
국가·지자체 주도의 공공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업을 선정할 때, 단순한 낙찰가보다 지속 가능성(ESG), 협력 생태계 역량, 재무 건전성 등을 종합 평가하는 '신용 재편형 발주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단순 저가 경쟁에서 기술력 중심의 건설 시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건설업의 위기는 단순한 산업 위기가 아니라, 지역경제와 금융시장 전체를 위협하는 체계적 리스크로 확산되고 있다.
PF 부실은 일회성 조치로 끝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도산 방지'가 아니라, 건설 산업의 구조와 금융을 동시에 바꾸는 근본적 전환 전략이다.
지금,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위기를 연명할 것인가, 구조를 바꿀 것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도산 방지가 아닌 산업의 재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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