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4월 20일 게임보이용으로 첫 작품이 출시된 '슈퍼로봇대전'이 2026년 35주년을 맞았다. 서로 다른 로봇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와 기체를 하나의 게임에 모으는 크로스오버라는 발상에서 출발한 이 시리즈는 이후 여러 플랫폼과 세대를 거치며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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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게임보이용으로 처음 출시된 '슈퍼로봇대전'.; https://www.suparobo.jp/srw_lineup

35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관련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8월 1일에는 기념 생방송이 진행됐고, '슈퍼로봇대전 Y'에는 무료 업데이트와 유료 DLC '애니버서리 익스팬션 팩'이 추가됐다. 동시에 2011년 PSP로 출시된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파계편'의 리마스터 제작도 발표됐으며, 35주년을 기념한 크리에이터 인터뷰와 이벤트도 이어지고 있다.

35년 동안 바꾸지 않은 것

장수 IP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흔히 변화와 혁신을 먼저 떠올린다. 시대에 맞춰 그래픽을 바꾸고, 새로운 시스템을 넣고, 플랫폼을 옮기면서 살아남았다는 설명이다. '슈퍼로봇대전' 역시 그런 변화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35년의 역사를 반대로 보면, 이 시리즈가 오래 유지한 것은 무엇을 계속 바꿨는가보다 무엇을 쉽게 바꾸지 않았는가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슈퍼로봇대전'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작품을 한곳에 모으는 경험이 있었다. '마징가 Z'와 '겟타로보', '기동전사 건담'처럼 원래는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로봇들이 같은 전장에서 싸우고,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단순히 인기 로봇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원작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던 만남과 관계를 게임 안에서 성립시키는 것이 이 시리즈의 핵심 상품이었다.

그 규모는 시간이 흐르며 크게 커졌다. 2021년까지 시리즈에 등장한 라이선스 IP는 274개에 달했고, 같은 해 기네스월드레코드는 '슈퍼로봇대전'을 RPG 비디오게임 시리즈 가운데 가장 많은 IP 라이선스를 사용한 시리즈로 공식 인증했다. 서로 다른 작품을 한데 모으는 크로스오버가 단순한 특징을 넘어 시리즈의 정체성 자체가 된 것이다.

35살 생일 맞은 게임 '슈퍼 로봇 대전'...
기네스 월드레코드에 기록된 슈퍼로봇대전;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world-records/618936-most-intellectual-property-licenses-used-in-a-role-playing-videogame-series

35주년 DLC 역시 이 오래된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슈퍼로봇대전 Y'의 '애니버서리 익스팬션 팩'에는 서로 다른 작품의 캐릭터와 기체가 함께 사용하는 연계 공격이 추가됐다. 공식 발표 역시 작품의 경계를 넘어 전사들이 함께 펼치는 공격과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없었던 상황을 활용한 전투 연출을 주요 특징으로 내세웠다.

35년이 지나도 플레이어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결국 비슷하다.
“이 작품과 저 작품이 정말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플랫폼도 바뀌었고 그래픽도 달라졌으며 전투 시스템과 육성 방식도 여러 번 수정됐다. 하지만 서로 다른 원작을 한 세계 안에 세우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와 상황을 만드는 경험은 유지됐다. 장수 IP는 모든 것을 바꿔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꾸지 않을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핵심 경험을 지키는 것과, 그것을 같은 방식으로 계속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크로스오버의 규모가 커지고 전투 연출과 음성, 플랫폼과 서비스 환경이 복잡해질수록, 같은 '슈퍼로봇대전'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작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35년 동안 유지된 것은 게임의 핵심 경험이지만, 그것을 만드는 비용과 부담까지 그대로일 수는 없었다.

같은 '슈퍼로봇대전', 하지만 만드는 부담은 달라졌다

그 변화는 먼저 제작 과정의 규모에서 나타난다. 게임보이와 16비트 콘솔 시대에는 제한된 해상도와 용량 안에서 캐릭터와 전투를 표현했다. 이후 콘솔 성능이 높아지고 플레이어의 기대 수준도 달라지면서 전투 애니메이션은 점점 길고 화려해졌다. 캐릭터 음성이 들어가고, 기체와 무기별 연출이 세분화됐으며, 여러 플랫폼과 언어를 지원하고 출시 이후 DLC와 업데이트까지 이어지는 방식도 일반화됐다.

'슈퍼로봇대전'은 여기에 크로스오버라는 특유의 복잡성이 더해진다. 참전 작품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서 캐릭터나 기체 하나를 게임에 넣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을 전체 시나리오 안에 어떻게 배치할지 정해야 하고, 다른 작품과의 관계도 만들어야 한다. 전투 연출과 음성, 음악을 준비하고, 각 IP가 가진 설정과 표현도 함께 조율해야 한다.

이처럼 작품의 규모와 요구 조건이 쌓여가면 문제는 개별 콘텐츠 제작에만 머물지 않는다. 복잡한 제작 과정을 오랫동안 떠받쳐온 개발환경 자체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진다. 실제로 '슈퍼로봇대전 Y'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바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35살 생일 맞은 게임 '슈퍼 로봇 대전'...
슈퍼 로봇 대전 시리즈의 전투화면 비교; https://www.suparobo.jp/srw_lineup/srw_ogps/chara/31.html, https://www.youtube.com/watch?v=LpTu_X_5zx8

토마 코타 프로듀서에 따르면 시리즈는 'α' 시리즈 시기부터 만들어온 자체 게임 엔진을 계속 개량하며 '슈퍼로봇대전 30'까지 사용해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기능을 덧붙이고 수정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특정 엔지니어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구조가 생겼고, 향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까지 우려하게 됐다. 결국 제작진은 시리즈를 계속 개발하기 위해 범용 엔진인 Unity로 개발환경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오래된 엔진을 최신 엔진으로 바꿨다는 데 있지 않다. 20년 가까이 독자적인 개발환경을 사용해온 팀에게 새로운 엔진으로의 전환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작업이었다. 제작진은 Unity의 사양과 사용법을 다시 익혀야 했고, 기존 엔진에서는 당연하게 구현되던 '슈퍼로봇대전' 특유의 세부 사양이 무엇인지부터 하나씩 확인하고 정리해야 했다.

오랫동안 사용한 자체 엔진에는 기능뿐 아니라 시리즈 특유의 제작 방식도 함께 축적돼 있었다. 때문에 Unity 전환은 단순한 소프트웨어 교체가 아니라, 기존 환경에 익숙해진 개발 방식을 새로운 기반에 다시 맞추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30'에서 'Y'로 이어지는 같은 시기에는 기술뿐 아니라 시리즈를 둘러싼 사람과 조직에도 변화가 이어졌다.

기술과 사람, 조직이 함께 바뀐 4년

'슈퍼로봇대전 30'은 2021년 10월 28일 출시됐고, '슈퍼로봇대전 Y'는 2025년 8월 28일 발매됐다. 두 작품 사이에는 약 4년의 간격이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기간에는 자체 엔진에서 Unity로 개발환경을 옮기는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같은 시기에 변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시리즈 프로듀서를 맡아온 데라다 타카노부는 2021년 반다이남코그룹을 떠났다. 1990년대부터 '슈퍼로봇대전' 제작에 깊이 관여해온 그는 이후 프리랜서 슈퍼바이저 형태로 시리즈와 관계를 이어갔다. '30'이 나온 해에 오랫동안 시리즈를 이끌어온 핵심 인물의 역할도 달라진 셈이다.

개발 조직 역시 이 기간에 재편됐다. '슈퍼로봇대전' 개발을 맡아온 B.B.스튜디오는 2024년 그룹 조직 개편을 통해 반다이남코 스튜디오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됐고, 2025년에는 사명을 '반다이남코 포지 디지털즈'로 변경했다. 개발 조직 자체가 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시리즈를 둘러싼 회사의 소속과 체계가 이 시기에 함께 달라졌다.

이처럼 '30'과 'Y' 사이의 약 4년에는 엔진 교체와 대표 프로듀서의 역할 변화, 개발사의 소속 재편과 사명 변경이 겹쳐 있었다. 물론 각각의 변화에는 서로 다른 배경이 있었고, 이를 하나의 계획된 전환으로 묶어 해석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술과 사람, 조직을 둘러싼 변화가 같은 시기에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눈여겨볼 만하다. 'Y'는 적어도 '30'과 완전히 같은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었다.

장수 IP에서는 이런 변화가 특히 중요하다. 오랫동안 쌓인 제작 경험이 엔진이나 문서에만 남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어떻게 엮을지, 원작의 설정을 어디까지 활용할지, 전투 연출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슈퍼로봇대전'답게 보이는지 같은 판단은 오랜 기간 시리즈를 만들어온 사람과 조직에도 축적된다.

때문 장수 IP에서는 새로운 사람과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큼, 기존에 쌓인 경험을 어떻게 이어갈지도 중요해진다. 기술과 조직의 변화는 단순한 교체에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축적된 제작 방식을 다음 환경에서도 이어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신작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진 IP의 현재

35주년을 맞은 올해의 움직임을 보면, 신작 하나만으로 시리즈의 현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중심에는 이미 출시된 '슈퍼로봇대전 Y'가 있다. 여기에 무료 업데이트와 '애니버서리 익스팬션 팩'이 추가됐다. 확장팩에는 메인 스토리 25개와 전선 미션 8개를 포함한 총 33개의 추가 미션, 12종의 추가 무기, 5기의 플레이어블 기체 등이 들어간다. 본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이미 구축된 게임의 기반 위에 새로운 전투와 콘텐츠를 더하는 방식이다.

한편 과거 작품도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있다. 2011년 PSP용으로 출시된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파계편'은 리마스터 개발이 결정됐다. 현재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전투 애니메이션을 고해상도화하고, UI도 현재의 이용 환경에 맞게 조정할 예정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Wzg95gSEkd4
'제2차 슈퍼로봇대전 Z 파계편 리마스터' 발표 장면,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 공식 생방송 캡처; https://www.youtube.com/watch?v=Wzg95gSEkd4

결과적으로 35주년을 전후한 시점에는 'Y'의 추가 콘텐츠와 과거작 리마스터가 서로 다른 형태로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를 반다이남코가 하나의 장기적인 콘텐츠 전략으로 설계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특히 '애니버서리 익스팬션 팩'은 'Y'의 추가 DLC를 마무리하는 콘텐츠이기도 해, 기존 로드맵과 35주년의 시기가 맞물린 결과로 볼 여지도 있다.

다만 현재 나타난 흐름만 놓고 보면, 시리즈가 이용자와 만나는 방식은 완전 신작 하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새 작품은 새로운 시스템과 참전작을 제시하고, DLC와 업데이트는 이미 만들어진 기반 위에서 콘텐츠를 확장한다. 리마스터는 과거 작품을 현재 플랫폼과 이용 환경에서 다시 접할 수 있게 만든다. 각각이 맡는 역할과 규모도 다르다.

신작의 개발 간격이 길어질수록 이런 여러 형태의 콘텐츠가 갖는 의미도 커진다. 과거처럼 짧은 간격으로 패키지 신작을 계속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DLC와 업데이트가 기존 작품의 활동 기간을 늘리고 리마스터가 과거 작품을 다시 현재의 상품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완전 신작이 없는 기간에도 IP가 이용자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여러 층위로 나뉘는 셈이다.

'제2차 Z 파계편' 리마스터는 그런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오래된 게임은 단순한 추억에 그치지 않고, 이미 상당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콘텐츠이기도 하다. 이를 현재 환경에 맞게 다시 제공할 수 있다면, 시리즈의 과거는 보존의 대상인 동시에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결국 장수 IP를 이어가는 일은 새로운 작품을 계속 추가하는 것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과 이미 축적한 콘텐츠를 다시 현재와 연결하는 일을 어떻게 함께 가져갈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된다.

35주년 이후의 장수 조건

현재 '슈퍼로봇대전 Y'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토마 코타는 2025년 8월 미디어 인터뷰에서 향후 신작의 개발 주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에는 연간 한 작품에 가까운 속도로 '슈퍼로봇대전' 신작이 나오던 시기가 있었지만, 게임 개발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만큼 Unity로의 이행이 마무리되더라도 같은 출시 속도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 개발환경 전환을 통해 앞으로도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기반은 마련됐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을 보면 최근의 변화는 과거의 출시 빈도를 되찾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신작의 개발 간격이 길어진 환경에서도 다음 작품을 계속 만들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쪽에 가깝다.

장수 게임 IP를 설명할 때는 흔히 오랜 팬덤과 브랜드 인지도, 인기 캐릭터, 향수 같은 요소가 먼저 언급된다. '슈퍼로봇대전' 역시 35년 동안 쌓아온 팬층과 여러 로봇 작품을 연결하는 독특한 위치가 중요한 기반이었다. 하지만 IP가 오래 기억되는 것과 실제로 새로운 게임을 계속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신작을 만들려면 팬이 기대하는 경험을 구현할 개발환경이 필요하고, 여러 라이선스와 시나리오를 조율할 제작 체계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축적된 제작 경험을 다음 개발환경과 제작진에게 이어주는 일도 중요하다. 신작 간격이 길어진다면 그 사이 기존 작품과 과거 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도 새로운 과제가 된다.

이런 점에서 장수의 조건은 콘텐츠 자체에만 있지 않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만큼 그것을 계속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조직, 제작 방식이 유지될 수 있는가도 중요해진다.

'슈퍼로봇대전'의 최근 몇 년은 바로 이 부분에서 큰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오랫동안 사용한 자체 엔진을 Unity로 옮겼고, 주요 제작자의 역할과 개발 조직을 둘러싼 환경도 달라졌다. 35주년에는 'Y'의 추가 콘텐츠와 함께 과거 작품인 '제2차 Z 파계편'의 리마스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각각의 변화가 하나의 장기 전략에 따라 진행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시리즈가 앞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과거와 같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이런 변화가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범용 엔진으로 옮긴다고 개발 부담이 곧바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리마스터가 반드시 새로운 이용자를 불러오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Y'는 오랜 개발환경을 옮기는 과정 자체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35주년의 의미를 단순히 “다시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과거와 같은 제작 속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다음 작품을 계속 이어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35년을 이어온 '슈퍼로봇대전'이 보여주는 장수의 조건도 이 지점에서 조금 달라진다. 핵심 경험을 유지하는 것만큼, 그것을 구현하는 기술과 조직을 시대에 맞게 조정하고 이미 축적한 콘텐츠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일이 중요해진다.

'슈퍼로봇대전'의 35주년은 과거의 성과를 돌아보는 기념일인 동시에, 오래된 IP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기 위해 어떤 제작 조건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