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회와 경제 전반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국가 경쟁력과 국가안보의 핵심 기반으로 부상하면서 AI에 대한 국가의 대응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초기의 AI 정책은 상당 부분 기술개발과 산업육성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정부의 주요 관심은 AI 연구개발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 전문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기업의 AI 개발과 활용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있었다. AI는 새로운 성장산업이었으며 국가의 기본적인 역할은 기술혁신과 산업성장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AI가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AI 정책의 대상과 범위 역시 크게 확대되고 있다. AI가 특정 산업의 기술개발을 넘어 노동과 교육, 의료와 금융, 미디어와 문화, 시장경쟁과 공공행정, 국가안보와 국제질서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AI 정책의 범위 역시 산업진흥과 기술규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제도와 질서를 설계하는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AI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활용되면서 편향과 차별, 책임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생성형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음악과 영상을 만들어내면서 저작권과 창작자의 권리, 허위정보와 정보의 신뢰성 문제가 등장했다.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는 개인정보와 데이터 권리가 문제가 되었으며, 소수의 글로벌 기업이 파운데이션 모델과 컴퓨팅 인프라를 장악하면서 시장집중과 경쟁의 문제도 커지고 있다. AI의 정책적 성격이 기술개발과 산업진흥에서 사회적 위험과 공익의 문제로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최근의 변화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다. AI가 경제성장과 산업경쟁력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글로벌 패권 경쟁의 핵심 전략자산으로 부상하면서 AI 정책 역시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가 AI를 얼마나 잘 개발하는가를 넘어,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갈등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정책적 과제를 제기한다.

사회가 AI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AI로 인한 피해와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기술적으로 뛰어난 AI를 보유하고 있더라도 지속가능한 확산은 어렵다. 반대로 모든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지나치게 강한 규제를 적용하면 기업의 혁신과 투자,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을 제약할 수 있다. 따라서 AI 시대에 국가가 갖추어야 할 역량은 크게 AI 기술역량, AI 확산역량, 그리고 AI 거버넌스 역량 등 세 가지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AI 기술역량(Technology Capacity)​은 AI 모델과 반도체, 컴퓨팅, 데이터, 인재 등 AI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둘째, AI 확산역량(Diffusion Capacity)​은 개발되거나 도입된 AI를 제조, 금융, 의료, 교육, 미디어, 공공행정 등 경제와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실제 생산성과 혁신으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 AI 거버넌스 역량(Governance Capacity)​은 AI의 혁신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안전과 기본권, 경쟁과 공익을 보호하고, 글로벌 개방성과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AI를 개발하는 국가, AI를 잘 활용하는 국가, 그리고 AI를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하는 국가가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래의 AI 경쟁력은 세 가지 역량 가운데 어느 하나를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얼마나 균형 있게 구축하고 연결하는가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은 AI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 역시 새롭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국가는 AI 연구개발과 산업혁신을 촉진하는 촉진자(Promoter)​인 동시에 AI가 초래하는 시장실패와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규제자(Regulator)​이다. 또한 AI 인프라와 인재, 교육과 사회적 적응 능력을 구축하는 역량 구축자(Capacity Builder)​이며,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의 기술적·산업적 위치와 경제안보, 국가안보와 AI 주권을 확보해야 하는 전략가(Strategist)​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대의 AI 정책은 촉진, 규제, 역량 구축, 그리고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국가정책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AI 정책의 범위 자체를 크게 확장시킨다. AI 연구개발은 과학기술정책이고,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는 산업정책이면서 에너지정책과 연결된다.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노동·교육정책의 문제이고, 생성형 AI의 학습과 결과물은 저작권·문화정책의 대상이 된다. AI 기업과 플랫폼의 시장지배력은 경쟁정책의 문제이며, AI가 정보와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정책과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첨단 반도체와 AI 모델의 해외 이전은 통상정책이면서 경제안보정책이고, AI의 군사적 활용은 국방과 외교·안보정책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AI 정책이라고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질문이 AI 정책을 독립적인 연구영역으로 다루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AI 정책은 기존 정책영역에 하나의 새로운 영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과학기술·산업·경쟁·노동·교육·미디어·문화·안보·외교정책을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중심으로 다시 연결하는 횡단적 정책영역(cross-cutting policy domain)​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횡단적 성격은 AI 정책을 정부 중심의 규제(Regulation)를 넘어 다양한 행위자와 정책수단이 참여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문제로 확장시킨다.

AI 거버넌스는 정부가 법률을 만들어 기업과 기술을 통제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부와 기업, 개발자, 이용자, 시민사회, 학계와 국제기구가 AI의 개발과 이용에 관한 원칙과 규범, 기술표준과 책임체계를 함께 형성하는 보다 포괄적인 제도적 질서를 의미한다. 더욱이 앞서 살펴본 것처럼 AI에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방향 자체가 불확실하다. 오늘의 기술 수준을 기준으로 세부적인 규칙을 만들어 놓으면 기술이 변화하면서 규칙이 빠르게 낡을 수 있다. 반대로 발생 가능한 모든 미래의 위험을 사전에 예상하여 규제하려 한다면 과잉규제로 인해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AI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미래의 모든 상황을 세부적인 규칙으로 미리 정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정책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기본 원칙(principles)의 중요성이 커진다. 미래에 등장할 모든 AI 기술과 서비스를 오늘의 시점에서 예측하여 규칙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엇을 보호해야 하고, 어떠한 가치를 우선하며, 서로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에 관한 기본 원칙은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AI 정책은 완전히 새로운 정책영역이면서 동시에 오랜 정책적 전통과 연결된다. 표현의 자유, 공익(Public Interest), 사상의 시장(Marketplace of Ideas), 다양성(Diversity), 경쟁(Competition),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와 같은 원칙들은 방송·통신과 인터넷 시대에 기술과 시장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사회가 보호해야 할 핵심 가치를 제시해왔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원칙들이 새로운 기술적·사회적 현실에 맞게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에 데이터와 언어, 문화, 기술적 자율성을 포괄하는 AI 주권(AI Sovereignty)의 문제가 새로운 정책원리로 부상하고 있다.

결국 AI 정책의 핵심은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뒤따라가며 개별적인 문제를 하나씩 규제하는 데 있지 않다.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회질서 속에서 어떠한 가치를 지키고, 서로 충돌하는 가치 사이에서 어떠한 균형과 우선순위를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동시에 AI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과 갈등을 관리하고,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AI 정책은 규제정책이나 산업정책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포괄적인 국가전략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따라서 AI 대전환 시대의 핵심적인 정책 질문은 더 이상 단순히 “AI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또는 “AI 산업을 얼마나 육성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원칙에 따라 어떤 AI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 바로 이 질문이 AI 정책론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