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32분.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확히 말하면 일반전화가 아니라 보이스톡이었다.

‘이 시간에 누가 나한테 보이스톡을 하지?’

잠결에 화면을 바라봤다. 이름은 알고 있지만 친구에서 삭제한 사람이었다. 나는 매년 카카오톡 친구를 정리한다. 1년 동안 나도 연락하지 않고 그도 연락하지 않는 인연은 카카오톡에서 삭제한다. 그게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해서다.

잘못 걸었겠거니 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화방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왜 하필 새벽 세 시 반이지?’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둠 속에서는 상상력이 현실보다 훨씬 빠르게 달렸다.

계정이 해킹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내 전화번호를 알아낸 걸까.

왜 일반전화도 아니고 보이스톡일까.

짜증도 났다.

오늘은 일출을 보려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날 생각이었다. 이렇게 정신이 또렷해지면 앞으로 두 시간 가까이를 뜬눈으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가만히 누워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 세상에 내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같은 정보가 오직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순진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냥 다시 자자.’

억지로라도 생각을 끊었다.

다행히 다시 잠이 들었다.

회의실이다. 나를 가르쳐주셨던 교수님도 있었고, 기자 시절 함께 일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학교에서 알게 된 사람들까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특별히 주목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조용히 처리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장소가 행사장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들이 옆에 있었다. 아들은 골프를 쳐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손에는 이상하게도 초콜릿으로 만든 골프채가 들려 있었다.

“그걸로는 골프공 못 쳐.”

딱딱한 골프공을 초콜릿 골프채로 치면 당연히 부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골프채를 구해주려고 행사장을 뛰어다녔다.

직원에게 물었다.

“골프채를 빌릴 수 있을까요?”

직원이 말했다.

“오늘 마침 추첨하는 날이에요. 운이 좋으시면 받을 수도 있어요.”

“추첨은 몇 시인데요?”

“저녁입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그냥 살게요.”

또 뛰었다. 아들에게 골프채 하나를 구해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문득 내가 가방을 어디엔가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서는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급하게 가방을 찾아 안을 확인했다. 내 가방 속에 돈은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다.’

그때였다.

윙―

윙―

꿈속 공간 전체가 떨리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손목의 갤럭시 워치 울트라가 진동하고 있었다.

오전 5시 10분. 알람이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시작됐다.

“아들, 일어나.일출 보러 가야지”

아들을 깨웠다.

아들과 나는 급하게 옷을 입고 호텔 밖으로 뛰어나왔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금 뜻밖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날씨가 정말 좋았다. 자전거를 타던 날도, 요나고 시내를 걷던 날도, 에시마대교를 건너던 날도 비 한 번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아침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

여행 내내 비가 왔다면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는 날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하고 싶었던 일은 거의 다 했다.

‘그래. 이제 와도 되지.’

마지막 날에야 내리는 비가 왠지 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작은 배려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일출은 보고 싶었다. 문제는 해가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뜨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호텔을 나와 무작정 바닷가 쪽으로 뛰었다.

새벽 공기는 축축했다. 하늘은 온통 흐렸다. 기대했던 것처럼 바다 위로 황금빛이 번지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우리 노천탕 있는 꼭대기로 가자.”

다시 호텔로 뛰었다.

5시 20분. 예상했던 일출 시각까지 10분도 남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갔다. 급하게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유리창 너머가 아니라 직접 하늘을 보고 싶어서 먼저 노천탕으로 나갔다.

어딘가에 아주 희미하게 노란 기운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남탕 노천탕에서는 고개를 한참 옆으로 돌려야 겨우 그 방향이 보였다.

그때 아들이 말했다.

“아빠, 우리 안에서 보자.”

실내탕 쪽으로 들어와 보니 아들 말이 맞았다. 오히려 시야각이 더 좋았다. 나는 무릎 정도까지 물에 담근 채 창밖을 바라봤다.

5시 25분.

구름이 너무 많았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나는 11층 끝에 가서 볼게.”

그리고 급하게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 혼자 남았다.

5시 26분.

비는 여전히 조금씩 내렸고 산 위에는 두꺼운 구름이 걸려 있었다.

솔직히 실망했다. 일출 하나 보겠다고 새벽부터 뛰어다녔는데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산과 구름 사이로 아주 가느다란 틈 하나가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을 때 생기는 눈매처럼 길고 좁은 틈이었다.

나는 그곳을 계속 바라봤다.

5시 29분쯤이었을까.

그 틈 사이로 무언가 반짝였다. 황금빛 같기도 했고, 에메랄드빛 같기도 했다. 보석 가루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해였는지, 구름 사이에서 빛이 굴절돼 그렇게 보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것을 해라고 믿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들과 제가 항상 사이좋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소원이라기보다 다짐에 가까웠다. 그 순간 내가 아들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달라는 것도, 성공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 역시 회사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오래도록 서로를 위하는 사이로 살아갔으면 했다. 그것이면 됐다.

11층으로 내려가 아들을 찾았다. 아들은 복도 끝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급하게 내려오는 바람에 탈의실에 물건 몇 개를 두고 왔다고 했다.

나는 다시 12층으로 올라가 아들의 물건을 챙겼다. 그리고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나는 잠들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들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적기 시작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같은 휴대전화로 회사 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들은 서운해했다. 여행을 왔는데 아빠가 온전히 자기와 함께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같은 휴대전화로 아들과 본 일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같은 물건이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바라보는 곳이었다. 도구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그 도구로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인지도 몰랐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마음도 조금씩 현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창밖을 보니 안개가 너무 짙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진 것처럼 온 세상이 희었다. 갑자기 걱정이 됐다.

‘비행기 뜰 수 있을까?’

여행을 시작할 때는 제대로 입국할 수 있을지 걱정했고, 돌아가는 날에는 제대로 출국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잠시 뒤 다행히 비구름과 안개가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서 직원에게 말했다.

“ゆっくり休ませていただきました。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윳쿠리 야스마세테 이타다키마시타. 아리가토 고자이마시타

"잘 쉬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잘 쉬었다. 몸만 쉰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이끌어야 하는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묻던 머릿속에서도 잠시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오전 10시 27분.

요나고공항으로 향하는 사카이선 열차에 올랐다. 며칠 전 처음 이 노선을 탔던 순간이 떠올랐다.

표를 제대로 산 것인지, 그 열차를 타는 것이 맞는지, 하나하나가 불안했다.

열차가 먼저 한 대 들어왔는데 아무도 타지 않아 괜히 더 초조해했고, 결국 아들이 기억해둔 출발 시간을 믿고 기다려 사카이미나토까지 왔다.

이제 같은 철길을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낯선 길이었는데, 돌아갈 때는 아는 길이 돼 있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내내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도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마치 이제 정말 가도 된다는 것처럼. 요나고공항은 여전히 한적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느꼈지만 이곳에서는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사카이미나토 골목에서도 그랬고, 자전거를 타고 외곽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세상에 아들과 나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공항도 비슷했다. 에어서울 온라인 체크인을 하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다. 결국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아직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카운터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남았다. 할 일도 별로 없었다. 볼 만한 곳은 이미 둘러봤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요나고에서는 도시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공항의 시계도 마지막까지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다.

출국 전 마지막 식사를 했다. 아들은 소고기 구이 정식을 골랐고, 나는 해산물덮밥을 주문했다. 이번 여행 내내 그랬다. 아들은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을 골랐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같은 식탁에 앉았다고 해서 같은 것을 좋아할 필요는 없었다. 각자 다른 것을 먹으면서도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어쩌면 가족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같은 집에 살지만 다른 것을 좋아하고,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 그래도 한 식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트래블로그 카드에 환전해온 돈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숙박비를 내고, 밥을 먹고, 자전거를 빌리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들의 프라모델과 운동화를 사고, 이것저것 쓰다 보니 거의 다 썼다.

가져온 돈이 마지막 날이 되자 신기할 만큼 바닥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여행에서 돈을 얼마나 쓰게 될지가 걱정이었는데, 막상 끝날 때가 되니 남은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시간도 비슷했다. 가져온 돈도 거의 다 썼고, 이곳에서 쓸 수 있는 시간도 거의 다 써버렸다. 남은 것은 돌아가는 일이었다.

체크인이 끝났다. 출국 수속도 마쳤다. 이제 비행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그때 아들이 면세점에 놓여진 와규맛 감자칩을 계속 바라봤다.

정말 먹어보고 싶은 눈치였다.

나는 1,000엔을 건넸다.

“먹고 싶은 거 사 와.”

내 계산으로는 감자칩을 사고도 돈이 조금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잔돈으로 음료수 하나를 사 마실 생각이었다.

잠시 뒤 아들이 돌아왔다. 손에는 와규 감자칩과 초콜릿 하나가 들려 있었다.

“이건 뭐야?”

“엄마 주려고.”

아들의 말에는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 오히려 엄마를 생각해서 산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음료수 한 병을 사지 못하게 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먼저 올라왔다.

‘왜 내 돈을 네가 마음대로 쓰지?’

내가 1,000엔을 준 것은 맞았다. 하지만 내게는 나름대로 생각한 용도가 있었다. 아들은 내가 준 돈을 자기 돈처럼 판단해 엄마에게 줄 선물을 샀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 생각해서 초콜릿 산 건 좋은데, 이건 네 돈은 아니잖아. 아빠한테 물어보지 않고 네 마음대로 쓰고 그걸로 선물을 하면 아빠는 기분이 좋지 않아.”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졌다. 이번 여행에서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좋아졌다가 어긋나고, 화해했다가 다시 서운해졌다.

순간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이러네.’

조금 씁쓸했다. 여행의 마지막 장면만큼은 영화처럼 따뜻했으면 했던 모양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좋은 말 하나를 남기고 비행기에 오르는 장면. 그런데 현실의 가족은 영화처럼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여전히 아들이었고, 나는 여전히 나였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생각했고, 그 방식이 서로 맞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그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며칠 만에 돌아온 것뿐인데 공항 풍경이 묘하게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아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 이번에는 둘이 똑같은 것을 주문했다. 부대김치찌개 달걀정식. 며칠 동안 아들은 아들이 먹고 싶은 것을 골랐고,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골랐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는 순간에는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일본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굳이 다시 꺼내지 않았다. 찌개가 끓었다. 밥을 먹었다. 그 정도면 됐다.

가족에게는 모든 일을 그 자리에서 완벽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조금 서운한 채로 같이 밥을 먹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충분한 날도 있다.

이제 공항버스를 타고 중계역으로 가면 된다.

거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면 정말 여행이 끝난다. 며칠 전에는 같은 버스를 타고 반대 방향으로 공항을 향했다. 그때의 나는 불안했다. 처음 맡은 제안PM 일을 겨우 끝냈지만 마음 한쪽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었다.아들과 단둘이 해외여행을 잘할 수 있을지도 걱정했다.

그런데 이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곧 다시 회사로 돌아갈 것이다. 밀린 메일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일이 생길 것이고,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히기도 할 것이다. 나는 또 리더란 무엇인지 고민할 것이다.

어떤 날에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다가, 다른 날에는 내가 왜 이것밖에 하지 못했나 자책할지도 모른다.

아들도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게임을 하고, 유튜브도 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른 선택을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할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아들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들은 아들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도 나대로 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그저 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보니 우리가 나눈 것은 대화만이 아니었다.

나는 아들에게 서운했고, 아들도 나에게 서운했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여다봤고, 아들은 휴대전화 화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들의 시간을 걱정했고, 아들은 아빠와 보내는 자기 시간을 걱정했다. 나는 아들을 이끌려고 했고, 어느 순간에는 모든 선택을 아들에게 넘겨버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게 됐다. 누군가를 이끈다는 것은 모든 결정을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모든 결정을 상대에게 넘기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생각을 듣고, 때로는 내가 앞서고, 때로는 상대를 따라가며, 결국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일이었다.

아마 아들과의 관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어긋날 것이다. 완벽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날 같은 것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에시마대교에서 그랬던 것처럼, 멈춰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미안해.”

“그건 아빠가 좀 서운했어.”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런 말을 다시 꺼내며 한 걸음씩 움직이면 된다. 아들은 앞으로 수없이 실수할 것이다. 자기 고집대로 했다가 넘어질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크게 기뻐할 것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흔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실수할 것이고, 잘못 판단할 것이고, 사람 때문에 상처받을 것이고, 내 고집 때문에 일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내가 해낸 일 하나 때문에 꽤 오래 뿌듯해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또 한 해를 살아갈 것이다. 매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바빠서 하루에 몇 마디 못 하는 날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래도 가끔 이번 여행을 떠올릴 것이다. 구름 사이로 아주 잠깐 비쳤던 새벽의 빛. 사람 하나 없는 골목을 둘이 자전거로 달리던 순간. 프라모델을 찾아 요나고 거리를 걷던 순간. 에시마대교 위에서 무서워하면서도 자전거 손잡이를 꽉 쥐고 걸었던 순간. 그리고 사소한 일로 서로 서운해했던 순간들까지.

좋았던 순간만 여행인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어긋났던 순간까지 모두 합쳐져야 비로소 우리의 여행이 된다.

집에 돌아가면 여행가방을 풀 것이다. 빨래할 옷을 꺼내고,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정리하고, 아들이 사 온 프라모델 상자를 방 한쪽에 올려둘 것이다. 며칠만 지나도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을 것이다. 일상이 빠르게 우리를 다시 삼킬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빠, 우리 내년에는 어디 갈 거야?”

그때의 아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커 있을 것이다. 목소리가 더 낮아질 수도 있고, 아빠보다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지금과는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일을 맡고 있을 수도 있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를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궁금하다. 내년의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곳에서 아들은 무엇을 먹고 싶다고 할까. 나는 또 무엇을 걱정하고 있을까. 우리는 무슨 일로 한 번쯤 다투고, 어떤 풍경 앞에서 다시 웃게 될까. 그리고 밤이 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아침. 나는 구름 사이의 작은 빛을 바라보며 단 하나를 바랐다.

아들과 내가 항상 사이좋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것.

돌아보니 ‘항상 사이좋게’라는 말은 한 번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 것 같다. 서운할 수도 있다. 화를 낼 수도 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공항에서 감자칩 하나 때문에 또 마음이 틀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결국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바라던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항버스가 집을 향해 달린다. 아들은 아들대로 자기 인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도 다시 나의 인생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는 또 실수하고, 고집을 부리고, 좌절하고, 성취하며 한 해를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시 둘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아들에게 다시 물어보고 싶다.

“아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아들과의 여행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벌써 조금 궁금하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