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는 아이디어를 빛나게 했지만, 생각의 폭은 오히려 좁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이제 자연스럽게 생성형 AI를 연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줘”, “조금 더 재미있게 바꿔줘”라고 입력하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이 돌아온다.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빠르고, 때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까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생성형 AI와 함께 브레인스토밍하면 인간은 실제로 더 창의적이 될까?

2026년 3월 『Computers in Human Behavior: Artificial Humans』에 발표된 Ika Dai와 Lyn M. van Swol의 연구는 이 질문에 단순하지 않은 답을 내놓는다.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더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개수는 오히려 적었다. 생각이 여러 범주로 뻗어나간 정도 역시 AI 없이 혼자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더 높았다.

AI가 창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제한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212명에게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다시 기획하게 하다

연구에는 미국 중서부의 한 대형 공립대학교 학부생 212명이 참여했다. 평균연령은 20.02세였으며, 참여자의 75.5%가 여성이었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더욱 재미있고 유익하게 개선하는 일이었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참여 방식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집단은 AI 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다른 집단에는 대학에서 제공하는 Microsoft Copilot이 보조도구로 주어졌다. AI를 사용하는 참여자는 Copilot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볼 수 있었다.

다만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제안을 참고하되, 최종 아이디어는 참여자가 직접 판단하고 작성해야 했다. AI가 과제를 대신 수행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이디어 생성을 돕는 보조도구로 사용된 셈이다.

여기에 ‘이후 누구와 협업할 것인가’라는 조건도 더해졌다. 참여자들은 다음 단계에서 인간 동료 또는 AI와 함께 브레인스토밍하게 될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에 따라 실험은 네 가지 조건으로 구성됐다.

  • AI 없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후 인간과 협업하는 조건

  • AI의 도움을 받고 이후 인간과 협업하는 조건

  • AI 없이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후 AI와 협업하는 조건

  • AI의 도움을 받고 이후 AI와 협업하는 조건

AI를 사용했는지만 살펴본 것이 아니다. 앞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누구에게 보여주고, 누구와 발전시키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현재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연구에 포함됐다.

창의성은 하나의 점수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연구의 흥미로운 지점은 창의성을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평가 항목은 아이디어 수, 독창성, 실행 가능성, 재미, 유연성이었다.

아이디어 수는 참여자가 작성한 서로 다른 아이디어의 개수를 의미한다. 독창성은 얼마나 새롭고 독특한지, 실행 가능성은 실제로 구현하기 쉬운지, 재미는 아이디어가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워 보이는지를 평가한 항목이다.

유연성은 생각이 얼마나 다양한 범주로 확장됐는지를 보여준다. 소풍, 빙고,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각각 제안했더라도 연구진이 이를 모두 ‘사회적 활동’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분류했다면 유연성 점수는 한 번만 올라간다.

따라서 유연성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디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익숙한 영역에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했다는 뜻에 가깝다.

독창성, 실행 가능성, 재미는 실험조건을 알지 못하는 훈련된 평가자들이 5점 척도로 채점했다. 평가자 간 신뢰도도 모두 수용 가능한 수준이었다.

AI는 아이디어를 더 좋게 만들었지만, 더 많이 만들지는 못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AI 없이 혼자 브레인스토밍한 참여자들은 평균 13.24개의 아이디어를 작성했다. AI의 도움을 받은 참여자들의 평균은 11.69개였다. AI 사용 집단이 오히려 약 1.55개 적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생각의 범위를 보여주는 유연성에서도 비슷한 차이가 확인됐다. 혼자 생각한 집단의 평균은 6.66이었지만, AI 지원 집단은 6.06이었다. 두 차이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생성형 AI가 더 많은 아이디어와 선택지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반면 아이디어의 독창성에서는 AI의 장점이 분명했다. 혼자 생각한 집단의 평균이 2.99점이었던 데 비해 AI 지원 집단은 3.34점을 기록했다. 재미 역시 독립 집단 3.18점, AI 지원 집단 3.44점으로 AI를 사용한 쪽이 높았다.

AI는 생각을 넓히기보다 깊게 만들었다.

한 가지 방향을 더 새롭고 재미있게 다듬는 데에는 도움을 줬지만, 더 많은 방향을 자유롭게 탐색하도록 만들지는 못한 것이다.

실행 가능성에서는 AI의 뚜렷한 우위가 발견되지 않았다. 혼자 생각한 집단은 평균 3.43점, AI 지원 집단은 3.37점이었다. 유의한 차이도 없었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AI가 아이디어의 질을 전반적으로 높였다”고 요약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AI가 높인 것은 질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독창성과 재미였다. 실제 구현 가능성까지 높여준 것은 아니다.

가장 창의적인 결과는 ‘AI 다음에 인간’이 있을 때 나왔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AI의 효과가 모든 상황에서 동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AI의 도움을 받은 참여자 중에서도 이후 인간과 협업할 예정이라고 들은 사람들의 독창성은 평균 3.49점으로 가장 높았다. 반면 이후 AI와 협업할 예정이라고 들은 사람들의 독창성은 평균 3.09점에 머물렀다.

재미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났다. AI를 사용한 뒤 인간과 협업할 예정인 집단은 평균 3.68점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AI를 사용하고 이후에도 AI와 협업할 예정인 집단의 평균은 3.01점이었다.

결국 AI를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더 창의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AI의 인지적 지원과 인간 협업에 대한 기대가 결합됐을 때 독창성과 재미가 가장 크게 높아졌다.

연구자들은 이 차이를 사회적 동기와 ‘인상관리’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더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과 협업할 예정인 참여자들의 인상관리 점수는 평균 4.75점이었다. AI와 협업할 예정인 집단은 3.61점에 그쳤다. 이는 이번 연구에서 발견된 효과 가운데 상당히 큰 차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AI를 매우 유능한 협업자로 인식하면 “내가 조금 덜 노력해도 AI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가능성을 AI에 의존해 자신의 노력을 줄이는 ‘알고리즘적 무임승차’와 연결한다.

다만 인상관리가 실제로 독창성과 재미를 높이는 과정을 별도의 매개효과 분석으로 검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인상관리 때문에 창의성이 높아졌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연구 결과를 설명하는 이론적 해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AI는 왜 생각의 폭을 좁혔을까?

가능한 이유는 몇 가지다.

우선 1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 AI에게 질문을 입력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제안을 읽고 평가해야 했다. 혼자 생각한 참여자는 계속 아이디어를 작성할 수 있었지만, AI 사용자는 생성과 검토를 번갈아 수행해야 했다. AI가 시간을 절약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별도의 처리 과정을 요구한 셈이다.

AI가 처음 제시한 아이디어가 일종의 ‘닻’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정 방향을 먼저 접하면 그 생각을 깊게 발전시키기는 쉬워진다. 하지만 전혀 다른 범주로 이동하기는 그만큼 어려워질 수 있다.

생성형 AI가 제시한 몇 개의 아이디어가 참여자에게 암묵적인 기준이 됐을 수도 있다. 사용자는 그 범위 안에서 표현을 다듬고 세부 내용을 추가하면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AI는 아이디어의 깊이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고의 폭까지 자동으로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먼저 인간이 넓게 생각하고, AI가 깊게 다듬게 하라

연구자들이 제안한 해법은 세 단계의 브레인스토밍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AI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이 먼저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만든다. 완성도를 판단하기보다 가능한 많은 방향과 범주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다. 사람이 만든 아이디어를 확장하거나, 평범한 생각에 새로운 요소를 더하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역할이다.

마지막은 다시 인간의 몫이다. 동료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논의하면서 AI가 충분히 제공하기 어려운 맥락적 판단과 사회적 책임감, 실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보완해야 한다.

이 방식은 콘텐츠 기획이나 영상제작 교육에도 적용할 수 있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AI에게 시놉시스나 콘티 전체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면 빠르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장르와 관점, 이야기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은 생략되기 쉽다.

반대로 학생이 먼저 여러 방향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중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AI와 함께 발전시킨 뒤, 마지막으로 동료나 교수자와 검토한다면 인간과 AI의 강점을 더 균형 있게 활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가 아니다. 창의적 과정의 어느 시점에 AI를 참여시킬 것인가다.

실제 인간-AI 협업의 승자를 가린 연구는 아니다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할 부분도 있다.

우선 참여자가 모두 한 대학의 학부생이었다. 대학 오리엔테이션 개선이라는 비교적 친숙하고 제한된 과제에서 얻은 결과를 전문 기획자나 창작자, 실제 조직의 복잡한 업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AI 사용 방식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았다. 참여자마다 Copilot에 입력한 질문과 사용 횟수, 답변을 활용한 정도가 달랐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AI 대화 기록은 연구가 끝난 뒤 삭제됐다. 어떤 질문 전략이 독창성을 높이거나 사고의 범위를 좁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이 논문이 직접 측정한 것은 실제 협업 결과가 아니다. ‘이후 인간 또는 AI와 협업할 것이라는 예상’이 현재의 개인 아이디어 생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본 연구다.

따라서 인간-인간 팀과 인간-AI 팀이 실제로 함께 브레인스토밍했을 때 어느 쪽의 성과가 더 좋은지를 가린 연구로 소개해서는 안 된다.

실험조건의 배정 방식도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논문에서는 참여자들이 네 조건에 무작위로 배정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부 절차를 보면 같은 시간에 두 명이 참석한 경우 인간 협업 조건으로, 혼자 참석한 경우 AI 협업 조건으로 배정됐다.

사전에 일정 자체가 무작위로 배정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예상 협업 상대에 따른 차이를 전적으로 인간과 AI라는 조건의 효과로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창의성의 미래는 인간 대 AI의 대결이 아니다

이 연구는 인간과 AI 가운데 누가 더 창의적인지를 가려내지 않는다. 대신 인간과 AI가 창의성의 서로 다른 부분에서 강점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성형 AI는 아이디어를 더 독창적이고 재미있게 다듬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AI가 제시한 방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아이디어의 수가 줄고, 생각이 서로 다른 범주로 확장되는 과정도 제한될 수 있다.

특히 AI의 장점은 인간이 창작 과정에서 물러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인간과 공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유지할 때 더 뚜렷해졌다.

결국 필요한 것은 AI에게 창의성을 맡기는 방법이 아니다. 인간과 AI의 역할을 어떤 순서로 배치할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빈 화면을 보자마자 AI에게 답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인간이 넓게 생각해야 한다. 그다음 AI를 활용해 가능성 있는 아이디어를 깊게 다듬고, 다시 사람과 함께 맥락과 실행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창의성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AI를 활용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