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는 지금 요나고에 와 있다.

사실 여행을 결정할 당시 나는 요나고가 어떤 곳인지 거의 몰랐다.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일본 돗토리현 서쪽에 있는 도시라는 것,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찾던 온야도 노노가 인근 사카이미나토에 있다는 정도였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이번 여행은 목적지를 먼저 정해놓고 준비한 여행이 아니었다.

아들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요나고가 목적지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과 나 둘 다 잘 모르는 곳'


어쩌면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만 여행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내 마음은 아직 회사에 있었다.

출발 전날. 제안PM 업무를 마지막으로 마치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쯤이었다. 아들은 내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씻고 이것저것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가까워졌다. 다음 날이면 일본으로 떠나는데 나와 아들은 그제서야 컴퓨터 앞에 나란히 앉았다.

나는 아들이 만들어놓은 4박 5일 여행 일정을 처음 제대로 들여다봤다.

야키니쿠집.

미즈키 시게루 로드.

갓파의 샘.

요괴식품연구소.

식당과 카페.

마트.

그리고 숙소.


나는 아들이 가고 싶다며 찾아놓은 장소들을 Google 지도에 하나씩 저장했다. 아들은 생각보다 훨씬 꼼꼼했다. 식당뿐 아니라 열차 시간까지 정리해놓았다.

“이것도 네가 알아본 거야?”

“응.”

나는 괜히 일정표를 한 번 더 내려다봤다. 아들이 어느새 이런 것까지 혼자 찾아볼 만큼 컸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행 일정을 보면 볼수록 설레기보다 걱정이 먼저 밀려왔다.

‘아들과 둘이 가는 해외여행.’

‘아내 없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뭔가 하나 빠뜨리지는 않을까.’

‘공항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여행을 떠나는 사람의 머릿속이라고 하기에는 걱정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난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진 제안PM 업무의 피로도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머리는 아직 제안룸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웠는데도 회의에서 오갔던 말들과 장표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새벽 5시 50분.

눈을 떴다.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집을 나서 아들과 공항버스를 탔다. 둘뿐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나는 2년 6개월 전에 아들과 했던 약속을 이제야 지키러 가는 길이다'


아마 그때까지도 나는 이번 여행을 내가 아들에게 해주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빠인 내가 계획하고, 내가 아들을 데리고 다니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해결하는 여행. 아빠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은 시작부터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공항에는 일찍 도착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아들과 라운지에 들어갔다. 카드 할인을 받아 둘이 약 6만4천 원 가량을 냈다. 입장할 때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은 여기서 제대로 먹자.”

속으로는 조금 더 현실적인 계산을 했다.

‘6만4천 원 냈으니 최대한 많이 먹어야지.’

접시를 들고 몇 번 음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사람의 배는 지불한 금액에 비례해 늘어나지 않았다. 몇 접시 먹었더니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6만4천 원어치는 먹은 거겠지?”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별것 아닌 대화였는데 좋았다.

회사에서도 나는 하루 종일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그런데 회사에서의 대화에는 대부분 목적이 있다. 회의를 해야 하고,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고, 누군가에게 일을 요청해야 한다. 결론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들과 나누는 수다에는 결론이 필요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웃어도 됐다.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한참 이어가도 됐다. 그래서 좋았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비행기는 요나고를 향해 날았다. 그리고 우린 요나고공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입국심사에서 생겼다. 나는 Visit Japan Web 입국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일본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니 그런 절차까지는 필요 없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안일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 준비에 있어서는 여전히 허점투성이였다. 항상 아내가 일정을 챙겨준 여행에 익숙해져 있었던 탓도 컸다.

‘아내가 있었으면 이런 건 다 준비했을 텐데.’

그 생각이 들자 괜히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이걸 왜 안 했지?’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파파고를 켜고 입국심사 주변의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그런데 당시 내가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음성인식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았다. 말을 하면 엉뚱하게 인식되는 경우가 있었고 번역된 문장도 내가 말하려던 뜻과 달라질 때가 있었다. 직접 문장을 입력하면 그나마 괜찮았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결국 GPT에도 상황을 텍스트로 입력해 도움을 받았다. AI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내가 앞쪽 좌석을 잡아 미리 체크인까지 해준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에서 꽤 빨리 내렸다. 하지만 나의 어리바리함 때문에 일찍 내린 것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현장에서 입국 절차를 처리하느라 휴대전화를 들고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결국 맨 마지막으로 공항을 빠져나왔다.

여행 초보가 된 기분이었다. 한때 기자로 해외출장도 다녀봤고, 지금도 회사에서는 훨씬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가는데 작은 지방공항 입국장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쩔쩔매고 있었다.

아들은 옆에서 말없이 기다렸다. 그 모습이 조금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그래도 결국 빠져나왔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여행에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해결하면 된다. 회사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찾고, 책임을 따지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만들어야 한다. 여행에서는 해결했다면 그냥 다음으로 가면 됐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편했다.

다음 미션은 현금이었다.

여행 전에 하나은행 영업지점에 들러 하나 체크카드인 트래블로그 카드를 만들고, 하나머니 앱에서 엔화를 환전해두었다. 웬만하면 카드로 결제할 생각이었지만 작은 도시에서는 현금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현금을 인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일본 ATM에서 현금을 찾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GPT의 도움을 받아 공항에 있는 세븐일레븐 Seven Bank ATM 앞으로 갔다.

카드를 넣었다. 다행히 화면에 한국어가 나왔다. 그런데도 묘하게 긴장됐다. 출금을 누르고 금액을 입력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또 멈칫했다. 원화로 계산해야 하는지, 엔화로 계산해야 하는지 순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번에도 휴대전화를 꺼냈다. GPT에 물었다. 엔화로 진행하면 됐다. 잠시 뒤 ATM 안에서 기계음이 들렸다.

그리고 지폐가 나왔다. 1만5,000엔. 별것 아닌 일이었다. 그런데 지폐를 손에 쥐는 순간 묘하게 안심됐다.


‘됐다.’


이제야 정말 일본에 도착한 것 같았다.

공항을 나와 JR 요나고공항역으로 향했다. 사카이미나토까지는 JR 사카이선을 타면 됐다. 표를 사기 위해 발권기 앞에 섰다. 화면을 보니 반갑게도 한국어 메뉴가 있었다. 목적지를 선택하고 돈을 넣었다. 잠시 뒤 작은 종이 승차권이 나왔다. 190엔. 표 한 장을 샀을 뿐인데 또 하나의 미션을 통과한 기분이었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잠시 뒤 열차 한 대가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도 타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저거 타는 거 아닌가?’

나는 열차와 휴대전화를 번갈아 바라봤다. 또다시 난 당황하기 시작했다. 얼굴 표정이 나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그때 아들이 나를 툭툭 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빠, 우리가 탈 건 4시 3분 차야.”

“그래?”

“응. 내가 적어놨어.”


아들이 만들어놓은 일정표를 확인했다. 정확히 적혀 있었다. 잠시 뒤 우리가 기다리던 열차가 들어왔고 둘이 올라탔다.

열차 문이 닫혔다. 사카이선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차에 올라서도 나는 여전히 조금 불안했다. Google 지도를 켜고 열차가 움직이는 방향과 목적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아들 말이 맞았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왜 이렇게 바보가 됐지.’

한국을 출발할 때만 해도 나는 이번 여행을 내가 아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들이 나에게 어느 기차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창밖 풍경은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일본과 조금 달랐다. 도쿄도 아니었고 오사카도 아니었다. 높은 빌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전광판도 없었다. 화려한 상점도,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도 없었다. 열차는 낮은 건물과 조용한 동네 사이를 천천히 지나갔다.

작은 역에 멈췄다. 몇 사람이 내렸다. 다시 움직였다.

또 작은 역에 멈췄다. 사카이미나토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더 한적해졌다. 오래된 건물이 보였고 문을 닫은 가게도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일본 여행의 풍경과 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린 속도가 낯설어서 좋았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했다. 하루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느낄 틈조차 없었다. 회의가 끝나면 다음 회의가 있었고, 장표 하나를 끝내면 수정해야 할 장표가 생겼다. 누군가의 메시지에 답하면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계속 다음으로 넘어가야 했다.

그런 나를 태운 열차가 지금은 작은 역마다 꼬박꼬박 멈춰 서고 있었다. 누가 재촉하지도 않았다. 기차는 자신의 속도로 움직였다.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천천히 가도 도착하는구나.’


사카이미나토역에 도착했다. 열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바로 앞에 우리가 찾던 호텔이 보였다. 온야도 노노 사카이미나토.

“아들, 저기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

드디어 왔다.

2년 6개월 전 아들과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온천이 있고, 목욕을 마치면 아이스크림을 먹고, 밤에는 라멘을 먹을 수 있는 곳. 오사카의 그 호텔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약속이라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에게 붙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첫 저녁은 야키니쿠였다. YAKINIKU ICHI-SAKAIMINATO.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들이 찾아놓은 집이었다.

메뉴판을 펼쳤다. 그런데 또 하나의 작은 난관이 생겼다. 시오탄. 카이노미. 와규 하라미. 우치하라미. 알수 없는 일본어들로 가득한 메뉴판이 내 눈을 장님으로 만들었다.

나는 메뉴판 사진을 찍어 GPT에 올렸다.

“여기서 뭘 먹으면 좋을까?”


이번 여행에서 GPT는 어느새 통역사이자 여행 가이드가 되어 있었다. 아들과 화면을 같이 보면서 하나씩 메뉴를 살폈다.

먼저 시오탄. 소 혀에 소금 간을 해서 구워 먹는 메뉴였다. 한국에서도 우설을 먹어본 적은 있지만 일본 야키니쿠집에서는 대표적인 첫 주문 메뉴처럼 보였다. 아들은 이름부터 신기해했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추천 3종 모둠도 주문했다.

그중 하나는 카이노미였다. 갈비 주변에서 나오는 부위로, 지방과 살코기가 적당히 섞여 부드러운 편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와규 하라미. 하라미는 횡격막 쪽 부위로 분류되는데, 일반적인 살코기와는 조금 다른 진한 육향과 부드러운 식감 때문에 야키니쿠집에서 인기가 많은 부위라고 했다.

나머지 한 부위는 메뉴판을 보면서 이름을 ‘훈도시’라고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라 아들과 한참 화면을 들여다봤다. 정확히 어느 부위인지보다도, 그날은 잘 모르는 고기를 하나씩 알아가며 골라 먹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그리고 따로 우치하라미도 주문했다. 하라미 계열 가운데 안쪽 부위로 소개된 메뉴였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내 앞에는 아사히 생맥주가 놓였고 아들 앞에는 콜라가 놓였다.

불판 위에 고기를 올렸다.

치익.

고기가 익기 시작했다. 시오탄부터 먹었다. 아들이 한 점을 입에 넣더니 곧바로 말했다.

“아빠, 난 이게 제일 맛있어.”

아들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도 첫날 먹었던 시오탄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일부러 아들이 시오탄을 다 먹은 뒤에 시오탄이 소의 혀라는 것을 알려줬다. 처음부터 알려주면 놀라서 먹지 않을 것 같아서다. 아들은 자신이 먹은 게 우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조금 놀라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맛있었다고 일관성을 유지했다.

나는 반대로 우치하라미가 가장 좋았다. 당시 치아교정을 하고 있어서 질긴 고기를 씹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우치하라미는 유난히 부드럽게 씹혔다. 고기의 맛뿐 아니라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해진 나이가 된 셈이다.

이처럼 같은 불판에서 같은 고기를 먹는데도 아들과 내가 가장 맛있다고 고른 부위는 달랐다. 재미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시간을 보내도 우리는 서로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아들과 나에게 이번 여행도 아마 그렇게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본 요나고를 기억할 것이고, 아들은 아들이 본 요나고를 기억할 것이다.

몇 년 뒤 같은 여행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전혀 다른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산은 7,854엔이었다.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다가 그냥 휴대전화를 껐다.

비싸다는 생각보다 ‘잘 먹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호텔로 돌아와 사우나실이 있는 12층으로 올라갔다. 아들과 나는 몸을 씼고 실내 온탕에 몸을 담갔다. 한 달 동안 몸에 들러붙어 있던 피로가 뜨거운 물속으로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노천탕으로 나갔다. 탕에서 몸을 충분히 데운 뒤 밖으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 맨몸을 감쌌다. 좋았다.

단순히 시원해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편안했다. 회사에서의 직급도 없었다. 제안PM이라는 역할도 없었다. 작성해야 할 장표도 없었다. 답해야 할 메시지도 없었다.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냥 바람을 맞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그 순간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 노천탕에서는 맨몸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몸에 걸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나에게 붙어 있던 수많은 이름과 역할도 잠시 벗어놓을 수 있는 것 같았다.

직장인.

아빠.

남편.

제안PM.

누군가의 상사이자 누군가의 부하.

그 모든 이름을 잠시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그냥 ‘나’만 남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예전에는 온천에 가도 그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좋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야 노천탕의 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바람이 한 번 더 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객실로 돌아왔다. 밤에 무료로 요나키소바(일종의 라멘)이 제공되는 밤 10시까지 약 2시간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조금만 쉬자.”


침대에 누웠다. 그다음 기억이 없다.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아들과 다시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온야도 노노에서 밤마다 제공하는 요나키소바를 먹기 위해서였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이름에는 소바가 들어가지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메밀국수와는 조금 다르다. 담백한 간장 국물에 면을 말아주는 가벼운 일본식 라멘에 가깝다. 첫 그릇을 금세 비웠다.

2년 6개월 전 오사카의 온야도 노노에서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 그릇을 먹고 바로 하나를 더 받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한 그릇을 먹고 잠시 기다렸다. 사람들이 빠지고 나서 다시 줄을 섰다. 결국 두 그릇을 먹었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 라멘을 먹었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2년 6개월 동안 미뤄졌던 약속의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날 아침 오전 6시 30분쯤. 방을 나와 복도로 나갔다. 창밖을 보는 순간 시간을 잘못 본 줄 알았다. 햇빛이 너무 강했다. 아직 아침인데 마치 한낮처럼 세상이 환했다.

전날 저녁에도 비슷했다. 네온사인도 많지 않고 화려한 간판도 별로 없는 도시인데 이상하리만큼 밝았다. 서울에서는 도시의 빛이 너무 많아 오히려 하늘을 의식하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반대였다. 도시가 만들어낸 불빛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들과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가격은 1인 3,000엔. 중학생이 된 아들도 성인 요금이었다. 둘이 6,000엔.

처음에는 생각했다.

‘조식이 꽤 비싸네.’


그런데 음식을 둘러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신선한 해산물이 있었고 일본식 반찬들이 다양하게 놓여 있었다. 접시를 들고 아들과 음식을 담았다. 먹다 보니 둘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아빠.”

“응?”

“여기 초고추장 있으면 진짜 맛있겠다.”


나도 마침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둘이 웃었다. 일본까지 와서 신선한 해산물을 앞에 두고 초고추장을 찾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였다.

ⓒ광화문덕 요나고 여행 사카이미나토

식사를 마치고 다시 온천으로 올라갔다. 아침부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그리고 노천탕 밖 의자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조용했다. 사람의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울에서 너무 익숙해서 존재하는 줄조차 모르고 살았던 수많은 인공적인 소리가 이곳에는 없었다. 바람이 지나갔다.

그때 문득 내 삶이 자동차처럼 느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계속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가능하면 가장 빠른 차선으로. 더 빨리. 더 잘.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계속 액셀을 밟았다. 속도를 줄이면 뒤처질 것 같았다. 멈추면 다시 달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엔진이 얼마나 뜨거워졌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렸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액셀을 밟을 이유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됐다. 누구도 나에게 빨리 하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에 무언가를 반드시 만들어내지 않아도 됐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간은 흘렀다. 그런데 그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는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

조용한 곳에서 아침을 맞고, 글을 쓰고, 걷고, 다시 글을 쓰는 삶.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쓰고 싶어서 글을 쓰는 삶.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는 삶.


‘나는 그동안 얼마나 시끄러운 곳에서 살아왔던 것일까.’

그동안 내 주변에는 늘 소리가 있었다.

회의실에서 오가는 목소리. 메신저 알림. 휴대전화 진동. 지하철 안내방송. 자동차 소리. 누군가의 요청.

그리고 어쩌면 그 모든 소리보다 더 시끄러웠던 것은,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나를 재촉하던 내 안의 목소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오히려 그 소음 아래에 묻혀 있던 또 다른 내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 천천히 살아도 되지 않을까.’

눈을 떴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이 조용한 도시에서 아들과 보내는 다음 하루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요나고에서의 두 번째 하루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