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계속 내게 결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건 누가 하는 겁니까?”
회의실 한쪽에서 누군가 물었다. 나는 대답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일을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인지,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장표를 수정해달라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일정이 바뀌었다고 했다. 누군가는 내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이미 자기 방식대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 무언가를 정리하려 했다.
“이건 제가 하고, 이건 저쪽에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또 다른 일이 생겼다. 해야 할 일과 시켜야 할 일이 뒤엉켰다. 내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인지,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일인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하는지, 조금 기다려도 되는지.
점점 분간이 되지 않았다.
회의실이었던 공간은 어느 순간 제안룸처럼 변해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봤다.
‘PM이 결정해야죠.’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그런 표정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지금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답답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눈을 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잠에서 깨어났는데 몇 초 동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회사인가.’
‘집인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낯선 천장. 낯선 방. 그리고 옆에는 아들이 누워 있었다. 그제야 기억이 돌아왔다.
‘아, 나 지금 요나고에 와 있지.’
긴 숨이 빠져나왔다. 몸은 일본까지 왔는데 머리는 아직 회사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행을 온 지 사흘째였다. 그런데 나는 꿈속에서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아들을 깨웠다.
“아들, 사우나 가자.”
예상대로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래도 나는 아침부터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까지 왔는데 하루 종일 호텔에서 쉬기만 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경치라도 봐야 하고,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고, 뭔가 하나쯤은 보고 돌아와야 할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행에서도 계속 성과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온천으로 올라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아들과 오늘 무엇을 할지 이야기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오늘 요나고 시내로 좀 나갔다 올까?”
아들이 말했다.
“그냥 여기 주변에서 기념품샵이나 보면서 쉬면 안 돼?”
조금 의외였다.
“너 어제 좀 더 멀리 가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아들이 되물었다.
“그거 아빠가 말한 거 아니야?”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분명 아들이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들에게는 그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거 얘기해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내가 말했다.
“그럼 내려가서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아들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럼 여기 노천탕에는 왜 온 거야?”
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유난히 날카롭게 들렸다. 기분이 조금 상했다. 말 한마디에 감정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다.
탈의실에서 천천히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발랐다. 그사이 아들이 뭔가를 말하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대충 들었다.
‘먼저 나가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겠지.’
조금 뒤 나도 목욕탕을 나왔다. 그런데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방으로 먼저 내려갔나 싶었다. 그러다 생각났다. 호텔 엘리베이터는 객실 카드키가 있어야 객실층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카드키는 내게 있었다.
‘어딘가 있겠지.’
사우나 입구에서 기다렸다.
5분.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10분.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서서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하나 올라왔다.
‘내 시간이 아깝다.’
휴가를 와서도 나는 10분이 아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 있어야 하나 싶었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또 회사 생각이 났다.
'관리자와 리더는 무엇이 다른가'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였다.
'사람들을 일일이 통제하는 것이 리딩일까 아니면 방향만 제시한 뒤 알아서 하도록 두는 것이 리딩일까'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고, 어디부터 맡겨야 하는가'
그러다 문득 조금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회사 사람들을 어떻게 리드할지 고민하면서 아들 한 명과 하루 보내는 것도 이렇게 어려워하고 있네.’
아들과 회사 조직을 같은 대상으로 놓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와 함께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면에서는 묘하게 닮아 있었다.
오늘 무엇을 할지에 대한 큰 방향 정도는 내가 먼저 제시할 수도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번 가보자.”
그런 다음 물으면 됐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들의 의견을 듣고 둘이 결정하면 됐다. 그런데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일이 너무 바빴다는 이유로 여행 준비의 상당 부분을 아들에게 넘겼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몇 시 기차를 탈지. 처음에는 아들이 알아서 계획하는 것이 자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자율’이라는 좋은 말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맡긴 것과 내버려둔 것은 다르다. 회사에서도 방향이 없으면 사람들이 각자의 판단대로 움직인다.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여행은 제안 프로젝트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할 필요도 없고, 계획대로 움직일 이유도 없다.
그래도 적어도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정도는 같이 이야기했어야 했다. 그때 아들이 나타났다.
“어디 갔다 왔어?”
“마사지.”
“마사지?”
15분짜리 마사지 의자를 이용하고 왔다고 했다. 나는 10분 동안 창가에 서서 인생과 리더십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편안하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허탈해서 웃음이 났다.
'놓지 못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나였다'
전날 받은 메시지들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휴가 중인데도 휴대전화를 붙잡게 했던 연락들.
처음에는 상대가 내 휴가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애초에 내가 경계를 분명하게 그었다면 어땠을까.’
“여기까지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이 부분부터는 별도의 작업입니다.”
“지금은 휴가 중이니 돌아가서 확인하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잘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는지, 혹은 누군가가 나를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두려웠던 것인지 모르겠다.
선을 제대로 긋지 못한 결과가 여행지까지 따라왔다. 그러고 보면 일을 놓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다. 일을 놓았을 때 누군가에게 나쁜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놓지 못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최근 아들과 함께 보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화면 속 인물을 보며 여러 번 생각했다.
‘왜 저렇게까지 하지? 저걸 왜 못 놓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화면이 창문이 아니라 거울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답답해하며 보고 있는데 그 안에서 자꾸 내 모습이 보였다.
'나도 바뀌어야 한다'
아들과 객실로 돌아왔다. 전날 슈퍼마켓에서 사놓은 샌드위치와 햄버거, 사과주스를 꺼내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무엇을 할지 다시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아들이 먼저 말했다.
“이온몰 가서 구경하고 요시노야에서 밥 먹으면 안 돼?”
원래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들이 찾아놓았던 일정이었다.
“그러자.”
아침에는 내가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날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이끈다고 해서 언제나 내가 답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다. 좋은 의견이 나오면 받아들이고, 그 선택이 잘 굴러가도록 돕는 것도 하나의 역할일 것이다.
우리는 사카이미나토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요나고행 열차에 올랐다. 목적지까지는 50분 남짓.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사카이미나토역은 낯선 종착역이었다. 표를 제대로 산 것인지, 어느 열차를 타야 하는지조차 불안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익숙했다.
'그래서였을까'
익숙해진 동네를 떠나 기차를 타고 50분을 이동한다는 것만으로 다시 작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요나고역에 도착해 도로를 지나 머지 않은 곳에 있는 이온몰을 둘러봤다. 그러다 아들이 프라모델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프라모델 사고 싶어.”
아들은 자동차 프라모델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무 모델이나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능하면 도색까지 되어 있어 조립만 하면 되는 자동차 모델을 찾고 싶어 했다.
검색해보니 에디온 요나고 본점에 프라모델 코너가 있었다.
가보기로 했다. 먼저 요시노야에서 밥을 먹었다. 소고기덮밥.

식사를 마친 뒤 이동 방법을 찾아봤다.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걸어갈까'
지도에 찍힌 거리는 약 1.8km. 걸으면 20여 분 정도였다. 택시를 타면 편했지만 돈이 들었다. 나는 아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걸어갈까?”
아들의 표정이 즉시 말했다.
‘왜?’
그래서 바로 조건을 붙였다.
“택시비 아낀 만큼 프라모델 살 때 보태줄게.”
협상은 즉시 타결됐다.
“가자.”
현금보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길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평범한 거리를 지나는데 어느 순간 간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SNACK. LOUNGE. PUB.
작은 건물마다 밤에나 불이 들어올 것 같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낮이라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Google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여기 맞는데?’
알고 보니 요나고의 유흥가 일대였다. 프라모델을 사러 가는 아버지와 중학생 아들이 낮의 유흥가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상황이 조금 우스웠다. 관광지만 찾아다녔다면 일부러 이런 길을 걸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걸어서 이동하다 보니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골목이 낮에는 놀랄 만큼 조용했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오히려 건물과 오래된 간판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전날 사카이미나토에서 느꼈던 고요와 또 다른 종류의 고요였다.
조금 더 걸었을 때 아들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아빠! 돈키호테!”

MEGA 돈키호테였다. 조금 전까지 걸어서 가는 것을 귀찮아하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돈키호테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장난감 코너로 갔다. 프라모델도 있었다. 아들은 박스를 하나씩 살펴봤다.
한참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다른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2nd STREET가 있었다. 일본의 중고 리유스숍. 옷이나 가방, 이런저런 중고 물건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곳이었다.
“저기도 잠깐 볼까?”
아들은 단호했다.
“아빠, 에디온 가자.”
결국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다시 걸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부모와 아이의 관심사가 이렇게 정확히 갈린다. 나는 명품 옷과 가방이 궁금했고, 아들은 자동차 프라모델이 급했다.
드디어 에디온에 도착했다.
아들은 프라모델 코너에 들어가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박스를 들었다 놨다 했다. 차종을 보고, 크기를 보고, 도색이 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들이 원했던 완성도색 제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직접 조립하고 색도 칠해야 하는 일반적인 프라모델이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자동차 두 대를 골랐다.
스즈키 짐니 JA11. 그리고 스바루 임프레자 스포츠 왜건 WRX.
아들은 도료도 같이 사고 싶어 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했다. 프라모델용 스프레이나 접착제 같은 제품은 성분에 따라 항공기 반입이 제한될 수 있어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했다.
“색칠하는 건 한국 가서 사자.”
아들은 조금 아쉬워했지만 받아들였다. 일본에 와서 프라모델을 사고, 도색 여부를 따지고, 급기야 비행기 위험물까지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상자를 품에 안은 아들의 표정은 밝았다. 그것으로 됐다. 아침에는 여행을 어떻게 ‘리드’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니 내가 할 일은 생각보다 단순해 보였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같이 걸어주는 것.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조금 보태주는 것. 어쩌면 부모가 하는 일도 늘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쇼핑을 마치고 고토역으로 향했다. 작은 역이었다. 사카이미나토 방향을 확인하고 표를 샀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처럼 긴장되지는 않았다. 이제 사카이선이 조금 익숙해졌다.
행선지에 쓰인 ‘境港(사카이미나토)’이라는 글자를 확인하면 됐다. 열차가 들어왔다. 아들과 올라탔다.
프라모델 상자는 아들의 손에 꼭 들려 있었다. 아침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막막했다. 그런데 결국 꽤 멀리까지 다녀왔다.
요나고 시내를 걸었고, 아들이 먹고 싶어하는 소고기덮밥을 먹었고, 거리를 걷다보니 유흥가도 지나갔고, 돈키호테에 빨려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고, 에디온까지 걸어가 자동차 두 대를 샀다.
계획대로 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래서 더 여행다운 하루였다.
전날 카레집에서 아들과 나눈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아빠랑 오롯이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깨졌어.”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휴대전화를 최대한 멀리하려고 했다. Google 지도를 확인할 때를 제외하면 가급적 손에 들지 않았다. 일과 관련된 메시지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아들이 그렇게 원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나자 이상한 것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휴대전화였다. 이동할 때면 게임을 했다. 숙소에 돌아오면 유튜브를 봤다.내가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깨어나도 아들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두었다. 중학교 1학년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휴대전화를 많이 쓰면서 아들에게 뭐라고 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옆에서 함께 영상을 보다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생겼다.
누군가를 놀리고, 일부러 민망하게 만들고, 그 사람이 당황하는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콘텐츠들이었다. 아들은 웃었다. 나는 잘 웃기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불편했다. 한두 개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영상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걸 계속 봐도 괜찮을까.’
그 생각이 마음속에서 점점 커졌다. 결국 참았던 말이 나왔다.
“너는 왜 계속 이런 걸 보는 거야?”
목소리가 조금 컸다. 아들도 당황했을 것이다. 여행을 와서 느닷없이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됐으니.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화를 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유튜브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라고. 다만 자기 시간을 무엇에 쓰는지는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간은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 네가 보내는 한 시간이 결국 네 삶의 한 시간이라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어떤 사람들의 말을 반복해서 듣느냐가 조금씩 생각을 만든다고. 특히 누군가를 조롱하고 낮추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드는 것을 계속 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는지 한 번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무언가를 소비하는 데만 시간을 쓰기보다 직접 만들어보는 재미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글을 쓰듯, 아들이 좋아하는 자동차를 만들고, 무엇인가를 설계하고, 머릿속에 있던 것을 실제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경험 같은 것들.
사실 아들은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아이가 화면 속 남이 만든 것을 계속 넘겨보는 데만 시간을 쓰는 모습이 나는 조금 아까웠던 것 같다.
짧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잔소리는 늘 계획보다 길어진다.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느새 한 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내가 또 일장연설을 해버렸구나.’
대화가 끝나자 객실의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아들과 나 사이에 얇은 벽 하나가 세워진 기분이었다. 아들은 말이 줄었다. 나도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서먹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조금 아이러니했다.
전날에는 아들이 내게 휴대전화를 내려놓아달라고 했다.
“아빠랑 오롯이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깨졌어.”
그래서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들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아들이 바라보고 있는 화면이 보였다.
나는 아들에게 화면에서 조금 눈을 떼고 다른 세상도 보라고 말했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서로에게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좀 봐줘.’
아들은 일 대신 자신을 봐달라고 했다. 나는 화면 대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봐달라고 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어쩌면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보기도 전에 자기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었다는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참 어렵다. 회사에서 리더가 되는 것만큼이나.
어디까지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지.
어디부터 스스로 선택하게 두어야 하는지.
언제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 어려운 것은,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아침 꿈속에서 내가 그토록 혼란스러워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맡겨야 할 일.
개입해야 할 순간과 기다려야 할 순간.
회사에서 풀지 못한 문제가 아들과 여행을 와서도 형태만 바꾼 채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도 있었다. 회사의 프로젝트에는 제출일이 있고 평가가 있다. 아들과의 관계에는 그런 최종 제출일이 없다. 오늘 잘못하면 내일 다시 말할 수 있고, 오늘 마음이 상하면 다음 날 다시 손을 내밀 수도 있다. 아마 부모와 자식은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 서로를 배우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밤이 깊었다. 다음 날이면 여행의 네 번째 날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이곳에서 하루를 온전히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모레가 되면 짐을 싸고 체크아웃한 뒤 공항으로 가야 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사카이미나토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느 기차를 타야 할지 몰랐고, 작은 종이표 한 장 사는 것도 긴장됐다. 이제는 달랐다. 역도 익숙했다. 슈퍼마켓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았다. 편의점보다 마트에서 콜라를 사는 편이 싸다는 것도 알았다.
밤 10시가 되면 어디로 내려가야 요나키소바를 먹을 수 있는지도 알았다.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행지가 조금씩 생활공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어떤 장소가 익숙해질 즈음이면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날 밤 아들과 나는 조금 서먹했다.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내가 너무 많이 이야기했나.’
‘조금 덜 말했어도 됐던 것은 아닐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래도 아직 하루가 남아 있었다. 한 번 더 온천에 들어갈 수 있고, 한 번 더 자전거를 탈 수도 있고, 한 번 더 아들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 잘못한 것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해보면 된다.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나는 아들을 잘 데리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흘을 보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아들을 ‘잘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서로의 속도를 알아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떤 날에는 내가 앞서고, 어떤 날에는 아들이 길을 찾고, 어떤 순간에는 내가 기다리고, 또 어떤 순간에는 아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
아직도 어디까지가 적당한지는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틀릴 것이다. 그래도 다음 날은 다시 온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서먹해진 아버지와 아들에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온전한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