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퇴근길 광화문의 바람이 며칠 전과 달라졌다. 한낮에는 아직 햇볕이 제법 따갑지만, 해가 건물 뒤로 기울기 시작하면 금세 공기가 서늘해진다.

여름이 끝나는 데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흔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구나'

처음 마흔이 되었을 때만 해도 쉰이라는 숫자는 꽤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마흔하나가 되고, 마흔둘이 되고, 그렇게 한 해씩 건너갈 때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쉰이라는 숫자가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멀리 산등성이 너머에 숨어 있던 것이 어느새 내가 걷고 있는 길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그렇게 내 나이 마흔일곱의 9월. 곧 마흔여덟이 되고, 이제는 정말 쉰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서른을 앞두고 있을 때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뛰었다. 직장을 옮기는 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도 두려움보다 기대가 컸다.

잘못되면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믿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고 잃을 것도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마흔을 지나 쉰을 바라보는 지금은 다르다. 이제 나는 제법 많은 것을 손에 들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력이 있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 있다. 회사 안에는 함께 애환을 나눈 동료와 선후배가 있고,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내가 만들어온 자리도 있다.

그리고 퇴근하면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삶. 무엇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참 오래 애썼다.

'그래서일까'

요즘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할 때면 설렘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

'굳이?'

마음 한편에서 누군가 묻는다.

'지금도 괜찮잖아.'

틀린 말이 아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인 시기인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 그토록 갖고 싶었던 것들을 이제 어느 정도는 손에 쥐고 있으니까.

그래서 때로는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하는 일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기업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뉴스를 켜면 좋은 이야기보다 걱정스러운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그럴 때면 다시 생각한다.

'이런 시기에 매월 안정적으로 월급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그런데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꾸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나는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참 성가신 목소리다. 애써 못 들은 척하면 어느 날 또 찾아온다.

'나는 여기까지인가.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고 싶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쌓아온 경험들이 여전히 세상에 쓸모 있다는 것도 증명해보고 싶다'

결국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이번 달 티빙에서 선보인 오리지널 드라마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를 보며 나도 그런 상상을 해봤다.

'어느 날 갑자기 로또 1등에 당첨돼 내 통장에 13억 원이 찍힌다면,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아마 내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물론 처음 며칠은 늦잠을 잘 것이다. 여행도 다녀올 것이다. 알람을 끄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아침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느냐며 호들갑을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면 나는 분명 또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을 것 같다.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궁리하거나,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돈이 생겼다고 해서 '나로 살아가고 싶은 욕망'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람에게는 생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욕망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뒤에도 우리는 인정받고 싶어 하고, 성장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나다운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 한다.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며 이야기했던 '자아실현'도 결국 그런 마음과 닿아 있지 않을까.

내가 가진 가능성을 어디까지 펼쳐볼 수 있는지, 내 삶을 통해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 마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면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요즘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생각한다. 사람에게 손이 두 개뿐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두 손에 많은 것을 들고 살아간다. 한 손에는 안정이 들려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책임이 들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 손에 직장이, 다른 손에는 가족이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손에 생계가 있고, 다른 손에는 오랜 세월 어렵게 쌓아 올린 자리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그 두 손에 든 것들을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배워왔다. 균형을 잡는 법. 흔들리지 않는 법.

가능하면 오래 유지하는 법.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난다. 정말 갖고 싶은 것.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가능성. 그것을 바라보다 무심코 손을 뻗는다. 그러다 깨닫는다.

'아, 손이 없구나.'

이미 두 손이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상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두 손에 든 것은 절대로 놓지 않은 채, 새로운 것까지 어떻게든 잡아보려 한다. 팔꿈치로 받치고,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가슴으로 밀어붙인다. 이를 악물고 생각한다.

'조금만 버티면 돼.'

회사도 잘 다니고 싶다. 가족에게도 소홀하고 싶지 않다. 건강도 지키고 싶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잃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새로운 공부도 하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또 다른 기회도 잡고 싶다.

나는 모두를 원한다.

어쩌면 마흔 이후의 욕심은 그렇게 생기는지도 모르겠다. 갖고 싶은 것이 많아서라기보다, 이제는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하지만 두 손에 이미 가득 든 채 세 번째 것을 억지로 들고 있으면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위태로워진다. 손목이 아파지고, 팔에 힘이 빠진다. 작은 충격 하나에도 들고 있던 것들이 흔들린다. 하나를 더 가지려다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까지 모두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먼저 물어야 하는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이 참 어렵다.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것은 희망에 관한 일이지만,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은 상실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쌓아온 것을 내려놓는 일. 익숙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일. 매달 정확한 날짜에 들어오던 숫자를 포기하는 일. 내 명함에서 익숙한 회사 이름이 사라지는 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물론 내려놓는 것이 반드시 그렇게 거창한 것일 필요는 없다. 주말의 시간을 조금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늦잠을 포기하는 일일 수도 있고, 사람을 만나는 횟수를 줄이는 일일 수도 있다. 혹은 예전처럼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새로운 삶은 거창한 퇴사나 극적인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고 조용한 내려놓음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삶은 퍼즐과 닮아 있다.

오랫동안 살아온 삶에는 나름의 질서가 있다. 아침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출근하고, 누구와 점심을 먹고, 몇 시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지. 한 주의 일정도, 한 달의 지출도,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는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나의 삶'이라는 퍼즐을 맞춰왔다.

그런데 새로운 조각 하나가 들어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 조각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조각들을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 어떤 조각은 옆으로 옮겨야 하고, 어떤 조각은 잠시 빼두어야 하며, 어떤 조각은 아예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삶의 변화에는 언제나 약간의 어수선함이 따라오는 것 같다. 한동안 빈자리가 생긴다. 익숙했던 그림이 흐트러진다.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서른의 나는 그런 혼란을 모험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마흔 후반이 된 나는 같은 것을 리스크라고 부른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같은 일을 다른 단어로 바라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가능성을 먼저 보았다.

이제는 잃을 것을 먼저 계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안의 가능성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새로운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더 두려운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채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쉰이 되고, 쉰다섯이 되고, 어느 날 예순을 바라보면서 그때 왜 한 번쯤 손을 뻗어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그때는 아직 할 수 있었는데.'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망설인다. 통장의 숫자를 보고, 가족을 보고, 회사에서 쌓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안다.

그래서 아마 나는 한동안 이 질문들 앞에 서 있을 것이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새로 들 것인가.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뀐다. 퇴근길 사람들이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다. 나도 발을 내딛다가 문득 양손을 내려다본다. 한 손에는 가방이 들려 있고, 다른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다. 두 손이 가득 차 있다.

웃음이 난다. 인간에게 손이 두 개뿐인 데에는 어쩌면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것. 새로운 것을 잡으려면 때로는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려놓는다는 것이 반드시 잃어버린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것은, 다음 것을 들기 위해 손을 비우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것.

이제 나는 쉰을 준비한다. 기대보다 두려움이 조금 더 크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작은 기대가 남아 있다.

내 삶에도 다시 한번 모멘텀이 찾아올까.

내가 아직 만나지 못한 내가 남아 있을까.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다운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다행인지 모른다. 아직 내가 내 인생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언젠가 정말 새로운 무언가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때는 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손에 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그리고 두렵더라도, 천천히, 한 손을 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