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적게는 1만 원, 많게는 10만 원어치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찾는 동안 정유사들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운전자가 우리 주유소를 찾게 만들 수 있을까'
그 고민은 이제 리터당 몇 원의 가격 차이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제는 얼마나 간단한가.
포인트는 얼마나 쉽게 쌓고 쓸 수 있는가.
앱을 열어야 하는가.
차 안에서 결제까지 끝낼 수 있는가.
그리고 다음번 주유 때도 다시 같은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들 수 있는가.
주유라는 몇 분 남짓한 행위 안에서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9월의 끝자락. 한낮에는 아직 여름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창문을 조금 내리면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고, 길가의 은행나무는 초록과 노랑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계절을 갈아입는다.
퇴근길 도로는 오늘도 붐빈다. 앞차의 붉은 브레이크등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신호는 유난히 더디게 바뀌는 것 같고, 자동차들은 몇 미터씩 움직였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때 계기판 한쪽에 익숙한 노란 불빛이 들어온다. 주유 경고등이다.
‘아, 기름 넣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에서 주변 주유소를 검색한다. 휘발유 가격이 주르륵 뜬다. 리터당 몇십 원씩 차이가 난다. 조금 더 달리면 저렴한 곳도 있다.
잠깐 망설인다.
‘얼마나 아낀다고.’
결국 가까운 S-OIL 주유소로 방향을 튼다.
나는 '피파'도 아니고, '에스파'도 아니다. '양파'도 '쪽파'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에쓰오일파’다.
물론 처음부터 S-OIL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 근처에서 고급휘발유 가격이 가장 저렴한 곳이 S-OIL이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을 자주 찾게 됐다. 그러다 보니 멤버십 포인트도 S-OIL에 쌓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주유소를 바꿔 다니며 포인트를 흩어놓느니 한 브랜드에 몰아 적립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십 플라스틱 카드도 두 장 만들었다. 한 장은 내 차에, 한 장은 아내 차에 넣어뒀다. 주유 할인용으로 쓰는 신한카드 딥오일카드의 할인 대상 주유소도 S-OIL로 설정해뒀다.
생각해보면 시작은 단순했다. 집 근처에서 고급휘발유가 가장 저렴했기 때문. 그런데 가격 때문에 시작한 선택 위에 포인트가 쌓이고, 카드 할인까지 S-OIL에 맞춰놓으면서 다른 주유소로 갈 이유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는 주유가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S-OIL부터 찾는다. 처음에는 가격이었다. 그다음은 포인트였고, 그 위에 할인 혜택이 얹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익숙함이 됐다. 어쩌면 브랜드 충성도라는 것도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S-OIL만 간다’고 결심한 적은 없지만, 실제 행동은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다.

하얀 조명 아래 주유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뒤편 세차장에서는 강한 물줄기가 차체를 두드리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차에서 내려 주유구를 열고 주유기 앞에 선다. 화면에는 ‘시작’과 ‘빠른주유’ 버튼이 큼직하게 떠 있다. 매번 ‘빠른주유’ 쪽으로 시선이 가지만 나는 늘 하던 대로 ‘시작’을 누른다. 고급휘발유를 고르고, 6만 원을 입력하고, 멤버십을 적립한다.
나는 아직 이 과정이 좋다. 화면을 하나씩 눌러가며 선택하는 재미가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것도 나름의 ‘손맛’이다. 어쩌면 아직 아날로그 감성을 완전히 놓지 못한 세대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결제를 마치고 빨간 노즐을 들어 올린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감각도 좋다. 모든 것을 미리 등록해두고 한 번에 끝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이렇게 하나씩 내 손으로 하는 방식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빠른주유’ 버튼을 볼 때마다 속으로 말한다.
‘아직은 아니야.’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나만의 손맛을 즐긴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정유사들은 왜 이 몇 번의 손동작을 없애려고 이렇게까지 애쓰는 걸까.’
순간 조금 기뻤다. 또 하나의 브런치 소재를 발견했다는 것에 뿌듯함이 느껴져서다.
집에 돌아가면 제대로 한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유사들은 왜 주유 과정의 편의성을 높이려 하는지, 실제로 어떤 서비스를 내놓고 있는지, 그리고 소비자들은 정말 그것을 편리하다고 느끼는지 말이다.
찾아보니 S-OIL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S-OIL은 MY S-OIL 앱에서 ‘빠른주유’를 제공한다. GS칼텍스는 에너지플러스의 ‘바로주유’를 운영하고, HD현대오일뱅크도 카앤 앱에 ‘스마트주유’ 기능을 두고 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방향은 비슷하다.
'주유기 앞에서 운전자가 해야 하는 일을 줄이는 것'
S-OIL의 빠른주유는 카드와 포인트, 쿠폰을 앱에 등록해두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유종과 결제금액도 미리 설정할 수 있다. GS칼텍스의 바로주유 역시 결제와 적립, 할인 등의 과정을 간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분명 편리하다. 그런데도 머릿속에는 한 가지 질문이 남았다.
정말 소비자에게 간편주유는 매력적인 서비스일까.
그래서 숫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현금 41.3%에서 15.9%로, 결제가 달라졌다
주유 앱을 보기 전에 먼저 사람들이 돈을 내는 방식부터 살펴봤다.
한국은행의 ‘2024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일상적인 결제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건수 기준 2013년 41.3%에서 2024년 15.9%로 낮아졌다. 2024년에는 신용카드가 46.2%, 체크카드가 16.4%, 모바일카드가 12.9%를 차지했다.

물론 이 자료는 주유소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가 아니다. 따라서 현금 사용이 줄어든 만큼 주유 앱 결제가 늘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건 데이터가 말하지 않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큰 변화는 읽을 수 있다. 우리가 돈을 내는 방식 자체가 지난 10여 년 동안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출발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내 스마트폰 대중화가 있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된 이후 이른바 ‘아이폰 쇼크’가 일어났다. 스마트폰은 더 이상 일부 얼리어답터의 기기가 아니었다. 휴대전화는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 기기에서 인터넷에 접속하고, 앱을 설치하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안의 컴퓨터’로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 연구에서도 아이폰 출시 이후 국내 스마트폰 이용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2009년 말 1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이후 가파르게 늘었다. 2010년에는 스마트폰이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핵심 제품군으로 자리 잡으며 ‘스마트폰 시대’가 본격화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휴대전화 기종 하나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길을 찾고, 음식을 주문하고, 기차표를 사고, 은행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돈을 내는 행위까지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왔다.
현금을 꺼내던 사람이 카드를 꺼내기 시작했고, 다시 카드를 꺼내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기 시작했다. 결제의 도구가 바뀌면서 소비자가 기대하는 편리함의 기준도 함께 높아졌다.
몇 번의 터치를 줄여주는 것.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것.
포인트와 쿠폰이 알아서 적용되는 것.
이런 경험이 커피 주문이나 쇼핑, 교통, 금융에서 익숙해지면 주유소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정유사들이 주유 과정을 앱 안으로 가져오려는 움직임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단순히 ‘우리도 앱 하나 만들자’는 경쟁이라기보다, 아이폰 이후 15년 넘게 누적돼온 소비자의 모바일 경험에 주유도 편입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 결제에 익숙해졌다는 것과 특정 정유사의 앱을 굳이 설치해 사용하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소비자는 간편한 결제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유사 앱을 원하는 것일까'
그래서 정유사 앱의 숫자를 들여다봤다.
200만보다 더 흥미로운 숫자, 25만
GS칼텍스는 2024년 1월 에너지플러스 앱 가입자가 108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25만 명이라고 밝혔다. 당시 바로주유 이용 가능 주유소는 1,366곳이었다. 이후 가입자는 계속 늘어 2025년 중 200만 명을 넘어섰다. GS칼텍스는 2026년 2월 10일 보도 자료를 통해 2025년 에너지플러스 앱 가입자 200만 명 돌파 사실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S-OIL도 2025년 5월 MY S-OIL 앱 누적 다운로드가 200만 건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숫자만 보면 두 회사 모두 ‘200만’이다.
하지만 같은 200만이 아니다. GS칼텍스는 가입자 수이고, S-OIL은 누적 다운로드 수다.
집계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앞섰다고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오히려 내 눈에는 GS칼텍스가 공개했던 다른 두 숫자가 더 흥미로웠다.
가입자 108만 명.
월간 활성 이용자 25만 명.
단순히 나누면 약 23%다.
물론 이를 앱 결제율이나 재이용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Monthly Active Users)는 일정 기간, 보통 한 달 동안 해당 앱을 한 번 이상 이용한 사람의 수를 뜻할 뿐, 실제 주유 결제를 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은 남긴다.
앱을 가입한 사람과 실제로 계속 사용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
우리 스마트폰을 한번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된다.
필요할 것 같아서 설치했다가 한두 번 사용하고 잊어버린 앱이 얼마나 많은가.
기업 입장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은 앱을 설치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다음번에도 다시 앱을 여는 사람.
주유 앱 경쟁도 결국 그 지점으로 향한다.
다운로드 경쟁이 아니라 습관 경쟁이다.
첫 이용자 7,000원, 기존 이용자 2,000원
이런 관점에서 보면 S-OIL이 진행했던 한 프로모션이 흥미롭다. S-OIL은 2025년 4월 21일부터 5월 9일까지 빠른주유로 4만 원 이상 결제한 고객을 대상으로 쿠폰을 제공했다.
최초 이용자에게는 7,000원.
기존 이용자에게는 2,000원이었다.

나는 이 차이에 눈길이 갔다.
왜 이미 빠른주유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처음 사용하는 사람에게 더 큰 혜택을 줬을까.
소비자 행동의 관점에서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새로운 앱을 처음 사용하려면 해야 할 일이 생긴다.
앱을 설치한다. 가입한다. 카드를 등록한다. 사용 방법을 익힌다.
기존의 카드 결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든다. 일종의 전환비용이다.
그렇다면 최초 이용자에게 더 큰 혜택을 제공하는 것은 그 비용을 넘어 첫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유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경쟁은 그다음부터다.
7,000원 때문에 한번 써본 사람이 쿠폰이 사라진 뒤에도 다시 빠른주유를 사용할까.
할인이 없어도 편해서 계속 사용할까.
그 순간부터 앱 자체의 경쟁력이 드러난다.
나는 반복 사용의 조건을 세 가지로 나눠봤다.
쓸 수 있는가. 덜 번거로운가. 다시 쓸 이유가 있는가.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용 가능성 × 편리함 × 반복할 이유'다.
자주 가는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없다면 앱은 습관이 되기 어렵다.
기존 카드보다 복잡하다면 다음에는 카드를 꺼낼 것이다.
반대로 혜택이든 편리함이든 다시 사용할 이유가 있다면 두 번째 이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이것은 실제 데이터를 통해 추정한 통계모형이 아니다. 소비자의 반복 사용을 이해하기 위해 세운 분석적 틀이다. 실제 영향의 크기는 이용자 행동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SK에너지는 왜 앱을 떠났을까
여기까지 보면 정유사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앱을 만들고 고객을 그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 회사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
SK에너지다. SK에너지는 2020년 ‘머핀’을 선보이며 디지털 주유 서비스를 운영했지만 2025년 7월 머핀 앱 기반 서비스를 종료하고 멤버십을 OK캐쉬백 포인트 기반 체계로 전환했다.
나는 이 대목이 흥미롭다. GS칼텍스와 S-OIL, HD현대오일뱅크가 고객을 자사의 디지털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쪽이라면 SK에너지는 더 넓은 포인트 생태계와 연결되는 길을 택했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전략의 차이는 비교할 수 있다.
한쪽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앱으로 들어오세요.’
다른 한쪽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이미 사용하는 생태계에서 만나겠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정유사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은 자기 앱일까. 아니면, 고객의 습관일까.
1,000원 할인보다 귀찮음이 더 비쌀 때
가령 어떤 주유 앱을 사용하면 1,000원을 할인받는다고 해보자.
앱을 연다. 로그인한다. 카드를 등록한다. 쿠폰을 찾는다.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인증을 시도한다.
문제는 이 때 뒤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냥 카드 꽂고 말지.’
소비자는 혜택만 계산하지 않는다. 그 혜택을 얻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도 함께 계산한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체감가치 = 얻는 혜택 - 사용 과정에서 느끼는 비용'이다.
1,000원을 아끼더라도 그 1,000원을 얻는 과정이 너무 귀찮다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할인은 크지 않아도 거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앱을 설치하게 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가장 적은 노력으로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까.’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주유 앱 경쟁의 승패는 여기에서 갈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진짜 경쟁자는 주유소 밖에 있다
더 들여다보니 경쟁 상대가 정유사만인 것도 아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국내 간편지급 서비스의 하루 평균 이용금액은 1조2,264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6.8% 증가했다.

물론 주유소만의 거래액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일상 곳곳에서 결제 절차가 짧아지는 경험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배경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제 경험은 이미 자동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차량 내 간편결제 서비스인 ‘카페이(CarPay)’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23년 12월 공개한 자료에서는 당시 주유소와 전기차 충전소, 주차장 등을 포함한 제휴 가맹점이 전국 약 4,000곳이었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결제의 출발점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주유기 앞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다음에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런데 자동차 화면에서 주유소를 찾고 결제까지 한다면 운전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화면은 정유사 앱이 아닐 수도 있다.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일 수도 있거나, 평소 이용하는 간편결제 서비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쟁의 성격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어느 정유사가 더 좋은 앱을 만드는가’의 경쟁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운전자가 주유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 어떤 화면을 가장 먼저 만나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된다.
가장 편리한 앱은 어쩌면 열 필요가 없는 앱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면 전기차 충전이 떠오른다. 전기차 충전에서는 차량과 충전기, 계약과 결제 체계가 호환되는 환경에서 케이블을 연결하면 인증과 과금을 자동화하는 ‘Plug & Charge’ 같은 방식도 등장했다.

핵심은 단순하다.
사람이 해야 하는 행동을 줄이는 것.
생각해보면 결제의 변화는 계속 이 방향으로 움직여왔다.
현금을 꺼냈다 → 카드를 꺼냈다 → 스마트폰을 꺼냈다 →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폰조차 꺼내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면 가장 편리한 주유 서비스는 역설적으로 앱을 열 필요조차 없는 서비스일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연료가 부족한 시점을 알고, 조건에 맞는 주유소를 안내하고, 도착하면 인증하고, 결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경험.
물론 아직 모든 차량에서 가능한 현실은 아니다. 차량 데이터와 결제 데이터가 연결될수록 개인정보 보호와 이용자의 통제권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럼에도 방향은 흥미롭다.
결제 경쟁의 끝은 결제를 더 화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제라는 행위 자체를 거의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승자는 누구일까
다시 처음의 주유소로 돌아가본다.
나는 ‘빠른주유’ 버튼을 보고도 여전히 ‘시작’을 누른다. 고급휘발유를 고르고, 금액을 입력하고, 멤버십을 적립하고, 카드를 넣고, 빨간 노즐을 들어 올린다. 나는 아직 그 손맛이 좋다.
그런데 데이터를 따라가다 보니 처음과는 조금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빠른주유를 쓰느냐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정유사 입장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다음번에도 내가 같은 방식을 별다른 고민 없이 다시 선택하게 만들 수 있느냐였다.
지금 공개된 데이터만으로 네 정유사의 승자를 가리기는 어렵다.
GS칼텍스의 200만은 가입자 수이고, S-OIL의 200만은 누적 다운로드 수다. 정유사별 실제 앱 결제율과 재이용률, 앱 사용 전후의 주유소 방문 빈도 같은 핵심 지표도 충분히 공개돼 있지 않아서다.
하지만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조금 보인다. 기능이 가장 많은 곳이 아닐 수도 있다. 쿠폰을 가장 많이 주는 곳도 아닐 수 있다. 가입자 숫자가 가장 큰 곳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승자는, 운전자가 주유가 필요한 바로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리고, 가장 적은 수고로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든 곳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부터 그렇다.
나는 S-OIL 주유소를 찾는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서 고급휘발유 가격이 가장 저렴해서였다. 그러다 멤버십 카드를 만들었고, 포인트가 쌓였고, 주유 할인카드의 할인 대상도 S-OIL로 맞췄다. 몇 번의 선택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굳이 비교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또 간다.

이쯤되니, 처음에 농담처럼 썼던 ‘나는 에쓰오일파다’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어쩌면 기업들이 만들고 싶은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고객이 더 이상 선택이라고 느끼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선택.
그런데 여기에는 아직 하나의 간극이 있다. 나는 S-OIL이라는 브랜드에는 익숙해졌지만, 아직 ‘빠른주유’에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유사가 넘어야 할 다음 문턱은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고객이 다시 같은 브랜드를 찾게 만드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이 설계한 결제 경험까지 습관으로 만드는 것. 지금 주유기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도 결국 그 싸움이다.
주유를 마치고 차에 올라탄다. 조금 전까지 켜져 있던 주유 경고등은 사라졌고, 연료 게이지는 올라가 있다. 주유소를 빠져나와 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좌측 방향지시등을 켠다. 차창을 조금 내리자 가을바람이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 환하게 빛나던 주유소의 조명이 사이드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진다.
문득 오래전 주유소에서 오가던 말이 떠오른다.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가득이요.”
참 단순한 대화였다. 하지만 그 짧은 말 안에는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필요한 일을 해주고, 돌아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과정이 있었다. 이제 그 역할의 일부는 기계가 한다. 앱이 한다. 앞으로는 자동차가 더 많은 일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더 편해진다면 기꺼이 사용할 것이다.
다만 정유기업들이 한 가지는 기억했으면 한다. 기업은 고객에게 기억되고 싶어 하지만, 고객은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서비스를 원할 수 있다는 것. 어떤 앱을 켜야 하는지. 어느 카드를 꺼내야 하는지. 어떤 쿠폰을 찾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경험.
어쩌면 주유가 필요한 순간 시작되는 이 전쟁의 진짜 승자는, 그 역설을 가장 먼저 이해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다시 도로 위로 들어선다. 휘발유는 채워졌다. 나는 다음번 주유가 언제일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지를 향해 다시 달린다.
오래전 주유소의 마지막 인사가 떠오른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