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쯤으로 기억한다. 서른 살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언론사에 취재기자로 들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기자가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던 시절이었다. 뚜벅이인 나를 위해 부모님이 할부로 차를 사주셨다.

르노삼성자동차의 SM3 CE. 내 생애 첫 차였다. CE는 클래식 에디션(Classic Edition)의 약자였다. 당시 2세대 뉴SM3 출시를 앞두고 기존 1세대 SM3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던 모델이었다. 좋게 말하면 특별판매였고, 조금 솔직하게 표현하면 세대교체를 앞둔 재고정리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1천만 원대 초반의 가격으로 준중형 세단을 탈 수 있었다. 당시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서른 살의 기자에게는 꽤 훌륭한 차였다.

나는 그 차가 정말 좋았다. 첫 차라서 그랬을 것이다. 주말이면 세차를 했고, 어디 작은 흠집이라도 생길까 주차할 때면 몇 번이고 차에서 내렸다 다시 탔다.

그리고 조금 유별난 행동도 하나 했다. 고급휘발유를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긴다. 1천만 원대 초반의 준중형 세단에 리터당 2천 원이 넘는 고급휘발유를 넣고 다녔으니 말이다. 당시 집 근처 주유소에는 고급휘발유가 있었고, 나는 아무 고민 없이 빨간 주유건을 들었다.

물론 주로 출퇴근용이어서 주행거리가 많지 않아 유지비 부담이 없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컸던 건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가진 것을 오래, 잘 쓰고 싶다는 마음. 부모님이 사주신 첫 차였으니 더 그랬다.

돌이켜보면 내가 고급휘발유를 넣는 습관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흘렀다. 기자직을 내려놓고 잠시 무직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직장에 들어왔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김 부장처럼 조금은 대책 없이 사표를 던졌던 것 같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세상은 당연히 나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믿었던 건지. 기자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나니 그제야 내가 얼마나 그 이름에 기대어 살아왔는지도 알게 됐다.

막막했고, 답답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참 안타까웠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갈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됐다. 경력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고, 내가 나를 높이 평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렇게 한동안 흔들리고 나서야 이전보다 조금은 성숙한 사람이 되어 지금의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아이도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제는 조금 더 큰 차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 혼자 출퇴근하기 위한 차가 아니라, 이제는 세 식구가 함께 움직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첫 차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를 위한 차였다면, 두 번째 차는 어느새 가족을 위한 차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고른 차가 토요타 캠리였다. 내가 산 차는 7.5세대 캠리 XLE였다. 당시 내가 비교했던 차는 그랜저와 K7, 그리고 막 출시된 제네시스 G70이었다. 그랜저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상위 트림에 옵션을 넣다 보면 가격이 어느새 4천만 원대로 올라갔다. K7은 당시 내 눈에는 디자인이 조금 가볍게 느껴졌다. G70은 기대가 컸다. 내장재도 좋았고 디자인도 멋졌다. 그런데 막상 앉아보니 실내 공간이 내가 기대했던 패밀리카와는 조금 달랐다. 옵션을 넣으면 가격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캠리였다. 가격과 공간, 내구성 그리고 유지비를 놓고 계산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에도 차를 사기 전 인터넷을 정말 많이 뒤졌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캠리의 비교 대상으로 쏘나타가 자주 언급됐다. 그런데 실제로 오래 타보니 내 느낌은 조금 달랐다. 적어도 내가 탔던 캠리는 쏘나타보다는 그랜저 쪽에 가까웠다. 차체가 주는 여유도 그랬고, 승차감도 그랬다. 장거리에서 느껴지는 안정감도 그랬다.

가격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는 중형차와 주로 비교됐지만 오너의 감각으로 보면 내게 캠리는 '가격 좋은 중형차'보다는 가성비 좋은 준대형 세단에 가까웠다.

그리고 캠리에도 고급휘발유를 넣었다. 처음부터 계속 넣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일반휘발유를 넣고 다니다 엔진 소음이 평소보다 거칠게 느껴져 서비스센터에 갔다. 정비 과정에서 고급유를 한번 넣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넣어봤다. 놀랍게도 적어도 내 귀에는 엔진 소리가 조금 부드럽게 느껴졌다. 과학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플라시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다시 고급휘발유를 넣기 시작했다.

첫 차 때는 부모님이 사주신 차를 아끼는 마음이었다면, 캠리를 탈 때는 차의 컨디션을 조금이라도 더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됐다. 고급휘발유는 그렇게 내 자동차 생활의 습관이 되어갔다.

그리고 마흔이 됐다. 나는 나에게 차 한 대를 선물했다. 벤츠 E250. 정확히 말하면 마흔이라는 숫자를 기념하기 위해 산 차라기보다, 내 삶의 여러 고비를 지나온 나에게 처음으로 허락한 조금 큰 선물에 가까웠다.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기자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뒤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과정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좋았던 순간도 많았지만, 숨이 막히도록 힘겨웠던 시간도 있었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김 부장처럼 공황장애를 경험할 만큼 버거웠던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니 어느새 나는 마흔이라는 숫자 앞에 서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한 번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차를 타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성공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여기까지 온 나에게, ‘그래도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벤츠 E250은 그렇게 내게 왔다.

벤츠 E250 익스클루시브. 사실 취등록세까지 생각하면 내게 결코 가벼운 가격의 차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오래 고민했고, 차를 받은 날에는 한동안 주차장에 서서 차를 바라봤다. 그 차가 성공의 증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게는 이런 의미에 가까웠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살았다. 그동안 참 잘 살아남았다.’

E250 익스클루시브는 어쩌면 마흔의 내가 서른의 나에게 보내는, 조금 늦은 선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벤츠를 타면서 고급휘발유는 더 이상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게 됐다. 매뉴얼에는 옥탄가 RON 95 이상의 휘발유가 권장돼 있었고, 이왕이면 내가 선택한 차가 요구하는 연료를 제대로 넣어주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조금 재미있다. 첫 차였던 SM3부터 캠리, 그리고 벤츠 E250까지. 차는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나는 줄곧 고급휘발유를 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사주신 첫 차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캠리를 탈 때는 엔진 컨디션을 가능하면 좋은 상태로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벤츠를 타면서부터는 차가 가진 성능을 제대로 쓰려면 그에 맞는 연료를 넣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고집은 어느새 내 자동차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물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굳이 고급휘발유를 넣고 다닌다고 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기름값이 비싼 시대에는 더 그렇다.

굳이 더 비싼 기름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다. 경제성만 놓고 보면 고급휘발유가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자동차가 고급유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가능하면 내가 선택한 차에 맞는 연료를 넣으려고 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한 가지를 믿는 편이다.

가격에는 대체로 이유가 있다. 물론 비싸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고, 싸다고 해서 반드시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싸면서도 최고급이고,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는 식의 말은 쉽게 믿지 않는다. 가격이 낮다면 낮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높은 가격에도 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가격표 자체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왜 그런 가격이 매겨졌는지를 먼저 보려고 한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기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사람도 그렇다. 겉으로 보이는 숫자보다 그 안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벤츠를 타며 계속 고급휘발유를 넣다 보니 어느 순간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겼다.

'고급휘발유를 넣고, 나는 이 연료를 얼마나 잘 쓸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운전할 때마다 이전의 나와 경쟁하기 시작했다. 속도 경쟁이 아니다. 연비 경쟁이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을 앞두면 조금 설렌다. 쭉 뻗은 고속도로 위에서 반자율주행 기능을 켜고, 어떻게 하면 지난번보다 조금 더 좋은 연비로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생각한다.

평소에는 연료탱크를 굳이 가득 채우지 않는다. 보통 60% 정도만 주유해놓는다. 차량이 무거워지면 연비효율성이 떨어질 것 같아서다.

하지만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날만큼은 다르다. 서울을 빠져나가기 전 항상 단골 주유소인 태릉 S-Oil 태릉솔밭주유소에 들른다.

너무 오래 가속페달을 밟았으니, 당분간은 천천히 달려도 괜찮을 것 같다
태릉 S-Oil 태릉솔밭주유소

고급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주행거리와 계기판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건다.

그 순간부터 나만의 게임이 시작된다. 마치 게임에 로그인한 것처럼. 운전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일이 아니라 작은 전략 게임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 게임에서 신경 쓰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오직 연비다.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같은 양의 연료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느냐가 내 나름의 승부가 된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나 자신에게 작은 미션 하나를 던진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난번의 나보다 조금 더 잘 달릴 수 있을까.’

2024년 6월, 아들과 경상남도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이번 여행의 원래 목적은 아들과 함께하는 근현대사 현장 학습이었다. 양산 통도사를 둘러보고 평산책방을 찾은 뒤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아들과 함께 역사 속 인물과 장소를 직접 보고, 그곳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물론 내게 이번 여행에서 더욱 흥미로운 콘셉트는 역시 ‘연비 여행’이었다.

이날도 늘 들르던 에스오일 태릉솔밭주유소 고급휘발유 주유기 앞에 차를 대고 연료탱크를 가득 채웠다. 60.27리터. 결제금액은 11만4,325원. 당시 S-OIL 고급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97원이었다.

당시 여정은 서울에서 경남을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전체 대략 1천km여서 과연 내가 한번 주유로 왕복 여행을 완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반우려반이 있었다.

당연히 욕심이 났다. 이번 여행 동안 중간에 한 번도 주유하지 않고 집까지 돌아와 보고 싶었다는 의욕이 솟구쳤다랄까. 평소에도 연비 숫자를 보며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장거리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내 나름의 목표를 하나 더 세웠다. 그동안의 내 최고 연비 기록을 넘어보자고 말이다.

결론적으로 정리해보면, 당시 내가 E250을 운전하면서 기록한 최고 연비는 16.1km/L였다. 첫 번째 구간은 서울에서 세종까지 약 156km. 나는 제한속도를 지키면서 가능한 한 도로의 흐름에 맞춰 달렸다.

2차선 도로에서는 2차선으로, 3차선 도로에서는 3차선으로 달렸다. 연비를 챙기겠다고 뒤에서 오는 차량의 흐름을 막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천천히 달린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느린 차량 뒤에서 속도를 계속 줄였다 높이는 것보다 상황에 따라 부드럽게 추월하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편이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156km를 주행하고 계기판을 확인했다. 연비는 17.9km/L.

내 최고 기록이었던 16.1km/L 연비가 깨졌다.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순간적으로 18.2km/L까지 올라갔다. 별것 아닌 숫자인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마치 게임에서 이전 최고 점수를 깬 것 같았다.

다음 날 세종에서 양산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기록이 또 올라갔다. 263km를 달린 결과 평균연비 18.2km/L.

고속도로에서는 한때 18.5km/L까지 찍혔다. 또 최고 기록이었다.

너무 오래 가속페달을 밟았으니, 당분간은 천천히 달려도 괜찮을 것 같다
ⓒ광화문덕

그때부터 여행의 재미가 하나 더 생겼다. 아들과 여행지를 찾아가는 즐거움과 함께 계기판의 숫자가 어디까지 올라가는지를 지켜보는 재미였다. 그 여행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반자율주행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반자율주행 기능을 켜놓으면 차가 앞차와의 거리를 계산하고 스스로 속도를 조절한다. 그런데 계속 지켜보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개입하지 않을 때 연비가 더 좋았다.

차에 맡기고 부드럽게 달리면 연비 숫자가 조금씩 올라가는데, 내가 조급하게 가속페달을 밟거나 불필요하게 속도를 높이면 숫자가 금세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났다.

‘나보다 네가 운전을 더 잘하는구나.’

AI와 모빌리티를 공부해온 사람이라 그런지 그 장면이 단순히 자동차 기능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더 일정하게 속도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가속과 감속을 줄일 수 있다면, 적어도 효율이라는 측면에서는 사람이 계속 개입하는 것보다 기계에 맡기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운전대에서 손을 놓지 않고 주변을 살피고, 뒤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차량이 있으면 비켜주고, 앞에서 지나치게 느린 차량이 흐름을 막으면 안전하게 차선을 바꾸는 일. 차가 최대한 효율적으로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이 게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그래서 가끔 나는 차를 ‘운전한다’기보다 차를 경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모든 것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좋은 리더가 모든 일을 직접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광화문덕
ⓒ광화문덕

물론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안전이다. 여행 마지막 날 봉하마을로 향할 때는 비가 많이 내렸다. 초행길이었고 도로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때는 연비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18km/L가 나오든 16km/L가 나오든 중요하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그 결과 봉하마을을 거쳐 다시 세종으로 올라오는 구간에서는 연비가 16.1km/L까지 내려갔다. 그래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숫자를 높이는 것이 게임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게임보다 중요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해야 게임도 계속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연비 숫자에 몰입하다 보니 오히려 더 분명해졌다. 효율을 추구하는 것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총 주행거리 1,018km.

장거리 평균연비 17.1km/L.

고속도로 구간 최고 연비 18.5km/L.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연료계였다. 1천km가 넘는 거리를 달렸는데도 연료가 9% 남아 있었다. 계기판에는 앞으로 118km를 더 달릴 수 있다고 표시돼 있었다.

ⓒ광화문덕
ⓒ광화문덕

출발할 때 60.27리터를 넣었으니 결국 한 번의 주유로 서울에서 경남까지 내려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꽤 뿌듯했다.

누군가에게 17.1km/L라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2박 3일 동안 내가 어떻게 운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성적표였다.

급하게 달리지 않았고, 가능하면 흐름을 미리 읽었다. 차에 맡길 수 있는 것은 맡겼고, 필요할 때만 내가 개입했다. 비가 오면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고 안전을 선택했다. 그 모든 선택의 결과가 계기판 위 하나의 숫자로 남았다.

그날 여행 이후 나는 연비 운전에 조금 더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기름값을 조금이라도 아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비 운전은 절약 이상의 것이 됐다.

나 자신과 경쟁하는 작은 놀이가 됐다. 어제보다 조금 나은 운전을 하고, 지난 여행보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달리고, 차가 가진 성능을 억지로 끌어내기보다 주어진 연료를 최대한 낭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 뜻밖의 사실 하나를 배웠다.

멀리 가기 위해 반드시 빨리 갈 필요는 없다는 것.

오히려 빨리 가겠다는 조급함을 내려놓을수록 더 멀리 갈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사실 이 글은 처음에는 고급휘발유를 넣는 나의 오래된 습관에 대해 한번 써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연비라는 숫자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그 숫자가 자동차 이야기가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최근 한 달 동안 제안PM으로 살아낸 시간이 너무도 혹독하고, 지독하고, 외로웠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고, 내가 직접 해결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일의 경계가 계속 흐려졌다. 어떻게든 잘해내고 싶은 마음에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았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가진 에너지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른 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도 연비가 있다면 어떨까.'

서른 살의 나는 빨리 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먼저 좋은 기사를 쓰고 싶었고, 더 인정받고 싶었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고 싶었다. 내 앞에 느린 사람이 있으면 답답했고, 기회가 보이면 어떻게든 먼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마치 가속페달을 계속 밟고 있는 사람처럼 살았다.

그때는 몰랐다. 계속 가속한다고 해서 반드시 멀리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마흔을 지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때로는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야 한다. 앞의 흐름을 보고 미리 속도를 줄여야 할 때도 있고, 내가 아무리 빨리 가고 싶어도 기다려야 하는 순간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에너지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일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늘 전력질주할 수는 없다.

서른의 나는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의 나는 내게 남아 있는 에너지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에도 급가속과 급제동이 참 많았다. 기자가 되고 싶어 앞만 보고 달렸고, 어느 순간에는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와서는 다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 있는 힘껏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러다 몸과 마음이 먼저 경고등을 켰다. 그제야 알았다. 자동차도 무리해서 몰면 고장이 나듯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오래 가고 싶다면 잘 달리는 것만큼 잘 쉬는 것도 필요하고, 빨리 가는 것만큼 언제 속도를 줄여야 하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연비 운전을 하면서 또 하나 배운 것이 있다.

브레이크를 덜 밟으려면 앞을 멀리 봐야 한다는 것.

바로 앞차만 보고 운전하면 계속 가속하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하지만 두세 대 앞의 흐름까지 바라보면 조금 다르다. 저 멀리 브레이크등이 들어오는 순간 미리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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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가속도, 급제동도 줄어든다.

'삶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을까.'

눈앞의 일 하나에만 매달려 살면 매 순간이 급하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가는 것 같으면 조급해지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급하게 방향을 틀게 된다.

하지만 조금 멀리 보면 당장 한두 걸음 늦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요즘은 한 가지를 더 배우는 중이다.

모든 순간에 내가 직접 운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반자율주행에 맡겼을 때 오히려 연비가 좋아졌던 것처럼, 모든 일을 내가 직접 해야만 잘되는 것도 아니다.

이건 최근 회사에서 제안PM을 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부분이다.

내가 직접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모두 밟으며 끌고 가는 것이 리더의 역할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믿고 맡기고, 각자가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제야 배워가고 있는 리더의 역할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직 잘하지 못한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대신 해버릴 때도 있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운전대를 꽉 움켜쥐고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에너지는 바닥나 있고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에 쓸 힘은 남아 있지 않다.

연비로 치면 참 좋지 않은 운전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필요하지 않을 때는 가속하지 않는 것.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내려놓는 것.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에게 맡기는 것.

눈앞의 문제 하나보다 전체 흐름을 조금 더 멀리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목적지까지 모두가 무사히 가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생각해보면 마흔 이후의 삶은 최고속도를 겨루는 경주보다 연비를 고민하는 여행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누가 먼저 가느냐보다, 주어진 시간과 체력과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지는 시기.

젊었을 때처럼 무작정 가속페달을 밟을 수는 없지만, 대신 어디에서 힘을 쓰고 어디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는 나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마흔 이후에야 비로소 배우게 되는 삶의 운전법인지도 모르겠다.

제안룸에서 살다시피 한 지난 한 달 동안, 나의 ‘이클이’는 주차장에 거의 방치돼 있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출근하면 제안룸으로 들어갔고, 퇴근할 때면 이미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주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2026년의 여름은 내가 제대로 느껴볼 틈도 없이 제안룸 안에서 흘러가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그 방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바람이 달라져 있었다. 여름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을 닮은 바람이 소매 안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조금 허무했다. 그리고 멍하니 되뇌였다.

'나의 2026년 여름은 어디로 간 걸까.'

물론 답은 안다. 나의 여름은 LED등이 켜진 제안룸 안에 있었다. 수없이 고쳐 쓴 장표와 회의, 전화, 사람들과의 감정 속에서 그렇게 한 계절이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이클이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싶었다. 오늘은 왠지 한동안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했던 차의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그냥 어디론가 달리고 싶은 날이다.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맞으면서, 조급하지 않게, 누구보다 먼저 도착하려 애쓰지도 않으면서, 그저 내가 가고 싶은 만큼 달려보고 싶다랄까....

아마 오늘 드라이브를 나갔다면, 계기판의 연비 숫자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 같다.

숫자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연료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된다.

남들보다 먼저 도착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가진 연료를 낭비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잘 가면 된다.

한 달 동안 제안룸에서 너무 오래 가속페달을 밟았으니, 당분간은 천천히 달려도 괜찮을 것 같다.

멀리 가는 사람은 언제나 빨리 달리는 사람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