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Games Showcase는 Quest와 PS VR2, PC VR 등 주요 플랫폼의 신작과 업데이트를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VR 게임 전문 온라인 발표 행사다. 2024년 출범한 뒤 여러 차례 행사를 이어오며, VR 게임 신작과 업데이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립 쇼케이스로 운영되고 있다.

8월 13일 열린 이번 쇼케이스에는 25개가 넘는 타이틀이 등장했다. 그중 눈에 띈 것은 완전히 새로운 IP만이 아니었다. 2023년 Nightdive Studios가 리메이크한 'System Shock'과 2022년 출시된 Squanch Games의 코미디 FPS 'High On Life'가 각각 공식 VR 버전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두 작품은 모두 Quest와 PC VR, PS VR2를 대상으로 개발되고 있다.
물론 기존 게임을 VR로 옮기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전에도 유명 게임의 공식 VR 버전이 출시됐고, 정식 지원이 없는 게임을 이용자가 직접 VR로 바꾸는 비공식 모드도 꾸준히 만들어졌다. 다만 이번 쇼케이스에서는 이런 VR 전환작이 별도의 실험이나 부가 콘텐츠가 아니라, 다른 신작들과 나란히 소개되는 독립적인 상용 게임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변화는 기존 게임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와 캐릭터를 새로운 플랫폼으로 가져오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VR이라는 환경에 맞춰 다시 구성한 하나의 제품으로 내놓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미 완성된 게임을 VR로 만든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작업일까. 겉으로는 기존 화면을 헤드셋에 맞추고 조작 방식을 바꾸는 정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화면 밖에서 캐릭터를 조작하던 게임과, 직접 그 세계 안에 들어가 움직이는 VR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같은 게임을 사용하더라도 무엇을 보고,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행동을 직접 수행하게 할 것인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식이 아닌, 플레이 문법의 '재설계'
'High On Life VR'은 그 차이를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준다. 원작은 1인칭 슈팅게임의 구조를 따르지만, 플레이어가 사용하는 총이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다. '개틀리안(Gatlian)'이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들이 총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말을 하고 표정을 지으며 플레이어와 대화를 나눈다.

평면 화면에서는 이들을 화면 속 무기로 바라보고 버튼을 눌러 사용한다. VR에서는 관계가 달라진다. 총이 플레이어의 손에 직접 들어오기 때문이다. Flat2VR의 게임 디렉터 에밀리 오닐은 VR 버전에서 개틀리안을 직접 들고 재장전하거나, 찌르고 잡아당기는 등 손으로 다룰 수 있도록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작에서는 버튼 하나로 처리되던 행동이 VR에서는 실제 손동작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손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무기가 그 움직임에 어떻게 반응할지, 플레이어가 어떤 순서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별도로 정해야 한다. 기존 게임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던 애니메이션과 반응도 추가된다. 이미 존재하는 무기를 가져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무기를 플레이어의 손에 쥐여주는 과정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현실에서 총을 다루는 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VR 게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동작을 세밀하게 만들수록 직접 조작한다는 감각은 커질 수 있지만, 해야 할 행동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원작의 빠른 전투 흐름이 끊길 수 있다. 오닐은 여러 단계의 손동작을 요구하는 방식과 보다 간단한 조작 사이에서 어느 정도가 실제 플레이에 적합한지를 반복해서 시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VR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동작을 가능한 많이 넣는 것이 아니다. 원작에서 버튼으로 처리되던 행동 가운데 무엇을 플레이어의 몸으로 옮길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가 원래 게임의 속도와 재미를 해치지 않도록 어디까지 단순화할 것인지를 다시 정하는 일에 가깝다.
여기에 하드웨어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원작은 PC와 콘솔을 기준으로 제작됐지만, VR 버전은 독립형 헤드셋인 Quest 3와 3S에서도 구동돼야 한다. PC나 콘솔보다 사용할 수 있는 연산 자원이 제한적인 데다, VR에서는 플레이어의 머리와 손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면서 안정적인 화면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Flat2VR 프로듀서 Alastair Burns는 규모가 크고 화면에 등장하는 요소가 많은 원작을 Quest 3에서 초당 72프레임으로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일을 중요한 기술적 과제로 꼽았다. VR에서 안정적인 프레임은 단순히 화면을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플레이어의 움직임과 화면의 반응이 어긋나거나 프레임이 크게 흔들리면 불편감이나 멀미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의 그래픽과 효과를 모두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선택은 아니다. 어떤 요소를 남기고 무엇을 줄이거나 조정해야 VR에서도 원작의 분위기와 플레이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조작뿐 아니라 게임을 보여주는 방식까지 새로운 하드웨어 환경에 맞춰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기존 게임의 세계와 캐릭터, 이야기와 레벨은 새로운 버전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VR에서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지는 별도의 문제다. VR화는 완성된 게임을 다른 기기로 옮기는 작업이라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게임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플레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작업에 가깝다.
모딩 커뮤니티에서 정식 개발사로
이처럼 기존 게임을 VR에 맞게 다시 구성하는 작업을 전문적으로 맡는 개발사도 등장하고 있다. 이번에 'High On Life VR'과 'System Shock VR'을 공개한 Flat2VR Studios가 대표적이다. 이름 그대로 평면 화면으로 만들어진 게임을 VR로 옮기는 데 특화된 곳이지만, 처음부터 회사의 형태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Flat2VR의 출발점은 기존 게임을 VR로 즐기고 싶어 하던 개발자와 모더들의 커뮤니티였다. 정식 VR 버전이 없는 게임에 이용자가 직접 VR 기능을 덧붙이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활동이 중심이었다. 게임 회사가 시장성을 판단해 제품을 만드는 방식보다, 이용자들이 먼저 “이 게임을 VR에서 해보고 싶다”는 요구를 기술적으로 구현해본 셈이다.
이런 활동이 정식 사업으로 이어진 것은 2024년 Flat2VR Studios가 출범하면서부터다. 비공식 모드는 원작자의 허가 없이 기존 게임을 수정하는 방식이어서 배포와 판매에 한계가 있다. 반면 정식 스튜디오가 되면서 Flat2VR은 IP 보유사와 직접 협력해 Quest와 PS VR2, PC VR 같은 플랫폼에서 판매할 수 있는 공식 VR 버전을 만드는 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 변화를 보여준 초기 사례가 2024년 출시된 'Trombone Champ: Unflattened'다. 원작 'Trombone Champ'에는 이미 이용자가 만든 VR 모드가 있었지만, Flat2VR Studios는 원작 개발사 Holy Wow Studios와 협력해 이를 별도의 정식 VR 게임으로 다시 만들었다. 비공식적으로 실험되던 VR 전환 방식이 원작자와의 협업을 거쳐 상용 제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드를 정식 제품으로 바꿨다는 데 있지 않다. 모딩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이 실제 VR 개발 방식으로 연결됐다는 점이다. 어떤 평면 게임이 VR과 잘 어울리는지, 기존 조작 가운데 무엇을 손동작으로 바꿔야 하는지, 원작의 재미를 유지하면서 어디까지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이미 여러 비공식 프로젝트를 통해 시험해본 사람들이 정식 개발의 주체가 된 것이다.
이번 VR Games Showcase에서 공개된 'High On Life VR'과 'System Shock VR'은 이런 흐름이 한두 작품에 그치지 않고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Flat2VR Studios는 이번 행사에서 StartEngine을 통한 투자 유치 계획도 공개했다. 이를 통해 내부 개발팀과 퍼블리싱 영역을 넓히고, 기존 게임의 VR 버전뿐 아니라 오리지널 게임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결국 흥미로운 것은 Flat2VR이라는 한 회사의 성장보다 기존 게임의 VR화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정식 VR 버전이 없는 게임을 원하는 이용자가 직접 모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경험을 가진 개발자들이 원작자와 협력하고 별도의 팀과 예산을 갖춰 하나의 상용 게임을 만드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
팬들이 먼저 시험했던 VR 플레이 방식이 정식 게임 개발의 한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
리마스터와 리메이크 다음의 자리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게임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현재는 대체로 ‘VR 버전’이나 ‘VR 포트’라는 표현이 쓰인다. 실제로 'High On Life VR'과 'System Shock VR'도 원작을 VR 환경에 맞게 옮긴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개발 과정을 생각하면 ‘포트’라는 말만으로는 변화의 범위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포팅은 한 플랫폼에서 실행되던 게임을 다른 플랫폼에서도 작동하도록 옮기는 작업을 뜻한다. 콘솔 게임을 PC로 옮기거나, 이전 세대 기기의 게임을 새로운 기기에서도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플랫폼은 달라져도 플레이어가 게임을 조작하고 경험하는 기본 방식까지 반드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리마스터와도 성격이 다르다. 리마스터는 대체로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해상도와 텍스처, 프레임레이트, 음향 같은 표현을 현대적인 환경에 맞게 개선한다. 리메이크는 변화의 폭이 더 크다. 그래픽과 시스템, 전투나 레벨 구조까지 새로 만들면서 원작 자체를 다시 구성하기도 한다.
VR 버전이 바꾸는 지점은 이들과 조금 다르다. 원작의 이야기와 캐릭터, 공간과 여러 자산을 이어받을 수 있지만, 플레이어가 그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달라진다. 화면 속 인물을 조작하던 게임이 플레이어가 직접 고개를 돌리고 손을 움직이며 행동하는 게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와 같은 사건을 사용하더라도,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플레이어가 느끼는 거리감과 행동의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기존 게임의 VR화는 단순한 기술적 변환보다는 각색에 가까운 면이 있다. 소설을 영화로 옮길 때 줄거리와 인물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어도, 글로 설명하던 장면을 배우의 움직임과 카메라, 소리로 다시 구성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엇을 전달할지는 원작에서 가져오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은 새로운 매체의 문법에 맞게 다시 정해야 한다.
VR 버전도 마찬가지다. 원작을 얼마나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와, VR이라는 환경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사이에서 계속 선택이 필요하다. 원작의 모습을 지나치게 보존하면 굳이 VR로 다시 만들 이유가 약해지고, 반대로 VR의 특성을 강조하다 원작의 플레이 감각을 크게 바꾸면 익숙한 게임을 다시 경험한다는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
그래서 'High On Life VR'이나 'System Shock VR'을 기존의 리메이크와 같은 범주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하나의 ‘VR 재해석’으로 바라보는 편이 더 적절할 수 있다. 오래된 게임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거나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미 알고 있는 게임을 다른 감각과 행동을 통해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리마스터가 게임을 다시 보여주고, 리메이크가 게임을 다시 만든다면, VR은 플레이어와 게임이 만나는 방식을 다시 쓰는 셈이다.
두 번째 경험
물론 기존 게임을 VR로 바꾸는 방식이 모든 작품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임마다 이동과 전투, 카메라의 구조가 다르고, VR 환경에서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조작이나 성능을 크게 손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완성된 게임의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과, VR 버전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럼에도 이번 VR Games Showcase에서 흥미로운 것은 기존 게임을 다시 활용하는 방식이 하나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게임을 더 높은 해상도로 되살리거나 처음부터 새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이미 익숙한 세계를 다른 감각과 행동으로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같은 장소를 다시 걷고, 같은 캐릭터를 만나고, 같은 무기를 사용하더라도 경험은 이전과 같지 않다. 화면 밖에서 바라보던 세계에 플레이어가 직접 들어가 움직이고 행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존 게임의 VR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움은 결국 새로운 이야기나 캐릭터보다, 이미 알고 있던 게임과 다시 만나는 방법에서 나온다.
VR이 되살리는 것은 오래된 게임이 아니라, 그 게임을 몸으로 처음 만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