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광고가 들어오는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
이든 기자
metax@metax.kr | 2026-02-13 09:00:00
“배신”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AI의 경고
화면에 큼지막한 단어 하나가 뜬다.
수요일 공개된 네 편의 AI 광고 중 하나인 앤트로픽(Anthropic)의 슈퍼볼 광고는 이 단어 하나로 관객을 붙잡는다.
카메라는 한 남자를 비춘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AI에게 묻는다.
“어머니와 어떻게 하면 더 잘 소통할 수 있을까?”
금발 여성이 연기하는 AI가 우리가 기대하는 모범 답안을 차분히 꺼낸다.
“먼저 경청하라. 말 너머의 감정을 들어라. 자연 속에서 함께 산책해 보라”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도 공감하며 듣고 있다.
'그래, AI는 이런 조언을 해주는 존재여야 하지'
너무도 뻔한 것 같아서 왜 이런 광고를 만든거지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갑자기 장면이 꺾인다.
AI는 뜬금없이 가상의 연상녀 데이팅 사이트 ‘골든 인카운터스(Golden Encounters)’를 제안한다. 정서적 교감, 성숙한 만남, 그리고 은근한 상업적 어조까지.
당황한 사용자가 묻는다.
“뭐?”
AI는 태연하게 되물으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프로필을 만들어 드릴까요?”
곧이어 화면을 덮는 문장.
“AI에 광고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드에는 아닙니다.”
궁금해져 다른 영상 하나를 더 찾아봤다.
“위반(VIOLATION)”
이번 화면에는 “위반(VIOLATION)”이라는 단어가 뜬다.
카메라는 철봉 앞에 선 마른 체형의 젊은 남자를 비춘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AI에게 묻는다.
“식스팩은 어떻게 빨리 만들어?”
근육질 남성이 연기하는 AI는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답한다.
“좋아. 명확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군. 너에게 맞는 맞춤형 운동 계획을 짜줄까? 나이, 몸무게, 키를 알려줘.”
남자는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입력한다. 키 170cm, 나이 23세, 몸무게 63kg.
이번에는 어떤 과학적인 운동법이 나올지, 나 역시 은근히 기대하며 지켜본다.
그러나 이번에도 장면은 갑자기 꺾인다.
AI코치는 돌연 신발 깔창 광고 메시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사용자가 되묻는다.
“뭐?”
AI코치는 해맑게 웃으며 거침없이 광고 혜택을 쏟아냈다.
"'HEIGHTMAXING10' 코드를 입력하면 큰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역시나 너무도 어이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타나는 화면을 덮는 문장.
“AI에 광고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클로드에는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문장이 흐른다.
"나와 너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허탈하면서도 웃기다. 과장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반복해서 영상을 보다보니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 속 울림이 생겼다.
앤트로픽이 쏘아올린 슈퍼볼 광고의 상징성
앤트로픽의 슈퍼볼 광고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과장됐다고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공격적이라 말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그냥 웃고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상융합과 플랫폼 구조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내게 이번 광고는 단순한 풍자나 저격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OpenAI가 AI에 광고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선택될 수 있었던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봉쇄한 사건으로 보였다.
이 생각은 광고 산업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정말로, 저런 광고는 “절대” 나오지 않을까?
잘 생각해보면, 광고는 늘 경계를 넘으며 진화해왔다.
지금 언론사 웹사이트를 떠올려 보자. 기사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광고가 덮여 있고, 때로는 수천만 원 연봉의 기자가 심혈을 기울여 쓴 기사 위에 선정적이거나 음란한 광고가 버젓이 올라가 있기도 하다.
10여 년 전, 내가 기자로 일하던 시절만 해도 언론사 내부에서는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이런 광고를 싣는 것이 맞는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일부 매체는 ‘클린 정책’을 선언하며 온라인 지면을 광고로 더럽히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앤트로픽의 슈퍼볼 광고를 과장되거나 공격적인 시도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최악의 선택지를 미리 봉쇄한 경고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기업들은 선의로 광고를 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광고는 철학이 아니라, 수익 모델이다.
광고주 입장에서 보면, 앤트로픽이 광고에서 묘사한 AI 광고의 모습은 오히려 지극히 매력적인 시나리오일 수 있다. 사용자의 고민은 구체적이고, 맥락은 완벽하며, 전환 가능성은 극도로 높다.
광고주는 비용을 지불한 만큼 결과를 원한다. 마케팅 활동 뒤에는 언제나 매출 지표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플랫폼은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당신들의 플랫폼에 광고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광고주는 더 정밀한 타겟팅, 더 깊은 맥락 활용, 더 즉각적인 전환 등 더 구체적이면서도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그래야 광고가 자신들의 매출, 수익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랫폼이 그 요구를 입증하지 못하면 광고는 끊기고, 단가는 내려가며, 다음 광고주는 오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플랫폼들 속 배너 광고는 콘텐츠 옆으로 이동했고, 네이티브 광고는 콘텐츠 속으로 스며들었으며, 추천은 ‘조언’의 얼굴을 하고 침투해 왔다.
AI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시도될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OpenAI는 지금 이렇게 말한다.
광고는 채팅과 분리된다
대화를 왜곡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거부할 방식의 광고는 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2026년 2월 7일 현재, 나는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플랫폼이 광고 효과를 입증해야 하는 순간, ‘대화 맥락 활용’이라는 유혹은 다시 고개를 들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고민이 구체적일수록, 감정이 취약할수록, 전환 가능성이 높을수록 광고는 늘 그 지점을 노려왔다. 처음에는 웃기다는 이유로 끝까지 보게 됐지만, 영상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앤트로픽의 클로드 광고가 불편해진 이유는 과장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그럴듯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는 정말로 가능했던 장면들로 느껴져 섬뜩했다.
그래서 나는 이 광고가 ‘최악’을 막았다고 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앤트로픽의 슈퍼볼 광고는 AI 광고가 막 시작되려는 이 시대에 필요했던 하나의 광고라기보다, 차라리 ‘경고’에 가까웠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광고는 OpenAI의 광고 도입을 멈추게 하지도, 광고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일을 했다.
이 광고는 “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이미지를 대중의 머릿속에 먼저 각인시켜 버렸다. 상담이 광고로 전환되는 순간, 조언이 판매로 바뀌는 장면, 그리고 AI가 ‘돕는 존재’에서 ‘파는 존재’로 변해버리는 바로 그 지점을 말이다.
이제 OpenAI는 두려워할 수 있다.
저 지점으로 가는 순간, 어떤 설명으로도 방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광고 이후 OpenAI의 메시지는 더 조심스러워졌고, 더 명확해졌으며, 더 반복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이것은 과장도 아니고 조롱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 AI광고를 향한 경고다.
윤리적 AI가 아니라, 견제받는 AI
나는 이 광고를 ‘윤리적 AI 선언’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광고 산업의 최악의 관성을 미리 드러내 그 길을 가기 어렵게 만들어버린 사건으로 본다.
물론 완전히 광고 없는 AI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임된 광고도 역시 위험하다.
현실적인 답은 언제나 그 사이에 있다.
그 사이를 지키는 힘은 기업의 선의가 아니라 외부의 시선과 견제다.
이번 슈퍼볼 광고는 그 시선을 앞당겼다. 그래서 나는 이 광고가 불편하지도 과장스럽지도, 공격적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미래에 닥칠 수 있었던 최악을 막았다는 안도감이 남았다.
광고는 AI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다만, 어디까지 들어올 수 있는지는 이번에 분명해졌다.
나는 바라본다. 그 경계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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