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공룡에서 테크 거인으로, 日NTT의 대전환과 그 함의
김하영 기자
hashe@metax.kr | 2025-05-19 09:00:00
글로벌 IT 패권 향한 재정비 시작
‘일본전신전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NTT’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IT의 전면에 서다
2025년 5월 8일, 일본 최대 통신기업 NTT는 자회사 NTT데이터그룹(이하 ‘데이터G’)의 지분 42%를 추가 매입하며 완전 자회사화를 단행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개매수(TOB)는 6월 19일까지 진행되며, 총 인수금액은 약 2조 3,700억 엔(한화 약 22조 7,7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거래다. 더불어 7월 1일부터는 40년간 유지되어 온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日本電信電話株式会社)’라는 법적 사명을 버리고, ‘NTT 주식회사’라는 글로벌 단일 브랜드 체계로 전면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NTT가 통신 중심 기업에서 글로벌 종합 IT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자, 1985년 민영화 이후 최대의 구조적 리브랜딩 시도다.
1985년 민영화 이후 일본의 통신 산업을 대표해온 NTT(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는 오랜 기간 보수적인 이미지와 안정적 수익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구글, AWS,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테크 자이언트들이 통신 인프라를 넘어 플랫폼·AI까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흐름 앞에 NTT도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25년 5월 발표된 ‘NTT데이터그룹(이하 데이터G)의 완전 자회사화’는 단순한 지배구조 개편이 아닌, NTT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려는 상징적 행보다. 통신 기업에서 종합 IT기업으로의 체질 전환, 그리고 다시 한번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겠다는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NTT의 구조 재편, 기술기업으로의 진화
'데이터G'는 원래 NTT 본체의 내부 시스템 부서에서 출발했지만, 1988년 독립 후 민간 시장에 진출하며 일본 최대의 IT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는 관공서, 지자체, 금융기관, 보험, 제조업 등 다양한 분야의 대규모 시스템 구축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일본 내에서는 후지쯔, NEC를 능가하는 IT 아웃소싱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공공 시스템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안정적 운영 능력은 독보적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또한, '데이터G'는 데이터센터 운영 및 클라우드 서비스 분야에서도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내 주요 거점 도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글로벌 고객사들과의 협업도 확대 중이다. AI 활용과 자동화 기술에 있어서도, 단순한 도입을 넘어 고객 산업에 특화된 솔루션 개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산업 맞춤형 DX(디지털 전환)의 중심 기업으로 기능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 '데이터G'의 완전 자회사화는 NTT가 기존의 통신 중심 구조에서 IT·AI 중심의 그룹 역량을 재편성하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데이터G'를 단순한 계열사가 아닌, 그룹 전략의 심장부로 편입시키며, 핵심 기술력과 고객 기반을 통합 운영하려는 목적이 명확하다.
특히 2024년 말 발표된 OpenAI와의 전략적 제휴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데이터G'는 OpenAI의 기술을 활용해 AI 에이전트 솔루션을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외부 기술 수용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글로벌 AI 생태계 내에서 입지를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자체 AI 모델 개발은 물론, 다국어 대응, 윤리성 검증, 공공 활용 최적화와 같은 일본형 AI 전략이 이 협력 안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에서 NTT로, 사명 변경의 상징성
NTT의 뿌리는 일본 근대 통신 시스템의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69년(메이지 2년), 일본 정부는 전신 시스템 도입을 공식 결정했고, 1870년에는 도쿄와 요코하마를 잇는 일본 최초의 전신선을 개통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이후 통신이 국가 전략 인프라로 자리 잡게 되는 상징적 출발점이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1885년에는 통신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조직인 통신성(逓信省, 테이신쇼)이 설립되어, 우편·전신·전화 등 국가 통신 기능이 본격적으로 정부 조직 내에 통합된다. 이는 오늘날 NTT의 먼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행정체계였다.
직접적인 전신은 1952년 설립된 일본전신전화공사(日本電信電話公社), 약칭 ‘덴덴코샤(電電公社)’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점령기에는 민영화 압력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는 통신을 국가적 공공재로 간주하고 공기업 형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공사는 전국 전화 및 전신망의 구축과 운영을 담당했으며, 통신기술 개발, 요금 정책, 표준화 등 일본 통신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이 시기에 설립된 기술 연구 조직은 훗날 NTT R&D로 이어지며,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기술력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 후 1985년, 일본 정부는 통신 산업의 경쟁 촉진과 민간 효율성 도입을 목적으로 이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Corporation)’, 즉 NTT를 공식 출범시킨다. 이는 NTT가 공공기관 기반의 조직에서 민간 주식회사로 전환된 결정적 계기였으며, 이후 세계 최대 시가총액 기업 중 하나로 부상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NTT는 단순히 편의를 위한 약자일 뿐, 회사명 자체를 변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205년 5월, 2025년 7월 1일부로 법적 회사명을 기존의 ‘일본전신전화 주식회사(日本電信電話株式会社)’에서 공식적으로 ‘NTT 주식회사’로 변경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1985년 민영화 이후 40년 만에 이뤄지는 상징적인 리브랜딩 조치이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정체성 통일을 이루는 역사적인 시점이 된다. 심지어, 계열사 명칭 또한 일괄적으로 정비하고 외국인 이사를 최초 선임하는 등 이사회 구조에서도 실질적인 변화가 감지된다. 이는 일본 기업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시도로,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의사결정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중요한 분기점이기도 하다. 그동안 NTT 그룹 내 다중 상장(親子上場) 구조나 중복 사업 문제가 지적되어 왔던 만큼, 이번 통합은 지배구조 단순화와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 정비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사실, NTT 그룹은 오랫동안 ‘親子上場’(모회사-자회사 동시 상장) 구조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 구조는 외부 주주의 이익 충돌, 경영 책임 불분명 등의 지적을 받아왔으며, 그룹사 간 기능 중복과 전략 분산의 원인이기도 했다. 때문에 데이터G의 완전 자회사화는 그 구조적 문제를 지배구조 단순화와 전략적 일원화로 정리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덕분에 향후 투자 결정 속도, 자원 배분 효율, 기술 R&D의 연계성이 대폭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경쟁 속 NTT의 포지셔닝
현재 글로벌 ICT 인프라 시장은 미국의 3대 빅테크, 즉 AWS(아마존), Microsoft Azure, Google Cloud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한 클라우드 제공업체를 넘어, AI 플랫폼, 데이터 분석, 보안 인증, 개발 생태계, B2B SaaS를 하나로 통합한 ‘디지털 플랫폼 제국’으로 진화했다. 단순 인프라 기술의 우위를 넘어서, 글로벌 개발자와 기업이 이 생태계에 종속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국가 단위의 정책 전략보다 앞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NTT는 어떤 위치까?
일본 내에서 NTT는 공공망·금융망·기업망·통신망을 아우르는 복합 인프라 운영 능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갖는다. 단일 민간 기업으로서 네트워크 기반, 데이터센터, 시스템 통합(SI), 클라우드 운영을 직접 수행하면서 국가 인프라에 밀접히 결합된 기업은 드물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의 정책 연계 경험도 풍부하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통신 재난복구 체계 운영, 코로나19 시기 디지털 행정 시스템 지원, 일본 연금·세무 시스템 고도화 구축 등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한, 최근 들어 일본 내에서 ‘국산 AI와 데이터 주권 확보’에 대한 논의가 정책, 산업, 시민사회 전반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총무성과 경제산업성은 2024년 이후, ‘AI 인프라 자립’을 위한 정책 투자 확대를 천명했으며, 민간 중심으로는 NTT, 후지쯔, 소니 등이 협력해 ‘일본형 LLM(대규모 언어모델)’ 개발 연합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NTT의 그룹 재정비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일본의 디지털 주권 전략의 구심점이 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데이터G'와의 통합은 민간 시스템 통합(SI) 역량과 국가 인프라 기술의 결합을 통해, 일본 정부의 디지털 정책 실행력을 민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즉, NTT는 글로벌 기업과 완전히 동일한 궤도로 경쟁하진 않지만, ‘국가 기반형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독자적 영역에서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이것이 바로 NTT가 재편을 통해 겨냥하는 방향이다.
NTT의 남은 과제와 일본 IT의 미래
이번 NTT의 재편은 단순한 조직 정비를 넘어, ‘통신 공기업’이라는 오래된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1985년 민영화 이후 NTT가 맞이한 가장 큰 구조적 전환점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선언이 곧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우선, NTT의 수익 구조는 여전히 일본 내 공공·금융 고객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내수 기반에 안주할 경우, AI·플랫폼 경쟁이 국경을 초월해 전개되는 현 글로벌 ICT 지형에서 점점 고립될 수 있다. 따라서 해외 수익 비중을 높이고, 글로벌 민간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능동적 사업 전략이 필수적이다. 또한, 조직 내부의 관료적 문화와 의사결정 속도도 변화가 필요하다. 민간 시장에서 요구되는 유연성, 실험성, 신속한 투자 판단은 공공기관적 유산을 지닌 조직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 외국인 이사 영입과 브랜드 리뉴얼 등은 시작에 불과하며, 실제 실무 레벨의 혁신 실행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구조 개편은 껍데기에 머물 수 있다.
무엇보다도, NTT의 성공 여부는 단순히 하나의 기업 성패를 넘어서 일본 전체 IT 산업의 재도약 가능성과도 직결된다. 지금까지 일본은 반도체·전자 등 일부 산업에서는 세계 선두를 차지해왔지만, 클라우드·AI·데이터 플랫폼 영역에서는 존재감을 거의 상실해왔다. NTT의 이번 전환이 ‘일본 디지털 기술의 귀환’을 의미할 수 있을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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