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수출한다
2025년 7월, Naver Cloud가 일본 시장 본격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오사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Naver Cloud는 현지 인프라 구축과 AI 기반 B2B 서비스 확대 계획을 상세히 밝혔다. 특히 Line Works, Clova CareCall, Clova Note 등 기존에 축적한 AI SaaS 역량을 현지 환경에 맞춰 재정비하고, 이를 뒷받침할 일본 내 데이터센터 운영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단순히 클라우드 리전 하나 더 여는 일이 아니다.
이번 전략은 Naver가 표방한 ‘Sovereign AI’, 즉 데이터 주권 기반 AI 서비스 모델을 동북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이식하는 신호탄이다. 한국에서 구축한 수직 통합형 AI 기술 스택을 일본 사회 문제에 맞춰 현지화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국산형 AI 인프라”를 일본 시장에 안착시키겠다는 포부다.
그렇다면, 수많은 글로벌 시장 중 왜 하필 일본일까? Naver Cloud는 어떤 기회를 포착했고, 또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 걸까?
일본은 ‘AI 공백지대’, 그리고 ‘틈새시장’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이자 기술 선진국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전환 속도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느린 편이다. 행정, 의료, 중소기업 분야는 여전히 팩스와 수기 문서가 일상적인 수준이며, 클라우드 기반 업무 시스템의 보급률도 낮다.
Naver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디지털화의 간극이다.
기술 수요는 존재하지만, 이를 메울 수 있는 내재화 역량이 부족한 구조.
이러한 환경은 AI 기반 SaaS, 음성 AI, 클라우드 업무 플랫폼 같은 외부 솔루션이 진입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여기에 일본은 ‘로컬 친화성’과 ‘데이터 주권’을 유독 중시하는 국가다. 외국 기업의 클라우드나 AI 솔루션이 법적·문화적 이유로 확산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Naver는 이미 LINE이라는 ‘현지화된 생활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고, Z Holdings, Softbank와의 협업 경험까지 갖춘, ‘일본 내 AI 친화적 인프라’를 갖춘 드문 기업이다.
즉, 일본은 AI 솔루션 수요와 시장 규모는 충분하지만 동시에 글로벌 기업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다. 이처럼 ‘수요는 크지만 경쟁은 제한적인 시장’은 글로벌에서 아시아로 확장 중인 클라우드 기업에게 전략적 기착지이자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AI가 필요한 나라, 그런데 도입은 더딘 나라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국가다. 전체 인구의 약 29%가 65세 이상으로, 그 수는 3,600만 명을 초과한다. 이로 인해 돌봄 인력, 의료 인프라, 행정 지원 인력이 심각하게 부족해지고 있으며,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지속 가능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이 일본 정부와 기업 모두의 핵심 과제가 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처럼 AI가 절실히 필요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AI 기술 도입은 의료·복지·행정 분야에서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기술 인프라 부족, 개인정보 보호 규제, 현장 수용성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Naver는 바로 이 ‘공백’에 주목했다. 일본에서의 진출은 단순한 해외 매출 확대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위기를 기술로 보완할 수 있는 실질적 역할 수행이라는 전략적 판단에 기반한다.

Naver는 이미 자사의 Clova CareCall(음성 기반 안내 및 돌봄 시스템), 감정 인식형 AI 콜봇, 업무 자동화 챗봇 등을 통해 한국에서 고령층 대상 공공서비스, 지방자치단체 업무지원 등에서 충분한 적용 사례를 확보하고 있다. 이 기술들을 일본 사회 환경에 맞춰 재설계하고, 현지화된 형태로 투입하는 것이 이번 전략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번 일본 진출은 단순한 B2B SaaS 솔루션의 수출이 아니다.
이는 고령화·저출산·디지털 공백이라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는 'AI 기반 사회 인프라 구축 실험'이며, 나아가 동아시아 고령사회 전반에 대한 기술적 해법을 제시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AI’로 일본을 공략하다
2021년, LINE은 일본 내 개인정보 관리 이슈로 사회적 논란에 휩싸이며 신뢰 위기를 겪었다.
이 사건은 외국계 IT 플랫폼에 대한 일본 사회의 데이터 주권 민감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로 일본 내에서는 “데이터는 일본 안에서 처리돼야 한다”는 흐름이 명확해졌다.
Naver는 이 교훈을 통해, 일본 진출 전략의 핵심 키워드로 'Sovereign AI(주권형 AI)'를 내세운다.
서버는 일본 현지에 두고, 데이터 처리 역시 국외 이전 없이 일본 내에서 완결되도록 설계하며,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은 철저히 일본어 기반으로 최적화한다. 이는 단순한 현지화(localization)를 넘어,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신뢰 가능성과 법적 정당성을 체계적으로 충족시키는 전략이다.
이와 같은 ‘인프라까지 현지화된 AI’는 규제 민감도가 높고 폐쇄적인 일본 시장에서 Naver가 AWS, Google Cloud, Azure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와 차별화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들 빅테크는 글로벌 모델을 수출하는 방식인 반면, Naver는 “일본의 문제를 분석하고, 일본만을 위한 솔루션을 설계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중소기업 다수는 AI 내재화 역량이 부족하고, 이에 따라 사용이 쉬운 패키지형 SaaS(Software as a 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Naver는 자사의 Clova AI, Line Works, 일본 내 IDC를 결합한 수직 통합형 모델로 이 틈새를 빠르게 선점하려 하고 있다.
때문에 Naver Cloud의 일본 진출은 단순한 시장 확장이 아니다. 이는 신뢰, 데이터 주권, 사회적 문제 해결력이라는 ‘비기술적 가치’를 중심에 둔 AI 전략의 사례다. 고령화, 디지털 격차, 규제 민감도라는 일본 특유의 구조적 문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춘 현지화된 AI 인프라와 SaaS 솔루션을 제안하는 방식은 글로벌 빅테크의 일방향 ‘기술 수출’과는 다른 길이다. 그렇기에 이번 진출은 “한국의 기술”이 아닌 “일본의 해법”을 설계하는 실험이며, 동시에 'Sovereign AI'라는 새로운 글로벌 표준을 만들어가는 선제적 시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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