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것은 책임 있는 설계와 운영
바야흐로 AI 기반 바이브 코딩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제 서비스 개발은 더 이상 길고 복잡한 명세서와 수차례의 회의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런 느낌의 서비스가 필요하다”라는 의도와 몇 가지 예시, 조건만 제시하면, 인공지능이 설계와 화면 초안, 기본 코드, 테스트 시나리오까지 한 번에 만들어낸다. 기획–개발–검증이 분리된 선형 과정이 아니라, 문서·코드·실행 결과가 동시에 보이는 ‘캔버스형 작업공간’에서 한 흐름으로 엮이는 것이다.
이 변화는 전통적인 SI(System Integration) 업계의 뿌리를 뒤흔든다.
기존 SI 업체는 ‘사람×개월(맨먼스)’이라는 투입량 기반 계산법을 바탕으로 프로젝트 단가를 산정해왔다. 예를 들어, 대형 병원의 환자 예약 시스템을 만든다고 하면, 기획자가 요구사항 문서를 작성하고, 디자이너가 화면 시안을 만들며, 개발자가 기능별로 코드를 작성한다. 이후 QA팀이 테스트를 수행하고, 문제가 있으면 다시 개발팀으로 전달해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렇게 요구–개발–검증이 각각 다른 팀과 업체에 흩어져 진행되면서, 하청·재하청 구조가 형성되고, 그만큼 의사소통 비용과 일정 지연 위험이 커졌다.
하지만 AI 기반 바이브 코딩에서는 이런 단계 구분이 거의 사라진다.
예를 들어, 음식 배달 플랫폼을 만들 때 “첫 화면에 인기 메뉴와 쿠폰을 보여주고, 밤 10시 이후에는 배달만 가능하게 한다”라고 말하면, AI가 바로 해당 규칙을 코드로 구현한다. 요구사항이 변경되면, 문서와 코드, 테스트가 동시에 업데이트된다. 기존에는 한 줄의 기능 변경에도 기획 문서 수정 → 개발 수정 → 테스트 수정이라는 3단계 과정을 거쳤지만, 이제는 하나의 수정이 모든 결과물에 자동 반영된다.
이렇게 되면 단순 반복 코딩을 주로 해왔던 SI 업체의 영역은 빠르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회원가입, 목록 출력, 기본 통계, 단순 API 연동처럼 패턴이 반복되는 기능은 AI가 초안 수준까지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과거라면 이런 작업에 수주일이 걸리고 수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했지만, 이제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단순 개발 인력을 투입하는 모델”은 지속가능성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SI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할이 재정의될 것이다.
AI가 코드를 써주는 시대에 SI의 가치는 ‘어떻게 구현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구현할지’를 정확히 정의하는 데 있다. 즉, 문제 정의, 목표 지표 설정, 도메인 모델링, 규제 준수 설계, 성능·보안·비용 최적화, 그리고 결과 검증이 핵심 역량이 된다.
예를 들어, 금융권의 대출 심사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하자. 기존 SI 방식에서는 요구사항을 수십 페이지로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발과 테스트를 거쳐 출시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사용자가 모바일로 신청하면, 신용 점수·소득·기존 대출 정보를 즉시 분석해 승인 여부를 5초 내에 알려준다”라는 목표를 주면, AI가 초안을 빠르게 구현한다.
SI 업체는 여기서 보안 규제 준수, 데이터 암호화 설계, 대출 모델의 정확도 검증, 오류 발생 시 롤백 절차 설계 등을 맡게 된다. 즉, ‘타이핑하는 손’에서 ‘품질을 설계하고 보증하는 두뇌’로 역할이 이동하는 것이다.
계약 구조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화면 20개 납품, 기능 50개 완성”처럼 산출물 개수로 가격을 정했지만, 앞으로는 “주문 성공률 98% 달성”, “상담 대기시간 30% 단축”처럼 결과 지표가 기준이 된다. 여기에 더해, 이 목표를 어떻게 측정할지, 실패하면 어떻게 복구할지를 제안서에 포함해야 수주 경쟁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는 SI 조직은 급격히 설 자리를 잃는다는 점이다. 단순 개발만 해온 업체는 AI 자동화에 시장을 빼앗기고, 결국 하위 레이어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업종별 규칙과 데이터를 깊이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문제 정의와 검증 시나리오를 설계할 수 있는 업체는 새로운 ‘AI SI’ 시장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국 생존의 관건은 ‘제안서’와 ‘조직 문화’다. 기능 나열 대신 개선 목표를 수치로 명확히 제시하고, 규제·안전장치·평가·운영 방안을 포함하는 제안서가 필요하다. 내부적으로도 기획자, 개발자, QA가 칸막이 없이 한 캔버스 안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AI 바이브 코딩은 단순히 코드를 대신 써주는 도구가 아니라, “의도를 제품으로 바꾸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다. 전통 SI의 위기감은 당연하지만, 그 위기를 전략적 전환의 동력으로 삼는 팀만이 다음 라운드에 설 수 있다.
이제 물어야 할 질문은 “몇 명을 투입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개선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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