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현재, 한국 경제는 얼어붙고 있다. 내수는 부진하고, 글로벌 공급망은 여전히 불안하다.
무엇보다도 중소·중견기업들은 고금리와 고환율, 고정비 부담 속에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잘 나가던 기업들도 긴축에 들어가고, ‘컨소시엄’을 주도하던 핵심 기업이 한 곳 무너지면 그 아래 의존하던 수많은 회사들이 줄도산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더 ‘활기’를 띠는 시장이 있으니, 바로 M&A(기업 인수합병) 시장이다.
'기업이 무너질 때, 칼을 든 자본이 들어온다'
건강한 자본은 위기에 빠진 기업에 생명줄을 제공한다. 그러나 어떤 자본은 기업의 살점만 도려내고 사라진다. 이 두 자본의 명칭은 다르다. 하나는 사모펀드(PEF), 다른 하나는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 그리고 최근 더욱 교묘해진 세력이 있으니, 바로 무자본 M&A 세력이다.
표면적으로는 모두 ‘기업을 살리고, 효율을 높이는 구조조정’을 말하지만, 실제 시장은 묻는다.
“당신은 회생을 위한 의사인가, 해체를 위한 해적인가?”
사모펀드는 기업을 인수하고 키운 뒤 매각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가진다. 기업사냥꾼도 비슷하다. 기업을 싸게 사들여 구조를 손보고 되팔거나 자산을 분할해 이익을 챙긴다. 두 세력 모두 ‘산업 구조조정’과 ‘자본 효율화’라는 말 뒤에 숨는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극명히 갈린다. 하나는 ‘가치 창출의 전문가’, 다른 하나는 ‘탐욕의 화신’으로 불린다. 그리고 그 경계선 한복판에, 이제 ‘무자본 M&A’라는 더 잔혹한 수법이 도사리고 있다.
구조는 비슷하다. 문제는 ‘의도’와 ‘방식’이다
구조적으로는 유사하다. 외부 자본을 모아 기업에 투자하고, 회수 시점에서 차익을 실현하는 모델이다. 다시 말해, 세 부류 모두 기업을 사고, 다시 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든다.
하지만 사용하는 돈, 전략, 책임 주체가 전혀 다르다. 사모펀드는 통상 ‘가치창출’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전략적 리빌딩을 목표로 한다. 반면, 기업사냥꾼은 기업의 ‘현재 가진 것’을 뜯어 팔아 단기 이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구조조정’과 ‘약탈’ 사이: 사모펀드의 두 얼굴
경영 참여의 목적: ‘함께 성장’ vs ‘빨리 털고 나가기’
사모펀드는 원래 ‘성장 자본’이다. 위기의 기업을 인수해 전문경영인을 투입하고, 구조를 바꾸고, 가치가 올라가면 엑시트 한다.
정상적인 사모펀드는 경영권을 인수한 뒤, 전문경영인을 투입하거나 기존 경영진과 협력해 사업 재편과 재무구조 개선을 시도한다. 이 과정에서 고용을 유지하거나 R&D(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기도 한다. 일부는 ESG 경영을 도입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사모펀드는 기업사냥꾼처럼 행동한다. 기업사냥꾼은 ‘경영 참여’가 목적이 아니다. 주주총회에서 고배당을 요구하거나,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는 식이다. 단기 차익에 혈안이 돼 기업사냥꾼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기업을 쥐어짠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대규모 해고, 자산 매각, 임직원 처우 악화를 단행한다. 그리고 그 차익은 펀드 운용사와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아예 분할 매각이나 청산을 통해 주가를 올린 뒤 지분을 팔고 떠나기도 한다. ‘기업을 경영의 대상이 아닌, 해체 가능한 상품’으로 보는 접근이다.
이처럼 ‘선한 사모펀드’와 ‘탐욕스런 사모펀드’의 구분은 방향성과 책임감에서 갈린다.
'투자자는 수익을 원하고, 기업은 생존을 원한다'
사모펀드는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구조조정의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고, 해체 후 남은 껍데기만 남기는 '기업 해체자'가 될 수도 있다. 핵심은 그들이 남긴 가치의 궤적이다.
- 가치를 키우고 떠난 자는 투자자
- 가치를 찢어 팔고 떠난 자는 약탈자
기업사냥꾼과 무자본M&A: '자금의 출처'와 '법의 경계'
기업사냥꾼과 무자본M&A를 구분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① 기업사냥꾼은 자본을 쓰고, 무자본 M&A는 남의 돈을 쓴다 기업사냥꾼은 자기 돈 또는 투자자의 돈으로 주식을 매입하거나 경영권을 확보한다. 무자본 M&A는 피인수 기업의 자산으로 대출을 받아 인수 금액을 지급한다. 즉, “피인수 기업이 자기 돈으로 자기 자신을 사게 하는” 구조다. ② 기업사냥꾼은 법적 정당성의 회색지대에, 무자본 M&A는 편법과 사기 바로 위에 있다 기업사냥꾼은 적대적이지만 법적 절차를 따른다. (지분 공개, 의결권 확보 등) 무자본 M&A는 사실상 사기에 가까운 구조로, 법적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다. 자산을 헐값에 옮기고 기업을 고의 부도내며 책임을 회피한다. ③ 기업사냥꾼은 살아 있는 기업을 노리고, 무자본 M&A는 죽어가는 기업을 노린다 기업사냥꾼은 상장사, 현금보유가 많은 기업, 우량 자산이 있는 곳을 노린다. 무자본 M&A는 경영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을 노려, 구조상 방어력이 약한 회사를 골라 들어간다. |
무자본 M&A: ‘남의 돈으로 남의 회사를 삼키는’ 기묘한 거래
무자본 M&A는 말 그대로 자기 돈 한 푼 없이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무자본 M&A 수법은 이렇다.
① 경영 위기 기업 접촉 → 인수 계약 체결 ② 피인수 기업이 대출 또는 사채 발행 ③ 그 자금으로 인수자가 자기에게 인수 대금 지급 ④ 즉시 부동산·설비 등 유동 자산 헐값 매각 ⑤ 몇 달 후 고의 부도, 법인 파산 → 인수자 이탈 |
결과적으로, 인수자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기업의 '살점'만 도려낸다. 남겨진 건 체불임금, 고용 불안, 도산한 하청업체, 그리고 지역경제의 공백이다.
이들이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사용한 돈은 '자본'이라 부르기 어렵다. 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해체와 탈취’다.
‘기업사냥꾼 중의 기업사냥꾼’ : 무자본 M&A가 더 잔혹한 이유
왜 이런 구조가 가능한가? : 법의 빈틈과 금융의 방관
① 상법상 허점 ② 사전심사 미비 ③ 금융기관의 방관 ④ 실체 없는 법인 난립 |
결국 이는 합법을 가장한 편법, 투자를 가장한 탈취이며, 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시장 파괴 행위다.
무자본 M&A의 폐허, 그 뒤에 남는 것들
“돈 없이도 회사를 살 수 있다”는 신호는 시장에 독과 같다.
① 실직자 수백 명
③ 기술 유출 ④ 신용시스템 붕괴 |
이 모든 과정은 제도 바깥이 아닌, 제도 안에서 벌어진다. 그것이 이 현상의 가장 무서운 점이다.
대안은 없을까? “자본에도 시민권이 필요하다”
기업을 파는 것도, 사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자본에도 책임이 있어야 하고, 윤리가 있어야 한다. ‘자본의 시민성(Civic Capitalism)’이 요구되는 시대다. 사회적 가치, 지속가능성, 고용 유지, 지역경제 기여 등 복합적인 성과지표를 기준으로 투자자의 자격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와 산업계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
일정 기준 이상의 고용유지·사업지속 조건부 인수계약 의무화
- 인수자 자금 출처 실사 강화
- 무자본 인수 유형에 대한 특별 감독기구 신설
- 기업의 핵심 자산 매각 시 산업 영향 평가 의무화
- 사모펀드 운용의 투명성과 공시 강화
탐욕과 전략은 한 끗 차이다
사모펀드는 '시장경제의 엔지니어'가 될 수도, '단기 이익의 수탈자'가 될 수도 있다.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그 차이는 방향성과 의도, 그리고 흔적에서 갈린다. 기업을 키우려는 손이냐, 찢어 팔려는 손이냐. 그것이 사모펀드와 기업사냥꾼을 가르는 마지막 기준이다.
'자본은 도구다. 그러나 손에 따라 무기가 된다'
사모펀드, 기업사냥꾼, 무자본 M&A.
모두가 ‘기업을 산다’. 하지만, 어떤 자본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누구의 등을 밟고, 그 기업을 사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모펀드는 산업의 재건 설계자가 될 수 있다.
기업사냥꾼은 구조조정의 외과의사가 되어 단기적 처방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자본 M&A는 현대판 해적일 뿐이다.
자본은 칼이다. 칼은 구조조정의 수술 도구가 될 수도, 탈취의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누가 그 칼을 쥐었고, 무엇을 위해 휘두르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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