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지금, 하나의 세계를 설계하는 법을 가르치려 한다.
◎ 왜 ‘지금’, ‘게임 디자인’인가
2025년 현재,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이 앞다투어 게임 디자인 전공을 신설하고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미국 내 공립 대학들이 2025년을 기점으로 게임 디자인 전공을 정규 학사 학위 과정으로 신설하고 있다.
- University of Iowa (아이오와 대학교):
2025년 가을부터 Game Design 전공(B.A.)을 정식 학위 프로그램으로 개설.
전공 커리큘럼은 서사 중심 설계, 디지털 인터랙션, 크로스미디어 콘텐츠 디자인을 포함하며, 인문학 기반 교육 철학과 연계되어 있음. - Arizona State University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기존 Herberger Institute의 전공을 통합해 2025년 가을부터 ‘The Game School’ 독립 운영.
Game Design, Narrative Design, Interactive Audio, Systems Thinking 등 4개 트랙 중심 커리큘럼 구성, 예술·기술 융합형 교육, 인디게임 캡스톤 프로젝트 포함. - City College of New York (뉴욕 시립대학교, CCNY):
뉴욕시 도시 산업 진흥 프로그램과 연계해 Digital Game Development 전공(B.Sc.)을 2025년 가을부터 신설. Harlem Gallery of Science 및 Urban Arts와 협업해, 사회적 이슈 해결형 게임 제작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기반 커리큘럼 운영. - Southeast Missouri State University (미주리 남동부 주립대학교, SEMO):
2025년부터 Bachelor of Science in Game Development 프로그램 개설.
커리큘럼은 Unity 중심 실습, Rapid Prototyping, Mixed Reality 게임 제작, XR 기술 통합을 포함하며, 실무 밀착형 코스가 특징.
이들 커리큘럼은 단순한 코딩이나 그래픽 교육을 넘어서, AI 기반 게임 설계, 내러티브 디자인, UX 인터랙션, 게임 경제 시스템 분석, 커뮤니티 운영까지 포괄하는 융합형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 게임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기술과 창의성을 아우르는 총체적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AI 기술의 대중화로 누구나 텍스트 프롬프트 한 줄로 게임 구조를 설계할 수 있게 되었고, Roblox, Fortnite, Minecraft는 게임이자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기반의 거대한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으며,
교육, 의료, 훈련, 스토리텔링, 마케팅까지 게임 메커닉을 활용한 ‘게이미피케이션’ 기술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Z세대는 텍스트보다 인터랙션으로 배우고, 영상보다 몰입과 선택 가능한 내러티브 구조에 익숙하다. 그들에게 있어 게임은 콘텐츠이자 커뮤니케이션이며, 자기 표현의 방식 중 하나다. 이런 변화 속에서 교육 역시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때문에 바로 지금, '게임'이라는 매개가 기술 교육을 넘어선 새로운 교육 전략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 산업의 변화: 게임은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오늘날의 게임은 더 이상 단순한 오락 산업이 아니다. Roblox, Fortnite, Minecraft 같은 게임 플랫폼은 단순한 플레이 공간을 넘어,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를 기반으로 한 경제 생태계이자 창작 커뮤니티로 진화하고 있다. Z세대는 게임 안에서 창작하고, 수익을 얻고, 사회적으로 연결되며, 그 자체로 디지털 정체성과 커리어를 쌓는 공간으로 게임을 인식한다.
기술의 진화는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Generative AI는 누구나 혼자서 텍스트 지시만으로 게임의 서사, 코드, 캐릭터,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열었고, Unity, Unreal Engine, Runway, Inworld AI 같은 툴은 게임 개발을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모두의 표현 수단으로 바꾸고 있다.
실제로 Claude, GPT‑4o, Gemini 같은 모델 기반의 에이전트는 코드 설계, NPC 대사 생성, UI 프로토타이핑까지 자동화하며, 1인 개발 시대를 실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와 XR 기술이 확장되면서 건축 시뮬레이션, 재난 훈련, 감정 기반 상호작용, 커뮤니티 디자인 등 비게임 분야조차 게임 엔진과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BMW는 NVIDIA의 Omniverse 플랫폼을 활용해 전 세계 공장을 디지털 트윈 기반으로 재현하는 ‘가상 공장(Virtual Factory)’을 구축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공장 레이아웃 설계, 작업자 동선 분석, 로봇과의 협업 테스트까지 포함하며, 실제 조립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예측하고 설계 비용을 최대 30%까지 절감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BMW 레겐스부르크 공장에서는 이미 3D 휴먼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실시간 조립 테스트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은 게임 엔진 기반의 시뮬레이션 구조 위에서 작동한다.
또한 미국 Syracuse 대학교 건축학과에서는 XR 기술을 도입해, 학생들이 건축물을 실제 크기와 유사하게 가상공간에서 시각화하고, 설계안의 구조적 오류를 사전에 검토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평면 설계 교육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직관적이고 상호작용적인 설계 교육 환경을 구현하며 창의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높이는 사례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게임 엔진은 더 이상 게임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이제 그것은 산업 설계, 교육 실습, 건축 시뮬레이션, 공공 훈련까지 아우르는 차세대 디자인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생산성과 비용 효율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고급 기술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 대학의 움직임: 미국은 빠르게 확장, 한국은 점진적 전환 중
최근 미국에서는 중위권 공립대학과 지역 거점 대학들을 중심으로 게임 디자인 전공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 대학은 게임을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기술, 예술, 서사, 시스템 사고가 융합된 창의적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Z세대의 관심을 끌고, 기존 학과 구조를 재조직하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앞서 언급했듯, Arizona State University는 'The Game School'이라는 독립 학과를 신설했고, UNT, SEMO 등은 코드, 그래픽, 세계관 설계까지 아우르는 융합형 커리큘럼을 도입하며 게임을 학문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비해 다소 점진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 동서대학교, 대진대학교 등 특성화 대학들은 비교적 빠르게 반응하며 AI, XR, 실무 중심의 게임 전공을 실험하고 있고, 일부 대학에서는 콘텐츠 디자인, 컴퓨터공학, 디지털 아트 전공 내에서 게임 관련 세부트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여전히 정규 전공 신설이나 융합형 커리큘럼 설계 측면에서는 제도적 제약과 보수적 인식, 산학 협력의 한계 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학들도 점차 게임을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자 융합 교육의 플랫폼으로 인식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 왜 대학들은 게임을 선택하는가
오늘날 세계 각국의 대학들이 게임 디자인을 새로운 전공으로 적극 도입하는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나 마케팅 전략의 산물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콘텐츠 소비 세대(Z세대)의 변화, 기술 융합 시대의 학문 구조 재편, 그리고 대학의 생존 전략으로서의 교육 브랜드화라는 세 가지 큰 축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학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게임은 Z세대에게 가장 익숙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다.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Z세대는 게임을 통해 생각하고, 소통하며, 세계를 해석한다.
이들은 텍스트보다 인터랙션에 익숙하고, 영상보다 선택 가능한 내러티브에 민감하다. 대학이 그들의 관심을 붙잡고자 한다면, 그들의 ‘언어’인 게임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게임은 융합 교육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학문적 요소를 품고 있는 독보적인 콘텐츠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 그래픽, 애니메이션, 서사, UX, 심리학, 윤리, AI까지—하나의 게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과정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통합적으로 탐색하게 한다.
그 자체로 STEAM 교육(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의 집합적 실현이며, 21세기형 교육 철학을 구현하는 이상적인 매체다.
*STEM교육: 과학, 기술, 공학, 예술·인문, 수학 등의 다섯 영역을 통합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는 융합 교육 모델
산업적 연계 측면에서도 게임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실무 중심의 커리큘럼을 설계하기 쉽고, 프로젝트 기반 수업 운영에 적합하며, 졸업 후에는 창작자, 개발자, 콘텐츠 디자이너, 마케팅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로의 진출이 가능하다. 특히 UGC(사용자 제작 콘텐츠) 기반 플랫폼의 확산으로 인해 개인 크리에이터의 영향력도 커지면서, 게임은 산업뿐 아니라 1인 창작 시대의 필수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게임은 온라인·하이브리드 기반 글로벌 교육 플랫폼과의 높은 호환성을 가진다.
게임 엔진 기반 툴은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되어 있고, 원격 협업과 온라인 포트폴리오 제출이 용이하며, 영어 기반의 기술 교육 자료도 풍부하다. 이는 대학이 해외 학생을 유치하거나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전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처럼 게임 디자인은 단순한 전공을 넘어, 현대 고등교육이 마주한 거의 모든 도전에 대한 통합적 해답을 제시하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 게임을 가르친다는 것
게임 디자인 전공의 확산은 단순히 새로운 과목을 추가하는 변화가 아니다.
이는 대학이 산업을 이해하는 방식, 교육이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 그리고 콘텐츠가 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신호다.
게임은 더 이상 ‘만들 수 있는 사람’만 배우는 영역이 아니다.
이제 게임은 우리가 세계를 설계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자 훈련이다. 게임은 그 자체로 문화이고, 언어이며, 사고의 도구다.
그리고 그런 게임을 가르치는 일은, 지금 교육이 마주한 시대적 질문에 가장 현실적인 답이 될 수 있다.
게임은 상상력과 기술, 이야기와 시스템을 함께 가르치는 학문이며,
그 자체로 미래를 준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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