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신뢰의 최소 조건, 어디에 선을 그을 것인가?
8월호 Vogue 지면에 실린 GUESS의 AI 생성 모델 광고가 업계의 오래된 전제를 흔들었다. 광고와 편집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AI로 제작” 표기가 투명성인지 면책인지 논란이 이어졌다. SNS에선 ‘가짜 모델’ 거부감과 함께 실제 모델·포토그래퍼·스태프의 일자리 축소 우려가 확산됐다. 혁신의 속도와 비용 절감이 브랜드 신뢰와 진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부상한 것이다.

쟁점은 많지만 핵심은 하나다. 이 문제는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어떤 데이터와 동의를 전제로, 어느 수준의 라벨링*과 권리·보상 규칙을 갖추고, 현장 감수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즉 '어떤 조건과 책임 아래 AI 제작 이미지를 사용할 것인가'이다.
*라벨링: 콘텐츠가 AI로 생성·합성됐는지, 광고인지 등 핵심 정보를 독자가 즉시 알 수 있도록 명확히 표시하는 행위
SNS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번진 ‘가짜 모델’ 파장 사건의 불씨는 7월 27일, AI 기반 마케팅 에이전시인 'Seraphinne Vallora'가 GUESS 협업과 Vogue 게재 사실을 알리는 포스트를 올리며 지폈다. 해당 에이전시는 ‘Pivot to AI’를 전면에 내세워 합성 모델 활용을 선언했고, 업계 안팎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이틀 뒤인 7월 29일, ABC(호주 공영방송)가 해당 광고를 조명하며 다양성·신체 이미지에 미칠 영향과 ‘AI 제작’ 라벨링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고, 같은 날 Forbes는 “편집물이 아닌 광고”임에도 매체 신뢰 전체가 흔들리는 역효과를 지적했다.
8월 초, TikTok·인스타그램에선 불매와 보이콧 정서가 번졌다. ‘가짜 모델’에 대한 거부감은 곧바로 모델·포토그래퍼·스태프의 일자리 대체 우려로 확장됐고, 다수의 매체들이 해당 내용을 기사로 다루면서 확산은 더욱 거세졌다.

8월 1일에는 ABC News(미국 뉴스채널)가 “미국판 Vogue 8월호 지면 광고”라는 사실 관계와 SNS 반응을 종합 보도로 정리하며 논쟁을 메인스트림 이슈로 고정했다. 이어 8월 초 TechCrunch가 쟁점을 패션을 넘어 산업·윤리 프레임으로 확장했고, SvD/Omni(스웨덴) 등이 국제 관점에서 라벨링·반발 양상을 다루며 논의는 국경을 넘어섰다. 이후 ‘불매’ 구호에서 라벨링·권리·보상 같은 거버넌스 쟁점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상태이며 논의의 열기는 다소 안정됐지만 가이드라인 마련 요구와 브랜드·매체의 후속 입장 표명을 촉구하는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런 전개가 보여준 핵심은 분명하다. 광고와 편집의 경계가 흐려진 자리에서 라벨링의 기준이 시험대에 올랐고, 기술 효율이 높아질수록 직업 대체 우려가 커지며 브랜드 리스크가 광고주를 넘어 매체로 전가되는 구조가 드러났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허용 여부가 아니라, 어떤 조건과 책임 아래 AI 생성 이미지를 사용할 것인가.
모델·포토그래퍼·스태프는 어디로... — 대체가 아닌 재편
이번 이슈로,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쪽은 모델 에이전시다. 테스트 촬영, 룩북, 지면 광고처럼 ‘완벽한 미장센’을 선호하는 영역에서 합성 모델로의 부분 대체가 단기적으로 불가피한 것은 맞다. 그렇다고 길이 막힌 건 아니다. 실존 모델의 얼굴·체형을 디지털 트윈으로 라이선싱해 수익원을 다변화하거나, 런웨이·라이브 영상·브랜드 이벤트처럼 현장 퍼포먼스가 핵심인 무대로 포지셔닝을 옮기는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다. 이때 협상 테이블의 핵심은 재사용 범위·2차 이용·학습 금지 조항과 라벨 표기·보상 기준의 표준화다.
또, 포토그래퍼와 크리에이티브 팀은 컷 수와 사전 테스트 촬영이 줄고, 합성·후반 비중이 커지는 단기 충격을 맞는다. 그러나 중기적으론 AI 프리비즈(프롬프트·레퍼런스·무드보드)를 자체 워크플로에 흡수해 기획 효율을 높이고, 조명·연출·세트가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히어로 컷’에 집중함으로써 가치를 재정의할 수 있다. 동시에 데이터 출처·라벨링·감수 체계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혹은 AI 슈퍼바이저 역할이 새 일자리로 부상한다. 최근 독자들의 반응이 지적하듯 논쟁의 본질은 ‘속도’가 아니라 현장 감수성의 결여이므로, 이 지점을 증명하는 팀이 브랜드 신뢰를 붙잡는다.

스타일리스트·메이크업·헤어·프로덕션 등 현장 스태프에겐 소규모·저예산 캠페인에서 인력 축소가 일어날 수 있다. 대신 하이브리드 파이프라인(현장 최소 인원 + 합성 후반)에서 감수/감리 역할(의상 핏, 피부결·광택, 원단 주름·낙광 같은 현장적 사실감 보정)이 중요해진다. 또한 AI 산출물을 브랜드 기준에 맞게 해석·교정하는 테크–크리에이티브 인터프리터가 새로운 전문영역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 사회적 쟁점은 명확하다. “대체가 아니라 보완”을 말하려면, 분배·크레딧·페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가 먼저다.
결론은 분명하다. AI는 비용을 낮추고 속도를 높인다. 하지만 브랜드가 쌓아온 신뢰 자본과 현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감수성은 합성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때문에 해답은 배제도, 무조건 수용도 아니다. 적소(適所) 배치와 투명성이다. 프리비즈·변형 생성·후반 반복엔 AI를 쓰고,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히어로 컷·핵심 스토리는 현장을 고수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라벨링을 명확히 하고, 동의·권리·보상을 표준화하며, 크레딧을 빠짐없이 부여한다. 결국 균형의 기준은 단순하다.
"저비용·고속 반복으로 얻는 '효율'이 현장 감수성으로 담보되는 '진정성을 훼손'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운영 원칙을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브랜드와 매체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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