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8일, 미국 상무부 하워드 루트닉 장관 앞으로 한 통의 공개 서한이 도착했다.
서명한 이들은 전직 국방부, 국가안보회의, 국토안보부 고위 관료들과 싱크탱크, 보수 성향 기술정책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H20 AI 칩의 중국 수출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전략적 실수다.”
문제의 중심에 있는 건 NVIDIA의 ‘H20’ AI 칩이다.
이 칩은 미국 정부가 이전에 제재했던 H100보다 오히려 추론(inference) 기능에선 더 강력한 성능을 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AI 연구소들은 이 H20 칩을 기반으로 차세대 프런티어 AI 모델 개발에 나서고 있으며, 이미 텐센트,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들이 총 160억 달러 규모의 주문을 넣은 상태다.
서한에 따르면 H20 칩은 단순한 소비자용 칩이 아니다.
중국은 ‘군민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 아래 민간 기술을 군사 기술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으며, 이는 AI 칩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AI 연구기관 딥시크(DeepSeek)가 이미 중국 군 및 정보기관과 협력하고 있으며, 향후 군사 AI 개발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서한 작성자들은 이렇게 지적한다.
“AI 추론 칩은 공장 자동화만이 아니라 자율 무기, 정찰·감시 시스템, 실시간 전장 판단 알고리즘에 쓰일 수 있다. 미국이 H20 칩을 중국에 수출한다는 건 곧 중국군의 전력 향상을 도와주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글로벌 AI 칩 공급 부족이라는 현실도 문제로 제기됐다. 현재 AI 칩 수요는 폭증하고 있고, 특히 NVIDIA의 최신 AI 칩 시리즈인 ‘블랙웰(Blackwell)’은 이미 2025년 4분기까지 완판 상태다. 이 상황에서 H20 칩이 중국으로 대량 수출된다면, 미국 기업들이 확보해야 할 칩 생산역량이 분산되고, 가격은 더욱 치솟게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즉, H20의 중국 수출은 단순히 경쟁국의 기술 수준을 높이는 문제를 넘어서, 미국 내부 개발 생태계에까지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서한은 이번 정책의 외교적 파장도 경고했다. “이런 식의 수출 규제 완화는 미국의 수출통제 정책 전반을 약화시키고, 동맹국들 사이에서도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24개국이 현재 미국의 AI 칩 수출 라이선스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이번 결정은 그들에게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과거 H100 칩 수출을 금지한 것과 같은 원칙적 접근을 H20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술력과 경제논리 이전에, AI는 이제 안보의 영역이며, 이 문제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도 그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한에는 총 20명의 이름이 서명되어 있다. 전직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매트 포팅거, 전 해군 소장이자 민주주의수호재단 소속인 마크 몽고메리, 전 국가안보회의 중국담당관 리자 토빈, 정보기술혁신재단의 마이클 브라운, 그리고 오랜 기간 의회와 국방부에서 안보기술정책을 다뤄온 실무자들까지 포함됐다.
“이건 무역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기술 주권과 안보를 지키느냐의 문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마지막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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