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자산으로서의 게임, 이제는 ‘접근의 권리’가 논의될 때
▣ 문화 자산으로서의 게임, 이제는 ‘접근의 권리’가 논의될 때다
2025년, 유럽에서 시작된 ‘Stop Killing Games(Stop Destroying Videogames)’ 캠페인이 70만 명 이상의 서명을 기록하며 EU 차원의 정책 검토 단계에 공식 돌입했다. 이 캠페인은 단순히 게임 서비스 종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온라인 기반 게임이라 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접근성과 아카이빙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이용자·보존 단체들의 요구가 집결된 결과다.
청원은 영국의 디지털 권리 단체 Digital Rights Group과 유럽 게임 보존 네트워크가 주도했으며,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디지털 콘텐츠의 문화적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Stop Killing Games이란?
‘Stop Killing Games’(SKG) 캠페인은 디지털 게임 시장에서 퍼블리셔가 판매를 마친 후에 일방적으로 서버를 종료하거나, DRM(디지털 권리 관리) 등의 이유로 소비자의 접근권을 제한하는 관행에 맞서 시작된 글로벌 시민운동이다. 이 캠페인은 2024년 4월, Ubisoft가 오픈 월드 레이싱 게임 ‘The Crew’의 서버를 공식적으로 영구 종료하면서 불거진 현실적 문제에서 출발했다. 많은 소비자가 자신이 구입한 게임임에도 서버 종료로 인해 더 이상 플레이할 수 없게 되자, 이를 단순한 상업적 전략을 넘어 소비자 권리, 디지털 소유권, 게임 보존 등 디지털 시대의 핵심 사회 이슈로 제기한 것이다.

SKG 캠페인은 같은 해 8월, ‘Stop Destroying Videogames’라는 공식 명칭으로 EU 시민발의(ECI)를 통한 대규모 서명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후 2025년 6월까지 유럽 전역에서 약 45만 명의 서명을 모으며 한때 동력이 약해졌으나, 7월 2일 영국 내 별도 청원이 10만 명을 넘기고 EU 시민발의 역시 100만 달성에 성공해 재도약했다. 이어 7월 20일, 검증 단계로 넘어가기 전 최종적으로 140만 명의 서명을 달성하며 캠페인은 사상 유례없는 대중적 동참을 이끌었다. 7월 21일부터 25일 사이에는 캠페인 자금의 투명성 문제 제기와 산업계의 조직적 개입 의혹 등 새로운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7월 27일, 서명 마감일을 코앞에 두고 EU 집행위의 공식 검토 절차가 임박한 상황에 도달했다.
캠페인의 주요 요구 사항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온라인 게임이 종료되더라도 일정 기간 ‘읽기 전용’ 형태의 접근성을 유지할 것. 둘째, 공공기관이나 디지털 아카이브 전문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게임 데이터를 보존하고 열람 가능하게 할 것. 셋째, 최소한의 서버 유지만으로도 이용자에게 콘텐츠 접근권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 마련이다.
이러한 요구는 단순히 추억을 보존하자는 차원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문화 콘텐츠가 마땅히 가져야 할 기록성과 접근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유럽 시민사회와 글로벌 커뮤니티의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디지털 문화 자산의 가치와 미래 보존'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촉진시키고 있다.
▣ 게임을 둘러싼 '보존' 논쟁
‘Stop Killing Games’ 캠페인이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가는 한편, 게임의 보존을 둘러싼 논쟁은 업계와 이용자 간의 입장 차이로 뚜렷하게 갈리고 있다.
업계 측은 게임의 영구 보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서버 유지에는 지속적인 비용이 발생하며, 오래된 게임은 보안 업데이트와 유지 보수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음악·이미지·캐릭터 등 콘텐츠에 얽힌 라이선스 계약 종료, DRM(디지털 권리 관리) 체계의 변동, 타사와의 공동 개발 계약 만료 등은 법률적으로 서비스 연장이 불가능해지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EA의 <스포어(Spore)>나 닌텐도의 eShop 종료로 사라진 수백 개의 고전 타이틀은 이러한 ‘기술적/법적 보존 불가능’ 사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반면 사용자들은, 게임이 디지털 콘텐츠일지라도 정당한 구매와 참여의 흔적이자,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투자한 기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디지털 소유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판매 후 언제든 예고 없이 게임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DRM의 영향으로 정당하게 구매한 콘텐츠 접근권이 박탈되는 상황을 구매자 권리에 대한 중대한 훼손으로 인식한다. 특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게임이 단시간 내 기술적·상업적 이유만으로 완전히 소멸될 때, 이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 차원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화적 자산’ 상실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최근 유럽연합과 영국, 호주, 미국 등에서는 게임을 영화·음악과 동등한 디지털 문화유산으로 보호·기록해야 한다는 공론화가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단지 ‘서비스’로서가 아니라, 문화적 기억의 한 조각으로서의 접근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PlayStation 3 시절의
결국 업계는 실질적 비용, 보안, 법적 리스크의 현실을 강조하고, 사용자와 시민사회는 현대 사회에서 '구매'라는 행위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권리와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적 책임을 외치고 있다. 양측의 시각차는 단순한 경제적 대립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소유권과 문화 보존의 정의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수익이 나지 않는 게임은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가?”
이는 곧 '게임은 상품인가, 아니면 디지털 자산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게임이 단순한 ‘산업’을 넘어 ‘문화’로 자리잡은 이상, 사라질 권리가 아닌 보존될 책임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 작별을 위한 최소한의 존중, '연착륙'은 불가능한가?
게임 서비스의 종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끝내는가에 있다. ‘연착륙’은 그러한 맥락에서 제안되는 전략적 종료 방식이다. 이는 게임을 영구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최소한의 형태로 이용자 접근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즉, 단절이 아닌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자는 태도다. 실제로도 '연착륙'에 대한 다양한 방식이 제안되고 있다. 우선, 서버 종료 이후에도 로컬 모드(싱글플레이 또는 P2P 기반)를 제공해 오프라인 접근을 허용하는 방식이 있다. 일부 온라인 게임은 내부적으로 ‘관람 모드’ 혹은 ‘리플레이 뷰어’를 유지해, 게임의 콘텐츠를 아카이빙처럼 열람할 수 있도록 조치한 사례도 있다. 또한 게임 보존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와의 협약을 통해, 라이선스 범위 내에서 제한적 공개를 시도하는 경우도 점차 늘고 있다. 가장 실현 가능한 방식은, 서비스 종료 전 3~12개월의 유예 기간 동안 기본 서버만 유지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기술적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이용자에게 의미 있는 종료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중요한 것은 영구 보존이 아니며, 모든 게임이 똑같이 아카이빙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아니다. 다만, 수년간 플레이해온 사용자에게 “고맙다”는 작별 인사조차 없이 단절되는 일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연착륙의 핵심은 ‘영구적 보존’이나 ‘무조건적인 서비스 유지’가 아니라, 이용자에게 마지막으로 게임과 작별할 기회를 제공하는 ‘존중’과 ‘사회적 책임’의 태도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는 단지 기술적·법적 과제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유산으로서 게임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 변화를 반영한다 할 수 있다.
이미 일부 게임에서 이러한 연착륙 기간 덕분에 ‘부활’에 성공한 사례도 존재한다. 이들은 한때 외면받았지만, 꾸준한 운영과 업데이트, 그리고 여러 외부 요인들이 합쳐져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이런 사례들은 말한다.
"게임의 생명력은 매출 그래프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어떤 게임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고, 어떤 게임은 마지막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다."
연착륙, 보존은 단지 과거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라고 말이다.
▣ 디지털 시대의 문화 의무, '게임 보존'
게임은 이제 영화, 드라마, 음악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복합 예술이며, 하나의 서사적 미디어다. 상호작용성과 기술, 감정이 결합된 게임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동시대의 감성과 상상력을 담은 문화적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게임을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카이빙의 대상은 더 이상 박물관에 전시될 유물만이 아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창조되고 소비되는 콘텐츠 역시 동시대 문화를 증언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당연히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할 자산이다.
게임 보존은 과거의 게임을 무조건적으로 ‘살려두자’는 정서적 호소가 아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상호작용적 기억과 감정, 집단적 경험을 보존하려는 문화적 책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기록 작업이다. 특히 MMORPG나 온라인 시뮬레이션처럼 다수의 이용자가 동시에 참여하며 만들어낸 세계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닌, 살아 있었던 공동체의 흔적이다. 때문에 이런 게임들은 그 시기의 사회성, 유행, 놀이 문화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 상호작용적 아카이브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존중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하기 위한 문화적·역사적 기록으로의 체계적 보존 노력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게임 보존'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문화적 의무에 가깝다.
▣ 게임, 사라지게 둘 것인가?
게임이 단순히 소비되고 사라지는 휘발성 콘텐츠에 불과하다면, 서비스 종료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절차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게임을 디지털 시대의 유산으로 인정한다면, 지금 우리는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정말로 이 게임들을 ‘끝낼 준비’가 되었는가? 아니면, 최소한 남겨둘 수 있는 ‘의지’는 있는가?'
게임의 연착륙은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적 책임과 문화적 존중이 만나는 지점이며, 이용자에게는 작별을 준비할 시간을, 미래에는 되돌아볼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단순한 운영 유지가 아니라, 기억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하는 태도이자, 과거를 삭제하는 대신 기록하려는 문화적 선택이다.
결국 답도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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