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보안 연구자 보상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상한을 기본 최대 200만 달러로 상향했다.
락다운 모드 우회와 베타 단계 조기 발견 보너스를 더하면 최대 500만 달러까지 확대된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현실에서 실제로 쓰이는 완성형 해킹 시나리오(익스플로잇 체인)에 가장 큰 상금을 배정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버그 하나를 제보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취약점을 단계적으로 연결해 iPhone을 원격 장악할 수 있을 만큼 완결된 공격 체인을 제출하면 최고 보상을 받는 구조다.
이 같은 설계는 그동안 고급 해킹 기술이 제로데이 브로커나 국가기관 등 암시장으로 흘러가던 흐름을 애플의 공식 제보 채널로 전환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요컨대, 불법·비공개 시장보다 공식 보고가 더 큰 보상을 제공하도록 경제적 유인을 재설계함으로써, 회색 시장과 합법 채널의 경제학으로 정면 승부를 걸겠다는 선언이다.
바운티 프로그램의 3대 축: 상한·카테고리·프로세스
애플은 10월 10일 보안 블로그에서 바운티 프로그램의 대대적 개편을 발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상한 상향과 보너스 체계 확대다. 무클릭 원격 체인(Zero-click) 등 스파이웨어급 체인에 최대 200만 달러를 배정하고, 락다운 모드 우회나 베타 버전에서의 조기 발견에는 추가 보너스를 얹어 총액이 500만 달러를 넘을 수 있음을 명시했다.
둘째, 카테고리 확장이다. 원클릭 WebKit 샌드박스 이스케이프의 상한을 높이고, 무선 근접(모든 라디오 인터페이스) 범주를 넓혀 최대 100만 달러까지 상향했다. Gatekeeper 완전 우회 10만 달러, 광범위 iCloud 무단 접근 100만 달러 등 제품·서비스 전반의 상한 재조정으로, 보상을 실전 위협에 비례시키는 방향으로 손질했다.
셋째, 타깃 플래그(Target Flags) 도입이다. 연구자가 레지스터 제어·임의 R/W·코드 실행 등 달성 수준을 기계적으로 입증하면, 패치 이전이라도 검증 직후 보상이 가능하도록 가속 지급 절차를 마련했다.
공식 페이지에 따르면, "가장 높은 보상은 최신 하드웨어·소프트웨어에 영향을 미치고, 타깃 플래그를 활용한 실증적 체인에 적용된다"는 기준을 밝힌다. 카테고리·세부 금액표는 11월 시행 시점에 업데이트될 예정이다.
용병형 스파이웨어와의 전쟁: 방어 아키텍처의 진화
배경에는 iOS 보안 아키텍처의 상향과 공격 난이도의 구조적 상승이 있다. 애플은 iPhone 17 세대에 메모리 무결성 강제화(Memory Integrity Enforcement, MIE)를 도입해 커널 등 핵심 영역을 항시 메모리 안전으로 보호한다. 이 조치로 메모리 클래스 취약점 기반 체인의 개발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났고, 애플은 이에 맞춰 상향된 난이도에 걸맞은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애플은 공식 블로그에서 실제 관측되는 시스템급 iOS 공격은 극소수 대상에게 쓰이는 용병형 스파이웨어(mercenary spyware) 체인이라고 규정했다. 이 체인들은 다중 취약점 연결·권한 상승·지속성 확보로 구성되며 개발 비용이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 애플은 락다운 모드 강화와 더불어 타깃 플래그로 검증 시간 단축·투명한 보상 결정을 설계해, 연구자들이 회색 시장 대신 공식 채널을 택하도록 유인한다.
이 흐름은 더 큰 기술 지형 변화와 맞물린다. '모델의 전쟁'에서 '인프라/경계의 전쟁'으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모바일 생태계는 규모와 즉시성 때문에 공격·방어의 경제학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애플은 2021년 NSO 제소로 상징되는 법적 대응에 더해, 아키텍처(락다운·MIE), 가격 신호(상한·보너스), 프로세스(타깃 플래그·가속 지급)를 묶음 전략으로 취하며 스파이웨어 생태계의 경제성 자체를 흔들려 한다.
제로데이 시장과의 가격 경쟁: 공식 채널의 경쟁력 확보
이번 개편의 핵심은 연구자가 "어디에 제보할지"를 결정하는 기준(돈·시간·신뢰)를 공식 제보 쪽으로 옮긴 것이다.
가격 측면에서, 과거엔 제로데이 브로커나 국가기관 등 암시장이 더 큰 돈을 제시했지만, 애플은 상한을 최대 200만 달러로 높이고 보너스를 더해 500만 달러 이상까지 열어 공식 채널의 '단가'를 끌어올렸다. 또한 시간가치 측면에서, 베타 단계 조기 발견과 락다운 모드 우회에 보너스를 붙여 "빨리·어렵게 찾을수록 더 준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냈다. 품질 프리미엄 측면에서는 단일 버그가 아니라 현실에서 통하는 '완성형 공격 체인'에 최고 보상을 배정해, 재현 가능하고 끝까지 작동하는 결과물일수록 값이 오르는 구조를 만들었다. 신뢰 측면에서는 타깃 플래그 등 검증·정산 절차 개선으로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전, 연구자 레퍼런스까지 보장했다.
결과적으로 가격(상한·보너스) + 시간가치(조기 보너스) + 품질 프리미엄(완성형 체인) + 신뢰(예측 가능한 정산)를 결합해, 불법·비공개 거래보다 애플에 바로 제보하는 편이 더 이득이 되도록 룰을 재설계한 것이다.
물론, 이런 개편에 따른 리스크도 경계해야 한다. 보상이 커지면 국가나 브로커 쪽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고, 특정 취약점 유형에 연구 자원이 과도하게 쏠릴 위험도 있다. 게다가 실제 보안 문제의 상당수는 서드파티 SDK, 펌웨어·하드웨어, 통신 모듈 같은 공급망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은 책임 경계가 복잡해 빠른 보상·패치 연동이 어렵다. 그래서 애플만이 아니라 칩/모뎀 벤더, 통신사까지 함께하는 공동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성공의 조건은 세 가지다. 일관된 가격 신호, 예측 가능한 프로세스 신뢰, 그리고 플랫폼·칩/모뎀 벤더·통신사가 참여하는 공급망 거버넌스다. 이 세 축이 유지될 때, 연구자는 공식 제보를 기본 경로로 택하고, 기업은 신속·투명한 수정에 근접하며, 사용자는 더 강한 보호를 얻게 된다.
시장 룰을 다시 쓰는 전략적 베팅
애플의 이번 움직임은 단순한 보상 인상이 아니다. 이것은 사이버 보안 생태계의 경제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전략적 베팅이다.
암시장이 작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더 많고, 절차가 더 빠르며, 추적이 어렵기 때문이다. 애플은 이 세 가지를 정면으로 공략했다. 더 큰 보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타깃 플래그로 검증을 가속화하며, 합법적 명성이라는 장기 자산을 제공했다. 여기에 락다운 모드와 MIE로 공격 비용을 끌어올려, 암시장에서조차 ROI가 악화되도록 만들었다.
이 구조가 성과를 보이면, 파급력은 애플을 넘어선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가 유사한 모델을 채택할 것이고, 각국 정부는 이를 정책 프레임워크로 흡수할 것이다. 제로데이 브로커들은 가격을 올리거나 다른 영역으로 이동해야 하고, 연구자들은 점차 합법 채널을 기본 경로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암시장의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사이버 무기 거래의 전체 생태계가 재편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공급망 전체가 움직여야 하고, 국제 협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 정책이 일관되게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애플은 기술(방어 아키텍처), 경제(인센티브 구조), 프로세스(신뢰 시스템)를 동시에 움직여, 사이버 보안의 게임 룰 자체를 바꾸려 한다.
이것은 취약점 수집 경쟁이 아니라, 생태계 재편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승패는 향후 10년간 수십억 사용자의 디지털 안전을 결정할 것이다.
애플이 던진 주사위가 어떻게 굴러갈지, 이제 시장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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