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이 아닌 정체성"...팝마트가 재정의한 소비의 의미
중국의 피규어 브랜드 '팝마트(Pop Mart)'가 글로벌 완구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글로벌 상장기업 시가총액 플랫폼 CompanieMarketCap에 따르면, 팝마트의 시가총액은 327억 4천만 달러(약 45조 7,000억 원)로, 마텔(Mattel), 해즈브로(Hasbro), 산리오(Sanrio) 등 서구 완구 강자들의 가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높다.
이는 단순한 매출 성장이나 시장 점유율을 넘어, ‘캐릭터 IP’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세계적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팝마트의 압도적인 성장: IP와 감정 소비의 결합
2025년 1분기, 팝마트는 전년 동기 대비 최대 170%에 달하는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미국(895%↑), 유럽(600%↑), 아시아 태평양(350%↑)에서의 해외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그 중심에는 ‘라부부(Labubu)’ 같은 독창적인 캐릭터 IP가 있다.
특히 '라부부(Labubu)' 캐릭터는 2024년 한 해 동안에만 약 4억 2,000만 달러(한화 약 5,8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체 수익의 23%를 차지했다.
팝마트의 핵심 전략은 단순한 피규어 제조가 아니라 ‘IP 몰입 경험의 설계’다. 팝마트는 소비자가 특정 캐릭터의 세계관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그 서사를 수집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감정, 스토리, 취향이 결합된 수집 경험은 단순한 호기심 기반의 랜덤박스 소비와는 차별화된다.

브랜드 전략: 팬덤과 경험을 판매하다
블라인드 박스라는 독특한 판매 방식을 통해 소비자들의 수집욕을 자극하고 있다.
팝마트의 블라인드박스 전략은 ‘캐릭터 IP 중심의 브랜드 전략’으로 불리는데, 단순히 랜덤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소비 경험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팝마트는 ‘몰리(Molly)’, ‘라부부(Labubu)’, ‘디무(DIMOO)’, ‘스컬판다(SKULLPANDA)’ 등 독창적인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캐릭터들은 각각 고유한 외형, 감정,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나의 브랜드처럼 독립적으로 작동한다.
팝마트가 판매하는 블라인드박스는 "몰리의 여름 시리즈", "라부부의 동화 시리즈"와 같이 한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으로 구성된 하나의 시리즈가 블라인드박스로 출시된다.
소비자는 단순히 어떤 상품이 나올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세계를 수집하려는 욕망을 갖고 반복적으로 구매한다. 이는 기존 랜덤박스가 ‘무엇이 나올까’라는 단발적인 호기심에 기반했다면, 팝마트는 ‘누구를 모을까’,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어떤 이야기를 완성할까’라는 지속적이고 감정적인 몰입을 유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별로 뚜렷한 팬층을 형성하게 만들어, 어떤 소비자는 ‘몰리’만을 모으고, 다른 이는 ‘스컬판다’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IP 중심의 팬덤 분화는 팝마트를 단순한 피규어 판매 기업이 아니라, 캐릭터 중심의 문화 브랜드로 확립하게 만들었다.
즉 블라인드박스는 팝마트에게 있어 IP 소비를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장치일 뿐이며, 진정한 핵심은 소비자와 캐릭터 사이의 감정적 관계와 몰입이다.
소비자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고, 팝마트는 이를 수익으로 전환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강화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팝마트는 기존의 랜덤박스 문화에서 한 단계 진화하여, IP 중심의 브랜드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도전과 과제: 성장의 그늘’도 대비해야
팝마트는 현재 독창적인 캐릭터 IP와 블라인드박스 중심의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움은 존재한다.
첫 번째 과제는 성장률 유지의 어려움이다. 팝마트의 최근 매출 증가율은 1년 전 대비 100%를 훌쩍 넘는 폭발적인 수준을 기록했지만, 이는 ‘기저 효과’(즉 이전 해의 실적이 낮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게 보이는 착시 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 초기 진출 시장에서의 빠른 확장은 가능하지만, 진입 이후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률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이 성숙 단계에 들어서면 신규 수요보다는 재구매와 브랜드 충성도에 의존해야 하므로, 성장의 속도는 자연히 완만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과제는 공급망 관리의 복잡성 증가다. 팝마트는 아시아를 넘어 북미, 유럽, 동남아 등 세계 여러 지역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확장하고 있으며, 자사의 무인 자판기 시스템(Robo Shop)도 해외 곳곳에 설치 중이다. 이러한 다국적 유통 구조는 브랜드 가시성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제조, 재고, 물류, 현지 법규 대응 등 운영 리스크도 함께 증가시킨다. 특히 한정판 제품의 경우, 일정한 품질과 납기를 맞추기 위한 체계적인 생산·배송 관리 없이는 브랜드 신뢰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소비자 수요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팝마트는 블라인드박스라는 포맷을 통해 수집욕과 희소성에 기반한 소비문화를 만들어냈지만, 특정 캐릭터나 시리즈에 대한 수요는 일시적 유행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 한 캐릭터의 인기가 떨어지거나 반복된 디자인이 지루함을 유발할 경우, 팬층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IP 포트폴리오의 주기적인 갱신과 신선한 테마 기획, 그리고 외부 아티스트와의 협업 확대 등을 통해 브랜드의 창의성과 신선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팝마트는 분명한 강점을 지닌 기업이다. 자사만의 독자적인 캐릭터 IP를 확보하고 있으며, 콘텐츠-유통-커뮤니티를 연계하는 입체적인 마케팅 구조를 갖추고 있다. 향후에도 글로벌 주요 도시로의 지속적 확장, 디지털 플랫폼과의 결합, NFT나 메타버스와 같은 차세대 소비 트렌드에 대한 대응 등을 통해 성장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주는 세 가지 전략적 시사점
① IP 소비의 재구성: 방송 기반을 넘어서야
한국은 이미 풍부한 IP 기반 콘텐츠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뽀로로’, ‘타요’, ‘캐치! 티니핑’, ‘뉴진스 토끼’ 같은 키즈 및 K-팝 IP는 국내외 인지도가 높다. 그러나 대부분은 방송·음원 기반 수익에 치우쳐 있고, 피규어나 캐릭터 상품화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한계가 있다. 팝마트는 방송이 아닌 피규어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아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소비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단순 굿즈 수준이 아닌, 캐릭터가 곧 브랜드가 되는 구조적 전환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국내 창작자 및 콘텐츠 스타트업은 이 점에서 스토리텔링과 소비 경험이 결합된 캐릭터 IP 사업의 확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② 키덜트+취향 소비 공략
한국 역시 Z세대·밀레니얼 중심의 '감정소비'와 '수집 문화'가 강해지고 있는 시장이다. '포켓몬빵 대란', '스티커 앨범', '포토카드 수집' 열풍이 그 단적인 예다. 이처럼 한국 시장은 팝마트가 타깃으로 삼는 ‘수집 욕구 기반의 감정적 소비자’가 충분히 존재한다. 팝마트는 이 같은 소비심리를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브랜드 충성도와 반복 소비로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한국 기업들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일회성 굿즈가 아니라 연속적 구매를 유도하는 스토리 중심의 수집 경험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③ 오프라인 공간의 감성화
한국의 리테일 산업은 점점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지만, 동시에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찍는’ 오프라인 공간에 대한 수요도 다시 커지고 있다. 팝마트는 단순 판매를 넘어, 매장 자체를 팬덤 공간이자 놀이 문화로 재해석했다. 한국 내 캐릭터숍이나 굿즈샵도 단순 판매 공간에서 벗어나, 포토존·이벤트·스페셜 언박싱 공간 등 직접적인 체험존으로 확장할 경우 Z세대 소비자의 참여도와 체류시간을 높이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
팝마트는 '상품'이 아니라 '정체성'을 판다
팝마트는 ‘누구의 팬인가’, ‘어떤 캐릭터에 나를 투영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브랜드다. 한국 역시 팬덤 문화, 우수한 IP, 수집 문화라는 세 가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이 자산들을 하나로 엮어낼 ‘이야기 설계력’과 ‘몰입 경험 디자인’이다.
장난감은 더 이상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정체성과 감정을 담은 작은 피규어 하나가 세계 시장을 흔들 수 있다면, 한국의 콘텐츠 산업도 새로운 성장의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누구의 팬이냐는 질문은, 곧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 된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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