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지방소멸 대응의 핵심 인프라로 ‘무인 이동 서비스’를 지정
일본 정부, ‘자율주행 대전환’에 나선다.
일본 국토교통성(MLIT)은 2030회계연도까지 레벨4(Level 4) 자율주행 차량 1만대 상용화를 공식 목표로 발표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자율주행 차량의 ‘대수(台數)’를 구체적 정책 목표로 명시한 첫 사례다.
레벨4는 국제기준(ISO 26262)상 ‘특정 조건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 단계’를 의미한다. 일본 정부는 이번 정책을 통해 자율주행 버스, 무인 택시(로보택시), 물류용 자율주행 트럭 등을 전국 주요 도시와 지방 교통 공백 지역에 투입해, 인력난과 교통망 붕괴를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사람이 사라지는 나라’의 교통 위기
이번 결정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인구 구조의 절벽이다. 일본 내 택시 운전기사 수는 2010년 대비 40% 이상 감소했고, 지방 버스 노선의 35%가 적자 또는 운행 중단 위기에 놓여 있다. 특히 인구 5만 명 이하 지방도시에서는 “운전 가능한 주민이 사라지는 사회(ドライバー消滅社会)”가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27년까지 무인 자율주행 이동 서비스 100개 지역 도입을 계획했으나, 이번 발표는 그 목표를 ‘지역 단위 → 전국 단위’로 확장한 것이다. 즉, “지방 교통 생존 = 자율주행의 사회 인프라화”라는 국가적 전환이 본격화된 셈이다.
레벨4 자율주행 — ‘완전 무인’으로 가는 기술적 기준점

현재 일본에서 Level 4 상용운행이 허가된 지역은 후쿠오카현 에비노시, 미에현 스즈카시, 홋카이도 도카치 지역 등 약 20여 곳에 불과하다. 이번 정책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규제 완화·도로 인프라 확장·보험체계 재정비를 병행 추진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책 추진의 핵심 축 — ‘국산 자율주행 생태계’ 육성
국토교통성은 이번 목표를 통해 국산 기술 중심의 자율주행 산업 생태계를 정착시키려 한다. 특히 일본 정부는 다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기업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① 완성차·기술 연합체
토요타, 혼다, 스바루 등 주요 OEM이 Autoware Foundation 및 Level5 Alliance 등을 통해 센서·AI·통신 기술 공동개발.
② 지방 교통사와 협력
JR동일본, 도카이 버스, 세이부버스 등과 연계한 “지방 교통 공동운행 프로젝트” 추진.
③ 자율주행 규제 샌드박스 확대
2026년부터 ‘레벨4 특구’를 전국 30개 지자체로 확대. 실시간 원격 모니터링·응급 대응을 위한 5G 기반 교통 데이터 허브 구축 추진.
즉, 일본형 자율주행 모델은 “단일 기업 중심이 아닌, 산업 연합체 중심의 사회 인프라형 모델”이다.
자율주행은 ‘고령사회형 사회간접자본’이 된다
자율주행 1만대 상용화는 단순한 기술 목표가 아니다. 이는 일본 정부가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 속에서 “인간 대신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실험이다.
경제산업성(METI)에 따르면, 일본 운송·물류 산업의 인력 부족 규모는 2024년 기준 약 36만 명, 2030년에는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자율주행 차량 1만대는 단순 계산으로 연간 8만 명분의 운송 인력 대체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즉, 자율주행은 일본에서 도로 인프라가 아니라, 노동 인프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무인차’보다 ‘무책임’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이 “기술 낙관주의”에 치우칠 위험을 경고한다.
법제 미비: 사고 시 책임 주체(차량 제조사 vs 소프트웨어 제공자 vs 운행 주체)가 여전히 불명확.
보험 체계: 레벨4 사고 발생 시 보상 기준과 피해자 구제 절차 부재.
사회적 수용성: 고령층 주민들의 ‘무인 버스 불신’과 ‘AI 의존 불안’이 여전히 존재.
2023년 나고야시에서 발생한 실증 테스트 중 차량 충돌 사고 이후, 일본 사회는 자율주행을 기술이 아닌 신뢰의 문제로 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일본의 1만대 계획은 기술보다도 사회적 합의의 실험이 될 전망이다.
자율주행 패권 경쟁의 ‘3번째 모델’
일본의 모델은 속도보다 ‘사회 통합적 자율주행’에 방점을 두고 있다. 즉, 기술의 혁신보다 공공성·지속성·책임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형 자율주행 전략”이다. 이는 글로벌 자율주행 산업에서 일본이 “가장 느리지만 가장 오래가는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운전자가 사라지는 사회’, 그 공백을 메우는 기술
2030년, 일본의 도로 위에서 1만대의 무인차가 달리는 풍경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사회 생존 전략의 시각적 은유가 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수록, 기술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이 사람의 자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진짜 과제는, “사람이 없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이동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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