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h-X는 해시값을 남기는 기록이다. 블록체인의 해시(Hash)처럼, 한 번 새겨지면 지워지지 않는 통찰을 담는다. X는 경계를 넘는 사유이자, 미지의 가능성을 뜻한다. 'Hash-X'는 본질을 꿰뚫고, 기술과 권력,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의 흐름을 기록하는 공간이다."[편집장주] |
내가 나를 증명하지 못할 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 증명해준다.
플랫폼이, 국가가, 기업이, 그리고 별점이.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이 사람, 별 다섯 개 받았대.”
“이 병원, 검색 상위에 있어.”
“이 강사, 구독자 수가 많더라.”
우리는 숫자와 순위와 후기와 인증에 인생을 맡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마음속에선 중얼거린다.
“정말 믿을 수 있을까?”
공자는 말했다.
“사람은 믿음을 잃으면 설 자리가 없다.”
맹자도 강조했다.
“신뢰는 칼날보다 무섭고, 성벽보다 단단하다.”
그들은 국가와 정치의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날 그 말은 병원 예약 앱에도, 학원 선택에도, 온라인 쇼핑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신뢰가 없는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의심 속 거래’는 신뢰의 사기극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는가?
우리는 누구에게 신뢰를 위탁하고 있는가?
검색 알고리즘?
광고비로 결정되는 노출 순위?
리뷰 조작 대행사의 손에서 써진 별 다섯 개?
웃기지도 않는 신뢰의 파사드(Facade).
플랫폼은 신뢰를 파는 듯하지만, 사실은 신뢰의 시늉만 파는 유료 장사꾼이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좋아요’를 믿으며 불신에 휘둘리는 소비자가 됐다.
이 얼마나 역설인가.
신뢰의 홍수 속에 신뢰가 없다.
TCR(Token Curated Registry)은 여기에 ‘미친 듯이 상식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걸 왜 위에서 정해?”
“우리가 직접 평가하면 안 돼?”
“신뢰를 중앙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만들면 안 돼?”
신뢰란 본래 타인의 믿음을 내가 책임지는 구조다. 하지만 TCR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 책임에는 경제적 리스크도 따르도록 하자.”
토큰을 건다. 누군가를 믿을 만하다고 주장하려면, 말뿐 아니라 자신의 자산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가 그것을 보고 투표한다. 누군가는 보상을 받고, 누군가는 손해를 본다.
이 얼마나 공평하고도 고약한 구조인가.
신뢰의 무게를 말이 아니라 행동과 책임으로 증명하라는 이 시스템은, 공자의 ‘신’(信)의 무게를 가장 냉정하게 구현하는 기술 실험이다.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공무원 임명도 TCR로 결정된다면?
유튜브 채널의 신뢰도도 TCR을 통과해야 한다면?
‘좋아요’가 아니라 ‘신뢰 토큰’을 걸고 판단해야 한다면?
아마도 우리는 훨씬 적은 말을 하고, 훨씬 조심스레 누군가를 추천하며, 훨씬 성실히 자기 자신을 설명하려 들 것이다.
우리는 이제 ‘신뢰’를 너무 싸게 말한다. TCR은 그 신뢰에 값을 다시 매기려는 실험이다. 그것은 거창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당연한 실험에 이상하리만큼 겁을 낸다. 그게 나는 가장 흥미롭다.
플랫폼이 만들어낸 신뢰는 ‘가면’이다. 별점은 메이크업이고, 리뷰는 조명이며, 알고리즘은 각본이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는 불신과 기만, 구조적 무책임이 도사리고 있다.
이제는 가면을 벗어야 할 때다.
신뢰란,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명은, 말이 아니라 구조로 완성된다.
TCR은 그 구조의 이름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증명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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