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서 1,200젬짜리 아이템을 구매하려고 상점을 열었다. 그런데 젬은 500개나 1,000개 단위로만 판매한다. 아이템 하나를 사려면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충전해야 하고, 구매하고 남은 젬은 게임 안에 그대로 남는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상황이다.
이처럼 게임에서 실제 돈을 가상의 재화로 바꿔 사용하는 방식이 유럽에서 규제의 대상이 됐다. 2026년 9월 30일 유럽연합(EU)의 소비자보호협력 네트워크(CPC)는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유비소프트 등 9개 게임사를 대상으로 게임 내 유료 재화의 판매 방식에 관한 공동 조치를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10월 1일, 한국 국회에서는 게임산업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내외 게임사업자의 이용자 보호 책임을 강화하고, 법 위반에 대한 조사와 집행 수단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두 조치는 모두 게임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지만, 주목하는 부분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와 피해구제를 중심으로 규제를 강화해 왔다. 반면 이번 EU의 조치는 게임 속 재화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 속 1,000젬은 실제로 얼마일까
온라인게임이나 모바일게임에서는 현금 대신 젬, 다이아, 크리스털 같은 게임 내 재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는 먼저 현금으로 재화를 충전하고, 이를 사용해 캐릭터나 장비, 의상 등을 구매한다. 게임사는 이러한 방식으로 결제 과정을 게임의 경제 시스템과 연결하고, 다양한 상품과 보상을 하나의 재화로 관리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용자가 실제로 얼마를 지출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00젬이 9,900원이라면 800젬짜리 아이템은 약 7,920원에 해당한다. 하지만 상점에는 800젬이라는 가격만 표시될 수 있다. 여기에 젬을 다른 재화로 바꿔 구매하거나, 충전 수량에 따라 보너스 젬이 제공되는 방식까지 더해지면 실제 가격을 계산하기는 더욱 복잡해진다.
재화를 일정한 묶음으로만 판매하는 방식도 쟁점이다. 1,200젬짜리 아이템을 구매하려는데 1,000젬과 500젬 단위로만 충전할 수 있다면, 이용자는 1,500젬을 구매하고 300젬을 남기게 된다. 남은 재화는 다음 구매에 사용할 수 있지만, 당장 필요한 아이템 하나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먼저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EU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구매 과정이다. 게임 속 재화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재화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실제 가격을 알기 어렵거나 불필요한 추가 구매가 발생하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EU 소비자보호 당국은 2025년 3월 게임 내 유료 재화에 관한 핵심 원칙을 발표했다. 게임 속 상품의 실제 현금 가격을 명확하게 알리고, 복잡한 재화 환산으로 비용을 숨기거나 필요한 수량보다 많은 재화를 구매하도록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한 구매했지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재화에 대한 철회권을 존중하고, 특히 아동이 결제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행위에도 주의를 요구했다. 이는 게임 내 재화를 사용하는 모든 방식이 부당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화는 게임 속 경제와 보상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로 활용될 수 있으며, 묶음 판매 역시 그 자체로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실제 돈이 오가는 구매 과정에서 소비자가 가격과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EU의 입장이다.

이러한 원칙이 발표된 이후 EU 당국은 게임업계와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가격 표시와 환불, 재화의 법적 성격 등을 둘러싼 이견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2026년 9월 30일 라이엇게임즈, 슈퍼셀, 유비소프트 등 9개 게임사를 대상으로 공동 조사와 개선 협의에 착수했다. 대상 게임에는 '발로란트', '클래시 오브 클랜', '마인크래프트', '캔디 크러시 사가' 등이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각 게임의 유료 재화 판매 방식이 EU 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지 검토하고, 기업들에 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 방안을 요구하는 절차다. 아직 위법행위가 확정되거나 제재가 내려진 것은 아니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각국 소비자보호 당국이 추가적인 집행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결국 EU가 제기한 문제는 게임 속 재화가 존재한다는 사실보다, 게임 안에서 표시된 가격과 이용자가 현실에서 지불하는 금액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명확하게 알 수 있는가에 있다.
게임 속 재화는 돈일까, 콘텐츠일까
게임 속 젬이나 다이아는 조금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현실의 돈으로 구매하지만 대부분 게임 밖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게임 안에서도 정해진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쓰인다. 이용자에게는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한 결제수단이지만, 게임의 성장과 보상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EU 소비자보호 당국과 게임업계는 게임 내 재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규제당국은 이용자가 현실의 돈으로 재화를 구매하고 이를 다른 상품의 결제에 사용하는 만큼, 실제 화폐가치와 연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게임 안에서 사용하는 재화라도 구매 과정에서는 일반적인 소비자 보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게임업계는 재화를 단순한 결제수단으로만 취급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게임 속 재화는 각 게임의 규칙과 경제 시스템에 따라 사용되는 콘텐츠의 일부이며, 현실에서 통용되는 암호화폐와도 성격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재화를 모두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면 게임마다 다른 경제 구조와 운영 방식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과 관련해 2026년 3월 EU 사법재판소가 내린 '룬스케이프(RuneScape)' 관련 판결도 주목받고 있다. 룬스케이프는 이용자가 게임 속 골드로 아이템 등을 거래하는 온라인게임이다. 당시 재판소는 게임 골드를 현실의 돈과 교환하는 거래에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를 판단하면서, 해당 골드를 일반적인 통화나 상품권이 아닌 게임의 일부를 구성하는 전자서비스로 보았다.
게임업계는 이 판결을 게임 재화가 단순한 결제수단을 넘어 게임 콘텐츠의 성격도 가진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해당 판결은 특정 게임 골드의 거래에 부가가치세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다. 게임 내 재화의 실제 가격 표시나 환불 의무까지 결정한 것은 아니므로, 이번 소비자보호 논쟁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양측의 입장 차이는 게임 재화가 가진 서로 다른 특성에서 출발한다. 규제당국은 실제 돈이 오가는 구매 과정에 주목하고, 게임업계는 재화가 게임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어느 한쪽의 설명만으로 게임 재화의 성격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운 셈이다.
다만 게임 재화를 콘텐츠의 일부로 인정하더라도 구매 과정의 투명성 문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가 현실의 돈을 지불하는 이상 실제 가격과 구매 조건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히 남는다. 게임 속 재화를 무엇으로 분류할 것인지와, 그 재화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는 구별해서 살펴볼 문제다.
한국은 어디까지 규제하고 있을까
한국에서도 게임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규제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게임 속 재화의 실제 가격보다는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와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였다.
2024년 3월부터 게임사는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정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해 왔다. 2025년 8월에는 고의적인 확률정보 표시의무 위반 등으로 이용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일정한 분쟁에서는 게임사가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책임도 강화됐다.

2026년 10월 1일, 국회를 통과한 게임산업법 개정안은 이용자 보호를 위한 집행 수단을 더욱 확대해 해외 게임사의 국내대리인 제도를 강화하고, 관계기관이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요구하거나 시정명령 불이행에 대응할 수 있는 근거 등을 마련했다. 확률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데서 나아가,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이다.
게임 내 재화의 결제와 환불 역시 전자상거래법과 관련 약관 등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아이템의 실제 현금 가격을 어떻게 표시할 것인지, 필요한 수량보다 많은 재화를 구매해야 하는 판매 구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다.
게임 '규칙'과 현실 '결제'의 사이
EU의 조치가 실제로 게임 내 상점을 얼마나 바꾸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규제당국과 게임업계의 협의가 진행 중이고, 개별 게임에 적용될 기준과 대응 방식도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EU의 요구가 반영된다면 게임 속 아이템의 현금 가격 표시, 재화 충전 단위, 미사용 재화의 환불 절차 등이 달라질 수 있다. 유럽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게임사들 역시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게임 내 재화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젬이나 다이아는 게임의 성장과 보상 구조를 구성하는 요소이며, 이용자에게는 게임을 즐기는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다만 게임의 규칙에 따라 사용하는 재화와 현실의 돈을 지불하는 과정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게임 속에서 재화가 어떤 역할을 하든, 이용자는 자신이 실제로 얼마를 지불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도 게임 내 재화의 가격과 판매 방식은 앞으로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확률형 아이템의 정보공개와 피해구제 제도를 강화하면서 이용자 보호의 범위는 점차 확대됐다. 그러나 확률이 정확하게 공개된다고 해서 구매 과정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가격을 쉽게 알 수 있는지, 필요한 수량보다 많은 재화를 충전하도록 하는 방식은 적절한지, 사용하지 않은 재화에 대한 환불 기준은 충분한지 등은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다. 이제는 게임에서 무엇을 얻는가뿐 아니라, 그것을 어떤 조건과 가격으로 구매하는가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에도 전자상거래법과 관련 소비자보호 제도가 존재한다. 따라서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에 앞서 기존 제도가 실제 게임 내 결제 과정에서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용자가 자신의 권리를 쉽게 알 수 있는지, 게임마다 다른 재화 판매 방식에 기존 기준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검토하는 것도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결국 EU와 한국의 움직임은 게임 이용자 보호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게임 속 재화를 콘텐츠의 일부로 인정하는 것과, 그 재화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은 반드시 충돌하는 일이 아니다. 게임 안에서 사용하는 것은 젬이나 다이아일 수 있지만, 그것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것은 현실의 돈이다. 중요한 것은 재화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뿐 아니라, 이용자가 자신이 무엇을 얼마에 구매하는지 알고 선택할 수 있는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