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아직 방 안은 어두웠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오전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옆을 바라봤다. 아들은 자고 있다.

아들과 전날 밤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저 아들이 보고 있던 유튜브 영상 몇 개가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놀리고, 민망하게 만들고,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영상들.

나는 그런 콘텐츠가 불편했다. 무엇보다 아들이 별 생각 없이 그런 영상을 계속 넘겨보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아빠가 유튜브를 보지 말라는 게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네 시간이잖아.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계속 보고 있으면 네 인생의 그 시간이 거기에 들어가는 거야. 뭘 보고, 뭘 듣느냐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결국 네 생각을 만들고, 네가 어떤 사람이 될지에도 영향을 주는 거야.”

처음에는 짧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이어졌다. 아들에게 뭔가를 꼭 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다른 말을 꺼냈다.

결국 한 시간이 가까이 흘렀다. 대화가 끝난 뒤 방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남았다.

잠자리에 들면서 생각했다.

‘너무 몰아붙였나.’

‘아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 한 시간짜리 아빠의 강의였을까.’

‘짧게 이야기하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새벽 6시.

나는 잠든 아들을 바라보며 다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이번에는 업무 메시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늘 아들과 무엇을 하면 좋을지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여행에서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이면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가야 했다.

‘오늘은 뭘 하면 좋아할까.’

식당을 찾아봤다. 아들이 가보고 싶다고 했던 에시마대교도 다시 검색했다. 그리고 가장 열심히 찾아본 것은 역시 프라모델이었다.

아들은 자동차 프라모델을 좋아한다. 전날 요나고까지 나가 에디온에서 두 개나 샀지만, 프라모델이 있는 곳이라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좋아했다.

검색하다 PLANT-5 사카이미나토점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꽤 큰 쇼핑센터였다. 지도를 확대해보니 바로 앞에 맥도날드도 있었다.

전날 아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 맥도날드 먹고 싶어.”

이거면 되겠다 싶었다.

'전기자전거를 빌린다. PLANT-5까지 간다. 아들이 좋아하는 프라모델을 구경한다.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에시마대교까지 간다.'

하루 일정으로 적당해 보였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것저것 더 찾아봤다. 어쩌면 그것이 그날 아침 내가 할 수 있었던 사과였는지도 모르겠다.

말로 다시 미안하다고 설명하는 대신, 오늘 하루만큼은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해주고 싶었다.

7시 반쯤 아들을 깨웠다.

“아들, 일어나야지.”

아들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웅얼거렸다.

“으응…”

“어제 일찍 깨워달라고 했잖아.”

반응이 없었다. 잠시 기다렸다. 평소 집에서는 주말이면 10시, 11시까지 자는 아이였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며칠 내내 평소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새로운 곳에 왔다는 들뜸 때문인지, 아빠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다.

잠든 얼굴을 보고 있으니 굳이 깨우고 싶지 않았다.

‘피곤하겠지.’

그냥 재우기로 했다. 나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에서 움직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9시 10분쯤이었다. 아들이 일어나 있었다.

“잘 잤어?”

“응.”

아직 전날의 어색함이 완전히 사라진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는 새벽에 찾아본 것들을 하나씩 이야기했다.

“아빠가 아침에 좀 찾아봤거든. PLANT-5라고 큰 쇼핑센터가 있더라. 프라모델도 있는 것 같아.”

아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프라모델 있어?”

“응. 그리고 바로 앞에 맥도날드도 있어.”

반응은 훨씬 빨랐다.

“가자.”

역시 프라모델과 햄버거였다. 아들과 다시 가까워지는 데 꼭 거창한 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호텔 1층으로 내려가 전기자전거 두 대를 빌렸다. 여행 둘째 날 한 번 타봤기 때문에 사용법도 익숙했다. 그런데 출발하려는데 내 자전거가 이상했다.

전원을 켰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조금 지나자 꺼졌다. 다시 켰다. 또 꺼졌다. 자동차로 치면 시동이 자꾸 꺼지는 느낌이었다.

프런트 직원에게 이야기했다. 직원은 먼저 배터리를 바꿔줬다.

다시 전원을 켰다. 또 꺼졌다. 배터리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자전거를 통째로 바꿨다. 새 자전거의 전원을 켜자 이번에는 계기판의 불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됐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계속 다시 켜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되겠지, 이번에는 되겠지 하며 같은 방식을 반복하지만 애초에 문제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배터리만 갈아 끼울 것이 아니라 자전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비슷한지 모른다. 잘되지 않는다고 무조건 더 세게 밀어붙이는 것이 답은 아니다. 때로는 방법을 바꾸고, 방향을 바꾸고,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편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무엇이든 내가 더 열심히 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엔진이 꺼질수록 다시 시동을 걸었고, 일이 꼬일수록 더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고장 난 자전거 하나를 붙잡고 씨름할 이유가 없었다. 안 되면 바꾸면 됐다. 그 단순함이 조금 부러웠다.

아들이 먼저 출발했다. 나도 뒤따라 페달을 밟았다. 모터가 등을 살짝 밀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전기자전거가 꽤 마음에 들었다.

힘들게 속도를 내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주변 풍경이 사라질 만큼 빠르지도 않았다. 자동차를 탔다면 그냥 지나쳤을 골목이 보였고, 걸어가기에는 멀었던 곳까지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아들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너무 빨리 가면 뒤에 있는 아들이 신경 쓰였고, 너무 천천히 가면 아들이 답답해했다. 내가 조금 앞서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면 아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나란히 달리기도 했다.

함께 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늘 나란히 붙어서 가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계속 앞에서 끌고 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내가 먼저 길을 보고, 때로는 아들이 앞서가고, 서로의 모습이 보일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

PLANT-5까지는 약 5.9km였다. 숫자로 보면 별것 아닌 거리였지만 자전거로 달리면 제법 작은 여행이 된다.

Google 지도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내비게이션을 켰다. 이번에는 내가 앞서 달렸고 아들이 뒤를 따라왔다.

가끔 뒤를 돌아봤다. 아들은 잘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다 길이 한적해지면 어느새 둘이 나란히 달렸다.

햇볕은 뜨거웠다. 그래도 자전거가 움직이면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좋았다. 중간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하나씩 골랐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며칠 전 처음 이 동네에서 자전거를 탔을 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어느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도로의 모습이 조금 익숙했다.

여행은 늘 그런 것 같다. 낯선 장소가 생활권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떠날 시간이 가까워진다.

PLANT-5에 도착하자 아들은 예상대로 프라모델부터 찾았다. 자동차 모형 상자를 하나씩 들었다 놨다 했다.

그리고 결국 마음에 드는 프라모델 하나를 골랐다. 신발 코너를 지나는데 아식스 러닝화도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재고 할인 중이었다. 한국에서 판매가격을 살펴봤는데 재고할인 가격이 한국 판매가격의 40% 수준이었다.

“이거 어때?”

나는 올블랙 모델이 괜찮아 보였다. 아들은 검정색 갑피에 흰색 밑창이 들어간 제품을 골랐다.

“난 이게 더 예쁜데.”

이번에는 아들 취향이 이겼다. 내 눈에는 올블랙이 더 예뻤지만, 아들 신발이었다.

“그래. 네가 신을 거니까 네가 골라.”

조금 뒤 아들이 작은 샤프심통 하나를 들고 왔다.

“아빠, 이거 일본에서만 살 수 있는 거래.”

알루미늄처럼 생긴 작은 통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순간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사용하던 버스 회수권통이었다. 당시에는 버스를 탈 때 작은 종이 회수권을 냈다. 그 회수권을 넣어 다니는 작은 통이 있었는데, 위쪽을 밀면 뚜껑이 열리면서 회수권 한 장이 앞으로 나오는 구조였다.

아들은 지금 샤프심을 넣을 통을 들고 있었다. 나는 같은 나이 무렵 버스 회수권을 넣고 다니던 통을 떠올리고 있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중학생이었던 나와 중학생이 된 아들이 작은 금속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깐 마주친 것 같았다.

시대는 달라졌다. 통 안에 들어가는 것도 달라졌다. 그래도 자기에게 필요한 작은 것을 소중하게 담아 가지고 다니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쇼핑을 마치고 바로 앞 맥도날드로 갔다. 나는 늘 그렇듯 빅맥을 주문했다. 외국에 가서도 맥도날드에 가면 빅맥이다. 아들은 늘 먹던 데리야키버거 세트를 골랐다.

햄버거를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들이 먼저 말했다.

“알파드다.”

아들이 좋아하는 차였다. 토요타 알파드. 일본에 와보니 알파드를 비롯해 비슷한 형태의 미니밴이 많이 눈에 들어왔다. 노아. 벨파이어. 복시.

우리는 한동안 차 이야기를 했다. 거리에는 작은 경차들도 유난히 많이 보였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크기와 형태의 차들이 일상적으로 도로를 달렸다. 좁은 골목과 주차공간에 맞춰 생활 속 이동수단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정확한 분석이라기보다 며칠 동안 거리를 보며 느낀 여행자의 인상일 뿐이다.

아들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전날 밤 한 시간 동안 서로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던 두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침까지 남아 있던 어색함도 어느새 거의 사라져 있었다.

가족이란 참 이상하다. 싸우고, 서운해하고, 너무 많이 말했다고 후회하다가도, 햄버거 하나를 앞에 두고 자동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평소의 자리로 돌아온다.

물론 내가 약간의 선물공세를 하기는 했다. 프라모델도 샀고, 운동화도 샀고, 샤프심통도 샀다.

‘돈으로 환심을 산 건가.’

혼자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했다. 전날 밤까지만 해도 서로 조금 서먹했던 아들과 다시 웃고, 햄버거를 먹으며 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선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새벽부터 아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봤다는 것을, 아들도 조금은 알아줬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때로는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마음에 도착하는 날도 있다. 오늘은 우리가 나눈 말보다 함께 보낸 시간이 우리 사이를 먼저 풀어주고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탔다. 다음 목적지는 에시마대교였다. 멀리서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편 끝자락이 마치 절벽처럼 가파르게 솟아 보였다.

“에이, 설마 진짜 저 정도로 가파르겠어?”

내가 말했다. 아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아빠, 저거 착시래. 직접 가보면 알 수 있대.”

그리고 이번에는 아들이 먼저 길을 찾기 시작했다. 다리에 가까워질수록 규모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와…”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위압적이었다. 나는 솔직히 조금 겁이 났다. 멀리서 ‘정말 가파르게 보이는구나’ 하고 사진만 찍고 돌아가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시라면 그냥 착시라고 믿고 돌아가도 될 것 같았다. 굳이 바다 위로 높이 떠 있는 저 다리를 자전거까지 끌고 건널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들은 나를 바라봤다.

“우리 건너가볼까?”

나는 다시 다리를 올려다봤다.

“진짜?”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가보자.”

그 말을 들으니 물러서기가 애매해졌다. 무섭다고 말하면 아들이 실망할 것 같았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리고 둘이 자전거를 끌고 천천히 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몇 걸음. 몇십 걸음. 계속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졌다.

아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다가 보였다. 바람도 강해졌다. 아래에서 맞을 때는 시원했던 바람이 다리 위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자전거 손잡이를 꽉 잡았다.

‘많이 높은데...’

한 번 아래를 바라보자 갑자기 몸이 긴장됐다.

두려움이 올라왔다.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무서움이 가슴을 쿵 치는 것 같았다.

‘자전거를 놓치면 어쩌지.’

‘갑자기 균형이 흔들리면?’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들은 내 뒤에 바짝 붙어서 걷고 있었다. 내 모습이 조금 우스운지 웃는 기색도 보였다.

“조심해.”

아들에게 하는 말인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한 발을 내디뎠다. 또 한 발.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두려움은 더 커졌다.

‘괜히 올라왔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결국 움직여야 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끝내 반대편까지 내려왔다.

평지에 발을 딛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숨을 크게 한번 내쉬었다. 다리를 올려다봤다.

‘건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려면, 방금 건너온 다리를 다시 건너야 했다.

아들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시마대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반대편에서 바라본 도로는 마치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는지 몇 번이고 화면을 확인했다. 나는 웃을 여유가 없었다.

아들에게 저 다리는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은 풍경이었지만, 내게는 다시 한번 넘어야 할 두려운 구간이었다.

이제 돌아갈 차례였다. 자전거 손잡이를 다시 잡았다.

이번에는 알고 있었다. 어느 지점부터 무서워지는지. 어느 정도 올라가면 바람이 강해지는지. 얼마나 높은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보다 더 겁이 났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혼잣말이 시작됐다.

‘멈추지 말자.’

한 걸음.

‘여기서 멈추면 이 두려움과 더 오래 같이 있어야 한다.’

또 한 걸음.

‘끝은 있다.’

나는 좌우를 보지 않았다. 멀리 앞만 바라봤다. 자전거 손잡이를 꽉 잡았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바람이 불었다. 무서웠다. 굳이 무섭지 않은 척하지 않았다. 두려움은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알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운 상태에서도 계속 움직이는 것이었다.

걸었다.

계속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느낌이 달라졌다.

‘지났다.’

다리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서워했던 구간이 이미 뒤로 넘어가 있었다. 몇 분 전까지 그렇게 두렵던 자리를 어느새 지나와 있었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두려운 구간도 결국 ‘구간’이었다. 영원히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 지난 한 달이 떠올랐다.

처음 맡았던 제안PM.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직접 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 일도 헷갈렸다.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매일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새벽에 출근했고, 자정 가까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 주말도 제대로 없었다. 중간에는 몇 번이나 생각했다.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그때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끝났다. 마지막 장표가 완성됐다. 마지막 검토가 끝났다. 제안서를 제출하는 날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도 빠져나오고 싶었던 제안룸의 문을 열고 나오는 날도 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에도 끝은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 그랬다. 견디기 어려웠던 일에도 끝이 있었다. 반대로 너무 좋아서 영원했으면 하는 순간에도 끝은 있었다.

이번 여행도 그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낯선 요나고공항에 내려 승차권 한 장 사는 것도 긴장했는데, 벌써 마지막 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인생도 결국 그럴 것이다. 좋은 구간도 지나가고, 힘든 구간도 지나간다. 언젠가는 삶 자체에도 끝이 온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두려움을 데리고 걸어도 됐다. 멈춰 있으면 두려움과 더 오래 함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 걸음이라도 내디디면 그 구간의 끝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날 에시마대교 위에서 나는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웠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운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다리를 내려왔다. 자전거에 올라탔다. 아들과 숙소를 향해 다시 달렸다. 둘 다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루 동안 자전거로 달린 거리가 어느새 10km를 훌쩍 넘었다.

“힘들지?”

“더워.”

“그러게.”

편의점이 보였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웠다. 아들이 ‘아사히 바야리스 ‘오토나노 사와야카 레모네이드’(Asahi Bireley’s 大人のさわやかレモネード) 한 병을 골랐다. 과즙 3%에 비타민C를 넣은 레모네이드였다.

나도 같은 걸 하나 골랐다. 뚜껑을 열자마자 갈증을 참지 못하고 몇 모금 연달아 들이켰다.

“오, 이거 맛있네.”

차갑고 새콤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더위와 갈증이 한꺼번에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들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전날 밤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던 아들과 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땀에 젖은 채 편의점 앞에서 음료 하나를 나눠 마시며 웃고 있다.

아마 관계라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의 대화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걷고, 같이 땀 흘리고, 같이 먹고, 같이 무서워하고, 또다시 웃는 시간을 계속 쌓아가는 것.

숙소로 돌아왔다. 씻고 조금 쉬었다. 저녁에는 다시 아들과 사우나에 올라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이제 이곳의 사우나도 너무 익숙했다.

처음에는 여행지의 특별한 온천이었는데 어느새 하루를 정리하는 공간이 돼 있었다. 밤이 되자 익숙하게 라멘을 먹으러 내려갔다. 처음에는 신기했던 요나키소바도 이제는 우리 여행의 일과가 됐다.

아들과 나란히 앉아 라멘을 먹었다. 전날 밤과 달리 어색하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오자 아들이 3D프린터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머릿속으로 생각한 것을 설계해 실제 형태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좋았다. 전날 밤 내가 그토록 길게 이야기했던 이유도 사실 그것이었다.

유튜브를 보지 말라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아들이 자신의 시간을 소비하는 데만 쓰지 않았으면 했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영상을 넘기고, 또 넘기고, 웃고, 다시 넘기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 직접 만들어보는 경험도 해봤으면 했다.

생각하고, 설계하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하고, 마침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보는 것. 3D프린터는 그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소비하는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넘어가보는 경험이라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쓰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소비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내가 본 것을 다시 생각하고, 느꼈던 것을 문장으로 옮기고,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

아들이 머릿속의 형상을 설계해 3D프린터로 꺼내는 것과 어쩌면 닮아 있었다. 아들이 무엇을 만들지는 모른다.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실패한 출력물이 방 한쪽에 잔뜩 쌓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자기 머릿속에만 있던 무언가를 현실로 꺼내보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라면, 나는 기꺼이 응원해주고 싶다.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새벽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아들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아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았다. 프라모델을 샀고, 운동화를 샀고, 샤프심통도 샀다. 선물공세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그런데 내가 정말 주고 싶었던 것은 물건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빠가 너를 생각하고 있어.’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들도 조금은 알아줬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이야기했고,

다시 웃었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에시마대교를 건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말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함께 보낸 하루가 대신 설명해주기도 한다. 진심이 늘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한참 뒤에, 같이 먹고, 같이 걷고, 같이 웃은 다음에야 도착하기도 한다.

내일이면 돌아간다. 아침에는 일출을 보고 싶다. 해 뜨는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야 한다.

‘일출을 보고, 마지막으로 온천에 들어갔다가, 방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해야지.’

계획은 완벽했다. 문제는 하나였다. 내가 정말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느냐는 것.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내일 일출 보려고 일찍 일어날 거야.”

아들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굳이 적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도 자신이 없었으니까. 불을 끄고 누웠다. 사카이미나토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지쳐 있었다. 회사에서 보낸 한 달을 겨우 빠져나와 몸만 일본까지 데려온 사람 같았다. 꿈속에서도 일을 했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지 못해 아들에게 서운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들과 부딪혔고, 아버지는 어디까지 말해야 하는지, 리더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나는 왜 그렇게 모든 시간을 아까워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온전한 날,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10km 넘게 달렸다. 벽처럼 보이는 다리를 걸어 올라갔다. 무서웠다.하지만 계속 걸었다. 그리고 알았다.

'두려운 구간에도 끝은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져갈 가장 중요한 기념품은 물건이 아니라 그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또 끝이 보이지 않는 구간을 만날 것이다. 일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람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며 맞닥뜨릴 어떤 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때 나는 에시마대교 위에서 자전거 손잡이를 꼭 쥐고 걸었던 순간을 떠올릴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무섭고, 당장 멈추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 발씩 앞으로 내디뎠던 순간.

그때의 나에게 했던 말을 다시 꺼내볼 것이다.

멈추지 말자.

두려운 구간에도 끝은 있다.

무서워도 한 걸음씩 나아가자.

그렇게 요나고에서의 마지막 온전한 하루가 끝났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아들과 함께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