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 게임즈는 오랫동안 ‘끝나지 않는 게임’을 만들어온 회사다. ‘League of Legends’는 2009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고, ‘VALORANT’와 ‘Teamfight Tactics’ 역시 정기적인 업데이트와 시즌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무료로 시작할 수 있게 한 뒤 새로운 캐릭터와 스킨, 시즌 콘텐츠를 꾸준히 추가하는 라이브서비스와 F2P(Free-to-Play)는 라이엇의 대표적인 성공 방식이었다.
그런 라이엇에서 최근 조금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 9월 PAX West 2026에 참석한 라이엇 공동창업자이자 최고제품책임자(CPO) 마르크 메릴(Marc Merrill)은 “모든 게임이 무한할 필요는 없다(Not every game needs to be infinite)”고 말했다. 모든 게임을 반드시 무료로 만들거나 장기 서비스를 전제로 설계할 필요는 없으며, 실제로 회사 내부에서는 무료가 아닌 프로젝트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이엇이 라이브서비스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게임마다 어울리는 수명과 사업 모델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라이브서비스로 성장한 라이엇이 직접 꺼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런 이야기가 나온 걸까.
좋은 게임이라고 오래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는 프로젝트 ‘2XKO’가 있다. ‘2XKO’는 라이엇이 2019년 ‘Project L’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공개한 2대2 격투 게임으로, ‘League of Legends’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활용했다. 오랜 개발을 거쳐 2025년 얼리 액세스를 시작했고, 2026년 1월 정식 출시됐다. 무료 플레이와 정기적인 신규 캐릭터, 온라인 대전을 결합해 라이엇이 ‘League of Legends’와 ‘VALORANT’에서 쌓아온 라이브서비스 경험을 격투 게임에 적용한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정식 출시 후 불과 몇 달 만에 방향이 바뀌었다. 라이엇은 여러 차례 업데이트를 진행하며 이용자 반응과 신규 유입, 잔존율 등을 지켜봤지만, 그 효과가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새 캐릭터와 PvE 콘텐츠, 대회가 좋은 반응을 얻은 시기도 있었지만 이용자 규모를 충분히 키우지 못했고, 운영 비용 역시 매출을 크게 웃돌았다.

결국 라이엇은 ‘2XKO’를 현재와 같은 규모로 계속 개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2026년 말 신규 개발을 종료하기로 했다. 다만 서비스 자체를 끝내는 것은 아니다. 서버와 다운로드, 오프라인 플레이는 유지하고, 더 이상 대규모 신규 콘텐츠를 추가하지 않는 형태로 남길 예정이다.
이 지점에서 마르크 메릴의 발언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는 ‘2XKO’를 만든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보지는 않았다. 대신 지금의 신작은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과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미 이용자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인기 게임은 물론이고,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스트리밍 콘텐츠까지 모두 같은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메릴의 설명은 라이브서비스 게임이 가진 부담을 잘 보여준다. 한 번 구매하고 일정 시간 즐긴 뒤 떠나도 되는 패키지 게임과 달리, 라이브서비스는 이용자가 계속 돌아와야 한다. 다음 시즌과 신규 콘텐츠, 서버 운영을 이어가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이용자가 꾸준히 남아 있어야 한다. 결국,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 그 게임을 몇 년 동안 계속 플레이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라이브서비스가 경쟁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다
라이브서비스 게임이 계속 성장하려면 이용자가 한 번 들어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시즌에도 돌아오고, 새 캐릭터와 이벤트를 경험하며 꾸준히 시간을 써야 한다. 게임을 출시하는 순간이 완성이 아니라 장기 운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용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돼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League of Legends’의 랭크를 꾸준히 플레이하면서 ‘VALORANT’의 시즌을 따라가고, 다른 게임의 배틀패스와 이벤트까지 챙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무료로 시작할 수 있는 게임이라도 장기간 즐기려면 결국 계속 시간을 내야 한다.
시장 자료에서도 이런 쏠림은 확인된다. Newzoo가 2025년 PC와 콘솔 시장을 분석한 결과, 상위 20개 게임이 전체 플레이 시간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상위 10개만 놓고 봐도 PC는 47%, PlayStation은 49%, Xbox는 44%였다. 이미 자리 잡은 몇몇 게임이 이용자의 상당한 시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라이브서비스 게임은 이런 게임들과 동시에 경쟁해야 한다. 다른 신작보다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용자가 이미 ‘Fortnite’, ‘GTA’, ‘Minecraft’ 같은 게임에 쓰고 있는 시간 중 일부를 새 게임에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라이브서비스 시장에서는 가격 못지않게 시간이 중요한 자원이 된다.
개발자들도 이런 부담을 의식하고 있다. GDC의 2025년 개발자 조사에서는 AAA 개발자의 33%가 라이브서비스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자신의 다음 게임으로 라이브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응답은 전체의 13%에 그쳤다. 반대로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40%를 넘었다. 라이브서비스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모든 게임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공 공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모든 게임이 플레이어의 ‘주력 게임’일 필요는 없다
라이브서비스는 이용자가 많을수록 운영하기 유리하다. 사람이 많으면 매칭이 원활해지고 커뮤니티가 커지며, 스트리밍이나 e스포츠 같은 주변 생태계도 활발해진다. 그 수익을 다시 신규 콘텐츠와 업데이트에 투자하면서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일정 규모를 넘지 못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업데이트와 서버 운영에는 계속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용자가 늘지 않으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부담도 커진다. ‘2XKO’에서 라이엇이 ‘지속 가능한 규모’를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다.
여기에 이용자의 시간 문제도 있다. 라이브서비스 게임은 출석 보상, 일일 퀘스트, 배틀패스, 기간 한정 이벤트처럼 다시 접속할 이유를 꾸준히 만든다. 하나의 게임만 할 때는 즐길 거리지만, 여러 게임을 동시에 플레이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 안에 해야 할 퀘스트와 이번 주 안에 받아야 할 보상, 시즌이 끝나기 전에 채워야 할 배틀패스가 게임마다 쌓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장치는 이용자를 다시 게임으로 불러들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반대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2022년 CHI PLAY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일일 퀘스트와 로그인 보상 같은 반복형 보상을 이용자들이 동기부여로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일부는 놓칠 것에 대한 불안(FoMO)이나 ‘해야 할 일’, 즉 의무처럼 느꼈다고 보고했다. 게임이 휴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일정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두세 개의 라이브서비스 게임을 함께 즐긴다면 각각의 게임이 요구하는 접속과 이벤트를 모두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결국 모든 게임이 한 이용자의 ‘주력 게임’ 자리를 동시에 차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이 그렇게 만들어질 필요도 없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볍게 즐기는 게임도 있고, 20시간 정도 플레이한 뒤 엔딩을 보는 게임도 있다. 반대로 ‘League of Legends’처럼 10년 넘게 반복해서 돌아갈 수 있는 게임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좋은가가 아니라 게임마다 어울리는 수명이 다르다는 점이다.
마르크 메릴이 언급한 ‘premium game’도 여기에서 의미가 생긴다. 보통 처음에 정해진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게임으로, 국내에서는 흔히 패키지 게임이나 일회성 구매 게임으로 부른다. 이런 게임은 반드시 수년 동안 이용자를 붙잡아둘 필요가 없다. 10시간이든 50시간이든 그 안에서 가장 적절한 경험을 만들고, 이야기가 끝나야 할 때 끝낼 수 있다. 메릴 역시 F2P가 오랫동안 플레이하면서 스킨이나 외형 상품을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게임에는 잘 맞지만, 모든 게임에 같은 구조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접속과 장기 운영을 위한 시스템이 오히려 게임의 설계를 제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게임이 이용자의 일상을 차지하는 ‘주력 게임’이 될 필요는 없다. 끝이 있다는 것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개발자가 그 경험을 어디에서 마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든 게임이 10년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라이엇에게 유료 완결형 게임이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 ‘Riot Forge’를 통해 ‘Ruined King’, ‘Song of Nunu’, ‘CONVERGENCE’ 같은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다만 이 게임들은 외부 개발사가 라이엇의 세계관을 활용해 만든 작품들이었고, ‘Riot Forge’ 역시 2024년 운영을 종료했다.
이번 마르크 메릴의 발언은 그래서 조금 다르게 읽힌다. 라이엇 내부에서도 이제 모든 게임을 F2P나 장기 라이브서비스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릴은 실제로 무료가 아닌 프로젝트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지만, 어떤 작품인지와 출시 방식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라이엇이 라이브서비스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League of Legends’와 ‘VALORANT’는 여전히 장기 운영을 이어가고 있고, 준비 중인 MMO 역시 오랜 기간 서비스를 전제로 개발되고 있다. 하나의 모델을 버리고 다른 모델로 옮겨간다기보다, 게임의 성격에 따라 다른 운영 방식과 사업 모델을 선택할 수 있다는 쪽으로 선택지를 넓히는 흐름이다. ‘2XKO’ 역시 라이브서비스 자체가 잘못됐다는 사례로 볼 필요는 없다. 같은 회사의 ‘League of Legends’는 15년 넘게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어떤 게임은 계속 돌아올 이유를 만들면서 오래 살아남고, 어떤 게임은 굳이 그런 구조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오래 서비스되는 게임을 성공한 게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강했다. 시즌이 계속되고, 이용자가 남고, 매출이 이어진다면 당연히 성공적인 서비스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모든 게임의 목표가 이용자를 최대한 오래 붙잡아두는 데 있을 필요는 없다.
어떤 게임은 오랜 시간 변화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일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게임은 정해진 이야기와 경험을 충분히 전달한 뒤 마무리되는 편이 더 잘 어울린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운영했느냐보다, 그 게임에 맞는 수명과 운영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마르크 메릴의 “모든 게임이 무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라이브서비스로 성장한 라이엇조차 이제 게임마다 다른 수명과 운영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게임의 수명도 결국 설계의 일부라면, 오래 끌고 가는 능력만큼 어디서 마무리할지 아는 능력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