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콘텐츠에서 ‘진행 중인 세계’로 이동하는 게임의 변화
[메타X(MetaX)] Roblox가 2월 4일 공개한 'real-time dreaming' 실험 영상은 짧지만 강렬했다. 바이킹이 걷는 마을 풍경. 그곳에 "쓰나미"라는 단어 하나가 입력되자 거대한 파도가 밀려온다. 이어 "보트"라는 명령에 배가 등장하고, 바이킹은 그 배를 타고 바다를 떠다닌다. 코딩도, 모델링도, 에셋 임포트도 없었다. 그저 자연어로 세계를 지시했을 뿐이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다. Roblox가 제시하는 것은 '게임을 만든다'는 행위의 정의 자체를 흔드는 신호다. "코딩이나 에셋 제작"이 아니라 "말로 세계를 바꾼다"는 발상. 이 전환이 게임 제작의 미래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 그 의미를 짚어본다.
플레이 안에서의 생성
Roblox가 발표한 'real-time dreaming'은 단순한 3D 모델 생성 도구가 아니다. 이들이 강조하는 핵심은 AI world model, 즉 세계의 규칙과 상태를 이해하는 생성 시스템이다.
함께 공개된 '4D creation' 베타는 이 비전의 첫 단계다. 사용자가 "자동차"라고 입력하면 단순히 3D 메쉬가 아니라, 바퀴가 돌아가고 실제로 운전할 수 있는 기능하는 객체가 생성된다. Roblox는 이를 '4D'라 부른다. 3차원 공간에 시간과 행위가 더해진 생성이라는 뜻이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 생성이 에디터 밖이 아니라 플레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개발자 Laksh의 테스트 게임 'Wish Master'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플레이 중 16만 개 이상의 객체를 생성했다. 자동차, 비행기, 심지어 날아다니는 용까지. 제작과 플레이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에셋 생성'과 '세계 모델'의 차이
현재 게임 개발에 활용되는 대부분의 생성 AI는 결과물을 만드는 도구다. 이미지 생성 AI는 텍스처를, 3D 생성 AI는 메쉬를, 코드 생성 AI는 스크립트를 "생산"한다. 개발자는 이 결과물을 받아 직접 조합하고 배치하고 수정해야 한다.
Roblox의 접근은 다르다. 'real-time dreaming'이 지향하는 것은 규칙과 관계와 상태를 이해하는 세계 단위의 생성이다. 단일 객체가 아니라 그 객체가 작동하는 맥락, 그것이 다른 요소와 상호작용하는 방식, 물리 법칙과 행동 패턴까지 포함한 생성 말이다.
'real-time dreaming'이라는 표현 자체가 시사적이다. 세계를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계속 상상되고 수정되는 상태로 본다는 전제. 게임 월드를 완성품이 아닌 꿈처럼, 즉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것으로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Google의 'Project Genie', Meta와 xAI의 유사 프로젝트들이 경쟁하는 이 영역에서 Roblox만의 차별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가 매일 세계를 만들고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연구실의 데모가 아니라, 실제 생태계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목표로 한다.
UGC 플랫폼이기에 가능한 실험
이 실험이 EA나 Ubisoft 같은 AAA 퍼블리셔가 아니라 Roblox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Roblox의 구조 자체가 이런 실험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Roblox는 중앙 개발 스튜디오가 아니라 수백만 명의 창작자가 콘텐츠를 만드는 플랫폼이다. 여기서는 퀄리티보다 속도, 반복, 실험이 중요하다. 완성도 높은 하나의 타이틀을 3년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수천 개의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도하고 버리는 환경. AI 생성이 가장 먼저 필요한 곳은 바로 이런 곳이다.
'Wish Master'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플레이어들이 4D 생성 기능을 활용하자 평균 플레이 타임이 64%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게임플레이가 되었다는 의미다. AAA 개발사가 통제된 경험과 서사를 중시한다면, Roblox는 창발적 혼돈을 허용한다. 'real-time dreaming'은 후자의 철학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만드는 사람'에서 '지시하는 사람'으로
자연어가 주요 인터페이스가 될 때, 제작자에게 요구되는 스킬의 중심이 이동한다. 단순 모델링 만들기에서 의도 설명으로, 또 구현에서 조율로.
3D 모델러는 더 이상 폴리곤을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빨간색 스포츠카, 낮은 차체, 커브진 헤드라이트"처럼 원하는 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프로그래머는 코드를 한 줄씩 작성하는 대신, 생성된 스크립트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판단하고 조정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제작자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나 손보다 판단이 중요해지는 구조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적합성을 평가하고, 전체적인 경험의 방향을 설정하고, 시스템이 만들어낼 수 없는 미묘한 디테일을 책임지는 것이 새로운 전문성이 된다.
이것이 진입 장벽을 낮추는가, 아니면 전문성을 재정의하는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기술적 장벽은 낮아지지만, 좋은 의도를 명확히 표현하고 생성된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은 여전히, 어쩌면 더욱 중요해진다.
‘꿈꾸는 세계’가 통제 불능이 될 가능성
실시간 생성은 강력한 만큼 위험을 동반한다. 가장 큰 문제는 통제 불가능성이다. 플레이어가 어떤 프롬프트를 입력할지, 그 입력이 게임 시스템과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할지는 개발자가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 실제로 Wish Master의 개발자 Laksh 역시 “플레이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요청을 표현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밸런스 붕괴 또한 현실적인 위험 요소다. 플레이어가 즉석에서 강력한 무기나 불공정한 이점을 생성할 수 있다면, 게임의 균형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모든 가능성을 사전에 설계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밸런싱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가 된다.
콘텐츠 품질의 편차도 무시할 수 없다. AI가 생성한 세계는 때로는 놀라울 만큼 적절하지만, 때로는 어색하거나 깨진 결과물을 내놓는다. 이러한 불균질한 경험을 사용자가 과연 ‘게임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책임의 귀속이다. AI가 생성한 세계에서 부적절한 콘텐츠나 저작권 침해, 혹은 유해한 경험이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플랫폼인가, 도구를 제공한 창작자인가, 아니면 프롬프트를 입력한 플레이어인가.
Roblox의 제품 디렉터 Karun Channa는 ‘real-time dreaming’을 여전히 “연구 단계에 있는 개념”이라고 설명하며, 구체적인 출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시간 생성이 열어젖힐 가능성만큼이나, 그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Roblox 역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Roblox가 던지는 질문, '게임은 완성되어야 하는가'
전통적인 게임 개발은 비교적 명확한 단계를 따른다. 제작, 출시, 유지보수. 게임은 어느 시점에 ‘완성’되고, 그 이후는 버그 수정과 콘텐츠 확장 영역으로 넘어간다. 완성은 전제이며, 운영은 그 연장선이다.
Roblox가 제시하는 세계는 이 구조와 다르다. 생성, 수정, 소멸, 재생성. 게임을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하는 상태로 다루는 방식이다. AI world model이 만들어내는 것은 고정된 경험이 아니라, 계속 열리고 닫히는 가능성의 장이다.
이 접근은 게임이라는 매체의 성격 자체를 흔든다. 게임이 저자의 의도가 명확히 각인된 ‘작품’에서, 플레이어와 AI가 함께 구성하는 즉흥적 공간으로 이동한다면 어떨까. 그 순간 게임은 더 이상 완성된 대상이 아니라, 항상 진행 중인 과정이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달라진다.
게임은 누가 만드는가. 언제까지 만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가 제작의 범위인가.
Roblox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질문 자체를 가능한 한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실험을 보여준다. 완성이라는 개념을 유예한 채, 게임의 정의를 다시 묻는 시도다.
말로 만드는 세계는 이미 시작됐다
‘real-time dreaming’은 아직 완성된 기술도, 완제품도 아니다. 데모 영상의 프레임레이트는 낮고, 생성된 비주얼은 조잡하며, 시스템의 제약은 분명하다. Roblox 역시 이를 “연구 단계”라고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방향성만큼은 분명하다. 이것은 기존 제작 도구의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게임이라는 매체의 성격 변화를 예고한다. 코드와 에셋을 조합해 세계를 설계하는 방식에서, 말로 세계를 불러내는 방식으로. 완성된 경험을 전달하는 구조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가능성의 공간을 여는 구조로의 이동이다.
Roblox의 실험은 완성도를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상상이 즉시 세계로 변환되는 환경을 먼저 열어 보인다. 그것이 혼란스러운 놀이터가 될지, 창의성의 새로운 지평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게임을 만드는 방법은 이미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자연어와 AI가 있다.
그리고, 이제 진짜 질문이 시작됐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말로 불러낼 것인가?
그 세계가 무너질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상상이 즉시 현실이 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상상해야 하는가?
Roblox는 도구를 열어두었다. 하지만 이 도구로 무엇을 만들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는 더 이상 그들이 정하지 않는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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