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세계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인공지능이 단지 기술이 아니라, 교육과 사법, 플랫폼과 노동, 심지어 정체성과 신원의 영역까지 빠르게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더는 혁신의 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겠다는 의지를 품은,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까?
검색의 종말, 질문의 시작
구글은 2025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 ‘AI 모드’를 공식 개방했다. 단순한 검색 기능이 아닌, 질문을 이해하고 대화를 이어가며 정보를 제공하는 ‘대화형 AI’다. 이제 사용자는 키워드 대신 문장으로 묻고, 구글은 링크가 아닌 판단 가능한 요약과 선택지를 제공한다. “서울 주말 날씨”를 물으면, 기온뿐 아니라 옷차림까지 제안하고, “가성비 좋은 유학 프로그램”을 물으면 이전 대화 흐름을 기억한 채 추천을 이어간다.
이제 검색은 ‘지식의 지도’가 아니라 ‘목적지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었다. 사용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길 기다리던 시절은 저물고, 이제 AI가 먼저 이해하고 제안하는 시대가 시작됐다. 질문은 더 쉬워졌지만,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제 누가 질문을 주도하는가?”
[☞기사 링크] 구글, AI 기반 검색 'AI 모드' 美 내 개방… 검색 판도 변화 예고
판단하는 기술, 정의를 설계하는가
같은 달, 일본 최고재판소장은 놀라운 발언을 남겼다. “AI가 사법 판단에 일부 관여할 수 있다.” 사법은 가장 인간적인 판단의 영역이었다. 억울함과 복잡한 맥락, 감정과 윤리가 뒤얽힌 세계다. 그런데 AI가 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명확하게 말했다. AI는 판례 분석, 문서 요약, 기록 분류 등 실무 영역에서 이미 뛰어난 보조자이며, 점차 더 깊이 관여하게 될 것이라고. 한국도 뒤따랐다. 2025년 4월, 대법원은 ‘사법 AI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있다. “AI가 내린 판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기사 링크] "AI가 법의 문을 두드린다"...日 최고재판소, ‘AI 사법 참여’ 가능성 언급
그리고 또 다른 뉴스. 구글이 자사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만 13세 미만 어린이에게도 개방한다는 발표다. 부모가 관리하는 계정을 통해, 아이들도 이제 AI 챗봇과 대화하며 숙제를 하고, 동화를 만들고, 감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은 항상 질문을 동반한다. 환각(hallucination), 데이터 오용, 감정적 의존, 비판적 사고의 위축. AI는 아이에게 친구일 수 있는가, 혹은 ‘가르치는 도구’ 그 이상을 넘어 ‘형성하는 존재’가 될 것인가. 유네스코는 이에 대해 경고한다. 아직 어떤 나라도 이 새로운 교사의 자격을 묻는 윤리적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는 AI를 아이에게 가르치기 전에, AI로부터 아이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사 링크] 구글 제미나이, 13세 미만 어린이에게 개방…‘AI와 아동’ 논쟁 불붙나
‘나는 사람입니다’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OpenAI의 CEO 샘 알트만은 이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응답했다. 그는 ‘월드(World)’ 프로젝트를 통해 AI가 아닌 ‘진짜 사람’임을 증명하는 디지털 여권, ‘월드 ID’를 제안했다. 홍채를 스캔해 단 한 번만 발급 가능한 디지털 신분. 블록체인 위에 영구 기록되고, 누구도 복제할 수 없다.
이제는 사람이 시스템 속에서 AI인지 아닌지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 월드 ID는 단순한 신원 인증이 아니다.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은 어떻게 사람임을 증명할 것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기술적 대답이다.
[☞기사 링크] AI 시대, "진짜 인간임을 증명하라"...월드 ID의 실험
일자리의 재정의: AI는 누구의 편인가
듀오링고는 ‘AI-First’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튜터링, 번역, 창작 기능을 AI로 대체하고,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수백 명의 계약직 인력을 줄였다. 내부 이메일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AI가 처리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선 더 이상 사람을 채용하지 않겠다.”
효율인가, 통제인가? AI는 콘텐츠를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 작가와 번역가들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AI는 단지 도구인가, 아니면 ‘조직의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기술’인가?
우리는 묻는다. “AI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기사 링크] 듀오링고, AI-First 선언… 혁신인가 일자리 위기인가
플랫폼의 균열: 구글 해체와 애플 수수료 논쟁
이 흐름 속에서 플랫폼 자체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구글에 광고 사업부 매각을 요구했다. 검색, 광고, 유튜브, 애널리틱스가 하나의 닫힌 회로처럼 작동하며 시장 지배를 강화한 결과다. 동시에, 애플은 외부 결제 수단에 수수료를 매긴 행위가 ‘사실상의 통제’라는 법원의 판단에 항소 중이다.
이 둘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플랫폼 위에서 사업을 한 것인가, 플랫폼에 의해 사업이 설계된 것인가?”
소규모 개발자, 교육 콘텐츠 스타트업, 독립 창작자들은 이 플랫폼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지금, 그 기반이 구조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제 플랫폼은 더 이상 ‘성장 플랫폼’이 아니라 ‘통제 장치’로 재해석되고 있다.
[☞기사 링크] 美 법무부, 구글 광고 사업 분할 요구…'빅테크 해체' 본격화
피해자를 위한 법, AI 규제의 첫 걸음 — 미국의 ‘Take It Down Act’
그리고 2025년 4월, 미국 의회는 인공지능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딥페이크 음란물 삭제 요청 법안(Take It Down Act)’이 상·하원을 통과한 것이다.
이 법은 AI 기술로 생성된 비동의 성적 이미지(Non-Consensual Intimate Imagery)에 대해, 피해자가 국립실종아동센터(NCMEC)나 지정 포털을 통해 삭제를 요청하면 플랫폼은 48시간 내에 반드시 이를 삭제해야 한다. 유예나 검토 없이, ‘즉시 삭제’가 원칙이다.
삭제를 이행하지 않으면 플랫폼은 민사소송과 벌금에 직면하며, SNS, 성인사이트, 커뮤니티 등 전방위 온라인 플랫폼이 규제 대상이 된다. 무엇보다 이 법은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플랫폼 책임’이라는 구조로 규제의 방향을 바꿨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제 기술기업은 단지 도구 제공자가 아닌, 책임 있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법적 장치로 구체화된 것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글로벌 플랫폼들도 이 법에 대응해 콘텐츠 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사용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기사 링크] 美 의회, AI 딥페이크 음란물 규제법 "Take It Down Act" 통과
이제, 우리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이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공통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기술은 이렇게까지 준비되었는데, 사람은 준비되었는가?”
우리는 이제 단순한 디지털 전환이 아닌 ‘존재의 재정의’라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AI는 검색을 다시 쓰고, 교육을 바꾸고, 사법을 재설계하며, 노동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기술은 우리를 효율로 이끈다. 그러나 인간은 효율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우리를 대체하기 전에, 우리가 무엇으로 존재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AI가 사람을 흉내 내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사람’임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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