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이후, 힐링·치유·돌봄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게임들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존재감을 키워왔다. '동물의 숲(Animal Crossing: New Horizons)'은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전 세계 수천만 유저에게 “가상의 일상”을 제공했다. 출시 한 달 만에 1,300만 장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2024년 기준 누적 판매량은 4,400만 장을 돌파해, 닌텐도 스위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로 기록됐다.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친구와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대안 공간으로 주목받으며, 단순한 게임을 넘어 디지털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기능했다.
'Stardew Valley'는 농장을 가꾸고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임임에도, e스포츠보다 더 긴 플레이 타임을 유도하며 수년간 스팀 인기 순위 상단에 머물렀다. 2016년 출시 이후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 판매되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은 PC 기반으로 판매되어 인디 게임으로서는 이례적인 스팀 장기 흥행을 기록했다. 단일 개발자인 ConcernedApe(에릭 바론)이 처음 개발한 이 게임은, 소박한 농사와 인간 관계, 계절의 흐름을 통해 정서적 몰입과 자기 리듬 중심의 플레이를 유도하며 전 세계 팬층을 형성했다. 2024년 기준, 여전히 수만 명의 유저가 매일 플레이 중이며, 스위치·모바일 등 멀티 플랫폼 확장 이후에도 그 인기는 식지 않았다.
이사 간 집에 짐을 풀고 적절한 장소에 물건을 배치하는 게임, : https://www.unpackinggame.com/
'Unpacking'은 단순히 상자를 풀어 방을 정리하는 게임일 뿐이지만, 정리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감정적 해석이 가능한 메커니즘을 설계했다. 출시 직후 전 세계적으로 입소문을 타며, 2023년까지 누적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고, Steam, Nintendo Switch, Xbox Game Pass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게임 속 감정 해석”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었다. 특히 이 게임은 게임디자인협회(GDC)와 2022년 BAFTA 등에서 내러티브상을 수상하며, “가장 조용하지만 강렬한 감정의 게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25년 들어 등장한 'Grow a Garden'은 Roblox 기반이라는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 Z세대 중심의 감정 루틴 게임으로 폭발적인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이 게임은 작물을 심고 물을 주며 수확하고, 동물 친구들을 돌보는 단순한 루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자율성, 감정적 안정, 반복 가능한 성취감이라는 요소들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2025년 7월 기준, 일일 활성 사용자(DAU)는 20만 명을 돌파했으며, 특히 10~20대 유저층이 TikTok, YouTube Shorts 등에서 ‘정원 돌보기’ 플레이를 ASMR 스타일로 편집한 숏폼 영상을 다수 업로드하면서 게임 자체가 하나의 감각 콘텐츠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플레이어는 매일 일정량의 에너지를 사용해 식물을 돌보거나, 수확한 작물로 ‘펫’을 강화하고, 자신만의 정원을 커스터마이징해 친구들과 공유한다. 이처럼 “정서적 돌봄 + 개인화 + 소셜 공유”가 결합된 메커니즘은, Z세대가 게임을 통해 감정적 안정을 찾고,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디지털 감정 관리 루틴”, 또는 “인터랙티브 마인드풀니스 툴”로 해석하기도 한다. 성취 중심의 경쟁 게임에서 벗어나, ‘작은 안정감’을 반복적으로 제공하는 힐링형 게임의 대표 사례로, 은 Roblox 생태계 안에서 또 하나의 장르 진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Z세대는 왜 ‘정원’을 택했는가 현실은 고단하고 경쟁은 치열하다. 학업, 취업, 인간관계, 사회적 비교 속에서 쉼 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Z세대는 오히려 디지털 속 작은 세계에서 ‘돌봄’이라는 감정 루틴을 선택했다. 'Grow a Garden'은 바로 그 니즈를 정교하게 감지한 게임이다. 이 게임은 단순히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식물을 키우는 구조지만, 그 안에 담긴 메커니즘은 꽤 섬세하다. “내가 돌본 것은 반드시 자란다”는 구조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노력과 결과의 등가 교환을 실현한다. 게다가 매일 짧은 시간 접속만으로도 즉각적인 시각 피드백과 보상이 주어지며, 수확 → 성장 → 꾸미기로 이어지는 루프는 반복성을 전제로 하되, 지루하지 않다. 여기에 더해, 플레이 방식 자체가 ASMR적 특성을 띠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작물을 클릭할 때의 부드러운 소리, 성장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리듬, 그리고 UI 전환의 촉감적인 반응 등은 심리적 진정 효과를 유도한다. 실제로 TikTok에는 “Grow a Garden 슬라임 같음”, “누르는 게 힐링임” 등의 리뷰와 함께 플레이 장면을 클로즈업한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확산되고 있다.
뇌는 그걸 게임이라 부르고, 마음은 그걸 쉼이라 부른다 'Grow a Garden'은 명시적으로 “힐링 게임”을 표방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용자는 그것을 ‘쉼’으로 받아들이고, 뇌는 그것을 스트레스 조절 도구로 인식한다. 이처럼 명시적 목적과 실제 체감의 간극을 만드는 요인은 UX(User Experience) 설계와 인지 심리학의 결합에서 비롯된다. 이는 처럼 간단한 인터랙션만으로도 정서적 자기조절(self-regulation)을 유도하는 디자인 구조를 뒷받침한다.
특히, 이러한 구조는 최근 인지심리학에서 주목받는 디지털 마인드풀니스(digital mindfulness) 개념과 맞닿아 있다. 불확실한 외부 환경 속에서 사용자가 감정적으로 과민반응하지 않도록, 의식적인 디지털 루틴과 정적인 몰입 경험을 설계함으로써 심리적 자가 케어(self-care)를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Grow a Garden'은 정확히 이 경계에 서 있다. 게임 같지 않은, 경쟁하지 않아도 인정받는 시스템, 그리고 돌봄이라는 감정 행위가 곧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Z세대에게 “싸우지 않아도 되는 공간”, 즉 디지털 속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게임은 결국,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다 게임이 늘 같은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경쟁의 장이고, 누군가에겐 스토리텔링의 캔버스다. 또 어떤 이들에겐, 그것은 쉼이고 회복이며, 감정의 균형을 되찾는 디지털 정원이 된다.의 인기 비결은 단순한 재미나 시스템에 있지 않다. 매일같이 물을 주고, 자라는 식물을 확인하고, 정원을 꾸미는 이 조용한 플레이는 사용자들에게 “내가 감정적으로 안정되는 루틴”으로 자리잡았다. 2025년 7월 기준, Roblox 내 일일 사용자 수가 20만 명을 넘으며, TikTok과 YouTube Shorts에서는 ‘물 주는 영상’, ‘감정 없는 정리 루틴’, ‘정원 꾸미기 브이로그’ 같은 콘텐츠가 ASMR 스타일의 디지털 셀프케어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반복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상호작용(UX)은 사용자에게 통제감을 제공하고, 감정 조절(self-regulation)에 도움을 준다.(Emotion regulation, need satisfaction, passion and problematic video game play during difficult times., 2024) 이러한 디자인은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 완충 장치 역할을 하며, 게임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심리적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게임은 늘 이기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전장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보여주는 건 그 단순한 진실이다. 쉼도, 게임의 목적이 될 수 있다.
'Grow a Garden'에서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순간, 플레이어 또한 비로소 알게될 것이다. 게임이 자신을 돌보는 말없는 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