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의 정의가 바뀌었다.
나이키가 2025년 10월 공개한 ‘프로젝트 앰플리파이(Project Amplify)’는 기존의 러닝화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나이키는 이 제품을 “세계 최초의 동력 보조형 파워드 풋웨어 시스템”이라고 규정한다. 핵심은 명확하다. 달리기, 조깅, 걷기를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적은 에너지로 가능하게 만드는, 착용형 동력 보조 장치라는 점이다.
이 시스템은 종아리 근육이 하는 일의 일부를 ‘신발+로봇’이 대신하도록 설계됐다. 나이키 내부 표현을 그대로 빌리면 “당신의 두 번째 종아리(second set of calf muscles)”다. 나이키는 이 기술이 엘리트 마라토너의 기록 단축을 위한 도핑성 장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오히려 정반대다. 숨이 쉽게 차는 일반 러너, 1마일(약 1.6km)을 10~12분대 페이스로 뛰는 러너, 통근 거리를 걷기로 바꾸고 싶은 직장인, 언덕길에서 무릎·발목 부담을 크게 느끼는 사람, 부상 회복 중이거나 이동성이 떨어진 사람 등 ‘매일의 몸’을 위한 설계라는 것이다.
나이키는 오랫동안 “우리는 단순한 러닝화 회사가 아니다”라고 말해 왔다. 이번에는 그 주장을 하드웨어로 증명했다.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더 이상 ‘신발’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개인용 하체 보조 로봇(소형 하체 외골격)에 가깝다.

■ ‘무게추’가 아니라 ‘추진 장치’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세 가지 핵심 부품으로 구성된다. 나이키 스포츠리서치랩(NSRL)과 로보틱스 기업 데피(Dephy)가 함께 설계했다.
첫째, 경량 전동 모터다. 발목과 종아리 근육이 밀어주는 추진력을 기계적으로 지원한다. 착지 후 다시 차고 나가는 순간, 즉 러닝 스트라이드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타이밍을 보조한다. 달리면서 피로가 가장 빠르게 누적되는 하퇴부(종아리-발목 복합부위)를 직접 ‘밀어주는’ 역할이다.
둘째, 드라이브 벨트다. 발목이 지면을 밀어낼 때의 토크를 인공적으로 증폭해 앞으로 전달한다. 쉽게 말해, 보조 추력을 발 앞쪽으로 “밀어 넣는 장력 장치”다. 실제 초기 테스트에서는 “오르막이 거의 평지처럼 느껴진다”는 반응이 나왔다.
셋째, 충전식 배터리 커프다. 발목 또는 종아리 쪽에 차는 형태의 전원 모듈로, 밑창 속에 무거운 배터리 블록을 억지로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 제품은 ‘신발 한 켤레’가 아니라 ‘러닝화 + 착탈식 전동 어시스트 장치’ 세트에 가깝다.
이 모든 부품은 카본 파이버 플레이트 러닝화와 통합된다. 카본 플레이트 자체는 이미 엘리트 마라톤계에서 반발탄성과 추진 효율을 끌어올린 기술로 자리 잡았지만, 여기에 모터와 벨트, 배터리라는 ‘능동 동력’이 결합된 것은 새로운 단계다. 중요한 점은 이 신발이 로봇 시스템 없이도 착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카본 플레이트 러닝화로도 쓸 수 있고, 필요할 때 보조 장치를 결합하면 기계식 추진을 얻는다.
즉 기존 러닝화가 논의하던 요소 — 쿠션, 반발탄성, 카본 플레이트 — 위에 이제 ‘전기적 토크 증폭’이라는 네 번째 층이 올라왔다. 에어맥스나 줌X 같은 쿠셔닝 혁신의 연장선이 아니라, 웨어러블 로보틱스를 소비자 영역으로 끌어내린 시도다.
■ “이건 러닝계의 e-바이크”
나이키는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를 전기자전거(e-bike)에 비유한다. 전기자전거가 도심 이동과 자전거 문화 자체를 바꿔 놓은 방식, 즉 ‘더 멀리, 더 자주, 덜 고통스럽게’라는 접근성 혁명을 하체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비유는 전략의 방향을 드러낸다. 앰플리파이는 “세계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선수용”이 아니라 “계속 걷고 싶은 사람”, “달리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한 제품이다. 기존 러닝 문화가 “몇 초라도 더 줄여라”라는 엘리트 서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나이키는 “덜 힘들게, 더 오래, 더 자주”라는 생활 서사로 축을 옮기려 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은퇴한 러너, 부상에서 회복 중인 러너, 만성 무릎·발목 부담이 큰 일반인까지 러닝 생태계에 다시 편입시키는 전략으로 읽힌다. 러닝을 ‘기록 경쟁 스포츠’에서 ‘일상 이동 수단’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다.
초기 체험자들은 “로보캅처럼 걷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리고 있었다”, “발가락 부상 때문에 절뚝이던 상태였는데 거의 통증 없이 달릴 수 있었다”는 식의 묘사를 내놓는다. 단순 퍼포먼스 향상을 넘어, 재활·고령층 보행 보조와 같은 ‘파워 워킹 보조 외골격’ 시장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는 의미다. 즉 러닝화 시장을 넘어서, 소비자용 보행 보조기기 시장과 겹치기 시작했다.

■ “같은 노력으로 더 빠르게”
나이키 측은 앰플리파이가 “같은 노력으로 더 빠른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한다. 실제 내부 테스트와 미디어 시연에 따르면, 어떤 러너는 1마일 페이스가 12분대에서 10분대로 개선됐다고 보고됐다. 나이키 스포츠리서치랩은 대사 효율(에너지 소비 대비 출력)이 약 9%에서 많게는 20% 이상 향상되는 패턴을 관찰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관적 피드백은 “언덕이 평지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균열이 생긴다. 이는 분명 ‘퍼포먼스 향상’ 장비지만, 전통적 의미의 공정 경쟁 영역에 놓인 장비는 아니다. 나이키는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이 제품은 엘리트 선수가 공식 레이스에서 기록을 깎아내리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식 대회에서는 금지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 ‘매일의 몸’을 위해 설계된 생활형·헬스형 러닝 보조 장치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스포츠 공정성보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 즉 얼마나 오래 움직일 수 있는가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결국 나이키는 러닝화를 스포츠 장비가 아니라 개인 이동 인프라로 재배치하고 있다.
■ 나이키의 위기, 그리고 반격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기술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업 전략적 선언이기도 하다. 나이키는 최근 몇 년간 성장 둔화, 주가 하락, 온(On), 호카(Hoka) 등 신흥 브랜드의 급부상 속에서 “혁신 동력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2024년 한 해 동안 회사의 시가총액이 수십억 달러 규모로 증발했다는 지적은 반복돼 왔다.
새 CEO 엘리엇 힐(Elliott Hill)은 반전 전략을 노골적으로 제시했다. 내부 슬로건은 “Create Epic Shit. Make Athletes Better.”, “우린 그냥 미래에 살 뿐이다.”라는 식으로 요약된다. 점잖은 마케팅 카피가 아니라, ‘다시 미친 듯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이 구호는 실제 로드맵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이키는 이번 달 한 번에 네 갈래의 기술 축을 공개했다. △프로젝트 앰플리파이(전동 보조 러닝·워킹 시스템) △신규 Air 기반 어패럴(반응성과 착용감 강조) △차세대 냉각 유니폼(Aero-FIT, 체온 관리 기술, 차기 월드컵 대비) △‘Mind 001 / Mind 002’(발바닥 감각 자극을 통해 주의 집중과 인지 상태를 조절한다고 설명되는, 이른바 ‘신경-신발 인터페이스’) 등이다. ‘Mind’ 라인은 2026년 월드컵 대비 선수용 유니폼과 함께 공개됐고, 소비자용 출시 일정(2026년 1월)까지 언급되기 시작했다.
즉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하나의 실험적 콘셉트가 아니라, 나이키가 “우리는 여전히 스포츠 기술의 최전선”임을 복수의 영역에서 동시에 증명하려는 패키지 전략의 정중앙에 있다. 회사는 인간의 움직임(모션), 체온 조절(쿨링), 신경계(집중력), 근력·지구력(보조 동력)까지 통합 관리하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나이키를 더 이상 ‘스포츠웨어 브랜드’로만 부르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다. 회사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인간 성능 증강(human augmentation) 기업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 “보행 보조 로봇”이 소비재가 될 때의 질문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동시에 불편한 질문도 던진다. 어디까지가 ‘나’의 능력인가? 카본 플레이트 슈가 마라톤 기록을 바꿨을 때, 국제육상계는 규제에 나섰다. 만약 모터와 벨트가 일상화된 ‘전동 보조 러닝화’가 등장한다면, 생활 스포츠에서 ‘자연스러운 몸’과 ‘기계적 보조’의 경계는 어디에 그어야 할까.
접근성 차원에서의 긍정성은 분명하다. 부상 회복자, 고령층, 이동 약자에게 언덕길을 평지처럼 만들어주는 기술이라면 그건 사회적 가치다. 동시에, 이런 장비가 ‘능력 증폭 기기’로 쓰일 때 스포츠 경쟁의 룰과 공정성은 어떤 기준으로 다시 설계돼야 하는가.
또 하나 놓치기 쉬운 쟁점은 데이터다. 이 시스템은 단순히 발목을 밀어주는 기계 장치가 아니다. 나이키 스포츠리서치랩(NSRL)이 축적한 동작 알고리즘, 보행·주행 패턴 분석, 효율 향상 곡선 등, 극도로 정밀한 운동 데이터를 전제로 작동한다. 이른바 ‘움직임 데이터’는 기존 스마트워치 이상의 민감한 생체 정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정보는 향후 맞춤형 피트니스, 재활 의료, 보험, 산업 안전, 심지어 군사적 활용까지 연결될 수 있는 잠재적 자산이다. 웨어러블 데이터 산업의 새로운 고부가 축을 나이키가 사실상 선점하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 러닝화 이후의 시대
프로젝트 앰플리파이는 결국 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러닝은 여전히 근육과 폐의 싸움인가?”
나이키의 답은 “아니오”다. 나이키는 러닝을 신경(집중력), 체온(쿨링), 데이터(분석), 동력(기계적 보조)까지 포함한 복합 경험으로 재정의하려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운동 능력”과 “기술 보조 능력”을 분리해서 말하게 될지 모른다.
과거 나이키는 밑창에 에어(공기)를 넣어 주법을 바꿨다. 이제 나이키는 전기 모터와 알고리즘, 소형 로봇을 종아리에 장착하려 한다. 더 이상 순수한 스포츠 브랜드도, 전통적 의미의 패션 브랜드도 아니다. 퍼스널 모빌리티 기업, 재활 보조기기 기업, 스포츠 퍼포먼스 기업의 언어를 동시에 쓴다.
나이키의 오래된 슬로건은 여전히 같다.
“몸이 있다면, 당신은 운동선수다.”
이제 이 문장은 이렇게 들린다.
“몸이 있다면, 속도를 더할 권리도 있다.”
[저작권자ⓒ META-X.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