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생태계 위에 있는가”
메타버스와 Web3도 질문을 바꿔야 할 때다
[대만 타이베이=X] 5월 20일 오후 1시(현지시간) 대만 타이베이 COMPUTEX 2025 제1전시관 1층. 부스 사이를 따라 걷다 문득, 익숙한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Intel’. 생각보다 작게 빛나고 있었다.
의아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전시장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텔이 있었다.
“인텔 인사이드.”
그 네 글자는 품질의 상징이자, 일종의 디지털 게급장이었다. 제품을 살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제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기준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로고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윈도우 부팅음이 울려야만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던 그 시절. PC든 노트북이든, 그 문구가 붙어 있어야 최신형이라 여겨졌고, 그 위엔 늘 마이크로소프트의 푸른 윈도우가 떠 있었다.
기술의 질서는 분명했다. 인텔이 칩을 지배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지배했다. 그게 전 세계의 규칙이었고, 소비자들의 인식이었다. 그 누구도 그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 위계는 무너졌다. 2025년의 컴퓨텍스는 완전히 다른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COMPUTEX 2025의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로고는 더 이상 ‘INTEL’과 ‘MS’가 아니다.
대신 관람객들의 대화 속에서 자주 들려오는 이름은 NVIDIA, AMD, TSMC, 폭스콘, 그리고 그 모든 걸 아우르는 하나의 지리적 키워드, 'Taiwan'이었다.
부스마다 화려하게 투사되는 그래픽 위로 ‘RTX 5090’, ‘NVIDIA’ 같은 단어들이 넘실댔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이 시대의 새로운 권력 언어였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폭스콘의 전시 공간이었다. 기억 속 폭스콘은 늘 애플의 하청업체, 조립 생산의 거인이었지만 목소리를 내지 않던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이번 컴퓨텍스에서 마주한 폭스콘은 전혀 달랐다.

거대한 디스플레이와 데이터센터가 빼곡히 전시돼 있었다. 이 장비들을 내가 일상에서 직접 볼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장비들은 지금 전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작동 중이고, 수많은 기술 스타트업과 협력 중이며,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의 이동수단, 건강관리, 공공시스템을 구성할 수도 있다.
폭스콘은 더 이상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만의 기술 주권과 서사를 갖고 전면에 나섰고, 그 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출사표 같았다.
“우리는 무대 뒤가 아니라, 이제 무대 위에 있다.”
인텔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그들의 로고도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고, 일부 부스에선 MS의 로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분위기는 달랐다. 더 이상 ‘중심’이 아니었다. 세상의 중심은 서서히 이동 중이었고, 그 방향은 분명히 동쪽이었다.
NVIDIA는 그 중심에서 AI 팩토리의 시대를 선언했고, 대만은 더 이상 생산 공장의 대명사가 아닌 AI 시대의 전략기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COMPUTEX 2025는 단순한 전시회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기술 제국이 몰락하고, 또 다른 제국이 부상하는 역사적 전환의 현장이었다.
메타버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이제 메타버스와 Web3도 질문을 바꿔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신의 기술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
COMPUTEX 2025 전시장에서 느낀 건 명확했다. 기술의 권력은 더 이상 성능이나 독창성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 그리고 “어디에 정렬되어 있느냐”가 시장 진입의 조건이 되고 있었다.
이 경고는 메타버스와 Web3 기업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기술이 어떤 연산망 위에서 작동되는가, 어떤 생태계와 호환되는가, 어떤 글로벌 프로토콜에 연결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다.
“우리는 어느 생태계 위에 있는가”
이제 기술은 혼자 만드는 것보다, 누구와 함께 설계하느냐가 생존을 좌우한다. 엔비디아 생태계 안에서는 퀄컴도 파트너였고, 폭스콘도 기가바이트도 ‘정렬된 기술’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반면, 호환되지 않는 기술은 아무리 뛰어나도 외부인에 불과했다. Web3는 탈중앙을 말하지만, 그 탈중앙 기술이 글로벌 인프라와 단절되어 있다면 그건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다.
메타버스는 연결을 말하지만, 그 연결이 폐쇄된 월드 안의 순환 구조라면 그건 ‘자율성’이 아니라 ‘폐쇄 생태계’일 뿐이다.
메타버스·Web3 기업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NFT는 어떤 글로벌 마켓플레이스와 호환되는가?"
"우리의 DID와 지갑 시스템은 어떤 L2 또는 글로벌 ID 프로토콜과 연동되는가?"
"우리가 구축한 가상 공간은 어떤 AI·3D 엔진과 상호작용 가능한가?"
"우리의 커뮤니티는 글로벌 거버넌스 프로토콜과 연결 가능한가?"
이 질문에 지금 답하지 못한다면, 곧 플랫폼 진입조차 불가능한 구조가 다가올 수 있다. COMPUTEX 2025는 내게 속삭였다.
'기술은 혼자 만들 수 있어도, 시대는 함께 설계해야 한다'
기술적 완성도, 창의성, 분산성… 그 모든 요소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연결의 전략’ 없이는 시대의 무대에 설 수 없다.
Web3와 메타버스, 이제 별을 보지 말고, 별자리를 읽을 때다. 기술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략은 선을 만들고, 생태계는 별자리를 그린다.
기술은 외치지 않는다. 연결된 기술만이, 들린다. 그 진실을 가장 먼저 실감한 건, COMPUTEX의 전시장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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