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비용과 규제 리스크 속에서 재설계를 요구받는 한국 게임 산업
[메타X(MetaX)] 한국게임이용자협회가 111퍼센트, 컴투스, 쿡앱스, 세시소프트, 그라비티 등 5개 게임사를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같은 내용으로 게임물관리위원회에도 이용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운빨존많겜’ 이용자 863명, ‘컴투스 프로야구 V26’ 이용자 493명 등 다수 이용자의 위임을 받은 집단 대응이다.
이번 사건을 개별 게임의 논란으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될수록, 그것은 ‘운영 실수’나 ‘커뮤니케이션 실패’의 범주를 넘어 제도권 리스크와 정책 프레임워크 안으로 들어왔다. 실제로 공정위는 2024년 1월 넥슨 ‘메이플스토리’ 관련 확률형 아이템 확률 조작과 정보 고지 누락을 이유로 116억4,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는 국내 게임사 대상 제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됐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제도적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국회는 확률 정보 누락·허위 표시 시 과징금 상향 및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들을 논의 중이며, 확률 정보 공개 의무를 명시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에 따라 게임물관리위원회와 공정위는 감시·집행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확률형 아이템 확률을 공시하고 이를 준수하도록 한 법적·행정적 체계를 갖춘 국가로서, 이 규정의 적용 대상이 된 게임은 2024년 3월 이후 수백여 종에 달했다는 집계도 있다.
확률형 아이템은 오랫동안 한국 모바일 게임의 수익 구조를 지탱해 온 중심축이었다. 높은 ARPPU(Average Revenue Per Paying User, 유료 이용자 1인당 평균 매출)와 빠른 매출 회전율을 가능하게 한 핵심 장치이기도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논란과 규제 강화 흐름 속에서, 이 모델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전략 선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산업 전반의 구조적 안정성과 신뢰를 함께 시험하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수익 모델은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확률형 BM은 왜 ‘필수’가 됐나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갈등은 “윤리적 논쟁”으로만 남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한국 모바일 게임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수익 구조가 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왜 확률형 BM이 한때 ‘선택지’가 아니라 ‘기본값’처럼 작동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 그 기반이 흔들리는지까지 이어서 볼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매출이 소수 고과금 이용자에게 집중되는 ARPPU 중심 구조다. 모바일 게임은 대다수가 무료로 이용하고, 일부만이 지불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문제는 유료 이용자 내부에서도 매출이 상위층에 크게 편중된다는 점이다. 한국 시장은 이 집중도가 특히 높았고, 이는 확률형 아이템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환경에서 확률형 아이템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매출 상한을 사실상 열어두는 구조로 기능한다. 정액 패키지나 단품 판매는 가격과 구매 횟수에 한계가 있지만, 확률형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출이 누적될 수 있다. 운영 측면에서는 유입이 둔화되거나 경쟁작이 등장하더라도 매출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ARPPU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단기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도덕적 평가보다 구조적 습관이다. 마케팅 효율이 떨어지거나 업데이트 공백이 생기는 시기마다 ARPPU를 높이는 선택이 반복되면, 비즈니스 모델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고착된다. 확률형 아이템은 그렇게 굳어진 구조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두 번째 이유는 라이브 서비스 모델과의 결합이다. 라이브 서비스에서 업데이트는 단순한 콘텐츠 보강이 아니다. 이용자의 잔존율을 유지하고 재방문을 유도하는 핵심 장치다. 그런데 한국 모바일 게임에서는 이 업데이트가 곧 신규 상품 출시와 맞물리는 경우가 많았다.
신규 캐릭터와 장비, 카드와 펫, 스킨과 아바타, 성장 재화가 업데이트의 중심에 놓이고, 그중 일부가 확률형으로 설계되면 자연스럽게 매출 리듬이 형성된다. 이벤트 기간에는 매출이 급등하고, 이후 완만히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운영 일정이 곧 매출 캘린더가 되는 구조다.
여기에 시즌제와 배틀패스가 더해지면 구조는 한층 촘촘해진다. 배틀패스는 꾸준한 과금을 유도하는 장치이고, 확률형은 단기간에 매출을 집중시키는 장치다. 성격은 다르지만 두 개의 BM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서로의 빈틈을 메운다.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개발·운영·고객 대응·서버·마케팅 등 라이브 서비스 유지에 필요한 고정비를 감당하기 쉬워진다.
다만 이 결합은 역설을 낳는다. 확률형 비중을 크게 줄이거나 제거하는 순간, 기존에 형성된 현금흐름이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확률형 없이도 라이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현실적인 경영 과제가 된다.
세 번째로 짚어야 할 지점은 이 구조가 강력한 만큼 취약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매출 기반이 좁다. 고과금 이용자층이 매출을 떠받치는 구조에서는 그 일부가 이탈할 때 충격이 크다. 확률 논란, 과금 피로, 경쟁작 이동, 커뮤니티 분위기 악화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결과는 유사하다. 매출이 급격히 흔들린다.또한 콘텐츠 소비 속도가 빨라질수록 과금 압박은 커진다. 업데이트 템포가 빨라지면 이용자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자주 결제해야 한다고 느낀다. 성장 곡선이 과금과 밀접하게 연결될수록 그 압박은 직접적이다. 처음에는 ‘가속’처럼 인식되던 과금이 어느 순간 ‘의무’로 체감되고, 그 지점에서 피로가 누적된다.
마지막으로, 운영 리스크가 곧 신뢰 리스크로 전환된다. 확률형 구조에서는 작은 표기 오류나 설명 부족도 크게 증폭된다. 확률 정보가 직관적으로 전달되지 않거나 기대값과 체감이 크게 어긋날 경우 논란이 발생하고, 이는 곧 커뮤니티의 집단 행동으로 이어진다. 매출은 즉각 반응하지 않을 수 있지만, 장기 잔존과 과금 저항이라는 형태로 영향을 남긴다.
이 모든 요소는 특히 고정비가 큰 라이브 서비스에서 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서버와 운영, 지속적인 콘텐츠 제작 비용은 계속 발생하지만, 매출을 지탱하는 축은 소수에 집중되어 있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균형점이 좁은 모델에 가깝다.
이렇듯, 확률형 BM은 한국 모바일 게임에 높은 수익성을 제공해 왔다. ARPPU를 올려 단기 매출을 방어할 수 있었고, 라이브 서비스 운영을 굴리는 동력으로도 기능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매출 기반은 좁아졌고, 운영의 작은 균열이 신뢰 문제로 확대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고수익을 가능하게 했던 설계가, 동시에 불안정성을 키운 셈이다.
고수익이 고위험으로 전환되는 지점
확률형 BM의 문제는 “있느냐 없느냐”보다, 논란이 반복될 때 기업이 치르는 비용이 구조적으로 커진다는 데 있다. 한때는 매출을 끌어올리는 레버였지만, 지금은 같은 레버가 리스크를 동반한 비용 항목으로 바뀌고 있다.
1) 신뢰 비용의 증가
확률형 논란이 잦아질수록, 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눈에 띄게 늘어난다. 내부적으로는 확률 검증 체계와 데이터 로그 관리, 변경 이력의 추적 가능성, 감사 대응 프로세스가 필요해진다. “확률은 공개하면 끝”이 아니라, 공개한 확률이 실제 시스템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운용되는지까지 증명해야 하는 국면으로 넘어가는 셈이다.
외부 비용은 더 빠르게 증폭된다. 논란이 발생하는 순간 커뮤니티는 즉시 반응하고, 이용자들은 환불·보상·집단행동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브랜드 자산은 손상된다. 이 손상은 다음 업데이트의 매출 그래프에서 곧바로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장기 잔존, 추천, 과금 저항 같은 형태로 천천히 축적된다. 라이브 서비스일수록 이 누적 효과가 크다. 운영의 신뢰가 흔들리면, 콘텐츠의 품질과 무관하게 “다음 결제”의 문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파급 범위도 넓어졌다. 글로벌 서비스나 IP 확장 사업으로 갈수록 ‘신뢰’는 기술과 운영만큼 중요한 자산이 된다. 확률 논란은 단일 타이틀의 사건으로 끝나기 어렵고, 기업의 신용처럼 따라붙는다. 특히 플랫폼·퍼블리셔·파트너와의 협상에서는 ‘리스크가 있는 사업자’로 분류되는 순간 비용이 발생한다. 계약 조건이 불리해지거나, 검수·컴플라이언스 요구가 늘어나고, 일정이 길어지는 방식으로 비용이 현실화된다.
2) 규제 리스크의 상시화
규제는 이제 ‘가능성’이 아니라 ‘상시 변수’가 됐다. 대표적 분기점은 공정위의 대형 제재 사례다. 공정위는 2024년 1월 넥슨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큐브) 관련 표시·광고 문제를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보고 과징금 116억4,200만원을 부과했다. 게임 산업에서 전자상거래법 제재가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후 제재는 ‘단발’이 아니라 ‘패턴’으로 이어졌다. 공정위는 2025년 4월 21일 그라비티(라그나로크 온라인)와 위메이드(나이트 크로우)를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판단해 시정명령과 함께 제재를 내렸고, 2025년 11월 28일에는 웹젠(뮤 아크엔젤)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1억5,800만원을 부과했다. 특히 웹젠 건은 “일정 횟수 이상 구매하지 않으면 희귀 구성품을 얻을 수 없는 조건”을 충분히 알리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 확률형 설계의 ‘조건부 0%’ 같은 운영 관행이 법적 리스크가 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제도 환경 자체도 강해지고 있다. 한국은 게임산업진흥법(GIPA)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의무가 2024년 3월 22일부터 시행되고, 이후 집행이 강화되는 흐름을 밟아 왔다. 즉, “자율 공개”의 시대에서 “법적 의무”의 시대로 넘어갔다.
투자자 관점에서 이 변화는 더 직접적이다. 규제 이슈는 곧 변동성으로 번역된다. 과징금 규모 자체뿐 아니라, 조사 착수·행정소송·자진시정·환불 공지 같은 이벤트가 반복되면 시장은 이를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가격에 반영한다. 특히 해외 시장은 국가별 규제 민감도가 높고 해석이 다르다. 국내 논란이 글로벌 퍼블리싱, 플랫폼 관계, 결제 정책 협상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는 이 변수를 상수로 다루게 됐다.
3) BM 재설계 압박
이런 환경에서 기업들이 선택하는 경로는 대체로 세 갈래로 수렴한다.
첫째, 예측 가능한 매출을 늘리는 방향이다. 배틀패스나 정기 구독형 상품을 강화해 ‘매달 들어오는 돈’을 확보하려는 시도다. 확률형 중심의 “피크 매출”을 줄이더라도, 현금흐름의 바닥을 올려 변동성을 완화하려는 전략이다.
둘째, 확률 요소를 축소하거나 성격을 바꾸는 실험이다. 확률형을 주력에서 보조로 옮기고, 확정 보상(일명 천장), 교환 시스템, 직판형 코스메틱 등으로 조합을 바꾸는 방식이다. 핵심은 이용자가 “기대값을 계산할 수 있는 구조”를 늘려 신뢰 비용을 낮추려는 데 있다.
셋째, 게임 밖 수익원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방향이다. 광고, IP 라이선스, 굿즈·콜라보, 외부 채널 기반 수익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BM 자체를 바꾸는 동시에, 특정 과금 방식에 대한 규제·여론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도 노린다.
세 경로가 가리키는 방향은 비슷하다. 확률형 아이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은 이전보다 더 큰 리스크를 동반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확률형 BM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제는 ‘수익성’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에 가깝다. 변동성과 규제, 신뢰 비용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모델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산업이 마주한 구조적 질문
결국 업계가 마주한 질문은 단순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ARPPU 중심 구조를 넘어설 대안이 있는지, 그리고 규제 강화와 산업 경쟁력이라는 두 목표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번 공정위 신고는 그 질문을 다시 전면으로 끌어올린 사건이다. 확률형 아이템 논란이 반복되는 이유는 ‘몇몇 게임의 실수’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게임 산업의 수익 엔진이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게임 산업의 수익 구조가 오랫동안 확률형이라는 단일 축에 기대어 굳어져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찬반의 반복이 아니라, 그 구조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논의이다.
[METAX = 김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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