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디지털 문명 전환의 새 장(章)이 될지 모른다.
제비는 너무 일찍 날았다
2020년대 초,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혼란 속에 빠져들었을 때, 인간은 비접촉(touchless) 연결 방식을 필사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면의 일상이 봉쇄된 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소통의 공간을 필요로 했고, 그 대안 중 하나로 급부상한 것이 바로 메타버스였다. 디지털 아바타를 통해 가상의 공간에서 타인과 교류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세상은,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자유로움, 감각적 몰입감, 창조적 표현의 가능성은 메타버스를 일종의 ‘기술적 유토피아’로 만들기에 충분해 보였고 차세대 비접촉 소셜 플랫폼으로의 성장에 대한 기대도 한껏 커져 올랐다.
그러나 그 기대는 너무 이른 봄을 알리는 제비 한 마리와 같았다. 기술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으며, 인프라와 콘텐츠는 대중적 수용을 뒷받침하기에 역부족이었다. 투자자와 기업, 정부까지 과도하게 쏟아부은 관심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현실 앞에 급속히 식어갔다. 메타버스는 어느새 유행어에서 전략적 회피어로 전락했고, 심지어 일부 투자 발표 현장에서는 '메타버스'라는 단어 자체가 언급되지 않기도 했다. 가트너의 ‘기술 기대감 주기(Hype Cycle)’에 따르면, 메타버스는 ‘과장된 기대의 정점(Peak of Inflated Expectations)’을 지나 ‘환멸의 골짜기(Trough of Disillusionment)’로 떨어졌다. 산업의 흐름은 냉혹했고, 메타버스는 한때의 유행처럼 비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은 언제나 실망의 순간을 거쳐 진정한 진보로 나아가 왔다. 스마트폰 역시 초기에 ‘사치품’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은 문명 기술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메타버스 역시 냉각의 시기를 지나며 조용히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직면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적 환멸의 시간을 통과한 지금, 메타버스는 다시 진화의 궤도로 복귀할 수 있는가?
메타버스에 대한 오해, 그리고 되살아나는 가능성
메타버스는 단숨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미래 기술의 상징으로 부상했지만, 당시 기대는 기술 현실을 앞질렀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블록체인 등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성하는 주요 기술들은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사용자 경험은 제한적이었고, 산업적 수익모델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는 무한한 가능성의 플랫폼으로 과도하게 포장되었고, 그 결과 현실과 기대의 간극은 실망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이 실망은 기술의 소멸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메타버스가 보여주었던 초기 열광을 벗어나,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가능성의 검토가 시작된 시기, 즉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징후로 읽을 수 있다. 가트너의 ‘기술 기대감 주기’는 이러한 흐름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이다. 혁신 기술 대부분은 ‘환멸의 골짜기’를 지나 성숙의 단계를 밟아왔다.
이러한 회복 가능성은 최근 기술 동향과 시장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2024년 메타 커넥트(Meta Connect)에서 공개된 스마트 글래스 '오라이온(Orion)'은 메타버스 기술이 단순한 가상현실을 넘어 현실 세계와 자연스럽게 접속하는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실시간 번역, 눈동자 기반 UX, 초경량 AR 하드웨어는 메타버스를 일상화하는 핵심 접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 외에도 시장 데이터는 메타버스의 회복 가능성과 향후 성장 동력을 분명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는 2023년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약 924억 6천만 달러(USD 92.46 billion)로 평가하였으며, 오는 2033년에는 2조 3,697억 달러(USD 2,369.70 billion)'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38.31%(CAGR)에 달하는 고속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며, 단기간의 거품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성장을 암시한다.
세부 부문별로도 긍정적 지표가 이어지고 있다. 2023년 기준, 하드웨어 부문은 전체 시장의 73.21%, VR/AR 기술 부문은 60.51%, 모바일 플랫폼 부문은 59.27%'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기술적 확장성이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가상 플랫폼(Virtual Platforms)은 전체 수익의 '39.72%'를 차지해 메타버스 경제의 주요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으며, 최종 사용자 부문에서는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가 '31.76%'의 비중으로 여전히 핵심 수요처로 부각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북미(North America)가 2023년 기준 37.04%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Asia-Pacific)은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52.0%의 성장률(CAGR)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어, 글로벌 메타버스 확장의 주요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 다른 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최신 시장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메타버스 시장은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37.7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2030년에는 약 5,078억 달러(USD 507.8 billion)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의 예측과 함께 메타버스 시장의 장기적 성장 가능성을 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통계적 근거로 작용한다. 기관별 수치에는 차이가 있으나, 공통점은 명확하다. 메타버스는 단지 유행을 지나,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산업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수치는 단지 시장의 크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술, 플랫폼, 사용자 경험, 그리고 정책이 맞물려 움직이는 복합 생태계로서의 메타버스가 이제 실질적인 산업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초기의 기대가 비현실적인 상상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각 부문의 균형 잡힌 발전이 메타버스를 미래 산업의 핵심 축으로 다시 소환하고 있다. 결국, 제비는 너무 일찍 날았지만 봄은 오고 있다. 메타버스는 다시금 새로운 도약의 문턱에 서 있으며, 우리는 이제 그 다음 계절을 준비할 때다.
개념의 진화: 메타버스라는 이름, 그 너머를 향하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용어는 마치 절대적인 개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 어원을 들여다보면 이 단어조차도 하나의 서사적 산물이며, 임시적 명칭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메타버스라는 용어는 1992년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이 단어를 "Meta(초월한, beyond) + Verse(우주, universe)"의 합성어로 사용하여, 가상의 디지털 공간을 실제 세계의 확장된 또 하나의 우주로 묘사하였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이전인 1935년, 스탠리 G. 와인바움(Stanley G. Weinbaum)은 『피그말리온의 안경(Pygmalion’s Spectacles)』이라는 단편소설에서 'Paracosma'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Para(초월) + Cosma(우주)"라는 구조로 이루어진 단어로, 현실 너머의 세계가 인간의 오감을 통해 경험될 수 있는 상상적 공간을 의미했다. 이 두 작품은 각기 다른 시대에 쓰였지만, 인간이 현실과 유사하거나 그것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를 꿈꿔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철학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된다. 인간은 늘,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과 닮은 또 하나의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는 상상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는 시대에 따라, 기술에 따라, 사회의 필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이 세계 역시, 언젠가 새로운 개념과 언어로 대체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과 연결, 창조의 방식이다.
실제로 한국은 이러한 철학적 유연성을 제도적 수준에서 반영하고 있다. 2024년 2월 27일 제정된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에서는 '메타버스'라는 명칭을 직접 사용하기보다는, 보다 확장적이고 기술적 포괄성이 큰 개념인 ‘가상융합산업’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다. 이 법에서 말하는 가상융합세계란, 이용자의 오감을 가상공간으로 확장하거나 현실공간과 혼합하여 인간과 디지털 정보 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활동이 가능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용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앞으로 기술과 사회에 따라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제도적 신호이다. 결국 우리는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뛰어넘는, 보다 진화한 개념의 출현을 예비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그것이 ‘가상융합세계’로 불리든, 내일은 또 다른 이름으로 다시 불리게 되든,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세계가 우리 삶의 확장된 무대이자, 현실과 가상이 통합되는 포스트-현실 공간이라는 점이다.
메타버스의 핵심 구성요소와 작동 특성
메타버스는 단순한 3차원 가상 공간의 집합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고 통합되는 디지털 생태계이다. 이러한 생태계는 하나의 고정된 정의보다는, 다양한 기술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점진적으로 구성되는 다층적 구조를 가진다. 특히 로블록스 창업자인 데이비드 바스주키(David Baszucki)와 메타버스 ETF를 설계한 매튜 볼(Matthew Ball)은 메타버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기반으로 각각 핵심 구성요소와 구조적 속성을 제시하였다.
바스주키는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8가지 핵심 요소를 제안하였다. 그는 메타버스를 사용자 정체성, 사회적 연결, 몰입성, 기술적 접근성, 콘텐츠 다양성, 공간의 유비쿼터스성, 경제 구조, 안전성이라는 관점에서 구조화하였다. 사용자는 아바타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투영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며, 현실과 유사한 몰입형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기술적 마찰이 최소화된 환경에서 어디서든 접속 가능하고, 로블록스와 같은 UGC 기반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생성하고 소비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현실 경제와 유사한 디지털 경제 시스템 내에서 이뤄지며, 궁극적으로는 안전하고 책임 있는 사용 문화를 지향하게 된다.
매튜 볼은 이에 더해 메타버스가 갖추어야 할 7가지 속성을 제시하였다. 그는 메타버스가 지속적이며 중단 없이 운영되어야 하고, 실시간으로 작동하며, 사용자 수나 참여에 제약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콘텐츠와 경제 시스템이 실질적이며, 서로 다른 플랫폼 간의 상호운용성이 가능하고, 그 안이 콘텐츠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속성들은 메타버스가 하나의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 또는 생태계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하며, 단일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열린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Web 3.0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생태계적 메타버스는 '사용자 참여(User Creation)'와 '탈중앙 거버넌스(DAO Governance)'를 통해 자율적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참여 보상을 받고, 플랫폼의 규칙이나 운영에도 일정 수준까지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탈중앙 조직 구조와 맞닿아 있다. 중앙 집중형 플랫폼에서는 경영 주체의 결정에 따라 시스템이 작동하지만, DAO 기반 메타버스는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을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참여자는 토큰을 통해 인센티브를 얻으며, 투명하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관여할 수 있다.
메타버스를 가능하게 하는 8가지 기술 기반
메타버스 ETF의 공동창시자이자 메타버스라는 개념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전략가인 매튜 볼(Matthew Ball)은 메타버스를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핵심 동력을 8가지 인프라 구성요소로 정리하였다. 이는 메타버스가 단순한 기술적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되고 지속 가능하게 작동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반 기술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하드웨어다. 사용자가 메타버스 환경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HMD(Head-Mounted Display), 모바일 디바이스, 햅틱 글러브, 카메라, 센서 등은 물리적 인터페이스로 기능하며, 몰입형 경험의 전제조건이 된다. 두 번째는 네트워킹이다. 고용량, 저지연의 데이터 전송 인프라 없이는 실시간 상호작용과 동시 접속이 중요한 메타버스 환경을 구현할 수 없다. 이는 광대역 인프라의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 번째는 '컴퓨트(Computing Power)'다.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수많은 연산, 시뮬레이션, 그래픽 렌더링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GPU, 클라우드 컴퓨팅, 엣지 컴퓨팅과 같은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네 번째는 '가상 플랫폼(Virtual Platforms)'이다. 이는 사용자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사회적·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3차원 시뮬레이션 환경을 의미하며, 산업 메타버스와 연결되어 실질적 가치를 창출한다. 다섯 번째는 콘텐츠 및 디지털 자산이다. 메타버스 내에서의 활동은 창작과 소비로 이루어지며, 이는 NFT, 디지털 트윈, IP 관리 등을 포함한 자산의 생성·유통·보호 체계를 통해 완성된다. 여섯 번째는 '결제 시스템(Payments)'이다. 암호화폐부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토큰 이코노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금융 시스템은 메타버스 경제의 작동을 가능케 한다. 일곱 번째는 '상호운용성 도구 및 표준화(Interchange Tools & Standards)'이다. 플랫폼 간 자산 이동, 프로토콜 호환, 서비스 연동 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표준화는 메타버스가 단절된 공간이 아닌 연결된 세계로 진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는 '사용자 행동(User Behavior)'이다. 사용자들은 메타버스에서 단순한 참여자가 아닌, 콘텐츠 창작자이자 투자자, 소비자, 사회적 행위자로 존재하며, 그들의 행동과 경험은 메타버스 경제의 방향성과 진화를 좌우한다.
이 8가지 요소는 단지 기술의 집합을 넘어, 메타버스가 사회적 시스템으로 유기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자 플랫폼 경제와 디지털 생태계 전반의 토대로 기능한다. 이들 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확보될 때, 비로소 메타버스는 새로운 사회, 경제, 문화의 장을 현실 속에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공공영역으로 진화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8가지 인프라 구성요소가 단순히 메타버스를 위한 기술적 기반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이 미래 전략 기술로 지목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핵심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은 2022년 「경쟁법(Competition Act)」을 통과시키며, 반도체·AI·양자컴퓨팅 등과 함께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주요 기술 분야에 대한 연방 차원의 전략적 투자와 법제적 뒷받침을 명문화하였다. 이는 하드웨어, 네트워크, 컴퓨팅, 콘텐츠, 결제, 상호운용성 등의 요소들이 단지 특정 산업의 성공 조건이 아니라, 국가의 기술 주권과 미래 성장의 동력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이 8가지 인프라 요소는 가상 세계를 위한 기반인 동시에, 현실 세계의 디지털 전환을 견인하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이다. 따라서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는 단순한 산업 트렌드의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 기술과 미래 경제구조의 재편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 시민성: 디지털 세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인프라
메타버스는 단지 현실을 모방하는 가상 환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구조를 갖춘 디지털 문명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의 행동, 관계, 질서, 규범은 현실 세계 못지않은 시민적 토대를 필요로 한다. 로블록스(Roblox)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데이비드 바주키(David Baszucki)는 메타버스를 구성하는 8가지 핵심 요소 중 하나로 ‘시민성(Civility)'을 명시함으로써, 기술 기반 플랫폼이 아닌 사회의 지속가능한 인프라로서의 메타버스를 강조하였다.
그의 통찰은 단순한 윤리적 당위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성이 결여된 메타버스는 곧 혐오, 조작, 범죄, 착취의 무대로 전락하며, 신뢰 기반의 경제 시스템과 건강한 창작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해온 역사적 교훈이자, 디지털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보편적 진리다.
이러한 맥락에서 로블록스는 ‘메타버스 시민성’의 선도적 모델로 평가받는다. 로블록스는 전담 부사장(VP of Civility) 직제를 두고 있으며, 플랫폼 내 자율규제 및 시민성 구현을 위한 체계를 세 가지 축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운영 규정이 아니라, 메타버스 사회의 기본법에 해당하는 윤리적 구조다.
첫째, 행동 기준 체계(Behavior Pillar)는 사용자 개개인의 책임 있는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공정하고 존중하는 커뮤니케이션, 차별 금지, 혐오 발언 제한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는 온라인 정체성의 신뢰성과 커뮤니티 신뢰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다.
둘째, 콘텐츠 기준 체계(Content Pillar)는 UGC 기반의 콘텐츠가 적절한 가치와 표현을 담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다층적 검열 시스템이다. 로블록스는 업로드된 이미지, 오디오, 3D 메시 등을 AI 기반의 자동 필터링과 3,000명 이상의 콘텐츠 모더레이터에 의한 수동 심사를 병행하며, 콘텐츠의 ‘안전성, 적절성, 공공성’을 판단하는 알고리즘과 인간 윤리 기준을 결합하고 있다.
셋째, 계정 신뢰성 체계(Account Integrity Pillar)는 플랫폼 이용자의 신원을 검증하고 계정 무결성을 보장하는 프로토콜이다. 이메일 및 전화 인증, 부모 통제 시스템, 무단 구매 방지 조치 등을 통해 청소년 사용자 보호와 플랫폼 신뢰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단지 개인 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메타버스에서의 '‘신원 기반 시민성(ID-based Civility)’'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로블록스는 이러한 세 가지 자율규제 기반 위에 '포괄적 커뮤니티 스탠더드(Roblox Community Standards)'를 구축하였다. 이는 사용자의 권리와 의무, 표현의 한계와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디지털 헌법’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이 기준은 네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
첫째, 안전(Safety) 영역은 아동 위험, 폭력, 자해, 불법물품 등 생명과 신체, 법적 보호 대상과 관련된 위험 요소를 엄격히 규제한다. 둘째, 시민성과 존중(Civility & Respect) 영역은 혐오 발언, 불건전한 표현, 강요와 협박, 정치적 선동 등 커뮤니티 내 갈등과 배제 요인을 제한한다. 셋째, 공정성과 투명성(Fairness & Transparency)는 스팸, 사기, 지적재산권 침해, 플랫폼 외 유도 행위 등을 규제하며, 이용자 간 공정한 거래와 정보의 진실성 확보에 집중한다. 그리고 넷째, 보안과 프라이버시(Security & Privacy)는 무단 접속, 개인 정보 유출, 로블록스 시스템 오용 등을 통제함으로써 디지털 공간에서의 신뢰 기반 질서를 구축한다.
이러한 기준은 단순한 제한이 아닌, 자율적 창작과 책임 있는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시민적 인프라로 기능한다. 특히, AI 기반의 자동 필터링과 인간의 정성적 판단이 결합된 이중 심사 구조는 향후 웹3, 탈중앙 플랫폼에서도 적용 가능한 ‘시민 참여 기반 AI 거버넌스(Civic-AI Governance)’ 모델로 주목할 만하다.
궁극적으로 메타버스의 시민성은 기술적 질서와 윤리적 질서를 통합하는 '디지털 사회계약(Social Contract of the Virtual World)'의 실천이다. 이는 단지 기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을 넘어, '가치와 규범, 책임과 권리를 공유하는 디지털 공화국(Digital Republic)'으로서의 메타버스를 가능케 한다. 로블록스는 그 실험적 모델로서, 메타버스 시민성의 제도화 가능성을 세계에 먼저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산업 메타버스의 부상과 Z세대 플랫폼의 대두
메타버스가 단순한 유행이나 기술적 시연을 넘어 실질적인 산업의 변화와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현장 기반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산업 메타버스(Industrial Metaverse)'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시에 로블록스(Roblox), 포트나이트(Fortnite) 등 Z세대를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 플랫폼들이 메타버스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산업 메타버스: 가상과 현실의 유기적 융합
산업 메타버스란 메타버스 기술이 전통 산업 분야와 융합하여 실질적인 가치와 혁신을 창출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즉,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IoT,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등의 기술이 산업 현장에 적용되어 생산성, 효율성, 몰입도, 안전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구조이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는 메타버스 기반 수술 시뮬레이션이나 원격 협진 시스템이 실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건설 및 제조 분야에서는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한 가상 설계 및 공정 최적화가 이뤄지고 있다. 교육과 훈련 영역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몰입형 학습 콘텐츠가 학습자의 집중도와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국방이나 재난 대응 분야에서는 고위험 시나리오를 현실처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산업 메타버스의 성장은 단지 기술의 고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기업들은 내부 업무의 효율화뿐 아니라 고객과의 상호작용 강화, 서비스 모델의 혁신을 위해 메타버스를 전략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향후 더 많은 산업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Z세대 플랫폼: 놀이에서 생태계로
한편, 메타버스의 확산을 견인하고 있는 또 다른 핵심 축은 Z세대의 일상 속 플랫폼이다. 대표적으로 '로블록스(Roblox)'는 단순한 게임 플랫폼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직접 세계를 만들고 상호작용하는 창조 기반의 메타버스 생태계로 진화하였다. 2억 명 이상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보유한 이 플랫폼은, Z세대와 알파세대(Generation Alpha)가 디지털 공간에서 놀고, 배우고, 창작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 되고 있다.
로블록스는 단지 기술적으로 진보된 플랫폼이라기보다는, 세대적 감성과 디지털 사회성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용자는 아바타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게임과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고 기여’함으로써 메타버스 생태계의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이러한 창작 중심의 구조는 웹 2.0 시대의 소비자 중심 플랫폼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회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포트나이트(Fortnite), 제페토(Zepeto), 샌드박스(The Sandbox),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 등의 플랫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메타버스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게임, 패션, 공연, NFT 기반 경제 시스템 등을 융합하여 사용자들에게 일상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Z세대는 이러한 공간에서 자라났고, 이들이 사회의 중심 소비층과 창작 세력으로 성장함에 따라, 메타버스는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세대의 정체성과 문화 코드가 집약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메타버스의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며, 미래의 일자리, 교육, 경제 활동이 이 공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로 뿌리내리는 가상성
산업 메타버스와 Z세대 중심의 플랫폼은 각기 다른 축에서 메타버스의 성장 가능성을 실현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선 메타버스는 단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현실과 긴밀히 연결된 확장된 세계다. 그리고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사용자의 경험, 참여, 문화적 수용성이 지속 가능성의 핵심이다. 또한 산업과 세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메타버스는 '‘현실의 재구성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제 메타버스는 더 이상 선택 가능한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새로운 사회적 조건이자, 기술, 산업, 세대가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의 생태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메타버스가 ‘유행의 바람’을 지나 ‘구조적 전환’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메타버스의 진화 스펙트럼과 구성요소의 통합적 발전 모델
메타버스는 단일한 기술이나 플랫폼이 아닌,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디지털 생태계이다. 이에 대해 Gartner(가트너)는 2022년부터 향후 2030년대 이후까지의 메타버스 진화를 세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초기 단계는 ‘부상 단계 메타버스(Emerging Metaverse)’, 그 다음은 ‘진화 단계 메타버스(Advanced Metaverse)’, 마지막은 ‘성숙 단계 메타버스(Mature Metaverse)’로 구성된다. 이러한 단계 구분은 기술 수용의 관점뿐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 상호운용성, 경제 구조의 정교화 등 다양한 기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가트너의 모델을 토대로 현대원 교수는 각 단계 별로 적절한 비즈니스 모델들이 핵심 역할을 하면서 진화해감을 아래 그림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부상 단계 메타버스(Emerging Metaverse)’는 Web 3.0(웹 3.0) 기반 기술 및 플랫폼의 실험적 구현이 시작되는 단계로, 주로 가상 플랫폼과 디지털 결제(Payment) 시스템이 중심 기술로 작동한다. 이 시기에는 사용자 중심 경험보다는 개발자 중심 설계가 우세하며, 자산 판매, 사용료, 중개 수수료와 같은 단순 비즈니스 모델(BM)이 주를 이룬다.
‘진화 단계 메타버스(Advanced Metaverse)’로 진입하면, 메타버스는 기술 간 융합을 통해 보다 복합적이고 정교한 경험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콘텐츠의 다양성과 사용자 행동 분석, 그리고 고도화된 하드웨어 기술이 이 단계의 핵심 요소로 부상한다. 비즈니스 모델도 이와 함께 진화하여 기존 수익모델에 광고(Advertising)와 구독(Subscription)이 결합되며, 지속적 수익 창출 기반이 마련된다. 이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단순한 가상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 기반 경제 생태계로 변모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메타버스는 ‘성숙 단계 메타버스(Mature Metaverse)’로 발전하며, 기술적 상호운용성과 몰입 경험이 완전히 구현되는 단계에 도달한다. 이 시기에는 콘텐츠, 프로토콜, 서비스 간 경계가 사라지며, 사용자 간 실시간 협력과 확장 가능한 경제 모델이 현실화된다. 매튜 볼(Matthew Ball)이 제시한 8대 핵심 요소 중 ‘상호운용 표준’, ‘네트워킹 인프라’, ‘인터페이스 통합’이 이 시기의 성숙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동한다.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는 자산 거래, 광고, 구독료는 물론, 전자상거래(Commerce)와 디지털 자산 대출(Leasing, Lending)까지 확장되며, 메타버스는 하나의 독립된 경제권역으로 기능하게 된다.
정책과 제도: 한국 정부의 전략적 접근
메타버스가 기술적 진화를 넘어 사회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디지털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기술적 진보뿐 아니라 제도적 안정성과 윤리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사회적 수용과 법적 체계는 종종 더디게 움직이기 마련이며, 특히 사용자 보호, 산업 육성, 창작자 권리 보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균형 있는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정부의 전략적 접근은 규제와 진흥의 조화를 바탕으로 매우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를 법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제도적 틀 안에 포함시킨 국가 중 하나다. 2024년 제정된 「가상융합산업 진흥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은 메타버스를 포함한 가상융합 산업 전반을 포괄하는 기본법으로, 산업 진흥과 사용자 보호라는 이중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이 법은 메타버스 관련 기업과 산업군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정부의 지원 정책과 규제 체계를 체계적으로 정렬할 수 있는 법적 틀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플랫폼 구축, 기술 개발, 콘텐츠 제작, 인재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국가적 전략 수립이 가능해졌으며, 특히 기업이 자율적으로 규범을 설정하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자율규제 환경도 마련되었다. 이와 함께 정부는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이 기존 법령의 해석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일정 기간 동안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잠정 기준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접근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제도적 유연성과 정책의 실효성을 모두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메타버스의 기술적 확산과 함께 제기되는 윤리적·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는 선제적인 대응을 해왔다. 2022년 수립된 메타버스 윤리원칙은 메타버스를 단순한 기술 플랫폼이 아닌,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 정의하고, 그 공간 안에서 인간다운 존재가 유지되고 보호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 원칙은 ‘진정성 있는 정체성’, ‘안전한 경험’, ‘지속 가능한 번영’이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콘텐츠 제작자, 플랫폼 운영자, 사용자 모두가 공유해야 할 규범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윤리적 기반은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보호, 개인정보 보안, 저작권 보호, 혐오 표현 및 범죄 예방 등 메타버스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기능한다. 정부는 이를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자율규제를 독려하고 있으며, 기업이 자체적으로 콘텐츠 윤리 기준을 수립하고 이를 운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특히 딥페이크, 불법 저작물 유통, 아바타를 통한 온라인 범죄 등 현실적인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세부 가이드라인도 마련 중에 있다.
또한 잠정 기준 제도는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가 법률의 회색지대에 놓였을 때, 일시적인 운영 기준을 통해 서비스 중단이나 규제 공백을 방지하고, 안정적인 시장 확장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기반의 원격의료, 경찰 훈련, 요양보호사 교육, 초등학생 대상 XR 교육, 의료기기 활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잠정 기준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는 기술과 제도가 함께 진화할 수 있는 하나의 전형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접근은 규제와 혁신의 이분법적 대립을 넘어, 기술의 역동성과 사회의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적 전략이다. 정부는 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보장하는 한편, 시민의 권익과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글로벌 메타버스 거버넌스 논의에서도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전략적 기반이 된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것이 인간 중심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은 언제나 정책과 제도의 몫이다.
메타버스, 이제 본격 도약을 준비할 때이다
한때 지나치게 앞서 날았던 제비는 현실의 찬바람에 부딪혀 잠시 날개를 접어야 했지만, 기술은 늘 그러했듯 조용히 다음의 계절을 준비해왔다. 메타버스 역시 마찬가지다. 과도한 기대와 실망의 진폭을 지나, 이제는 기술적 성숙과 생태계 확장을 통해 본격적인 ‘디지털 사회 공간’으로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이라는 결정적 동인이 자리한다. AI는 단순히 가상 환경을 구현하는 도구를 넘어, 창작 주체로서 인간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공동 창출하는 동반자가 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발전은 누구나 창작자가 되는 시대를 앞당기고 있으며, 이는 Web3 패러다임의 핵심 가치인 분산형 창조 생태계의 기반을 실질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더 이상 메타버스는 개발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용자가 곧 창조자이며, 사회의 일원이다.
이와 함께 ‘산업 메타버스’의 확장은 메타버스가 현실 경제와 산업 구조의 재편을 이끄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육, 의료, 제조, 엔터테인먼트 등 실제 산업의 최전선에서 메타버스는 디지털 전환의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으며, 특히 데이터 기반 운영과 실시간 시뮬레이션, 몰입형 협업 환경은 생산성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한국 정부의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2024년 제정된 가상융합산업진흥법은 세계 최초로 메타버스를 법적으로 정의하며, 기술 진흥과 윤리 규범, 그리고 자율 규제를 균형 있게 제도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메타버스가 단순한 기술 산업을 넘어 사회 제도의 일부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제도적 기반이 필수적이며, 한국은 그 선도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기술적, 산업적, 제도적 진보를 하나의 통합된 사회적 비전으로 엮어낼 수 있는가이다. 메타버스는 더 이상 현실을 대체하는 가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확장이며, 인간의 사고와 창조, 관계 형성이 일어나는 또 하나의 공공영역이다. 그 공간이 지속가능하려면 기술만큼이나 시민성과 윤리, 그리고 포용성에 대한 철학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묻는다. 메타버스는 진정한 봄이 될 수 있는가? 제비는 너무 일찍 날았지만,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질 계절은 단지 계절이 아닌, 디지털 문명 전환의 새 장(章)이 될지도 모른다. AI가 메타버스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관련 기술들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됨에 따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움직임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이제는 메타버스의 본격적인 도약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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