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후 인공지능 경쟁의 무대는 ‘모델’이었다. ChatGPT, Gemini, Claude 같은 초거대 언어모델(LLM)이 기술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세계는 누가 더 정교한 언어·추론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에 주목했다. 그러나 2025년 가을, 경쟁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
2025년 4월 9일, 유럽연합(EU)은 ‘AI Continent Action Plan’을 발표하며 총 200억 유로(약 30조 원) 규모의 AI 기가팩토리(Gigafactory)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센터 확충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AI 인프라 경쟁에 대응해 유럽이 자체 연산력과 에너지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선언이었다.
계획 발표 이후 6월 말까지 16개 회원국에서 총 76개 프로젝트 제안이 접수되었고, 10월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최종 후보지 선정을 위한 심사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발맞춰 독일과 프랑스는 반도체 생산라인과 냉각형 슈퍼컴퓨팅 설비에 대한 공동 투자를 결정했고, 스페인과 리투아니아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AI 데이터센터 부지를 선점하며 EU의 친환경·자립형 인공지능 인프라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왜 지금?
AI의 병목은 더 이상 알고리즘이 아니다. 초거대 모델 한 번을 학습시키려면 막대한 전력·냉각·반도체(가속기) 자원이 동원된다. 실제로 유럽연합은 2025년 4월 ‘AI Continent Action Plan’과 함께, 대규모 AI 훈련을 감당할 AI 팩토리·기가팩토리 구상을 공식화했다. 이는 유럽 내부의 슈퍼컴퓨팅(EuroHPC) 역량과 연계해 공공 접근형 연산력 풀을 구축하려는 계획으로, 6월까지 16개 회원국에서 76건의 제안이 접수되었으며, 10월 현재 EU 집행위원회는 최종 후보지 선정을 위한 심사 단계에 들어서 있다.
이 같은 전환은 전력 인프라가 AI 경쟁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하이퍼스케일 사업자들이 원전·가스·PPA 등 직접 전력조달을 확대하고 있다. 예컨대, 메타는 일리노이 클린턴 원전 전력 1.1GW 장기 구매계약을 체결했고, 빅테크의 SMR(소형모듈원전) 검토·제휴도 가속 중이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초대형 모델 학습에 필요한 전력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가운데, xAI는 차세대 데이터센터 전력을 위해 해외 발전소 설비를 통째로 들여오는 방안까지 검토·추진하는 정황이 보도됐다. xAI의 ‘Colossus’ 슈퍼컴퓨터는 이미 약 200,000개의 엔비디아 GPU로 300MW 안팎을 소비하는 수준으로 전해지며, 차기 센터는 1백만 GPU급, GW(기가와트) 급 전력 수요가 거론된다.
아시아에서도 냉각·효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일본의 후지쯔는 액침·수냉 기반 고밀도 AI 인프라 효율화를 추진하며, 데이터센터의 전력·냉각 최적화를 위한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는 모델 성능을 넘어 전력대비 연산 효율(TCOE) 을 끌어올리는 산업적 경쟁으로 초점이 이동했음을 방증한다.
이 흐름 속에서 유럽은 기업 단위의 경쟁 대신 공공 인프라 모델을 선택했다. AI를 '서비스'가 아닌 '공공재'로 다루며, 민관 협력 기반의 개방형 연산력을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가장 '가치 기반적' 접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의 기가팩토리 구상은 단순히 GPU 수를 늘리는 게 아니다. AI가 탄소 집약적 기술로 비판받는 시점에서, EU는 이를 'Green AI Infrastructure'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 고효율 냉각, 슈퍼컴퓨팅 네트워크(EuroHPC)를 결합한 환경 지속가능형 설계가 핵심이다. 친환경과 디지털 주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겨냥한 전략이며 데이터 주권을 넘어 'AI 주권'을 설비와 전력망 위에 세우려는 시도다.
모델의 시대는 끝나고, 인프라의 시대가 열린다
인공지능 경쟁의 1막이 데이터와 모델 혁신을 앞세운 ‘지능 경쟁’이었다면, 2막은 전력·반도체·냉각·네트워크를 둘러싼 자원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각 지역의 전략도 뚜렷하다.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한 사설형(Private Cloud) 확장을, 중국은 국가 주도의 대규모 인프라 구축을, 유럽은 공공 접근성과 규범을 결합한 공공 주도형 인프라 모델을 선택했다.
유럽의 AI 기가팩토리 구상은 이 중에서도 가장 가치 지향적인 접근으로 평가된다. 2024년에 채택된 EU AI 법(일명 AI Act) 의 철학(신뢰성, 투명성, 안전성)이 데이터센터 설계와 전력 운용까지 이어지도록 설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고효율 냉각, 초고성능컴퓨팅(EuroHPC) 연계를 통해 지속가능한 AI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AI는 더 이상 구름 위의 기술이 아니라 전력망, 냉각수, 토지, 반도체 공급망 같은 현실의 자원 위에 세워지는 물리적 산업이 되었고, AI 전쟁의 2막은 이미 땅 위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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