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인물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존엄을 대체할 수는 없다.”
마틴 루서 킹의 얼굴이 AI에 의해 멈췄다
2025년 10월, OpenAI는 공식 성명을 통해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의 초상 생성 기능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는 킹 목사 유산 관리 재단(The Estate of Martin Luther King, Jr., Inc., 이하 King Inc.)의 요청에 따른 조치다.
사건의 발단은 일부 사용자가 OpenAI의 비디오 생성 모델 Sora를 이용해 킹 목사를 비하하거나 왜곡된 모습으로 묘사한 영상물을 생성하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King Inc.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존엄성이 훼손됐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했다.
OpenAI는 곧바로 해당 요청을 수용하고, “사용자 생성물이 킹 목사의 유산을 모욕한 사례가 있었다. King Inc.의 요청에 따라 관련 생성을 일시 중단하고, 역사적 인물 보호를 위한 가드레일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생성형 AI 시대의 ‘디지털 초상권’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한 인물의 이미지 보호를 넘어, “AI가 만들어낸 인간의 얼굴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과거 초상권은 생존 인물에 한정된 법적 개념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사망한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복원하고, 새로운 문맥 속에 재등장시키는 기술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역사적 인물’도 더 이상 과거의 존재가 아니다. AI는 킹 목사를 현실로 소환할 수 있고, 그의 목소리로 새로운 발언을 만들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이 진짜 킹 목사의 의지인지, AI가 재해석한 환상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Sora의 무한 재현력과 그 위험
OpenAI의 Sora는 단순한 영상 생성기를 넘어, 텍스트 프롬프트로 “사람의 행동과 감정이 담긴 장면”을 사실적으로 만들어낸다.
이 기술이 보여주는 창조력은 놀랍지만, 동시에 “역사적 인물의 디지털 복제”라는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낳았다.
예를 들어, 킹 목사가 AI 영상 속에서 “현대 정치”에 대해 언급하거나, 그의 목소리로 새로운 연설을 하는 장면이 생성될 경우, 그것이 창작인지 조작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OpenAI의 내부 윤리위원회(AI Ethics Council)는 이러한 위험을 “AI 기반의 ‘2차 사망’(secondary death)”이라 부른다. 한 사람의 이미지가 생전의 의미와 다르게 재탄생하며, 그의 유산이 ‘기억의 왜곡물’로 소비되는 현상이다.
표현의 자유 vs. 디지털 존엄
OpenAI는 성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표현은 표현의 자유라는 강한 공익이 존재하지만, 공인과 그 가족이 자신의 이미지 사용 방식을 결정할 권리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AI 시대의 ‘표현의 자유 대 초상권’ 충돌을 정면으로 인식한 발언이다.
① 표현의 자유 측면: AI가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것은 예술·교육·풍자 등 사회적 가치가 있다. 특히 다큐멘터리나 역사 교육에서는 이 기술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② 디지털 존엄 측면: 하지만, 인물의 이미지가 조롱이나 왜곡으로 변질될 때, 그 피해는 단순히 ‘불쾌감’이 아니라 기억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킹 목사처럼 인권 운동의 상징인 인물의 경우, 그의 초상은 단순한 개인 자산이 아니라 공적 기억의 일부이기도 하다.
‘AI가 기억을 조작할 권리’는 존재하는가
AI가 역사적 인물을 재현하는 현상은 이미 세계적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24년,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가족은 그의 목소리를 AI로 복제한 광고 제작사에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재단은 ‘AI가 생성한 사르트르 발언 영상’에 대해 명예훼손을 주장했다. 한국에서도, 고(故)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AI로 재구성한 캠페인이 ‘역사적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결국 이번 OpenAI–King Inc. 합의는, AI 시대의 초상권 보호를 제도적으로 공식화한 첫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OpenAI의 ‘AI 윤리 외교’
OpenAI가 이번 사안을 단순 기술 이슈가 아닌 ‘관계 회복의 정치’로 접근한 점도 주목된다. 성명은 Dr. Bernice A. King(킹 목사의 딸)과 John Hope Bryant(인권운동가)에게 감사를 표하며, 이를 “AI 윤리 대화의 장을 연 사건”으로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사과문이 아니라, OpenAI가 ‘AI 윤리 외교(Ethical Diplomacy)’를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즉, 기술의 확산보다 사회적 신뢰 회복을 우선순위로 두겠다는 메시지다.
‘AI 추모권(Artificial Memory Right)’의 시대가 온다
이번 사건은 향후 몇 년 내, ‘AI가 생성한 역사 인물의 이미지 사용’을 둘러싼 법적 기준이 정립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방향이 예상된다.
- AI 생성물에 대한 “디지털 초상권” 제도화
- 유족·재단의 사전 승인 절차 (opt-out mechanism)
- AI 영상의 ‘진위 라벨링’ 의무화 (AI provenance disclosure)
이른바 ‘AI 추모권(Artificial Memory Right)’, 즉 기억의 윤리적 관리권이 새로운 인권 개념으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AI가 인간의 기억을 재현할 수는 있지만, 존엄을 대신할 수는 없다.”
OpenAI와 King 재단의 이번 합의는 AI 기술이 단순한 창작 도구가 아니라 기억과 존엄의 경계를 다루는 행위임을 일깨워준다.
AI는 이제 단순히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묻는 기술이 되었다.
“I have a dream.”
그 꿈의 의미가 AI 속에서 희화화되지 않도록 막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디지털 시대의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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