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검열, 아동 보호, 표현의 자유가 충돌하는 미국의 새로운 전선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Computer & Communications Industry Association)가 텍사스 주 정부를 상대로 ‘모바일 앱스토어 규제법(SB2420)’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의 법은 2026년 1월 1일 시행 예정으로, 모든 앱스토어와 개발자에게 연령 인증, 부모 동의, 콘텐츠 분류 의무를 강제한다.
CCIA는 이를 두고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생활을 침범하며, 기업과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위헌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아동 보호’ 명분 속의 광범위한 통제
텍사스주 SB2420 법의 핵심 조항은 다음과 같다.
- 모든 사용자 계정에 연령 인증 의무화
모든 앱스토어 사용자(앱 다운로드자 포함)는 본인 연령을 증명해야 한다.
인증 절차에는 신분증 업로드, 생년월일 입력 등 개인식별 정보가 포함된다. - 18세 미만 이용자에 대한 부모 통제 강제
미성년자는 부모의 ‘명시적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부분의 앱 다운로드 및 인앱 구매가 금지된다.
부모 계정이 자녀의 계정 접근권을 자동으로 부여받는다. - 앱 개발자 규제 조항
모든 앱은 ‘연령 등급’(Age Rating)을 세분화해 자체 신고해야 하며, 그 기준과 이유를 서면으로 설명해야 한다.
앱 기능이 변경될 때마다 이를 앱스토어와 주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조항은 겉으로 보기엔 청소년 보호를 위한 규제이지만, 실제 적용 시에는 앱 생태계 전체의 표현 자유와 운영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CCIA의 입장 —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

소송을 주도한 CCIA의 스테파니 조이스(Stephanie Joyce) 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청소년 보호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 보호는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의 대가로 이루어져선 안 된다. 텍사스법은 헌법 제1조(First Amendment)를 정면으로 위반한다.”
그녀는 특히, 앱스토어가 ‘법이 허용하는 콘텐츠조차 제공할 수 없게 되는 점’, 개발자에게 ‘국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콘텐츠를 설명하게 강제하는 점’을 문제의 본질로 지적했다.
즉, 이번 소송의 핵심은 “아동 보호”가 아니라 “국가가 디지털 플랫폼의 언어와 구조를 통제하려는 시도”에 있다는 것이다.
헌법적 쟁점 — ‘표현의 자유’와 ‘국가의 디지털 개입’
SB2420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First Amendment)의 핵심 가치인 ‘자유로운 표현(free speech)’과 직접 충돌한다.
쟁점 ①: 강제된 발언(compelled speech)
개발자가 자신들의 앱을 “국가가 정의한 연령 등급 기준에 따라 설명”해야 하는 것은 표현의 강제에 해당한다. (대표 판례: Wooley v. Maynard, 1977)
쟁점 ②: 검열(prior restraint)
18세 미만 이용자의 접근을 사전 차단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 사전 검열에 해당할 수 있다.
쟁점 ③: 사생활 침해(privacy infringement)
모든 사용자의 신분 인증을 강제하는 것은 ‘프라이버시 권리’(Right to Privacy, Griswold v. Connecticut, 1965)의 침해 가능성이 있다.
‘규제의 돋보기가 플랫폼 전체를 덮는다’
이 법은 청소년 접근 통제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플랫폼과 개발자 모두를 포괄적으로 통제하는 규제로 작동한다.

결국, 이 법은 “아동 보호를 빌미로 디지털 생태계를 국가의 관리체계로 흡수”하는 구조다.
‘검열을 둘러싼 주(州) 대 연방의 전쟁’
텍사스는 최근 몇 년간 온라인 플랫폼과의 법적 충돌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2021년: HB20법 — 소셜미디어 기업의 콘텐츠 삭제 제한 (현재 연방대법원 심리 중)
2023년: TikTok 금지 행정명령 — 주정부 공공기기 내 사용 금지
2025년: SB2420 — 앱스토어 연령·콘텐츠 규제
즉, 텍사스는 “자유로운 인터넷에 대한 주(州) 차원의 규제 실험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제는 플랫폼의 콘텐츠뿐 아니라, ‘앱스토어 구조 자체’를 규제하려는 시도로 확장된 것이다.
앱 생태계의 분절화 가능성
만약 SB2420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애플(Apple), 구글(Google), 메타(Meta),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등 대형 플랫폼 기업은 텍사스 전용 앱 정책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앱스토어 운영비용 상승, 콘텐츠 접근 제한, 이용자 프라이버시 침해, 개발자 행정 부담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미국 내 디지털 규제의 주(州)별 분열(state-level fragmentation)이 심화되면 국가 전체의 기술 혁신 속도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판 K-사이버안심존’?
이 법은 한국·중국·EU 등 다른 지역의 디지털 보호 규제와 닮았다.

텍사스의 SB2420은 이러한 규제를 ‘자유시장 환경의 미국식 버전’으로 이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헌법적 가치(자유와 사생활 보호)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소송의 핵심이다.
‘디지털 부모주의(Digital Paternalism)’와 헌법의 경계
CCIA의 소송은 단순한 법률 분쟁이 아니다. 이것은 “AI·데이터·앱 생태계 시대의 새로운 헌법 시험대”다.
“정부가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접속과 표현을 제한할 때,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감시다.”
2026년 1월 1일 — SB2420이 발효되는 날이 다가올수록, 미국 사회는 다시 묻게 될 것이다.
“디지털 보호는 어디서부터 검열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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