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속도 조절, 유럽은 소프트웨어 난항,
일본은 로봇·스마트시티, 중국은 수직계열화
그리고 현대차의 6축 동시 가동 전략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투자 지형이 분명하게 바뀌고 있다. 한때 “전기차(EV)로 누가 더 빨리 전환하느냐”를 두고 벌이던 일종의 단선적(單線的) 경쟁은 이미 1막을 마쳤다.
이제는 미국은 전기차 투자 속도를 조절하며 숨을 고르고, 유럽은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 전환의 난맥상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빼고, 일본은 로봇·스마트시티·휴먼 모빌리티라는 독자 노선을 걷고, 중국은 배터리–전기차 수직계열화로 EV 패권을 장악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만이 AI–로봇–수소–SDV–전기차–스마트팩토리를 동시에 가동하는 ‘6축 성장 엔진’에 투자하며 판을 다시 짜려 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미국·일본·중국·유럽 주요 OEM의 투자 동향을 압축적으로 짚고, 그 끝에서 현대차의 전략이 갖는 의미를 분석한다.
Ⅰ. 미국(GM·Ford) – 전기차 투자, ‘숨 고르기’ 아닌 ‘속도 조절’ 국면
지난 5년간 미국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을 위해 수백억 달러 단위의 베팅을 이어왔다.
GM은 2020~2025년 EV·AV에 350억 달러 투자 계획을 공표했고, Ford는 2022~2026년 EV·배터리에 5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기조는 분명했다.
“내연기관에서 EV로, 그리고 자율주행으로 한 번에 점프하겠다.”
EV 투자 축소가 아닌 ‘속도 조절’
그러나 2024~2025년으로 들어서며 기류가 바뀌었다.
EV 수요 성장세 둔화, 고금리에 따른 자금 조달 비용 증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기준에 맞춘 북미 공급망 재편 지연 등 이 세 가지가 겹치며, 미국 업체들은 “규모의 전환”에서 “수익성 방어” 모드로 일부 후퇴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부 전기차 라인업 출시 연기, 배터리 공장 증설 계획 재검토, 생산 목표 하향 조정 등 “속도는 줄이고, 손익은 지키는” 전략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AI 로보틱스는 주변부 전략으로 후퇴
AI 로봇·자율주행 측면에서도 “풀 스로틀”과는 거리가 먼 행보가 이어진다. GM 자회사 Cruise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모빌리티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는 산업용 로봇 생태계 구축과는 결이 다르다.
Ford는 한때 GM·Volkswagen과 함께 자율주행 기술사 Argo AI에 투자했으나 2022년 이를 철회하면서 사실상 고강도 자율주행 베팅에서 한 발 물러섰다.
이처럼 미국 완성차 기업들은 “EV·배터리”라는 한 축에서 속도 조절에 들어갔고, “AI·로봇”은 어디까지나 보조·주변부 전략에 머물고 있다. AI·로봇·수소를 동시에 밀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비교하면, 투자 축의 다양성과 진입 속도에서 뒤처지는 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Ⅱ. 일본(토요타·혼다) – 로봇·스마트시티·휴먼 모빌리티라는 독자 노선
일본의 전략은 미국·중국과 결이 완전히 다르다. 특히 토요타는 EV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서도, 수소, 하이브리드, 로봇, 스마트시티, 휴먼 모빌리티 등을 조합한 ‘멀티 트랙 전략’ 으로 차세대 성장 동력을 모색 중이다.
Woven City – 세계 최초의 ‘로봇 도시’ 실험장
토요타는 2021년 후지산 인근에 약 70만㎡ 규모의 Woven City(우븐 시티)를 착공했다. 이 도시는 자율주행차, 서비스 로봇, AI 기반 스마트홈, 디지털 트윈 도시 운영 등을 통합 실험하는 리빙 랩(Living Lab)으로 설계돼 있다.
단순히 차량 테스트 베드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 전체에 모빌리티와 로봇을 어떻게 녹여 넣을 것인가”를 실험하는 미래 도시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령화 대응 휴먼 서포트 로봇(HSR)
토요타는 일본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 문제에 맞춰 간병, 일상 동작 보조, 원격 모니터링 등을 지원하는 휴먼 서포트 로봇(HSR)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 아니라 “노인을 포함한 인간의 자립성을 높이는 보조자”를 지향하는 휴먼 모빌리티 전략의 일환이다.
일본의 투자 방향은 “스마트시티 + 휴먼 모빌리티” 라는 인간 생활 중심의 기술 실험이다. 이는 제조·공장·생산성을 축으로 한 현대차의 AI·로봇·피지컬 AI 생태계와는 다른 차원의 실험이지만, 전기차 단일 축 경쟁을 넘는 ‘미래 도시·삶의 방식’ 경쟁이라는 점에서 상호 보완적인 구도를 형성한다.
Ⅲ. 중국(BYD·CATL) – 배터리–전기차 수직계열화로 EV 패권 장악
중국은 이미 EV 경쟁에서 한 단계 앞서 있다. 그 핵심에는 BYD와 CATL이라는 두 축이 있다.
수직계열화가 만들어낸 20~35%의 원가 우위
BYD는 배터리, 반도체, 파워트레인, 완성차 생산까지 대부분의 핵심 공정을 내부에서 일괄 처리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구축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이는 20~35% 수준의 원가 절감 효과로 이어지며,
동급 차량 대비 공격적인 가격 책정을 가능하게 한다.
CATL 역시 2023년 기준 글로벌 EV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테슬라,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OEM에 셀 공급, 유럽·동남아·중국을 잇는 글로벌 생산 벨트 구축 등으로 배터리 공급망의 사실상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BYD vs 테슬라, ‘EV 볼륨 게임’의 새 국면
각종 통계에 따르면 2023~2024년 기준, EV(특히 PHEV 포함 전체 전동차) 시장에서 BYD는 글로벌 1위를 유지했고, BEV만 놓고 보면 테슬라와 분기별·연도별 1~2위를 엎치락뒤치락하는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유럽 일부 시장에서 BYD가 테슬라를 앞서는 사례도 나타나며, 중국산 EV의 유럽 침투 속도가 서구 OEM의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은 “압도적 가격경쟁력 + 수직계열화 + 내수 기반 2차전지 공급망”이라는 조합으로 EV 단일 축에서 확고한 우위를 확보했다. 현대차가 AI·수소·로봇·SDV 등으로 다각화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EV라는 한 축을 극대화해 규모·가격·속도에서 승부를 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Ⅳ. 유럽(VW·BMW) – SDV 전환 선언, 그러나 소프트웨어 장벽에 막히다
유럽의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일제히 “미래차 =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라는 방향성을 채택했다.
폭스바겐(VW)은 소프트웨어 자회사 CARIAD를 세우고 ‘Trinity 프로젝트’를 그룹의 SDV 플래그십으로 내세웠으며, BMW는 Neue Klasse(노이에 클라쎄) 플랫폼으로 향후 전기차·SDV 라인업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계속된 지연, 그리고 리더십 교체
문제는 “선언” 이후이다. CARIAD의 소프트웨어 개발 지연으로 핵심 SDV 플랫폼 론칭이 2~3년씩 밀리고, 여러 신차 출시가 연쇄적으로 늦춰졌다. 이 과정에서 VW 그룹은 CEO 교체 등 조직 수술을 반복해야 했고, 내부에서도 “소프트웨어 전략 전면 재검토” 목소리가 나온 상태다.
BMW 역시 SDV·전기차 통합 플랫폼을 밀고 있으나, 본격적인 대량 상용화 성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조직·문화·기술이 모두 ‘병목’
유럽 업체들의 공통된 난제는 다국적·다브랜드 구조, 복잡한 의사결정 계층, 소프트웨어 내재화 경험 부족 등 세 가지다.
이로 인해 테슬라나 중국 신흥 EV 기업이 보여준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 일체형 개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가 드러났다.
유럽은 방향성은 정확하지만 실행력은 떨어진 사례다. 이는 현대차그룹이 SDV 전환을 추진하면서 “기술만이 아니라 조직·문화·의사결정 구조까지 같이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타산지석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6축 동시 가동’이 바꾸는 게임의 규칙
정리하면, 글로벌 4대 축의 현재 위치는 다음과 같다.
- 미국: EV·배터리 전환에 거액을 투입했으나, 최근 투자 속도 조절 국면
- 유럽: SDV 전환을 선언했지만, 소프트웨어 병목·조직 문제로 지연
- 일본: 로봇·스마트시티·휴먼 모빌리티 중심의 생활 밀착형 실험
- 중국: 배터리–EV 수직계열화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 선점
여기서 현대차그룹의 125조 2천억 원(2026~2030년) 국내 투자 계획은 완전히 다른 궤적을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AI → 로봇(피지컬 AI) → 수소 → SDV → 전기차 → 스마트팩토리 라는 6개의 성장 엔진을 동시에 가동하려 한다. 이는 미국처럼 EV에만 몰렸다가 속도 조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유럽처럼 SDV 한 축에서 발이 묶인 상황도 아니며, 중국처럼 EV에 ‘올인’하는 전략도 아니다. 오히려 미래 모빌리티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핵심 축에 동시에 선제 투자하는,현 시점에서 가장 공격적인 다축(多軸) 전략에 가깝다.
이 전략이 성공한다면, 한국과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환의 추격자(follower)”에서 “차세대 모빌리티 질서를 설계하는 설계자(designer)”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다만, 거대 투자에 따른 재무 리스크, 글로벌 경기·수요의 불확실성, 소프트웨어·AI 인재 확보 경쟁, 수소·로봇 상용화 일정의 현실성 등은 여전히 변수다.
결국 향후 10년은, “누가 더 빨리 전기차를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복합적인 모빌리티 생태계를 먼저 설계하고 구현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 새로운 게임의 규칙 위에서, 현대차의 6축 전략이 진짜 패권의 설계도가 될지, 아니면 과도한 확장으로 평가받게 될지는 이제 막 시작된 다음 라운드가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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