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 규제법’ 위헌 소송 제기
“정부가 부모 역할을 하려 한다”
미국 텍사스주가 내년 1월부터 시행하려는 ‘앱스토어 규제법(App Store Accountability Act)’이 또다시 법정에 섰다. 이번에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 단체와 청소년들이 직접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지난 10월 16일, 학생 단체 Students Engaged in Advancing Texas(SEAT)와 텍사스의 두 명의 미성년 학생이 연방 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이 법이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법의 시행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모든 사람에게 ‘연령 인증’ 의무… 부모 동의 없으면 앱 금지
이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핵심 내용은 간단하지만 충격적이다.
“텍사스 내 모든 앱스토어 이용자는, 미성년자든 성인이든 앱을 다운로드하기 전에 신분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18세 미만 청소년은 부모의 명시적 동의 없이는 앱을 깔 수도, 인앱 결제를 할 수도 없다. 부모는 그때마다 자신의 신분을 인증하고, 앱마다 별도로 동의를 제출해야 한다.
즉, 아이가 ‘Duolingo’를 깔 때 한 번, ‘Spotify’를 깔 때 또 한 번, ‘YouTube’를 사용할 때 또 한 번 —
모두 개별적으로 부모가 허락해야 하는 구조다.
“이건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빼앗는 것”
소송을 맡은 Davis Wright Tremaine LLP의 앰비카 쿠마르(Amblika Kumar)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헌법은 정부가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정보를 접할지를 대신 결정할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학습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건 국가가 아니라 부모입니다.”
그녀는 미국 대법원 판례인 Brown v. Entertainment Merchants Association을 인용했다. 이 판례는 “정부는 어린이가 어떤 사상을 접할지 제한할 ‘포괄적 권한’을 갖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번 소송의 논리는 명확하다. 국가가 부모를 대신해 ‘디지털 검열관’ 역할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 한 어머니의 증언
이번 소송에는 부모의 목소리도 담겼다.
원고 중 한 명의 어머니, 바네사 페르난데스(Vanessa Fernandez)는 자신의 아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일정한 자율성을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법은 내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내 아이의 사생활을 침해하게 만듭니다. 부모로서의 결정권을 정부가 빼앗는 거죠.”
즉, 이 법은 청소년의 권리뿐 아니라 부모의 양육 자율성까지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생들의 현실 — “뉴스, 공부, 창작까지 막는다”
이번 소송에는 두 명의 고등학생, M.F.와 Z.B.가 함께했다.
Z.B.는 학교 신문 기자로, X(옛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쓴 기사를 공유하고 친구들과 소통해왔다. 하지만 이 법이 시행되면, 그조차 부모 인증이 없으면 글을 올릴 수 없게 된다.
M.F.는 토론 동아리와 사진 동아리에 소속된 학생이다. 그는 뉴스 앱으로 자료를 찾고, 사진 공유 앱에서 영감을 얻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하지만 이 법은 그런 일상적인 학습과 창작의 자유까지 막을 수 있다.
규제의 범위는 ‘모든 앱’
이 법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SNS’나 ‘게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이 규제하는 대상에는 위키백과(Wikipedia), 검색 앱과 브라우저(Chrome, Safari), 메시징 서비스(WhatsApp, Slack), 뉴스 앱(The New York Times, WSJ, ESPN 등), 학습 플랫폼(Coursera, Duolingo, Codecademy), 콘텐츠 앱(Spotify, Netflix, YouTube) 까지 포함된다. 다시 말해, ‘모든 지식, 문화, 예술로 가는 창문’이 국가에 의해 잠길 수 있다는 것이다.
프라이버시 침해 위험도 커
법이 요구하는 연령 인증 절차에는 정부 발급 신분증, 생체 정보, 얼굴 사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런 데이터를 다루던 인증 업체에서 7만 명 이상 사용자의 신분증 이미지가 해킹되어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또 다른 업체에서는 아이디 사진 7만 2천 장이 온라인에 공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텍사스주는 모든 주민에게 “앱을 쓰려면 신분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학생 단체 SEAT의 입장 — “우리는 목소리를 잃을 수 없다”
이번 소송의 주체인 SEAT는 텍사스 내 중·고·대학생들이 함께 만든 단체로, 정책 참여와 청소년 목소리 확산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공동 창립자이자 대표인 카메론 새뮤얼스(Cameron Samuels)는 말했다.
“우리는 앱을 통해 세상과 연결됩니다. 뉴스, 소셜미디어, 학습, 창작 —모두 우리의 삶이자 민주주의 참여의 도구입니다. 이 법은 단지 앱을 막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시민권을 침묵시키는 일입니다.”
텍사스의 ‘디지털 보호법’ 실험, 미국 전체로 번질까
이 사건은 단지 텍사스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미국 여러 주에서 비슷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루이지애나·유타·아이다호 주 등은 이미 ‘청소년 SNS 접속 제한법’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 주도 비슷한 규제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런 흐름이 자칫 ‘디지털 부모주의(Digital Paternalism)’, 즉 “국가가 부모가 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를 위한 법이, 아이의 목소리를 막는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법적 절차를 넘어선다. 그건 “누가 아이의 자유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이다.
앱스토어 규제법은 분명 ‘아이들을 위한 법’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의 학습권, 창작권, 표현권을 막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조차, 그 법이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이 법이 지키려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국가의 기준’일지도 모른다.
“학생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앱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배움의 공간이다.”
— 학생 단체 SEAT의 성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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